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후장대 산업으로 재도약 인재경영에 그룹 사활 걸어
중후장대 산업으로 재도약 인재경영에 그룹 사활 걸어
두산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이다. 장수의 비결은 유연한 오너들이 이끈 발빠른 변신이다. 두산은 포목점-식음료-중공업으로 주력 업종을 바꿔가며 변화무쌍한 길을 걸어왔다. 중공업으로 재무장한 두산은 지금 다음 100년을 준비하는 새판 짜기에 분주하다.
# 장면1. 1980년대 초반 박용성(64) 두산중공업 회장은 미국에서 유학하던 동생 박용만(49) (주)두산 사장을 찾아갔다. 혼자 자취생활을 하고 있던 동생에게 소원이 있으면 한 가지를 들어주겠다고 했다. 이에 박용만 사장은 컴퓨터를 사달라고 했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컴퓨터라면 사무실 한 켠을 가득 채우는 ‘슈퍼 컴퓨터’를 떠올리던 때였다.
하지만 미국에선 이미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내놓은 개인용컴퓨터(PC)가 유행하고 있었다. 자신도 PC를 사서 귀국한 박용성 회장은 임원들에게 PC 사용을 독려했다. 지금 박용성 회장에겐 ‘컴도사’란 별명이 따라다닌다. 두산그룹 역시 e메일이나 사내 전산망을 통한 업무 처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 장면2. 1996년은 두산그룹이 창사 100주년을 맞이한 해였다. 그러나 회사 분위기는 잔치는커녕 초상집 분위기였다. 현금흐름상 무려 9,060억원 가량의 적자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주력 기업인 OB맥주의 실적 부진이 원인이었다. 물론 그 당시 기준으로선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박용오(67) 두산 회장은 무언가 획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가 선택한 해법은 계열사 처분이었다.
‘나에게 걸레면 남에게도 걸레’라는 원칙으로 알짜 사업체들을 매각하기 시작했다. 두산의 효자 사업군이었던 코카콜라 ·코닥 ·3M ·네슬레 등 합작 회사들의 지분을 팔아치웠다. 심지어 두산의 모태라 할 수 있는 OB맥주의 지분도 50%를 매각했다. 2년 후 다른 회사들이 외환위기에 휘청거릴 때 두산은 현금흐름상 6,000여억 원의 흑자를 낼 수 있었다.
냉철한 판단력의 박용오 회장, 추진력 강한 박용성 회장 그리고 전략가 박용만 사장으로 구성된 두산의 사령탑은 지난 8년 동안 두산을 180도 바꿔 놓았다. 이들은 두산의 외형과 내실을 모두 두 배 이상으로 키웠다.
산업재는 ‘시너지’, 소비재는 ‘수익’이 잣대
두산은 한국중공업 인수를 계기로 구조조정에서 성장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중공업을 중심으로 전자 ·건설 등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사업체들을 인수 ·합병(M&A)해 덩치를 키웠다. 코오롱전자와 공작기계회사인 메카텍 인수가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해 말엔 두산건설과 두산중공업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법정관리 중이던 고려산업개발을 인수했다. 고려산업개발은 국내 도급 순위 29위의 건설회사. 고려산업개발 합병에 성공하면 두산은 내구산업재 대 소비재 비중이 8대 2가 된다. 96년만 해도 5대 5였다.
