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연 누드와 역사인식
이승연 누드와 역사인식
한국인의 망각증이 자주 비판의 대상이 된다. 자주 지적되는 냄비근성 역시 망각증세의 일종이다. 문제가 발생하면 여론은 냄비끓듯이 하다가 곧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특히 역사인식에서 망각증은 잘못된 역사를 되풀이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그러나 부끄러운 역사가 사회 구성원의 망각증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망각은 심리적으로 인간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하여 자신에게 불리한 과거의 일을 지우는 자기 방어적 결과다. 망각의 이러한 기능을 인식한다면 왜 한국인이 망각적인 역사인식을 하는지 이해가 간다. 그것은 한국인에게 역사가 아프고 슬픈 과거의 기억이기 때문이다.
모든 국가는 자랑하고 싶은 역사와 부끄러운 역사를 동시에 갖고 있다. 한국인에게는 고구려나 고려 시대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가장 최근의 역사까지도 아픔의 연속이었다. 예를 들면 이승만 독재정권과 박정희 군사독재 및 그 아류인 전두환·노태우 정권은 한국인의 기억 속에서 아픔만을 간직하게 한 역사의 연속이었다고 할 수 있다.
국제 관계 속에서의 한국 역사는 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한·일합방으로 막을 내린 조선왕조, 일본의 식민지배, 분단과 동족간의 전쟁을 기억하고 싶은 한국인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식민지배에 대한 일본 정치인들의 역사왜곡 발언이 튀어나오고,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정초에 야스쿠니(靖國) 신사를 참배하고 독도는 일본 영토라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한국인은 언제나 역사적 피해의식에 젖어 있다.
이 와중에 이승연이라는 한 여성 탤런트가 종군위안부로 출연한 누드 영상화보를 제작하였다고 해서 한국 사회가 들끓고 있다. 본인과 이를 제작한 기획사는 여러가지 변명을 하고 있지만 연예기획사가 역사연구소가 아닌 이상 이윤을 추구하는 상업적 동기가 누드 영상화보집 제작의 동인임에 분명하다.
누드 화보집 제작은 최근 한국의 여성 연예인들에게 괜찮은 돈벌이 수단이 되어 왔다. 여성이 몸을 상품화하는 현상은 이제 진부하지만 그래도 한국 사회에서 잘 알려진 탤런트들이 누드 화보집을 만든다는 것은 조금은 놀라운 일이다. 아무리 연기자라고 하지만 자신의 몸을 공개적으로 노출해 수입을 올린다는 것이 수치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이는 수치심이 자리잡았던 곳에 돈이 들어섰음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수치심은 일시적 망설임 또는 주저함에 불과하고 지속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실 역사를 영화화하거나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 등은 흔히 있는 일이다. 나치의 잔혹상을 그린 영화 ‘쉰들러 리스트’나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그러하다. 국내에서도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표현한 신학철의 회화작품 ‘모내기’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되어 유죄판결까지 받은 적이 있다. 이들 작품엔 작가의 역사인식 방향이 나타나 있다.
그러나 보도된 이승연의 종군위안부 누드 영상화보는 이들 작품과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즉 작품 제작의 진정성과 표현 방법이다. 아무리 제작 의도를 변명하더라도 일본군에 짓밟히는 모습으로 연출된 한 여자 탤런트의 나체를 이용하여 돈을 벌겠다는 상업성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시 말해 예술품을 창작하려는 의도 하에서 제작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마 이 영상화보를 보는 소비자는 가학적 쾌감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종군위안부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현재의 문제다.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선 정신대 할머니들이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12년째 수요집회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경험을 한 피해 당사자가 아직 생존해 있는 현실에서 그들의 아픔을 위로하기보다는 이를 상품화함으로써 상처를 덧나게 하였다.
누드는 성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가장 대표적인 방식이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의 몸은 예술성을 표현하는 좋은 소재가 될 수 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문제는 누드를 통하여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가 예술성이 아니라 상업성이고, 그것도 더군다나 우리 역사에서 가장 연약한 피해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난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번 사건은 우리의 역사인식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알려주는 경고일 수도 있다. 고구려사 문제를 포함하여 역사를 지나간 일로 치부하고 오늘의 우리와는 무관하다는 사고 속에서 사는 한 이러한 일은 반복될 것이다.
