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현대그룹 김윤규 부회장. |  | |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과 김윤규 부회장. |  | 한때 ‘바이 코리아’ 열풍으로 주목받았으나 ‘가신의 난’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지목. 현대전자 주가 조작 문제로 2000년 8월 낙마.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 |  | 현대그룹 구조조정위원회 사장을 지낸 정주영 전 명예회장의 오른팔. 현대자동차·INI스틸 회장 으로 밀렸다가 2001년 말 갑자기 하차.
박세용 전 INI스틸 회장. |  | ‘강명구의 뜻이 곧 정몽헌 회장의 뜻’이라고 불릴 정도로 오너의 신임이 두터웠으나 2003년 KCC와 경영권 분쟁 때 퇴진.
강명구 전 현대택배 회장. |  | 현대건설을 거쳐 2000년부터 현대 구조조정본부장을 맡았으나 ‘가신’으로 낙인 찍혀 강명구 회장 등과 동반 사퇴.
김재수 전 현대그룹 경영전략팀장. |  | 1999년 대표이사로 승진했으나 정몽헌 회장이 현대아산에 대한 자금 지원을 요청하자 이에 반발해 2001년 10월 사퇴.
김충식 전 현대상선 사장. |  | 한남투신 대표이사를 거쳐 2002년 5월 현대증권 사장에 오른 뒤 부회장까지 올랐으나 2003년 ‘삼촌의 난’ 때 밀려나.
조규욱 전 현대증권 부회장. | 현대그룹의 ‘마지막 가신’ 김윤규(61) 현대아산 부회장이 홍역을 치르고 있다. 금강산 부대시설을 운영하며 지인에게 특혜를 줬다는 사실이 내부감사에서 밝혀지면서 사퇴 종용을 받고 있는 것. 개인 비리가 드러났으니 김 부회장이 대표이사 자리를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 현대그룹 측의 입장이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측은 “대북 사업에만 ‘백의종군’하든, 조건 없이 물러나든 관계없다”며 그의 퇴진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사실 김 부회장의 개인 비리가 알려진 것은 지난해 말이다. 최용묵 현대그룹 경영전략팀 사장(현대엘리베이터 사장 겸임)에게 전달된 한 통의 투서가 발단이 됐다. 투서의 주요 내용은 ▶금강산 옥류관 분점 등의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절차상 문제가 있었고 ▶북한 사업소에서 불법으로 달러를 반출하다 북한 당국에 적발됐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현대그룹 측은 내부감사를 진행시키면서도 서두르지 않았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조용히 문제를 매듭짓겠다는 현 회장의 의중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당시 대표이사 사장이던 그를 3월 17일자로 부회장으로 승진시켰다.
2005년 3월겉으로는 승진이지만 내용은 좌천 인사였다. 현대그룹에서 ‘부(副)회장’은 실권이 없는 자리다. 그룹 내부에서조차 “이제까지 그룹에서 부회장이라는 직위가 무슨 힘이 있었나”라고 말할 정도다. 퇴진을 시키기 위해서 하는 ‘예우’라는 것이다. 실제로 김 부회장은 지난 3월 승진과 함께 그룹 임원회의에서조차 빠졌다. 현대아산에서도 기획·재무·인사 등 경영의 주요 사안은 그의 후임인 윤만준 대표이사 사장 관할로 바뀌었다. 그는 대외 활동만 허용됐다. 그룹에서 권력의 축은 최용묵 사장, 윤만준 사장, 김지완 현대증권 사장 등 신예 세력으로 기울어졌다. “현정은 회장이 김 부회장에게 최후통첩을 보낸 것은 이때(3월 승진 인사)라고 봐야 한다. 그런데 김윤규 부회장은 계속 버텼다. 자신이 현대그룹에서 할 일이 더 남아 있다는 주장이었다. 결국 그는 적절한 퇴진 시기를 찾지 못하고 버티다 망신을 당한 셈이다. 전문경영인으로서 적절히 물러날 때를 찾았으면 깨끗하게 끝났을 일인데….” 현대의 한 관계자 말이다. 김 부회장이 스스로 물러날 때를 알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그런데 김 부회장이 때를 잘못 선택한 것은 이번뿐이 아니다.
