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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홀은 사치… 9홀 코스로 명맥 무장경호 받으며 라운딩

18홀은 사치… 9홀 코스로 명맥 무장경호 받으며 라운딩

온두라스는 니카라과와 함께 중미에서 가장 낙후된 국가다. 이곳에도 정규코스는 아니지만 잘 관리된 9홀 골프장이 골퍼들을 기다리고 있다. 장총으로 무장한 안전요원이 어느 홀을 가든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는 등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코마야구엘라 CC엔 무장경비원이 가시거리 내에서 골퍼들을 보호한다.
이틀이나 무단결근하고 사흘째 되는 날, 그것도 한 시간이나 지각한 현지인 여공 아가씨가 짙은 화장에 고개를 빳빳이 들고 개선장군처럼 공장에 들어온다. 관리직원은 벌써 눈치를 채고 그 여공을 불러 다그치거나 결근 이유 한 마디를 물어보지 못한다. 그 여공은 호랑이 같은 여자 주임도 더 이상 겁내지 않는다. 중미(中美)의 작은나라 온두라스. 카리브 해에서 가까운 북서부, 이 나라 최대의 자유무역지대 산 페드로 술라에 있는 어느 한국 봉제공장의 아침 풍경이다.

재봉틀 소리가 요란한 작업실로 그 여공이 들어가면 모든 여공들은 일손을 멈추고 부러운 시선을 집중시킨다. 그 여공의 봉제라인은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다. 며칠 나와서 일하는 둥 마는 둥 하던 그 여공은 아예 출근을 하지 않는다. 한국인 사장과 살림을 차려 일약 사장 사모님이 됐기 때문이다.

어느 날부터인가 잘생긴 총각 미싱사가 목에 힘을 주고 지각과 결근을 밥 먹듯이 하기 시작한다. ‘사장이 호모인가’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한국인 노처녀 현장 주임이 쩔쩔매기 시작한 것이다. 이 나라 수도 테구시갈파에서 태권도장을 하는 우리 교민 송경봉 씨를 만나자 대뜸 이렇게 말한다. “중남미에 공장을 하겠다고 남편이 떠날 때는 이혼 도장을 찍고 가라고 신문에 좀 써주시오.”

“따당 땅땅땅.”
요란한 총소리에 잠이 깼다. 시계를 보니 새벽 1시다.
방문을 열고 나가보니 호텔 주인 방에 불이 켜져 있어 문을 두드려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더니 “커피농장에 떼강도들이 왔나 봐”라며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대수롭잖게 한마디 던지고 문을 닫는다. 하룻밤 방값이 단돈 1달러인 라우니온의 흙집 호텔에서의 첫날밤은 이렇게 뒤숭숭하게 흘러갔다. 라무라야산 7~8부 능선 정글 속엔 커피농장들이 늘어서 있다. 커피 따는 철이 되면 하루 품삯을 주려고 커피농장엔 현금이 풀풀 날아다닌다. 밤이 되면 떼강도들이 현찰을 털려고 총을 들고 농장을 덮친다. 커피농장주는 무장한 사병들을 고용해 떼강도에 대항한다.

온두라스는 가난에 찌든 중미 가운데에서도 니카라과와 함께 가장 낙후된 나라다.
이 나라 수도 테구시갈파에서 200km 북쪽으로 오르면 아구안강의 발원지가 되는 라무라야산은 울울창창 정글에 덮여 정적에 싸인다.
라무라야 산자락에 파묻힌 산촌마을 라우니온에 아직도 어둠이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새벽 5시. 동네 한복판에 트럭이 라이트를 켠 채 시동이 걸려 매캐한 매연을 뿜고 있다.

커피농장주 후안이 떼강도를 막기위해 무장한 사병들을 고용했다.
칼칼한 입에 바짝 마른 빵으로 아침을 때운 안토니오와 그의 자녀 여섯은 종종걸음으로 집을 나와 서둘러 트럭에 오른다. 동네 사람들을 빼곡하게 태운 트럭은 무섭도록 시커먼 라무라야산 검은 정글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개울을 건너고 진창길을 빠져나가 오금이 저려오는 절벽 길을 돌며 트럭은 숨가쁘게 올라간다. 검은 장막을 걷어내듯 어둠이 사라지자 희뿌연 새벽 안개가 어둠이 떠난 자리를 차지한다. 질 좋은 커피의 재배 적지는 열대지방의 해발 700m가 넘는 고산지역에다 화산토양이면 금상첨화다.

