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 못하는 아기의 마음을 읽는다
Reading Your Baby's Mind
빅토리아 베이트먼은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그 누구보다 귀여운 아기다. 생후 6개월째인 아기는 또한 사람을 믿고 의심이 없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렇지 않다면 곧 닥칠 일에 잘 적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때는 푹푹 찌는 6월 오후의 미국 텍사스주 러벅. 텍사스 공대의 휴먼 사이언시스 연구소 안에서 엄마 셰릴이 빅토리아를 높은 의자에 앉힌다.
이곳에서는 아기들이 어떤 식으로 사고하는지 알기 위한 실험이 계속돼 왔다. 빅토리아가 가장 최근의 실험 대상자다. 이 실험을 이끄는 시빌 하트 인간발달학과 조교수는 모녀에게 동영상 촬영기 렌즈를 고정한다. 준비가 끝났다. 하트는 셰릴에게 동화책 ‘엘모가 펑 나타났어요’(Elmo Pops In)를 건네며 책에 몰입하라고 말한다. “그 책에 관해 내게 이야기하세요.” 하트가 엄마에게 말한다. “무엇보다 [빅토리아를] 쳐다봐서는 안 됩니다.” 두 여성이 대화를 나눌 동안 빅토리아는 무표정하게 약간 지루한 듯 방 안을 둘러본다.
몇 분 뒤 하트가 방을 나갔다 실물 같은 아기 인형을 안고 돌아온다. 마치 연기를 하듯 하트는 그것을 셰릴의 팔에 안겨 주며 계속 빅토리아를 무시한 채 인형을 귀여워해 주라고 말한다. “괜찮아, 아가야.” 셰릴은 인형을 안고 흔들면서 어른다. 빅토리아의 얼굴에서 지루한 표정이 사라졌다. 먼저 환하게 미소지으며 살짝 솟아난 이 하나를 드러냈다.
그것이 먹혀들지 않자 발길질을 시작했다. 그러나 엄마는 본 척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빅토리아는 이성을 잃었다. 곧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지면서 토할 듯 심하게 울어 댔다. 하트가 뛰어들어와 “오케이, 이제 됐어요”라며 인형을 다시 가져갔다. 셰릴은 아기를 달래러 갔다. “아기가 무엇에도 저렇게 반응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어요”라고 엄마가 말했다. 지난 10개월 동안 하트는 같은 실험을 수백 번 되풀이했다. 결과는 거의 언제나 똑같다.
아기들이 질투에 휩싸이게 된다. 하트도 유아들이 감정을 느낀다는 사실에 크게 놀랐다. 최근까지 아기들은 감정을 느끼거나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됐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요람 속에서 사지를 버둥거리고 침을 흘리며 올려다보는, 무력하고 도무지 종잡기 어려운 듯한 아기들의 머릿속에서는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이 벌어진다. 갓난아기들의 감정적·지적 능력에 관한 주요 소아학자들과 아동심리학자들의 오랜 믿음을 뒤흔드는 다수의 새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1890년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가 아기의 세계관을 “색깔과 소리가 무질서하게 난무하는 하나의 커다란 혼란”이라고 설명한 일은 유명하다.
그 이론은 거의 한 세기 동안 유지됐다. 아기들은 주변의 사물을 단순히 흉내 내고 가장 기본적인 감정(행복·슬픔·분노)만을 이해하는 단순한 창조물로 여겨졌다. 과학은 이제 아기들의 가슴과 머릿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관해 아주 판이한 그림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말을 시작하거나 일어서려 하기 훨씬 전에 아기들은 이미 질투·감정이입·좌절 같은 복잡한 감정을 터득한다. 과거에는 걸음마를 시작하고 한참 뒤에 그런 감정을 배운다고 생각됐다.
아기들은 또 우리가 예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지적으로도 훨씬 더 발달됐다. 생후 4개월밖에 안 된 아기들도 진보된 연역력과 복잡한 문양을 파악하는 능력이 있다. 그들은 놀라울 정도로 미묘한 뉘앙스를 지닌 시각적 판단 준거가 있기 때문에 특히 얼굴 표정의 작은 차이를 알아차린다. 그러나 성인이나 조금 더 자란 아이들은 그런 능력을 완전히 잃어버린다. 3개월이 될 때까지 아기는 조각 맞추기 퍼즐처럼 헝클어진 엄마의 사진을 모든 조각이 제대로 맞춰진 사진과 마찬가지로 금방 알아본다. 그리고 아기의 형과 누나들이여, 조심하라. 아기의 기억이 오래가기 때문에 앙심을 품기도 한다.