(연세대 법대 학장·for NW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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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부끄러운 역사가 사회 구성원의 망각증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망각은 심리적으로 인간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하여 자신에게 불리한 과거의 일을 지우는 자기 방어적 결과다. 망각의 이러한 기능을 인식한다면 왜 한국인이 망각적인 역사인식을 하는지 이해가 간다. 그것은 한국인에게 역사가 아프고 슬픈 과거의 기억이기 때문이다.
모든 국가는 자랑하고 싶은 역사와 부끄러운 역사를 동시에 갖고 있다. 한국인에게는 고구려나 고려 시대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가장 최근의 역사까지도 아픔의 연속이었다. 예를 들면 이승만 독재정권과 박정희 군사독재 및 그 아류인 전두환·노태우 정권은 한국인의 기억 속에서 아픔만을 간직하게 한 역사의 연속이었다고 할 수 있다.
국제 관계 속에서의 한국 역사는 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한·일합방으로 막을 내린 조선왕조, 일본의 식민지배, 분단과 동족간의 전쟁을 기억하고 싶은 한국인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식민지배에 대한 일본 정치인들의 역사왜곡 발언이 튀어나오고,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정초에 야스쿠니(靖國) 신사를 참배하고 독도는 일본 영토라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한국인은 언제나 역사적 피해의식에 젖어 있다.
이 와중에 이승연이라는 한 여성 탤런트가 종군위안부로 출연한 누드 영상화보를 제작하였다고 해서 한국 사회가 들끓고 있다. 본인과 이를 제작한 기획사는 여러가지 변명을 하고 있지만 연예기획사가 역사연구소가 아닌 이상 이윤을 추구하는 상업적 동기가 누드 영상화보집 제작의 동인임에 분명하다.
누드 화보집 제작은 최근 한국의 여성 연예인들에게 괜찮은 돈벌이 수단이 되어 왔다. 여성이 몸을 상품화하는 현상은 이제 진부하지만 그래도 한국 사회에서 잘 알려진 탤런트들이 누드 화보집을 만든다는 것은 조금은 놀라운 일이다. 아무리 연기자라고 하지만 자신의 몸을 공개적으로 노출해 수입을 올린다는 것이 수치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이는 수치심이 자리잡았던 곳에 돈이 들어섰음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수치심은 일시적 망설임 또는 주저함에 불과하고 지속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실 역사를 영화화하거나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 등은 흔히 있는 일이다. 나치의 잔혹상을 그린 영화 ‘쉰들러 리스트’나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그러하다. 국내에서도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표현한 신학철의 회화작품 ‘모내기’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되어 유죄판결까지 받은 적이 있다. 이들 작품엔 작가의 역사인식 방향이 나타나 있다.
그러나 보도된 이승연의 종군위안부 누드 영상화보는 이들 작품과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즉 작품 제작의 진정성과 표현 방법이다. 아무리 제작 의도를 변명하더라도 일본군에 짓밟히는 모습으로 연출된 한 여자 탤런트의 나체를 이용하여 돈을 벌겠다는 상업성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시 말해 예술품을 창작하려는 의도 하에서 제작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마 이 영상화보를 보는 소비자는 가학적 쾌감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종군위안부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현재의 문제다.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선 정신대 할머니들이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12년째 수요집회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경험을 한 피해 당사자가 아직 생존해 있는 현실에서 그들의 아픔을 위로하기보다는 이를 상품화함으로써 상처를 덧나게 하였다.
누드는 성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가장 대표적인 방식이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의 몸은 예술성을 표현하는 좋은 소재가 될 수 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문제는 누드를 통하여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가 예술성이 아니라 상업성이고, 그것도 더군다나 우리 역사에서 가장 연약한 피해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난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번 사건은 우리의 역사인식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알려주는 경고일 수도 있다. 고구려사 문제를 포함하여 역사를 지나간 일로 치부하고 오늘의 우리와는 무관하다는 사고 속에서 사는 한 이러한 일은 반복될 것이다.
(연세대 법대 학장·for NW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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