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기 합리화에 급급한 배덕자 집단
Monsters on the Couch
유대인 말살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 없다. 알기는 알았지만 관여하지 않았다. 관여하기는 했지만 지시에 따랐을 뿐이다. 유대인 말살을 꿈꾼 것은 상관들이었다. 지시만 내렸을 뿐이다. 말살을 집행한 것은 아랫사람들이었다. 나쁜 정책인 줄은 알았지만 마법의 주문으로 얽어맨 ‘악마’ 히틀러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히틀러는 잘 알지도 못했다. 나같이 별볼일없는 사람이 뭘 어쩌겠는가. 가만있지는 않았다. 개별적으로 유대인들을 구했다. 1천명을. 친한 친구 중에 유대인도 있다. 나는 재판대에 선 다른 사람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이 모든 변명과 합리화(개중에는 진심으로 그러는 사람도 있고, 그 주장이 사실인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가 리언 골든슨의 두 귀로 쏟아졌다. 그는 1946년의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 피고와 증인들을 인터뷰한 미군 소속 정신과 의사였다. 골든슨은 헤르만 괴링, 루돌프 헤스, 율리우스 슈트라이허(반유대주의 신문인 ‘데어 슈튀르머’의 편집인), 그리고 아우슈비츠 수용소 소장인 루돌프 회스 등 높고 낮은 나치 인사들과의 면담 내용을 상세하게 필기했다.
그러나 본인 의도대로 생전에 그것을 책으로 내지는 못했다. 그 기록물은 놀랍게도 10년 전 유가족이 플로리다 스테이트대의 역사교수 로버트 젤레이틀리에게 맡기기 전에는 대체로 검토된 적이 없는 상태로 남아 있었다.
젤레이틀리가 편집하고 주석을 단 ‘뉘른베르크 인터뷰’(Nuremberg Interview)는 제3제국의 주요 인물 33명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 또는 본인이 보여주고 싶어한 모습 그대로 보여준다. 이 자료는 역사적 기록물로서의 중요성을 갖고 있지만 동시에 일종의 엽기쇼라 할 수 있다.
이런 것에서 흥미를 느끼는 자신의 불건전한 모습에 소름이 돋기도 하지만 어쨌든 이 배덕자들의 전시회로부터 고개를 돌리기가 어렵다. 골든슨은 이 지옥의 대기실에서 현대판 단테의 역할을 맡았다. 저주받은 영혼을 차례차례 등장시켜 자신의 입으로 본래 모습을 드러내게 만든다. 그들이 감추는 것이 많을수록 우리는 그들에 대해 더욱 잘 알게 된다.
골든슨이 정신과 전문의로서 훌륭했느냐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그는 어차피 이들을 치료하러 온 것이 아니라 관찰하러 온 것이었다. 이 책은 정신분석 면담이 아니라 비밀보장이 없는 대화였으며, 부모·가족·결혼에 대한 담담한 이야기다. 그러나 골든슨은 훌륭한 기자였다. 대화 상대들이 지껄이는 동안 가만히 기다렸다가 끼어들어 반대신문을 하고, 그들의 외모와 감정을 포착했다.
“슈트라이허는 키가 작고 머리는 거의 벗겨졌으며 매부리코였다…. 항상 미소를 지었다. 얄팍한 큰 입술을 비틀며 개구리눈을 가늘게 뜨고 짓는 그 미소는 우거지상 같기도 하고 곁눈질 같기도 했다. 호색한이 현자인 양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다.” 거드름 피우는 인종차별주의자 얼간이 ‘철학자’인 알프레트 로젠베르크가 골든슨에게 “좀 복잡한 나의 이론이나 추론을 잘못 전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잘 받아적을 것을 주문하는 모습이나 허영심 강한 괴링(“괴링의 참모습을 아는 사람은 없다. 나는 여러 부분으로 이뤄진 사람이다.”)
이 홀로코스트는 “나의 기사도 원칙”에 위배된다고 설명하는 장면을 잊을 독자는 없을 것이다. 괴링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여성을 존중하며 어린이를 죽이는 것은 신사답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유대인 말살 문제에서 내가 껄끄럽게 생각하는 것은 그 점이다.”
진정으로 무서운 인물들은 강경파 반유대주의자인 로젠베르크나 슈트라이허 같은 ‘또라이’들이 아니라 전혀 미친 것 같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출세 제일주의나 나약한 심성, 혹은 차가운 마음 때문에 굳이 모르는 체 외면하려고, 또는 고민하지 않으려고 애썼을 것이 틀림없는 대학살의 공모자가 됐다.
그들을 한데 묶어 살기 위해 거짓말하는 부덕한 괴물로, 또는 반사회적 이상성격자로 매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중 일부는 자신이 이미 죽을 운명임을 알고 있었다. 회스·로젠베르크·슈트라이허는 교수형에 처해졌다. 괴링은 청산가리를 먹고 자살했다.
그들은 어렵고 불쾌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기품있고 애국적이며 합리적인 사람이라는 자기인식을 간직하려고 애썼는지도 모른다. “그런 일에 불쾌감을 느낀다는 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토끼같이 생긴 회스는 골든슨에게 말했다. “누구 한사람 내 손으로 죽인 적이 없는데. 나는 다만 아우슈비츠의 말살 프로그램 책임자였을 뿐이다.”
뉘른베르크 감옥은 정신과 치료의 영역을 넘어서는 영적 구제불능자들의 요양원이었다. 골든슨은 그곳을 돌아다니며 느낀 경악과 당혹감을 대체로 자제했다. 독자들은 그렇게 하기가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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