- 무엇이 홍위병들을 열광시켰나
Views From the Inside
문화혁명에 관한 사진작가 리전성의 신간에서 우선 독자들의 이목을 끄는 것은 맨앞에 나오는 젊은 중국인 남녀들의 얼굴 사진이다. 얼굴을 찌푸린 사람도 있고 담배를 피우거나 박수를 치거나 야유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 뒤쪽으로는 깃발을 흔드는 군중이 나오는데 이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이 사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흐릿한 배경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우리는 모두 이 얼굴 없는 젊은 혁명가들의 존재와 이들이 마오쩌둥(毛澤東)의 주도로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잘 안다. 그러나 리전성은 몇몇 젊은이들의 얼굴을 강조함으로써 뭔가 좀더 복잡한 것을 생각하도록 만든다. ‘1960년대를 살았던 개인의 삶은 어땠을까?’, ‘무엇이 이들을 권위에 도전하게 만들고 수세기에 걸쳐 이룩된 문화를 짓밟고 군중심리에 휩쓸리도록 만들었을까?’하는 등등.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변이 속시원하게 나온 적은 없었다. 리전성의 선구자적 저서 ‘홍위병 학생기자’(3백15쪽·파이든 출판사 펴냄)와 충격적인 다큐멘터리 영화 ‘아침해’는 해답을 찾는 첫 시도가 될지도 모른다. “전에는 중국에서 문화혁명을 사람들의 일로 보려는 노력이 없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왜 그렇게 문화혁명에 열중했는지에 대해 신경쓰지 않았다. 문화혁명 때 고생한 이야기는 할 수 있었지만 그 이상을 포착하려는 것은 금기였다”고 인디애나대의 동아시아 연구소 소장 제프 와서스트롬은 말했다.
그러나 리전성과 ‘아침해’의 제작자들에게는 오히려 그 이상을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젊은 사진작가였던 리전성은 헤이룽장(黑龍江)성의 한 공산당 기관지를 위해 문화혁명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마오쩌둥이 이끄는 중국의 긍정적 이미지들을 기록하는 필수적 작업과 동시에 암울한 모습도 사진으로 남겨 아파트에 숨겼다. 이제 드디어 세상은 그 사진들을 볼 수 있게 됐다. 우습게 생긴 고깔모자를 쓰고 얼굴에는 먹칠을 당한 전직 시장이나 관리들의 모습. 젊은 학생들에게 머리카락을 잘린 채 열광하는 군중 앞에서 머리를 조아린 지주들. 총살형 집행자와 희생자들.
당시 홍위병의 일원이었던 리전성은 내켜서 했던 것은 아니라면서 지난날에 대한 자부심과 회한이 섞인 어조로 베이징에서 마오쩌둥의 친필이 적힌 붉은 띠를 받은 경위를 설명했다. 그러나 밖에서 두르고 다니기에는 너무 소중한 것 같았다. 띠에는 책 제목과 똑같이 ‘홍위병 학생기자’라고 쓰여 있었다. 그는 “이 띠를 보물처럼 여겨 그냥 헌 띠를 달고 다녔다. 아직도 그 띠를 갖고 있다”고 책에 적었다.
‘아침해’의 제작진 가운데 일원인 카마 힌턴은 미국인 중국통의 딸로 태어나 리전성과 마찬가지로 중국에서 자랐다. 이제 그녀는 인터뷰차 중국에 돌아가 만난 일부 여성들 또래의 나이가 됐다. 그중에는 마오쩌둥의 팔에 직접 붉은 띠를 둘러주기 위해 시위대 속에서 한발 앞으로 나섰던 일을 회상한 여성도 있다. 이 영화에는 결손가정의 모습도 담겨 있다.
아버지는 근거가 불확실한 고발 때문에 유배당해 강제노동에 종사하고 딸들은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한다. “이 다큐멘터리는 다양한 반응을 보여줌으로써 많은 것을 말해준다. 많은 사람이 우선 폭력을 기억하지만 동참을 통해 느꼈던 흥분이나 전율을 기억하는 사람도 많았다”고 하버드대의 중국통인 엘리자베스 페리 교수는 말했다.