그러나 두산의 고려산업개발 합병은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올 초 두산이 고려산업개발과 두산건설의 합병을 발표하자 고려산업개발 노조가 두산의 입성에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노조 측은 법원에 합병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까지 내놓은 상태다. 노조 관계자는 “5년 동안 독자경영을 맡기겠다고 하더니 당장 합병하겠다고 말을 바꿨다”며 “이는 두산건설의 취약한 재무구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 두산은 아파트 건설에 강한 고려산업개발과 두산건설의 브랜드에 영업력이 합쳐진다면 충분히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 최근 그룹이 건설부문을 강화하고 있어 인력 구조조정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두산은 과거 한국중공업을 인수하고서도 홍역을 치른 경험이 있다. 당시 두산을 ‘점령군’이라고 여긴 한국중공업 노조의 반발이 거셌다. 유통업 위주였던 두산이 강성노조로 똘똘 뭉쳐 있는 한국중공업을 이끌고 가기엔 무리라는 의견도 시장에 흘러나왔다. 이에 두산은 노조에게 점령군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줘야 했다. 박용만 사장은 “최고재무책임자(CFO)와 경리만을 중공업에 파견했다”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M&A라면 기존 경영진을 교체해 리더십을 가져갈 것이라고 가정하지만 우리는 다르다”고 잘라 말한다. 실제 두산중공업 5,000여 명의 직원 가운데 두산에서 건너간 사람 은 20여 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두산이 강성 노조를 달래기엔 여전히 역부족이었다. 2003년 초 두산중공업 노조원의 분신 자살로 파업이 63일 동안이나 이어졌다. 대외신인도는 추락했고, 당시 4조원을 목표로 했던 해외 수주액은 절반 수준인 2조1,000억원에 그쳤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노조는 사측이 제시한 명예퇴직제에 합의했다. 이 합의로 종업원 4명 가운데 1명이 회사를 그만뒀다. 하지만 회사는 명퇴자의 자녀를 우선 채용하고 명퇴자들에겐 파격적인 퇴직금을 제공해 반발을 무마했다.
두산은 “이제 두산중공업이 정상궤도에 올라섰다”고 평가했다. 두산중공업은 지난해 파업에도 불구하고 해외 수주를 늘리면서 흑자로 전환했다는 것. 지난해 두산중공업은 매출 2조677억원, 당기순이익 272억원을 올렸다. 담수화 플랜트에선 세계 시장 점유율 29%로 1위 자리를 굳히고 있다. 지난해 4월엔 이라크 전후 복구 전담팀을 설립하고 제2의 중동특수도 기대하고 있다. 올 들어서 인도 최대 규모인 시파트 화력발전소를 3억7,000만 달러에 수주했으며, 대만에서도 6,400만 달러 규모의 원전설비를 수주하면서 국내 업체로는 처음으로 대만 원전설비 시장에 진출했다.
중공업 중심으로 산업재 부문을 그룹의 성장동력으로 끌고 가는 것에 대해선 시장의 반응이 엇갈린다. 대한생명을 인수하며 금융을 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는 한화그룹과 비교한 분석도 있다. 이에 그룹 관계자는 “금융과 중공업 가운데 어떤 산업이 더 유망할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며 “현재로선 중공업 인수가 최선이었다는 데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룹 핵심 사업부문이 통째로 바뀌고 있지만 아직 두산을 ‘무거운’ 회사로 단정하긴 어렵다. 박용만 사장은 “남아 있는 소비재 부문의 핵심 역량이 강하다”며 “업종에 구애받지 않고 소비재 부문은 철저하게 수익성 위주로 이끌어간다는 게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지금까지도 무작정 소비재를 정리해 나가자는 게 아니었다”며 “업종 1위 품목은 글로벌 브랜드로 만든다는 게 장기 목표”라고 덧붙엿다.
‘종가집김치’를 좋은 예로 들었다. 종가집김치는 현재 국내 포장김치 시장에서 점유율 65%로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다. (주)두산의 계열사인 두산식품BG의 김치사업부문으로 매출 1,300억여 원에 불과하지만 2조원 매출의 두산 주가를 움직일 정도로 브랜드 파워가 강하다. 최근엔 해외에서도 인기다. 지난해엔 1,500만 달러어치를 수출했고, 일본 전역의 세븐일레븐에 납품되고 있다. 올해는 중국 베이징(北京)에 현지 생산공장을 준공해 중국 김치 시장도 공략할 계획이다. 최근 종가집 브랜드로 두부를 선보여 국내 두부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풀무원과 전면전을 선포한 상태다.