2000년 3월2000년 3월 이른바 현대그룹의 계승을 둘러싸고 ‘왕자의 난’이 불거졌을 때다. 김충식 전 현대상선 사장은 고 정몽헌 회장의 집무실을 찾았다. 김 전 사장은 가신그룹의 이름을 일일이 지목하며 “이들을 잘라야 현대그룹이 살 수 있습니다”라고 직언했다. 재계 1위의 현대그룹이 ‘제2의 환란 주범’으로 몰리게 된 데는 가신그룹의 경영책임이 크다는 지적이었다. 그러나 현대그룹을 먼저 떠난 사람은 아이로니컬하게도 김충식 전 사장이었다. 정 회장 특유의 우유부단함이 가신그룹을 매정하게 자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2000년 10월두 번째로는 현대건설이 부도났을 때도 김 부회장은 회사의 수장으로서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주지 않았다. 2000년 10월 14일. 그룹의 모태인 현대건설이 1차 부도를 냈다. 당시 이연수 외환은행 부행장 등이 “누군가 경영상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김 부회장의 대답은 “열심히 하겠습니다”가 전부였다. 그날 서울 잠원동 집으로 돌아온 그는 밤새 울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표는 내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 도덕적 해이 문제가 불거졌을 때도 마찬가지. 당시 김 부회장이 현대건설에서 분양한 서초동의 한 빌라에 전세금을 내지 않고 6개월여 동안 입주해 있던 사실이 현대그룹과 채권단 감사에서 밝혀졌다. 그러나 그는 슬며시 입주금을 내는 것으로 사태를 ‘정리’했다.
2001년 5월5월 28일 현대건설은 그룹에서 분리됐다. 정몽헌 회장 등 오너 일가 지분을 완전 감자한다는 조건으로 외환은행 등 채권단에서 1조5000억원을 투입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현대건설은 은행 관리로 넘어갔다. 그러나 대표이사 사장이던 그는 현대그룹을 떠나지 않았다. 현대아산 사장으로 말을 갈아탔기 때문이다.
2003년 12월주군인 정몽헌 회장의 자살 사건 때도 역시 똑같았다. 정상영 KCC 명예회장이 현대그룹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선언한 ‘삼촌의 난’ 때도 그는 건재했다. 2003년 그룹 최대의 위기를 겪으면서 취임한 현정은 회장은 당시 김 사장을 비롯한 8명의 사장단 사표를 받았다. 김재수 구조조정본부장, 강명구 현대택배 회장, 장철순 현대상선 부회장 등이 이때 현대를 떠났다. 강명구 회장과 김재수 사장을 포함한 ‘가신 3인방’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남은 것이다. 현대건설 전직 임원의 얘기다. “당연히 그가 물러날 줄 알았다. 아니 물러나야 했다. 멀쩡히 잘 굴러가던 현대건설 자금을 현대아산에 퍼부은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대건설이 이 지경이 됐는데도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대북 사업의 유일한 적자(嫡子)라는 것이 이유였다.” 한때 대북 송금과 관련해 정 회장이 검찰 조사를 받다가 자살한 사건 이후 그의 입지는 더 강화됐다. “대북 사업은 김윤규”라는 등식이 생기면서 김 부회장의 어깨에 힘이 실렸기 때문이다. 최근 그는 지난달 현 회장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의 면담을 성사시키면서 주목받기도 했다. 그러나 7월 김 위원장 면담은 현 회장에게도 ‘선물’이 많았다. 올 초부터 대북 사업을 직접 챙기기 시작한 현 회장은 김정일 위원장과의 면담에서 백두산·개성 관광 등 굵직한 성과를 따냈다. 특히 김 위원장은 “정몽헌 회장에게는 금강산을 주었는데, 백두산은 현 회장에게 줄 테니 잘해 보라”고 말했다. 대북 사업의 공식 창구로 현 회장이 인정받은 셈이다. 반대로 김 부회장으로선 자신의 입지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현재까지 김 부회장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는 가족들과 연락을 취하며 시내 모처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 측은 “광복절 이후 김 부회장이 대표이사직 사임과 함께 부회장직까지 내놓고 물러난다는 입장을 정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김 부회장이 쉽게 물러설지는 미지수다. 김 부회장은 지난 6월 금강산 관광객 100만 명 돌파 때 기자들과 만나 “대북 사업은 이제 시작이다. 하산하기엔 이르다”고 말한 바 있다. 지난 4월엔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현대건설을 인수하는 것이 희망이다”고 말해 화제가 됐다. 