까다로운 커피나무는 적당한 강우량에 낮엔 따끈따끈하고 밤이면 쌀쌀한 큰 일교차를 원한다. 온종일 직사광선을 받는 걸 싫어하는 반음반양성이다. 정글 속에 커피농장을 조성할 땐 띄엄띄엄 큰 나무를 두고 나머지를 벌채해 그늘을 만들어 준다. 라우니온 마을에서 20km나 가쁜 숨을 헐떡이며 올라온 트럭이 수많은 일손을 풀어놓는다. 앵두처럼 새빨갛게 익은 커피는 최상품이 될 수 없다. 붉게 익어 가는 커피 열매가 최고다.
이곳에서는 2 ·3월이 커피 열매를 따는 철이다. 이맘때 라우니온 초등학교는 교실이 텅 비어 저절로 휴교가 된다. 이곳 산촌마을 주민들에게 현금을 만질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서 걸을 수 있고 손을 쓸 수 있으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커피를 따러 간다.

파리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마친 연인들이, 뉴욕의 아파트에서 저녁상을 물린 부부가 검붉은 악마의 맛, 커피를 마시며 여유롭게 인생을 노래하지만 커피 열매를 따는 안토니오네 일가족 일곱 명은 트럭에서 뛰어내리자마자 따기 좋은 커피 밭을 차지하려고 돌부리에 채여 넘어지며 쫓기듯 달려간다.

초등학교 1학년 바체코도 커피 따는 철이면 한 사람 몫의 일을 한다.
그들은 일당이 아닌 철저한 성과급이다. 커피 열매 1갤런(약 2되)을 따야 1달러를 받는다. 꼭두새벽부터 어둠살이 내릴 때까지 손이 부르트도록 따야 한 사람이 3갤런, 하루에 커피 한 잔 값 3,600원 벌이를 하는 것이다. 안토니오네 일가족의 하루 수입은 2만 5,000원이다. 그나마 이런 벌이는 1년에 3개월뿐이다.
“지난해엔 아이들에게 누가 많이 따는지 경쟁을 시켜서 수입은 늘었는데 아이들이 너무 힘들어 해 올해부터는 이렇게 함께 모으지요.”

안토니오는 손가락이 탈 정도로 짧아진 담배꽁초를 빨며 빙긋이 웃는다. 이렇게 따 모은 커피 열매는 농장주 손에 들어가 물에 불려서 외피를 벗겨내고 말려 포대에 담아 나간다. 커피 농장주 후안 앙헬 비야 프랑카(57)를 만났다.커피 따는 가난한 사람들은 모두가 인디오와 스페인인 혼혈 메스티조인데, 프랑카는 정복자 스페인인의 피를 그대로 이어받았다. 임금이 너무 싸다는 나의 말을 받아 그는 “커피는 국가 전매품이다. 국가에서 수매하기 때문에 그 이상 지급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허리에 권총을 차고 장총으로 무장한 부하 여럿을 거느리고 있어 마피아 보스를 연상시킨다.

“커피 따는 철이 되면 떼강도가 습격해 와 대낮에도 총격전이 벌어진다. 이 친구들은 커피를 따지 않지만 나는 많은 돈을 줘야 한다. 커피농사가 재미없다.”그러나 그의 풍채는 커피 농사가 그렇게 재미없어 보이지 않는다. 라우니온에서 온두라스의 수도 테구시갈파까지는 버스를 세 번 갈아타고 꼬박 하루가 걸린다. 지난해 9월 허리케인이 할퀴고 간 테구시갈파는 아직도 그 상흔이 그대로 남아있다.
이 가난에 찌든 나라에도 골프코스는 있다.

커피 열매를 따는 안토니오 일가족.
도심에서 차로 15분쯤 북서쪽으로 가면 코마야구엘라 컨트리클럽(Comayaguela C.C.)이 자리 잡았다. 둔덕 위엔 하얀 클럽하우스가 있고, 그 아래로 9홀이 강강술래를 하듯 빙 둘러 이어졌다. 그린과 페어웨이 모두 버뮤다그래스다. 중미에서는 풀이 깔려 있는 골프코스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 18홀 정규코스와 멋진 골프코스를 찾는 일은 사치스런 허욕이다. 그런 기준에서 코마야구엘라 CC는 썩 괜찮은 골프코스다. 페어웨이와 러프가 선명하게 구분돼 있다. 그린과 에지가 뚜렷이 나누어졌다는 것은 이 골프코스의 관리 상태가 수준급이라는 걸 말해준다.

나무와 샌드벙커가 있고, 적당한 굴곡으로 라운딩 재미를 만끽할 수 있는데 한 가지 흠(?)이라면 분위기가 영 찜찜하다는 것이다. 골프의 재미란 일상에서 일탈해 초원 위 평화 ·여유 ·고요 등을 맛보는 것인데, 장총으로 무장한 안전요원이 어느 홀을 가더라도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총을 메고 서성거리다 러프 속으로 떨어진 공도 찾아주고 임자 없는 공은 주워서 골퍼에게 준다.
“당신들은 왜 총을 들고 어슬렁거리며 분위기를 망치느냐?”
“강도가 들어와 당신 옆구리에 총을 들이미는 걸 막기 위해서….”

청청공방(02-736-7008)으로 문의하면 골프장에 관한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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