동아출판사와 백화양조 역시 모두 각각의 시장에서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경월그린소주와 산소주도 국내외 시장에서 잘 나가는 품목이다. 경월그린소주는 96년 일본 시장에 진출한 이후 2002년까지 현지 판매량이 360㎖ 기준으로 약 3억 병에 달한다. 패션잡지(보그 ·보그걸 ·GQ ·얼루어), 명품(폴로 ·게스)등은 짭짤한 수익뿐 아니라 그룹 이미지를 한껏 올린 품목들이다. 두산의 소비재 품목엔 공통점이 있다. 박리다매 품목은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모두 프리미엄 시장을 겨냥하는 제품들이다.
이젠 인재 경영이 살 길
올해로 108년을 맞는 두산의 장수 비결 중 하나는 오너들의 높은 정보마인드와 유연성이다. 두산은 구조조정과 정보화 작업에 있어 ‘아래서부터’가 아닌 ‘위로부터’의 도입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또 유연하다. 박용만 사장은 “포목상 ·맥주 ·식음료에서 최근 중공업까지 주력산업을 과감하게 바꾼 데서 알 수 있다”며 “이는 선대의 사업을 바꿀 정도로 유연성이 몸에 배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두산의 구조조정은 ‘현재진행형’이다. 두산의 구조조정 교범에 ‘완료형’시제는 없다고 두산 관계자들은 말한다. 하지만 지금은 예전처럼 사업이 아닌 임직원의 체질 개선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실제 두산은 연봉제를 국내 대기업 가운데 최초로 도입할 정도로 인사 제도에 있어서 서구 지향적이다. 지난해 10월엔 신입사원에게도 업계 최고의 연봉을 주겠다고 호언할 만큼 인재 발굴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최근엔 박용오 회장의 지시로 핵심 인재 개발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그룹의 최고경영층과 각 계열사의 대표들이 핵심인재를 1대 1 또는 2대 2로 직접 만나 그룹경영 전반을 리뷰하는 '피플세션(People Session)'을 진행해오고 있다. 이는 제너럴 일렉트릭(GE)의 인사관리 방식을 벤치마킹한 제도다. 능력있는 인재들의 영입에도 적극적이다. 현재 두산 그룹의 경영진 가운데 30% 이상이 외부에서 영입된 전문가들이다.
인재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덕목은 도덕성이다. 과거 페놀 사태로 두산은 한때 기업 윤리성에 심각한 흠집이 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두산은 부단히 노력해왔다. 박용오 회장이 취임하면서 가장 중요한 인사고과 기준으로 윤리성이 자리잡았다. 인사고과에 있어 성과 ·리더십 ·전문성 등의 항목은 점수로 평가하지만 도덕성은 ‘O’ 아니면 ‘X’로 표시된다.
‘X’를 받은 직원에게는 승진의 기회가 아예 없다.두산은 최근 새로운 윤리강령과 함께 수익성 위주의 중 ·장기 신성장 전략인 ‘뉴스타트(New Start)’를 발표했다. 2007년까지 영업이익 1조5,000억원을 달성해 재계 최상위에 진입하겠다는 전략이다.
두산의 경영진들은 다음 100년을 이끌 성장 엔진을 사람이라고 보고 그룹 새판 짜기에 분주하다. 이번엔 예전처럼 군살 빼기 차원이 아니라 다음 100년을 위해 기업의 골격을 수술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박용만 사장은 “돌이켜 보면 순탄하게 구조조정을 펼쳐온 것으로 보이지만 지난 몇 년간은 정말 뼈를 깎는 고통스러운 기간이었다”며 “하지만 그룹의 다음 100년을 생각한다면 지금 이 순간이 더 중요하다는 데 경영진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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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1. 1980년대 초반 박용성(64) 두산중공업 회장은 미국에서 유학하던 동생 박용만(49) (주)두산 사장을 찾아갔다. 혼자 자취생활을 하고 있던 동생에게 소원이 있으면 한 가지를 들어주겠다고 했다. 이에 박용만 사장은 컴퓨터를 사달라고 했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컴퓨터라면 사무실 한 켠을 가득 채우는 ‘슈퍼 컴퓨터’를 떠올리던 때였다.