이 같은 새로운 연구는 분명 새내기 부모들을 혹하게 하리라(봤지, 우리 아기가 천재잖아!). 하지만 거기엔 단순한 학문적 훈련 이상의 의미가 있다. 소아학자들은 그런 새로운 정보를 바탕으로 갓난아기들에 대한 평가방식을 바꾸기 시작했다. 육체적 발달을 추적하는 외에 이젠 정서 발달에 훨씬 더 깊이 초점을 맞춘다. 그 연구는 아기의 미래 건강에 정서적 행복이 얼마나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 준다. 특정한 핵심적인 ‘감정의 주요 행동지표’에 도달하지 못한 아기는 말하기와 읽기 습득에 어려움을 겪거나 후에 학교 생활을 잘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의사들은 감정적 반응을 읽어 냄으로써 3개월밖에 안 된 아기가 우울증·불안·학습장애, 그리고 어쩌면 자폐증에 이르기까지 있을 법한 정서장애의 초기 조짐을 보이는지 여부를 알아내는 방법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아기들이 기는지 앉는지를 묻는 대신 아기들이 보호자들과 세상을 어떻게 공유하는지에 관해 더 많은 질문을 한다”고 미국 소아과 학회 산하 초기 아동위원회 위원장인 체트 존슨 박사는 말했다. “아기가 물건을 가리키는가. 낯선 사람을 볼 때 어떻게 반응하는가. 이 같은 사회·정서·언어능력의 발달 수준이 아기가 성인이 됐을 때 성공할지를 점치는 데 운동기능보다 더 나은 예고지표다.” 위험인자를 지닌 어린이들을 멀지 않은 장래에 의사들이 지금보다 더 빨리 손쉽게 찾아내면 부모들이 상황을 반전시키는 데 필요한 시간을 더 많이 갖게 되리라는 게 과학자들의 희망이다.
심지어 아주 갓난아기가 드러내는 초기 감정 중에는 놀랍게도 감정이입이 있다. 실제로 다른 이들에 대한 관심이 아기들의 두뇌 회로 속에 깔려 있을지도 모른다. 우는 다른 아기 곁에 신생아를 내려놓으면 곧 둘 다 똑같이 울어 댈 가능성이 크다. “다른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으면 아기들이 따라 운다는 사실은 이미 예전부터 알려졌다”고 1970년대 유아 감정이입에 관해 최초의 연구를 했던 뉴욕대 마틴 호프먼(심리학) 교수는 말했다.
“문제는 왜 우느냐였다.” 아기가 정말로 같은 인간에 대한 동정심을 가졌을까 아니면 그냥 시끄러워 짜증이 났을까. 호프먼의 연구를 바탕으로 이탈리아에서 실시된 최근의 연구는 그 의문을 상당 부분 해소했다. 연구원들은 다른 아기들의 울음소리 녹음 테이프를 아기들에게 틀어 줬다. 예상대로 아기들이 따라 울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신의 울음소리를 들려주자 거의 따라 울지 않았다.
결론은 “태어날 때부터 어떤 기본적인 감정이입이 존재한다는 점”이라고 호프먼은 말했다. 그 감정의 세기는 시간이 흐르면서 약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6개월이 넘으면 다른 아기들이 울 때 따라 울지 않고 인상을 찌푸린다. 13~15개월이 되면 문제를 직접 해결하려 한다. 같이 놀던 친구가 울면 자신이 달래려 한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일은 양쪽 엄마가 다 있을 때조차 자신의 엄마에게 도움을 청한다는 점”이라고 호프먼은 말했다.