현대그룹 역시 고민이 많다. 김 부회장의 ‘퇴로’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개인 비리 혐의가 불거진 뒤에도 “대북 사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해 당분간 일정 부분 역할을 맡아 줄 것으로 기대한다”며 부드러운 자세를 취하는 것도 이런 취지에서다. 지나치게 압박할 경우 김 부회장 측에서 ‘돌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기원전 202년 중국을 통일한 한고조 유방의 곁에는 한신과 장량이 있었다. 대군을 지휘하는 데는 한신 같은 장수가 없고, 계책을 짜는 데는 장량 만한 책사가 없었으니 유방에게는 천군만마가 따로 없었다. 천하를 손에 넣은 유방이 한신을 제거하려 하자 그는 “토끼가 죽고 나면 사냥개도 잡혀 삶아진다(狡兎死走狗烹)”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여기서 유래한 말이 토사구팽(兎死狗烹)이다. 대신 몸을 낮춘 장량은 신병을 핑계로 물러나 종남산(終南山)으로 들어가 ‘방원각(方圓閣)’이라는 정자를 짓고 여생을 보냈다. 이때 아들에게 “살구꽃은 3월에 피고, 국화는 9월에 핀다. 이것이 다 제가 제때를 아는 까닭이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다섯 번이나 물러날 때를 놓친 김 부회장. 결국 그는 ‘불명예 퇴진’이라는 부메랑을 맞았다. 팽(烹) 당했다고 할까, 이제라도 방원각을 지어야 할까. 개인 비리가 밝혀진 이상 팽(烹)을 논하기엔 억지고, 정자를 짓기엔 때가 너무 늦어 보인다. 현정은 회장과 김윤규 부회장…
처음부터 악연이었다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에게 김윤규 현대아산 부회장은 ‘형제’ 같은 사람이었다. 김윤규 부회장은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또 다른 아들이라는 뜻에서 ‘정윤규’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정몽헌 회장의 가신으로 불린 것도 이런 이유다. 정몽헌 회장이 자살했을 때 “당신은 피를 이은 자식”이라는 유언을 남기기도 했다. 그의 입지는 정 회장이 남긴 유서로 인해 더욱 탄탄해졌다. 현정은 회장과 김 부회장의 인연은 정 회장의 자살 사건 때부터라고 봐야 한다. 그런데 장례식을 놓고 문제가 터졌다. 김 부회장이 고 정 회장의 유언대로 “정 회장의 관을 들고 금강산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현 회장으로선 난감했다. “그러면 명절 때는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며 시신을 경기도 하남 창우리 선영에 묻었다. 결국 일부 유품을 금강산에 뿌리는 것으로 정리됐지만, 현 회장은 이때부터 김 부회장에 대해 ‘이상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갖게 됐다는 것이 주변의 얘기다. 두 사람은 스타일도 다르다. 현 회장은 조용하고 치밀한 스타일이다. 따라서 최용묵 사장이나 노정익 현대상선 사장, 김지완 현대증권 사장 등 재무통을 더 중용하는 편이다. 그다지 ‘예스맨’을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김 부회장은 ‘저돌적인 예스맨’이다. 현대그룹의 정통적인 인재상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 관계자는 “김 부회장에 대해 투서가 접수된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며 “아마도 현 회장이 공식적으로 대북 사업 전문가로서의 능력은 인정하되, 그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듣고 있다가 이번에 조치한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 퇴진한 현대그룹 전문경영인들 분석
현대그룹 CEO는 왜 불명예 퇴직이 많을까?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한다는 ‘SSKK문화’의 한계… ‘인간존중 경영’ 빈약한 기업 풍토 반영 김윤규 현대아산 부회장이 개인 비리 혐의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김 부회장이 이번 사건으로 물러나면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 김재수 전 구조조정본부장 등 이른바 현대그룹의 ‘가신(家臣) 3인방’이 모두 불명예 퇴진하는 셈이다. 한때 국내 최고의 재벌을 자랑하던 현대에는 유독 불명예 퇴진이 많다. 최근 3∼4년만 해도 박세용 전 회장이 그룹 2인자 자리이던 기획조정실장(구조조정본부장)에서 현대자동차·INI스틸 등으로 밀리다가 2001년 말 쓸쓸히 물러나야 했다. 