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아홉살 인생’

‘아홉살 인생’

"당신의 아홉살은 어땠습니까?” 영화 ‘아홉살 인생’을 보고 나서 누군가에게 그렇게 묻고 싶었다. 개인적으로는 아홉살의 삶이 또렷하지는 않다. 아련하게 더듬어 보면 영화에서 그려진 것보다는 덜 가난했던 것 같고, 학교에 가려면 30분 이상 걸어야 했다. 어머니한테 종아리도 많이 맞았다. 대단한 악동이 아니었는데도 그랬다. 아마 좀 더 꿋꿋하게 살기를 바라셨던 모양이다. 영화를 보면서 울컥했던 장면 중의 하나가 어머니가 종아리를 때리는 대목이다. 아이스케키 장사를 하던 여민은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들통나 어머니에게 매를 맞는다. 그게 뭐 매맞을 일인가 싶다가도 부모의 마음이란 자식의 생각과는 또 다르다는 데 공감이 갔다. ‘아홉살 인생’은 30대 이상이고 가난한 시절에 살아봤으면 누구나 경험했을 법한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 1970년대의 산동네 마을을 배경으로 하다 보니 어려운 시절의 향수들이 아련하게 펼쳐진다. 그 시절, 초등학교 3학년인 여민은 가난하지만 꿋꿋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여민은 자신보다 나이가 많지만 친구들을 괴롭히는 ‘쌈짱 검은 제비’를 제압해 동네의 평화를 지키는가 하면, 누나와 외롭게 살아가는 기종과 도시락을 나눠먹고, 눈을 다친 어머니의 색안경을 구입하기 위해 아이스케키 장사도 한다. 한마디로 가난한 부모의 착하고 듬직한 아들이자, 학교에선 주먹 세고 의리도 넘치는 멋진 사내다. 주변 인물들도 추억 속의 얼굴이다. 안경을 쓰고 잘난 체하는 반장, 여민을 이해하고 돕는 기종 등 아역 배우들의 연기가 생생한 추억으로 묘사된다. ‘아홉살 인생’을 ‘말죽거리 잔혹사’의 아홉살 버전이라고 불러도 크게 오해되지 않는 표현일 것이다. 아역배우들의 활약상이 돋보인다. 아홉살 인생을 흔들어버린 사건은 한 여인의 등장이었다. 서울에서 전학 온 장우림이 여민의 마음을 흔들어놓은 것이다. 동네 총각 팔봉이형이 그랬던 것처럼 우림에게 연애 편지를 써 보지만, 편지는 담임 선생님의 손에 들어가 만천하에 공개되는 수모를 당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아홉살의 인생은 어른들의 무지와 오해로 인해 뜻을 펴지 못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것은 한번쯤은 경험했을 법한 인생의 성장 과정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모두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추억의 70년대 산동네 마을이다. 가난하지만 정감이 넘치는 70년대의 풍경은 어머니와도 같은 따뜻함이 서려 있는 시절이다. 그런 느낌을 찾기 위해 제작진은 많은 발품을 팔아야 했다. 계속되는 도시개발로 서울의 모습도 예전 같지 않았고, 달동네나 산동네의 풍경은 환경 좋은 곳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에 의해 어느 새 부촌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제작진은 서울 홍제동의 개미마을과 중계본동에서 산동네 마을을 찾는 데 성공했다. 서울의 하늘 아래에서 산동네의 가난한 정경을 담을 수 있는 것도 요즘이 거의 막바지가 아닐까 싶다. ‘마요네즈’로 데뷔한 윤인호 감독이 오랜만에 연출을 시도했다. ‘마요네즈’는 모녀 사이에 벌어지는 상황을 다룬 드라마다. ‘아홉살 인생’에서도 여민과 어머니 사이의 진한 애정이 배어 나온다. 윤감독은 이러한 관계에서 영화의 매력을 찾으려고 하는 것 같다. 아쉬움도 있다. 정겨운 과거의 풍경에 몰입하다 보니 뻔한 성장 드라마의 공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흑백요리사 훔쳐본 中, "한국이 음식 뺏어간다" 황당 조롱

2한가인, 미친 스케줄 '14시간 학원 라이딩' 해명

3저축은행·캐피탈, 커지는 부동산 PF 부실…구조조정 통할까

4SK 향한 노태우의 '무형적 기여' 있었다는 재판부…특혜일까 아닐까

5정부, '의대생 휴학' 조건부 승인…미복귀시 유급·제적

6부동산 PF여파에 적자 늪 중소형 증권사…신용등급 강등 우려

7SKT 성장은 노태우 정부 특혜?…성장 과정 살펴보니

8종투사도 못 피한 부동산 PF '먹구름'…증권사, 자구책 마련 ‘안간힘’

9SK 최종현의 태평양증권 인수에 ‘노태우 자금’ 사용됐나?

실시간 뉴스

1흑백요리사 훔쳐본 中, "한국이 음식 뺏어간다" 황당 조롱

2한가인, 미친 스케줄 '14시간 학원 라이딩' 해명

3저축은행·캐피탈, 커지는 부동산 PF 부실…구조조정 통할까

4SK 향한 노태우의 '무형적 기여' 있었다는 재판부…특혜일까 아닐까

5정부, '의대생 휴학' 조건부 승인…미복귀시 유급·제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