그러나 마오쩌둥의 선전조직이 능수능란하게 사용한 옛 심벌들만큼 문화혁명에 대한 감정을 강렬하게 불러일으키는 것도 없다. ‘아침해’를 보면 비밀 혁명지령에 세뇌돼 아버지를 배신하는 이상주의에 심취한 학생을 다룬 18세기 영문학 소설 ‘등에’를 영화화한 것이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다.
중국 무용수들이 마오쩌둥의 대장정 및 국민당과의 전투 장면을 화려하게 재현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인터뷰한 사람들 중에는 문화혁명 때 이런 연극들에서 묘사된 영웅의 모습을 닮고 싶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많은 젊은이들이 그 웅장한 무용극에 나오는 주인공을 닮고 싶어했고 혁명과업을 수행하면서 ‘대장정’의 신화를 미화했다.
고귀한 정치적 이상이 아니라 낭만주의에 대한 갈증, 기성 권위를 무너뜨리려는 충동, 그리고 시대사조에 편승하려는 얄팍한 욕망 등 청년기의 갈등에서 잔혹성이 나왔다는 점에서 문화혁명은 무서웠다는 점을 우리는 깨닫는다. 리전성은 “나는 마오쩌둥을 믿었다. 그는 이런 혁명이 7~8년을 주기로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고 나같은 청년들은 그래서 우리가 행운아 세대라고 생각했다.
평생 그런 경험을 몇차례 더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리전성은 공산당은 사진이 젊은이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잘 이해했다고 설명하면서 마오쩌둥의 초상화가 배경에 등장하는 사진들은 초상화가 선명하게 보이도록 손질했다고 돌이켰다. 새로 나온 두 작품은 마오쩌둥의 혁명을 아주 색다른 방식으로 뚜렷하게 조명한다.
문화혁명에 관한 사진작가 리전성의 신간에서 우선 독자들의 이목을 끄는 것은 맨앞에 나오는 젊은 중국인 남녀들의 얼굴 사진이다. 얼굴을 찌푸린 사람도 있고 담배를 피우거나 박수를 치거나 야유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 뒤쪽으로는 깃발을 흔드는 군중이 나오는데 이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이 사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흐릿한 배경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우리는 모두 이 얼굴 없는 젊은 혁명가들의 존재와 이들이 마오쩌둥(毛澤東)의 주도로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잘 안다. 그러나 리전성은 몇몇 젊은이들의 얼굴을 강조함으로써 뭔가 좀더 복잡한 것을 생각하도록 만든다. ‘1960년대를 살았던 개인의 삶은 어땠을까?’, ‘무엇이 이들을 권위에 도전하게 만들고 수세기에 걸쳐 이룩된 문화를 짓밟고 군중심리에 휩쓸리도록 만들었을까?’하는 등등.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변이 속시원하게 나온 적은 없었다. 리전성의 선구자적 저서 ‘홍위병 학생기자’(3백15쪽·파이든 출판사 펴냄)와 충격적인 다큐멘터리 영화 ‘아침해’는 해답을 찾는 첫 시도가 될지도 모른다. “전에는 중국에서 문화혁명을 사람들의 일로 보려는 노력이 없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왜 그렇게 문화혁명에 열중했는지에 대해 신경쓰지 않았다. 문화혁명 때 고생한 이야기는 할 수 있었지만 그 이상을 포착하려는 것은 금기였다”고 인디애나대의 동아시아 연구소 소장 제프 와서스트롬은 말했다.