외환위기 당시 ‘바이 코리아’ 열풍을 일으킨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도 ‘왕자의 난’ 때 물러난 뒤 지금은 현대와 완전히 등을 돌렸다. 전문경영인뿐만이 아니다. 오너 일가였던 고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도 ‘명예롭게’ 퇴진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포니 정’으로 유명했던 그는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 자동차 산업을 일궜으나 정몽구 회장이 현대자동차를 물려받자 현대산업개발을 갖고 계열 분리했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친동생인 정인영씨가 한라그룹으로 독립하는 과정에서도 잡음이 많았다. 건설업을 중심으로 성장한 현대그룹에는 특유의 저돌적인 기업문화가 형성돼 있다. ‘현대 정신’은 적극적 의지, 강인한 추진력 등으로 표현된다. 특히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정신력이 그 원천이다. 이런 현대의 문화가 경부고속도로 건설, 중동 진출, 선박 건조 등의 ‘신화’를 만들기도 했다. 이런 저돌성은 ‘SSKK 문화’로 나타난다. 즉 ‘시키면(S) 시키는(S) 대로 하고, 까라면(K) 까라는(K) 대로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문제점도 적지 않다. 상의하달식 문화엔 인간 존중이 없고, 커뮤니케이션이 부족하다. 이런 문화가 CEO들의 ‘적절하고 명예로운 퇴로’를 막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우리나라 재벌은 전형적인 오너 체제다. 오너의 경영 스타일은 처음 창업한 업종에 따라 구별된다. 창업자의 스타일과 비즈니스 영위 업종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삼성의 초창기 사업인 제당·제분업은 프로세스 산업이다. 재료를 안정적으로 조달해 정밀하게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다 보니 ‘관리의 삼성’이란 말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오퍼상으로 출발한 대우는 조금 비약해 ‘하루살이 인생’이다. 품질보다 납기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고, 무조건 팔아서 잔돈이라도 남기는 게 비즈니스의 관건이었다. 그래서 ‘대우맨’은 항상 바쁘고, 일에 허우적거린다. 그러나 ‘남는 것’은 별로 없다. 현대는 어떨까. 현대의 모태는 건설업이다. 현대는 자동차도 건설처럼, 조선업도 건설처럼, 심지어 전자산업도 건설처럼 일군 회사다. 건설은 수주부터 공사까지 ‘전쟁터’다. 자연스럽게 군대식 문화가 발달했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여기에 딱 들어맞는 인물이다. “현장에서 배우면서 경영 교과서를 썼다”고 회고한 그는 빈손으로 한국 최고의 재벌이 됐다. 더구나 현대의 문화에서 중요한 것은 ‘명령’이다. 합리적인 프로세스를 위해 참모들이 논의하다 보면 시간만 허비할 뿐이다. 현장 지휘관들이 공격이냐, 후퇴냐, 수비냐를 정확히 판단해줘야 한다. 이런 문화는 사람을 뽑고, 키우고, 내보낼 때도 반영된다. 사람을 내칠 때도 프로세스가 있는데 현대에는 이런 문화가 없다. 조금 비약해 현대에서는 ‘즉결 처단’하듯이 의사결정을 했다. “싸우기 싫으면 나가라. 전사는 줄을 섰다”는 것이다. 나갈 때도 그 사람의 자존심을 세워 주거나, 형식적으로라도 그동안의 공헌을 참작해 주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오너 측근도 마찬가지다. 리더십보다 충성심을 먼저 평가받는다. 불명예 퇴진이 현대만의 특유한 기업 문화에서 연유하는 것이 아니라는 지적도 많다. 지배체제 변화기에 나타나는 불협화음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논리다. 최근 형제 간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는 두산도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조직이나 기업이든지 절대적인 리더십이 깨지면 자중지란이 일어나게 마련이고, 최근의 현대 계열사 사장단 ‘숙청’ 역시 ‘현정은 회장 체제’로 옮겨가면서 주도권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는 얘기다. 도움말:김경준 딜로이트투쉬 상무·김원석 협성대 경영대 교수·이한구 수원대 경영학부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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