그런 감정이입의 일부는 또 다른 유년기 능력에서 나올지도 모른다. 바로 주변 사람들의 얼굴 표정으로부터 감정을 읽어 내는 능력이다. 지금은 그에 관해 더 많은 사실이 알려졌지만 “아직도 대다수 교과서에 6개월 미만의 아기들이 감정을 읽지 못한다고 기술돼 있다”고 필라델피아 라샐리대의 다이앤 먼테이그(심리학) 조교수는 말했다. 그런 믿음에 이의를 제기하기 위해 먼테이그는 모든 아기가 좋아하는 까꿍 놀이를 변형한 뒤 생후 넉 달짜리 아기 수십 명을 모집했다.
그녀는 먼저 환한 웃음을 띤 채 천 뒤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예상대로 아기들은 좋아했으며 그녀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아기가 관심을 갖는지 알아내는 오랜 경험법칙이다. 하지만 먼테이그는 네 번째 얼굴을 내밀 때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는 반응이 사뭇 달랐다. “아기들이 얼굴을 돌렸을 뿐 아니라” 다시 미소를 지을 때조차 돌아보려 하지 않았다고 그녀는 말했다.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 함은 아기가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전형적인 신호다. 화난 표정을 하자 아기들이 다시 관심을 보였지만 얼굴에서 기쁨이 사라졌다. “아기들은 긴장, 심지어 경계하도록 타고난 듯했다”고 먼테이그는 말했다. “영아에 관한 한 그것이 추론이라는 점은 잘 안다. 하지만 6개월 미만의 아기들이 표정에서 의미를 찾는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고 생각한다.”
바로 여기가 아동 연구의 과제와 위험에 관해 곰곰 생각해 봐야 할 좋은 시점인지도 모른다. 피험자 아기들은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의 머릿속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내려면 종종 그들의 얼굴과 몸짓 언어를 읽어 내야 한다. 이것이 추론적인 듯하지만 그렇지 않다. 수십 년간의 시행착오를 거쳐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관찰기술을 정교화했으며 다양한 자극에 대한 아기의 수많은 일관된 반응에 초점을 맞췄다.
아기들이 한 사물을 얼마나 오래 응시하는지, 어떤 물건에 손을 내미는지, 어떤 물건을 보면 무서워하거나 싫어하며 움츠리는지를 보고 종종 경험 많은 과학자는 필요한 모든 정보를 알아내기도 한다. 최근 들어 과학자들은 뇌파검사(EEG)와 레이저 시선추적 기술을 추가해 분석의 정확성을 더했다. 조만간 첨단 자기공명영상(MRI) 스캔을 활용해 뇌 속 깊은 곳도 들여다보게 된다.
첫돌이 가까워지면 아기들은 점차 사회학습 능력이 고도화된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좇음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추론하기 시작한다. “다른 이들의 시선을 이해함으로써 아기들은 다른 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고 아기 수천 명을 대상으로 ‘시선 좇기’를 조사한 앤드루 멜트조프 워싱턴대 교수(심리학)는 말했다. “사람의 눈을 보면 무엇에 관심 있는지, 다음에 무엇을 하려는지 등 많은 것을 말해 준다. 아기들도 그것을 아는 듯하다. 그런 식으로 아기들은 우리 문화의 숙달된 일원이 되는 법을 배운다.”
멜트조프와 동료 레첼 브룩스는 생후 10~11개월째 아기에게 이런 능력이 처음 나타나며, 그것이 아기의 정서적·사회적 성장의 중요한 지표일 뿐 아니라 훗날 언어발달 수준을 예고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들의 연구에서 첫돌까지 시선을 잘 따라잡지 못한 아기들은 두 살 때 고급 언어 능력이 크게 떨어졌다. 아기들과 노는 시간이 대체로 적은 우울증 엄마의 자녀뿐 아니라 시각장애아의 언어 발달이 느린 이유도 그런 요인으로 풀이된다고 멜트조프는 말했다.
실제로 아기는 태어난 지 몇 달 만에 초능력에 가까운 관찰력을 보이기 시작한다. 사람의 얼굴도 어렵지 않게 구별한다. 미네소타대에서 신경과학을 연구하는 찰스 넬슨 교수(현재 하버드대 재직)는 유아들의 실질적 구별 방식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 생후 6개월 된 유아들을 대상으로 주의력이 지속 가능한 시간 동안, 차례로 서로 다른 침팬지 사진을 보여 줬다.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새로 제시되는 사진에 주목했다.