하지만 미국에선 이미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내놓은 개인용컴퓨터(PC)가 유행하고 있었다. 자신도 PC를 사서 귀국한 박용성 회장은 임원들에게 PC 사용을 독려했다. 지금 박용성 회장에겐 ‘컴도사’란 별명이 따라다닌다. 두산그룹 역시 e메일이나 사내 전산망을 통한 업무 처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 장면2. 1996년은 두산그룹이 창사 100주년을 맞이한 해였다. 그러나 회사 분위기는 잔치는커녕 초상집 분위기였다. 현금흐름상 무려 9,060억원 가량의 적자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주력 기업인 OB맥주의 실적 부진이 원인이었다. 물론 그 당시 기준으로선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박용오(67) 두산 회장은 무언가 획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가 선택한 해법은 계열사 처분이었다.
‘나에게 걸레면 남에게도 걸레’라는 원칙으로 알짜 사업체들을 매각하기 시작했다. 두산의 효자 사업군이었던 코카콜라 ·코닥 ·3M ·네슬레 등 합작 회사들의 지분을 팔아치웠다. 심지어 두산의 모태라 할 수 있는 OB맥주의 지분도 50%를 매각했다. 2년 후 다른 회사들이 외환위기에 휘청거릴 때 두산은 현금흐름상 6,000여억 원의 흑자를 낼 수 있었다.
냉철한 판단력의 박용오 회장, 추진력 강한 박용성 회장 그리고 전략가 박용만 사장으로 구성된 두산의 사령탑은 지난 8년 동안 두산을 180도 바꿔 놓았다. 이들은 두산의 외형과 내실을 모두 두 배 이상으로 키웠다.
박용만 ㈜두산 사장 “인재 발굴만은 직접 챙겨” |
요즘 박용만(49) 사장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두산의 안살림을 책임지는 만큼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언론에도 자주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CEO는 기업의 실적으로 말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작고한 박두병 회장의 5남인 박 사장은 형님들인 박용오(2남) ·용성(3남) 회장과 함께 재계에 흔치 않은 오너 3세로 분류된다. 경기고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보스턴대학에서 MBA를 마친 그는 지난 10여 년 동안 그룹 구조조정 실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해서 ‘구조조정의 마술사’ ·'동대문 야전 사령관’ 등의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하지만 두산의 ‘대표 CEO’로 불리는 것은 경계한다. 그는 “그룹의 굵직한 사안들은 위에서 직접 챙기고 있다”며 “최근엔 4세들도 의사 결정에 참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구조조정을 어느 정도 매듭지었다지만 그의 일과는 요즘 더 바쁘다. 동대문 두산타워 33층에 있는 집무실에서 그를 만났을 때만 해도 8시간이 넘는 마라톤 회의를 막 끝낸 후였다. 다음날 오전엔 미국 MBA 졸업생들을 인터뷰하기 위해 미국에 가야 한다고 했다. “인재 발굴은 내가 직접 챙깁니다. 성적 위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습니다. 능력은 성적순이 아니기 때문이죠. 대신 그 사람이 두산과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가 중요합니다.” 박 사장의 욕심은 비단 핵심인재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지난해 말 신입사원 채용설명회에 참석해 업계 최고 수준의 연봉을 내세우며 회사의 경영 실적과 비전에 대해 설명했다. 또 매년 열리는 신입사원 환영회엔 빠지지 않고 참석해서 일일이 신입직원들과 술잔을 부딪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박 사장이 강조하는 ‘두산맨’이란 친화력이 있으면서 신뢰를 주는 사람이다. 그는 “요즘은 두산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구체적으로 정립해 그룹의 핵심역량으로 만드는 게 최고의 관심사”라고 말했다. 