그러나 리전성과 ‘아침해’의 제작자들에게는 오히려 그 이상을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젊은 사진작가였던 리전성은 헤이룽장(黑龍江)성의 한 공산당 기관지를 위해 문화혁명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마오쩌둥이 이끄는 중국의 긍정적 이미지들을 기록하는 필수적 작업과 동시에 암울한 모습도 사진으로 남겨 아파트에 숨겼다. 이제 드디어 세상은 그 사진들을 볼 수 있게 됐다. 우습게 생긴 고깔모자를 쓰고 얼굴에는 먹칠을 당한 전직 시장이나 관리들의 모습. 젊은 학생들에게 머리카락을 잘린 채 열광하는 군중 앞에서 머리를 조아린 지주들. 총살형 집행자와 희생자들.
당시 홍위병의 일원이었던 리전성은 내켜서 했던 것은 아니라면서 지난날에 대한 자부심과 회한이 섞인 어조로 베이징에서 마오쩌둥의 친필이 적힌 붉은 띠를 받은 경위를 설명했다. 그러나 밖에서 두르고 다니기에는 너무 소중한 것 같았다. 띠에는 책 제목과 똑같이 ‘홍위병 학생기자’라고 쓰여 있었다. 그는 “이 띠를 보물처럼 여겨 그냥 헌 띠를 달고 다녔다. 아직도 그 띠를 갖고 있다”고 책에 적었다.
‘아침해’의 제작진 가운데 일원인 카마 힌턴은 미국인 중국통의 딸로 태어나 리전성과 마찬가지로 중국에서 자랐다. 이제 그녀는 인터뷰차 중국에 돌아가 만난 일부 여성들 또래의 나이가 됐다. 그중에는 마오쩌둥의 팔에 직접 붉은 띠를 둘러주기 위해 시위대 속에서 한발 앞으로 나섰던 일을 회상한 여성도 있다. 이 영화에는 결손가정의 모습도 담겨 있다.
아버지는 근거가 불확실한 고발 때문에 유배당해 강제노동에 종사하고 딸들은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한다. “이 다큐멘터리는 다양한 반응을 보여줌으로써 많은 것을 말해준다. 많은 사람이 우선 폭력을 기억하지만 동참을 통해 느꼈던 흥분이나 전율을 기억하는 사람도 많았다”고 하버드대의 중국통인 엘리자베스 페리 교수는 말했다.
그러나 마오쩌둥의 선전조직이 능수능란하게 사용한 옛 심벌들만큼 문화혁명에 대한 감정을 강렬하게 불러일으키는 것도 없다. ‘아침해’를 보면 비밀 혁명지령에 세뇌돼 아버지를 배신하는 이상주의에 심취한 학생을 다룬 18세기 영문학 소설 ‘등에’를 영화화한 것이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다.
중국 무용수들이 마오쩌둥의 대장정 및 국민당과의 전투 장면을 화려하게 재현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인터뷰한 사람들 중에는 문화혁명 때 이런 연극들에서 묘사된 영웅의 모습을 닮고 싶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많은 젊은이들이 그 웅장한 무용극에 나오는 주인공을 닮고 싶어했고 혁명과업을 수행하면서 ‘대장정’의 신화를 미화했다.
고귀한 정치적 이상이 아니라 낭만주의에 대한 갈증, 기성 권위를 무너뜨리려는 충동, 그리고 시대사조에 편승하려는 얄팍한 욕망 등 청년기의 갈등에서 잔혹성이 나왔다는 점에서 문화혁명은 무서웠다는 점을 우리는 깨닫는다. 리전성은 “나는 마오쩌둥을 믿었다. 그는 이런 혁명이 7~8년을 주기로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고 나같은 청년들은 그래서 우리가 행운아 세대라고 생각했다.
평생 그런 경험을 몇차례 더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리전성은 공산당은 사진이 젊은이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잘 이해했다고 설명하면서 마오쩌둥의 초상화가 배경에 등장하는 사진들은 초상화가 선명하게 보이도록 손질했다고 돌이켰다. 새로 나온 두 작품은 마오쩌둥의 혁명을 아주 색다른 방식으로 뚜렷하게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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