유아들은 각각의 침팬지를 쉽게 구분해 냈고 새로운 사진을 보여 줄 때마다 높은 관심을 보였다. 어른들 같으면 동물원에서 하루 종일을 보낸다 해도 그 많은 침팬지를 구별해 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월령이 좀 더 높은 유아들은 구별하지 못했다. 생후 9개월 된 유아의 경우 침팬지를 구별하는 능력은 상실했지만 사람 얼굴에 대한 관찰력은 높아졌다.
넬슨은 그 실험을 한 단계 발전시켜 생후 얼마가 돼야 사람 얼굴에 나타난 미묘한 표정 차이를 간파하는지를 알아봤다. 사실 표정 읽기는 사회성 발달의 핵심 주춧돌이다. 그는 뇌파 움직임을 측정해 유아의 뇌 속 깊숙이 탐구하는 새 연구를 설계했다. 넬슨은 인근 지역의 신생아를 둔 거의 모든 부모에게 실험 참가 요청 편지를 보냈다.
올 여름 초 대그니 윈버그가 실험에 참가했다. 엄마 아매티와 함께 함박웃음을 지으며 연구실로 들어선 생후 7개월의 대그니는 64개의 스펀지 감지기가 부착된 모자를 썼다. 넬슨의 보조연구원인 대학원생 멕 몰슨은 한 여성을 찍은 여러 장의 사진을 재빨리 보여 주기 시작했다. 사진마다 표정은 조금씩 달랐는데 행복감과 두려움을 다양하게 나타냈다. 대그니가 싫증을 내거나 시선을 돌리면 다음 사진으로 넘어갔다. 그러는 사이 컴퓨터는 시종일관 대그니의 뇌 활동을 밀착 추적하면서 각각의 사진에 대한 미세한 정신적 반응을 측정했다. 60장을 보고 나자 아이는 훌쩍이며 조바심을 내기 시작했고 그 실험단계는 그렇게 끝을 맺었다.
이 실험의 목적은 아기의 뇌 영상이 어른과 유사한지 아닌지를 보는 것이다. “우리는 아기가 어른과 같은 방식으로 감정을 분류하는지 보려 한다. 예컨대 어른들은 살짝 띤 미소를 보고 행복감으로 분류하는데 아기들도 같은지 알고 싶다”고 몰슨은 말했다. 아직 명확한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넬슨은 유아들이 이처럼 중요한 관찰과 정서적 유대 능력을 키워 나간다면 자폐증 같은 정서장애 초기 증상을 보이는 아이도 치료가 가능할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또 한편 연구자들은 아기와 관련된 또 다른 통념, 즉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생각을 타파하기 위해 애쓴다. 월령 9개월 이하의 유아에게는 ‘대상 영속성’ 개념(예컨대 엄마가 방을 잠시 나갔다고 해서 영원히 사라진 것이 아님을 아는 능력)이 없다고 오랫동안 여겨졌다. 그러나 캘리포니아대(샌타크루즈) 심리학과 왕수후아 교수는 생후 10주 정도부터는 그 개념을 이해한다고 말한다. 그는 월령 2∼3개월의 유아들을 데리고 작은 인형극 실험을 해 봤다. 우선 아이들은 전부 무대 위의 오리 한 마리를 본다. 이때 왕 교수는 오리에게 덮개를 씌워 무대를 이리저리 옮기다 덮개를 벗긴다. 어떤 때는 오리가 그대로 있지만 때로는 무대 바닥에 난 문을 통해 아래로 사라지기도 한다. 그러나 아기들은 오리가 사라졌음을 알고 오리를 찾아 텅 빈 무대를 골똘히 응시한다. “생후 두 달 반 정도 되면 이미 대상의 존재 지속성 개념을 이해한다”고 그는 말했다.
아이가 처음 말을 배우려 할 때는 외부 세계, 특히 부모와의 관계를 형성하는 탄탄하고 잘 발달된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이의 말은 단순한 흉내 내기 이상이다. 코넬대 심리학과 마이클 골드스타인 교수는 8개월 된 유아들을 두 집단으로 나누고 무선마이크와 송신기가 달린 옷을 입혔다. 한 집단의 어머니는 아이가 옹알이를 하면 활짝 미소를 짓거나 사랑스럽게 토닥이는 등 즉시 반응을 보이도록 한 반면, 다른 집단의 어머니는 미소는 짓되 아이가 무슨 소리를 내든 상관없이 불규칙하게 반응하도록 했다.