그룹의 핵심 사업부문이 바뀌었지만 100년 동안 쌓아온 두산 이미지는 변함이 없다는 점도 강조한다. 그는 “비록 M&A를 한다 하더라도 두산 사람이 그 쪽으로 가고 안 가고가 중요한 게 아니다”라며 “그 회사가 100년 전통의 두산 시스템에 들어오고 안 들어오고가 더 중요하다”고 밝혔다. 한 때 포토 저널리스트를 꿈꾼 박 사장은 현재 패션지 보그와 GQ의 한국판 발행인이기도 하다. 과거 보그의 한국 판권을 따내기 위해 직접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해 발표할 정도로 애착이 많다. 지금도 평소엔 자신을 ‘아마추어 사진작가’라고 소개한다. 주말이면 시간이 날 때마다 지하철을 타고 서울 시내 곳곳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는다. 메신저 ·블로그 등 디지털 문화에 익숙한 신세대 CEO로 알려져 있다. 일요일엔 아내와 조조할인 영화를 보러 가는 따뜻한 가장이다. |
산업재는 ‘시너지’, 소비재는 ‘수익’이 잣대
두산은 한국중공업 인수를 계기로 구조조정에서 성장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중공업을 중심으로 전자 ·건설 등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사업체들을 인수 ·합병(M&A)해 덩치를 키웠다. 코오롱전자와 공작기계회사인 메카텍 인수가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해 말엔 두산건설과 두산중공업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법정관리 중이던 고려산업개발을 인수했다. 고려산업개발은 국내 도급 순위 29위의 건설회사. 고려산업개발 합병에 성공하면 두산은 내구산업재 대 소비재 비중이 8대 2가 된다. 96년만 해도 5대 5였다.
그러나 두산의 고려산업개발 합병은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올 초 두산이 고려산업개발과 두산건설의 합병을 발표하자 고려산업개발 노조가 두산의 입성에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노조 측은 법원에 합병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까지 내놓은 상태다. 노조 관계자는 “5년 동안 독자경영을 맡기겠다고 하더니 당장 합병하겠다고 말을 바꿨다”며 “이는 두산건설의 취약한 재무구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 두산은 아파트 건설에 강한 고려산업개발과 두산건설의 브랜드에 영업력이 합쳐진다면 충분히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 최근 그룹이 건설부문을 강화하고 있어 인력 구조조정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두산은 과거 한국중공업을 인수하고서도 홍역을 치른 경험이 있다. 당시 두산을 ‘점령군’이라고 여긴 한국중공업 노조의 반발이 거셌다. 유통업 위주였던 두산이 강성노조로 똘똘 뭉쳐 있는 한국중공업을 이끌고 가기엔 무리라는 의견도 시장에 흘러나왔다. 이에 두산은 노조에게 점령군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줘야 했다. 박용만 사장은 “최고재무책임자(CFO)와 경리만을 중공업에 파견했다”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M&A라면 기존 경영진을 교체해 리더십을 가져갈 것이라고 가정하지만 우리는 다르다”고 잘라 말한다. 실제 두산중공업 5,000여 명의 직원 가운데 두산에서 건너간 사람 은 20여 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두산이 강성 노조를 달래기엔 여전히 역부족이었다. 2003년 초 두산중공업 노조원의 분신 자살로 파업이 63일 동안이나 이어졌다. 대외신인도는 추락했고, 당시 4조원을 목표로 했던 해외 수주액은 절반 수준인 2조1,000억원에 그쳤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노조는 사측이 제시한 명예퇴직제에 합의했다. 이 합의로 종업원 4명 가운데 1명이 회사를 그만뒀다. 하지만 회사는 명퇴자의 자녀를 우선 채용하고 명퇴자들에겐 파격적인 퇴직금을 제공해 반발을 무마했다.
