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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집 나무①… 천년 뒤 내다본 名재상의 혼 닮아/고규홍 나무 칼럼니스트

옛집 나무①… 천년 뒤 내다본 名재상의 혼 닮아/고규홍 나무 칼럼니스트

조선 전기 명재상 맹사성이 자신의 집 앞뜰에 손수 심고 가꾼 은행나무 두 그루.
맹사성이 손수 심고 가꾼 은행나무 두 그루. 지난 2003년 12월 모습.
맹사성이 황희·권진 등 당시의 명재상들과 함께 느티나무 아홉 그루를 심고 백성의 살림살이를 걱정했던 고택 뒤편의 구괴정.
집은 사람살이를 그대로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외연(外延)이다. 논어(論語)에 “이인위미 택불처인, 언득지?”(里仁爲美 擇不處仁, 焉得知)라는 말이 있다. 해석이 여러 가지인 애매한 문장이지만, 모두가 사는 마을이 어질면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슬기롭다는 뜻으로 통하는 말이다. 집 역시 그렇다. 어진 사람이 사는 집이라면 그 집 안에서 사는 동안 어진 마음이 절로 생겨나게 마련이다. 그런 생각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살림집으로 지금까지 남아 있는 충남 아산 배방면 중리의 사적 제109호 맹사성 고택에서 확연히 깨닫게 된다. 맹사성 고택은 고려 말인 1330년에 최영 장군이 처음 지은 집이다. 최영 장군은 이웃에 살던 맹사성(孟思誠, 1360∼1438)을 손주 사위로 삼으면서 이 집을 그에게 넘겼다. 지금은 이 집이 비어 있지만, 바로 아래쪽의 아담한 집에서는 신창 맹씨 21대손인 건식씨가 이 집을 관리하며 살고 있다. 맹사성 고택은 마을 한가운데에 이뤄진 마을 숲에 자리잡고 있는 고즈넉한 옛집이다. H형으로 지어진 본채는 정면 4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인데, 가운데 2칸은 대청이고, 양쪽 1칸씩은 온돌방으로 이뤄진 작은 집으로 고려 후기에서 조선 초기까지의 목조건물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작은 집이 언제 봐도 크게만 보이는 것은 이 집의 사람살이를 이끌어온 맹사성의 인물됨이 워낙 크다는 데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600년 전 생을 달리한 맹사성이 마치 살아 있는 듯, 바로 곁에서 함께 호흡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은 아마 집 앞마당에 심어진 두 그루의 커다란 은행나무 때문일 것이다. 이 두 그루의 은행나무는 나이가 무려 600살이 훨씬 넘은 것으로, 맹사성이 이 집에 살던 때 몸소 심고 가꾼 나무라고 전한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이 나무는 지금 그 키가 35m에 이르며, 가슴 높이의 둘레는 9m나 되는 매우 큰 나무다. 세월의 상처를 그대로 간직한 이 나무는 중간 줄기는 이미 썩어 문드러졌고 은행나무의 특징인 주변의 맹아가 발달하면서, 중심 줄기 없이도 여전히 거목(巨木)의 기품을 잃지 않고 오늘까지 ‘작지만 큰 집’ 맹사성 고택의 앞마당을 굳건히 지키고 서 있다. 두 그루의 나무가 바로 옆에 나란히 서 있다 해서 사람들은 이 나무를 쌍행수(雙杏樹)라고도 부른다. 한창 건강할 때는 이 나무들이 마주보며 아마 쌍둥이처럼 근사하게 잘 자랐을 것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을 지나오면서 둘의 모습은 많이 달라졌다. 심지어 둘의 키는 적어도 5m 이상 차이가 날 정도니, 쌍둥이 나무라고 이야기하기에는 어쩐지 좀 모자라다 싶기도 하다. 고택은 오래된 옛집이라는 사실을 감안하고 보더라도, 이 집에 살았던 집주인의 사람살이가 청백리의 삶이었음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집 안에는 주인이 꼭 필요로 하는 것 이상을 더 들여놓을 수 없을 만큼 단출하고 질박하다. 눈꼽재기 창이라고 불리는 작은 창이 앙증맞은 작은 집이다. 어쩌면 이 같은 단출한 집에서 살았던 맹사성이기에 이 집을 더 아름답게 지킬 수 X도록 수백년 수세대 뒤를 내다보며 나무를 심고, 그 나무를 잘 가꾸기 위해 손수 돌로 차곡차곡 단을 쌓으며, 청백리로서의 자질을 키워나갔던 것인지도 모른다. 고택 뒤편의 구괴정(九槐亭)은 이곳을 방문하며 큰 사람, 큰 나무를 떠올릴 수 있는 아름다운 정자다. 구괴정은 맹사성 생전에 명재상이었던 황희·권진 등과 함께 제가끔 3그루씩, 모두 9그루의 느티나무를 심은 곳이라 해서 구괴정이라는 이름이 붙은 정자다. 명재상이자 청백리의 대표적인 인물 고불(古佛) 맹사성의 살아온 발자취를 돌아보는 마음이 그리 가볍지만은 않은 것은 그로부터 수백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를 따를 만한 인물을 찾아보지 못하는 아쉬움 탓일 것이다.

맹사성 고택을 찾아가려면 맹사성 고택은 수도권에서도 하루에 충분히 다녀올 수 있는 곳이다. 인근의 외암리 민속마을이나 천안 광덕사 등을 함께 둘러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해서 가벼운 주말여행 코스로 알맞은 곳이다. 맹사성 고택을 찾아가려면 먼저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해 천안 나들목으로 빠져나간 뒤, 천안 시내로 들어가지 말고 1번국도를 타고 남쪽으로 5㎞쯤 내려가는 게 좋다. 자칫 천안 시내로 들어서면 교통 정체를 피할 수 없다. 천안 나들목에서 좌회전한 뒤 500m쯤 가면 나오는 터미널 사거리에서 다시 좌회전해야 시내를 우회할 수 있다. 천안삼거리에서 21번국도를 타고 10㎞가량 가면 배방면 소재지에 이르는데, 배방초등학교 삼거리에서 좌회전해 623번지방도로를 타야 한다. 장항선 모산역을 지나 광덕사 방면으로 약 4㎞ 가면 맹사성 고택에 이르게 된다. 이 623번지방도로 곳곳에는 ‘맹사성 고택’을 알리는 교통 표지판이 갈림길마다 친절하게 안내돼 있으니, 교통 표지판에 주의하면 헷갈리지 않고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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