짐작했던 대로 즉각적인 반응을 받은 아이는 그렇지 않은 아기보다 옹알이를 더 많이 했고 그 수준도 더 빨리 높아졌다. 그러나 무엇보다 골드스타인의 흥미를 끈 점은 부모가 부지불식간에 자녀와 ‘옹알이 단계’을 높여 가는 방식이었다. “4개월 때는 부모의 관심을 끌었던 옹알이가 8개월 때 되면 같은 반응을 얻지 못한다. 따라서 아기는 여러 소리를 조합해 가며 새로운 옹알이법을 찾는다”고 그는 말했다.
워싱턴대 발성·청취학 교수이자 유아언어학 권위자인 패트리샤 쿨 교수는 10년 전, 유아들의 외국어 학습 능력이 어떤 연령대보다 가장 뛰어나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연구 결과가 발표되자 부모들은 자기네 꼬마 아인슈타인들이 유아용 침대를 졸업하기 전에 러시아어나 프랑스어 익히기를 꿈꾸며 외국어 테이프를 정신없이 사들였다. 하지만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쿨은 그 이유를 찾아 새로운 연구에 돌입했다.
그는 중국어를 하는 어른들을 생후 9개월 된 미국 아기들과 한방에 두고 장난감을 보여 주면서 중국어로 말하게 했다. 12단계의 실험을 거친 결과 아기들은 미묘한 중국어 발음을 구별해 냈다. 하지만 영어에만 노출된 또 다른 아기들 집단은 중국어를 구별해 내지 못했다. 그리고 쿨은 비디오테이프와 오디오테이프를 이용해 유아들에게 이전 실험과 똑같은 중국어 학습을 시켰다. 하지만 이 집단은 중국어를 한마디도 배우지 못했다. 쿨은 감정적 유대가 없으면 아기들에게 테이프 소리는 단지 진공청소기 같은 또 하나의 배경 소음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정말이지 그 결과에 놀랐다. 우리는 아기들이 아주 푹 빠진 듯 TV를 뚫어져라 쳐다봤기 때문에 뭔가를 배우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쿨은 테이프를 통한 외국어 교육이 실패한 이유를 밝히려면 더 많은 연구가 수행돼야 한다고 했다. “언뜻 보면 사람은, 아니면 적어도 유아는 배우고 따라 할 사람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어쨌든 아기들이 대단한 존재임에는 틀림없다. 양말 한 짝은 어딘가에 벗어 내버리고 콩반죽을 온통 얼굴에 덮어쓰고 있을지라도 그 안에는 예리한 관찰력과 감수성, 추론 능력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내재돼 있다. “지난 15년 동안 우리는 유아의 능력에 초점을 맞춰 왔다. 즉 무엇을 알고 있으며 또 언제 그것을 알게 됐느냐에 관심을 쏟았다. 하지만 지금은 유아의 이 모든 능력이 나중의 성장 발달에 대해 무엇을 예고하는지가 관심사다. 한마디로 유아기 때의 능력이 아동기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라고 워싱턴대의 멜트조프는 말했다.
몇몇 질문에는 현재 답이 밝혀지고 있다. 예컨대 수줍음을 생각해 보자. 예전부터 아동의 15∼20%는 천성적으로 숫기가 없고 겁이 많다고 생각돼 왔다. 하지만 어떤 아이는 그런 성격을 쉽게 극복하는 듯 보이는 반면 오히려 더 악화되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의사들은 그 차이를 낳는 근본 원인을 알지 못했다. 최근 메릴랜드대의 네이선 폭스가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수줍음은 주로 생물학적 요인에서 비롯된다. 그는 생후 9개월 된 아기 수십 명에게 뇌파측정기를 달아 간단한 실험을 수행하면서 그 사실을 증명했다. 낯선 사람이 인사를 하자 ‘내성적인’ 유아들은 긴장했으며 불안·두려움과 관련이 있는 뇌 일부의 활동이 훨씬 활발해졌다. 외향적인 아기들은 그 낯선 사람에게 손을 뻗었고 뇌파 영상을 판독한 결과 즐거움 같은 긍정적 감정을 관장하는 뇌의 활동이 증가했다.