두산은 “이제 두산중공업이 정상궤도에 올라섰다”고 평가했다. 두산중공업은 지난해 파업에도 불구하고 해외 수주를 늘리면서 흑자로 전환했다는 것. 지난해 두산중공업은 매출 2조677억원, 당기순이익 272억원을 올렸다. 담수화 플랜트에선 세계 시장 점유율 29%로 1위 자리를 굳히고 있다. 지난해 4월엔 이라크 전후 복구 전담팀을 설립하고 제2의 중동특수도 기대하고 있다. 올 들어서 인도 최대 규모인 시파트 화력발전소를 3억7,000만 달러에 수주했으며, 대만에서도 6,400만 달러 규모의 원전설비를 수주하면서 국내 업체로는 처음으로 대만 원전설비 시장에 진출했다.
중공업 중심으로 산업재 부문을 그룹의 성장동력으로 끌고 가는 것에 대해선 시장의 반응이 엇갈린다. 대한생명을 인수하며 금융을 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는 한화그룹과 비교한 분석도 있다. 이에 그룹 관계자는 “금융과 중공업 가운데 어떤 산업이 더 유망할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며 “현재로선 중공업 인수가 최선이었다는 데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룹 핵심 사업부문이 통째로 바뀌고 있지만 아직 두산을 ‘무거운’ 회사로 단정하긴 어렵다. 박용만 사장은 “남아 있는 소비재 부문의 핵심 역량이 강하다”며 “업종에 구애받지 않고 소비재 부문은 철저하게 수익성 위주로 이끌어간다는 게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지금까지도 무작정 소비재를 정리해 나가자는 게 아니었다”며 “업종 1위 품목은 글로벌 브랜드로 만든다는 게 장기 목표”라고 덧붙엿다.
‘종가집김치’를 좋은 예로 들었다. 종가집김치는 현재 국내 포장김치 시장에서 점유율 65%로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다. (주)두산의 계열사인 두산식품BG의 김치사업부문으로 매출 1,300억여 원에 불과하지만 2조원 매출의 두산 주가를 움직일 정도로 브랜드 파워가 강하다. 최근엔 해외에서도 인기다. 지난해엔 1,500만 달러어치를 수출했고, 일본 전역의 세븐일레븐에 납품되고 있다. 올해는 중국 베이징(北京)에 현지 생산공장을 준공해 중국 김치 시장도 공략할 계획이다. 최근 종가집 브랜드로 두부를 선보여 국내 두부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풀무원과 전면전을 선포한 상태다.
동아출판사와 백화양조 역시 모두 각각의 시장에서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경월그린소주와 산소주도 국내외 시장에서 잘 나가는 품목이다. 경월그린소주는 96년 일본 시장에 진출한 이후 2002년까지 현지 판매량이 360㎖ 기준으로 약 3억 병에 달한다. 패션잡지(보그 ·보그걸 ·GQ ·얼루어), 명품(폴로 ·게스)등은 짭짤한 수익뿐 아니라 그룹 이미지를 한껏 올린 품목들이다. 두산의 소비재 품목엔 공통점이 있다. 박리다매 품목은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모두 프리미엄 시장을 겨냥하는 제품들이다.
이젠 인재 경영이 살 길
올해로 108년을 맞는 두산의 장수 비결 중 하나는 오너들의 높은 정보마인드와 유연성이다. 두산은 구조조정과 정보화 작업에 있어 ‘아래서부터’가 아닌 ‘위로부터’의 도입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또 유연하다. 박용만 사장은 “포목상 ·맥주 ·식음료에서 최근 중공업까지 주력산업을 과감하게 바꾼 데서 알 수 있다”며 “이는 선대의 사업을 바꿀 정도로 유연성이 몸에 배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두산의 구조조정은 ‘현재진행형’이다. 두산의 구조조정 교범에 ‘완료형’시제는 없다고 두산 관계자들은 말한다. 하지만 지금은 예전처럼 사업이 아닌 임직원의 체질 개선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실제 두산은 연봉제를 국내 대기업 가운데 최초로 도입할 정도로 인사 제도에 있어서 서구 지향적이다. 지난해 10월엔 신입사원에게도 업계 최고의 연봉을 주겠다고 호언할 만큼 인재 발굴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최근엔 박용오 회장의 지시로 핵심 인재 개발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그룹의 최고경영층과 각 계열사의 대표들이 핵심인재를 1대 1 또는 2대 2로 직접 만나 그룹경영 전반을 리뷰하는 '피플세션(People Session)'을 진행해오고 있다. 이는 제너럴 일렉트릭(GE)의 인사관리 방식을 벤치마킹한 제도다. 능력있는 인재들의 영입에도 적극적이다. 현재 두산 그룹의 경영진 가운데 30% 이상이 외부에서 영입된 전문가들이다.