하지만 몇몇 아이를 대상으로 15년 동안 추적 연구를 수행해 온 폭스는, 아이가 자라서 어떤 어른이 될지는 부모의 양육 방식에 따라 크게 다르다고 말했다. 부모의 과잉보호를 받은 아이나, 부모가 부끄러움이나 유아 시절의 소심함을 극복하도록 용기를 북돋워 주지 않았던 아이는 어른이 돼서도 여전히 부끄럼 많고 소심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자녀가 감정적 문제에 잘 대처하도록 상냥하게 도와주고 마음을 터놓도록 잘 구슬릴 줄 아는 자신감 있고 섬세한 부모를 둔 아이들은 어린 시절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매우 중요한 발견인 까닭은, 내성적인 아이는 다른 문제에도 봉착할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다.
조지워싱턴대 메디컬 스쿨에서 소아정신과 임상교수로 재직 중인 스탠리 그린스펀은 유아에게 언어와 학습장애, 자폐증을 비롯한 여타의 문제 소인이 있는지 파악하는 진단도구의 개발 권위자 중 하나다. 최근 그는 유아가 특정 성장단계마다 성취해야 하는 사회적·감정적 ‘주요 행동지표’를 나타낸 진단표를 완성했다(그래픽 참조). “의사들이 이 진단표를 바탕으로 유아들을 구분하고 만약 자녀가 그 과제를 달성하지 못할 때 부모는 정확히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해 줄 수 있기를 바란다. 현재 우리 앞에 놓인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부모가 직관적으로 아이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알 수는 있지만” 부모가 자녀를 평가할 때는 어쩌면 “이미 아이를 되돌려 놓을 결정적 순간을 놓친 다음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라고 그린스펀은 말했다.
그렇다면 부모는 이 모든 새로운 정보를 가지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진정부터 하자. 아이의 지각능력이 예상 외로 훨씬 높다고 해서 전화를 받느라 잠시 동안 아이를 침대에서 울게 내버려 뒀다고 아이의 인생이 치명타를 입게 된다는 얘기는 아니며 가끔 벌어지는 부부 싸움을 아이가 목격했다고 해서 아이가 결국에는 퇴학당하고 자동차나 훔치는 인생을 살게 되리라는 얘기도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가 마음 깊이 바라는 것은, 그리고 아이가 튼튼하게 자랄 수 있는 요인은 부모·자식 간의 상호작용, 일대일의 시간, 무수한 눈맞춤 등이다. 아이의 방을 ‘교육’ 완구와 그림으로 가득 채운다고 되지 않는다. 한 아이의 사회·감정·학습 생활은, 처음으로 아이가 부모에게 눈을 맞추고 부모가 아이에게 조용히 미소 짓고 또 아이가 미소로 화답하는, 부모·자식 간의 최초의 대화들로 시작된다. 아이는 항상 부모에게 말한다. 그 말을 들을 줄 알아야 한다.
With T. TRENT GEGAX,
MARGARET NELSON, KAREN BRESLAU, NADINE JOSEPH
and BEN WHITFORD
차진우·이정명 jincha@joongang.co.kr
빅토리아 베이트먼은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그 누구보다 귀여운 아기다. 생후 6개월째인 아기는 또한 사람을 믿고 의심이 없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렇지 않다면 곧 닥칠 일에 잘 적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때는 푹푹 찌는 6월 오후의 미국 텍사스주 러벅. 텍사스 공대의 휴먼 사이언시스 연구소 안에서 엄마 셰릴이 빅토리아를 높은 의자에 앉힌다.