인재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덕목은 도덕성이다. 과거 페놀 사태로 두산은 한때 기업 윤리성에 심각한 흠집이 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두산은 부단히 노력해왔다. 박용오 회장이 취임하면서 가장 중요한 인사고과 기준으로 윤리성이 자리잡았다. 인사고과에 있어 성과 ·리더십 ·전문성 등의 항목은 점수로 평가하지만 도덕성은 ‘O’ 아니면 ‘X’로 표시된다.
‘X’를 받은 직원에게는 승진의 기회가 아예 없다.두산은 최근 새로운 윤리강령과 함께 수익성 위주의 중 ·장기 신성장 전략인 ‘뉴스타트(New Start)’를 발표했다. 2007년까지 영업이익 1조5,000억원을 달성해 재계 최상위에 진입하겠다는 전략이다.
두산의 경영진들은 다음 100년을 이끌 성장 엔진을 사람이라고 보고 그룹 새판 짜기에 분주하다. 이번엔 예전처럼 군살 빼기 차원이 아니라 다음 100년을 위해 기업의 골격을 수술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박용만 사장은 “돌이켜 보면 순탄하게 구조조정을 펼쳐온 것으로 보이지만 지난 몇 년간은 정말 뼈를 깎는 고통스러운 기간이었다”며 “하지만 그룹의 다음 100년을 생각한다면 지금 이 순간이 더 중요하다는 데 경영진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두산家 가풍] - “눈칫밥부터 먹어라” |
한국 최고(最古) 기업 두산은 대표적인 오너 기업이다. 4대에 걸쳐 오너 경영이 이어질 수 있었던 데는 자녀에 대한 남다른 교육관이 숨어 있다. ◇‘남의 밥을 먹어봐야 안다’=두산 자녀의 성장과정 특징 가운데 하나는 모두 다른 기업에서 출발했다는 것. 2세인 박두병 회장이 조선은행에서, 3세인 박용곤 회장은 한국은행, 박용성 회장이 한국투자금융, 박용만 사장이 외환은행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4세인 박정원 두산상사BG 사장은 일본 기린맥주에서, 박용성 회장의 아들인 박진원 현 두산 부장 역시 대한항공에서 첫발을 내디뎠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두산 일가의 단합된 힘은 널리 알려져 있다. 평소엔 친구처럼 지내지만 장남을 중심으로 한 번 뭉치면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96년 그룹이 위기를 맞았을 때도 두산가의 오너들은 박용오 회장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장남 차남 할 것 없이 모두가 비슷한 지분을 가지고 있어 공통된 이익을 향해 발빠르고 합리적으로 의사결정에 참여한다. 또 두산 일가족은 한 달에 한 번 꼴로 가족모임을 갖는다. 오너 4세들끼리는 분기별로 따로 한 번씩 모인다. 이 모임은 현재 박정원 사장이 이끌고 있다. ◇‘글로벌한 마인드를 가져라’=오너 3세대인 박용곤(72) 두산 명예회장 ·박용오 회장 ·박용성 회장 ·박용만 사장 모두 유학파다. 이와 함께 박정원 두산상사BG 사장 ·박지원 두산중공업 부사장 등 4세들 역시 모두 미국 MBA 출신이다. 이들 오너 3세와 4세는 영어뿐 아니라 일본어와 중국어에도 능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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