이곳에서는 아기들이 어떤 식으로 사고하는지 알기 위한 실험이 계속돼 왔다. 빅토리아가 가장 최근의 실험 대상자다. 이 실험을 이끄는 시빌 하트 인간발달학과 조교수는 모녀에게 동영상 촬영기 렌즈를 고정한다. 준비가 끝났다. 하트는 셰릴에게 동화책 ‘엘모가 펑 나타났어요’(Elmo Pops In)를 건네며 책에 몰입하라고 말한다. “그 책에 관해 내게 이야기하세요.” 하트가 엄마에게 말한다. “무엇보다 [빅토리아를] 쳐다봐서는 안 됩니다.” 두 여성이 대화를 나눌 동안 빅토리아는 무표정하게 약간 지루한 듯 방 안을 둘러본다.
몇 분 뒤 하트가 방을 나갔다 실물 같은 아기 인형을 안고 돌아온다. 마치 연기를 하듯 하트는 그것을 셰릴의 팔에 안겨 주며 계속 빅토리아를 무시한 채 인형을 귀여워해 주라고 말한다. “괜찮아, 아가야.” 셰릴은 인형을 안고 흔들면서 어른다. 빅토리아의 얼굴에서 지루한 표정이 사라졌다. 먼저 환하게 미소지으며 살짝 솟아난 이 하나를 드러냈다.
그것이 먹혀들지 않자 발길질을 시작했다. 그러나 엄마는 본 척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빅토리아는 이성을 잃었다. 곧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지면서 토할 듯 심하게 울어 댔다. 하트가 뛰어들어와 “오케이, 이제 됐어요”라며 인형을 다시 가져갔다. 셰릴은 아기를 달래러 갔다. “아기가 무엇에도 저렇게 반응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어요”라고 엄마가 말했다. 지난 10개월 동안 하트는 같은 실험을 수백 번 되풀이했다. 결과는 거의 언제나 똑같다.
아기들이 질투에 휩싸이게 된다. 하트도 유아들이 감정을 느낀다는 사실에 크게 놀랐다. 최근까지 아기들은 감정을 느끼거나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됐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요람 속에서 사지를 버둥거리고 침을 흘리며 올려다보는, 무력하고 도무지 종잡기 어려운 듯한 아기들의 머릿속에서는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이 벌어진다. 갓난아기들의 감정적·지적 능력에 관한 주요 소아학자들과 아동심리학자들의 오랜 믿음을 뒤흔드는 다수의 새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1890년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가 아기의 세계관을 “색깔과 소리가 무질서하게 난무하는 하나의 커다란 혼란”이라고 설명한 일은 유명하다.
그 이론은 거의 한 세기 동안 유지됐다. 아기들은 주변의 사물을 단순히 흉내 내고 가장 기본적인 감정(행복·슬픔·분노)만을 이해하는 단순한 창조물로 여겨졌다. 과학은 이제 아기들의 가슴과 머릿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관해 아주 판이한 그림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말을 시작하거나 일어서려 하기 훨씬 전에 아기들은 이미 질투·감정이입·좌절 같은 복잡한 감정을 터득한다. 과거에는 걸음마를 시작하고 한참 뒤에 그런 감정을 배운다고 생각됐다.
아기들은 또 우리가 예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지적으로도 훨씬 더 발달됐다. 생후 4개월밖에 안 된 아기들도 진보된 연역력과 복잡한 문양을 파악하는 능력이 있다. 그들은 놀라울 정도로 미묘한 뉘앙스를 지닌 시각적 판단 준거가 있기 때문에 특히 얼굴 표정의 작은 차이를 알아차린다. 그러나 성인이나 조금 더 자란 아이들은 그런 능력을 완전히 잃어버린다. 3개월이 될 때까지 아기는 조각 맞추기 퍼즐처럼 헝클어진 엄마의 사진을 모든 조각이 제대로 맞춰진 사진과 마찬가지로 금방 알아본다. 그리고 아기의 형과 누나들이여, 조심하라. 아기의 기억이 오래가기 때문에 앙심을 품기도 한다.
이 같은 새로운 연구는 분명 새내기 부모들을 혹하게 하리라(봤지, 우리 아기가 천재잖아!). 하지만 거기엔 단순한 학문적 훈련 이상의 의미가 있다. 소아학자들은 그런 새로운 정보를 바탕으로 갓난아기들에 대한 평가방식을 바꾸기 시작했다. 육체적 발달을 추적하는 외에 이젠 정서 발달에 훨씬 더 깊이 초점을 맞춘다. 그 연구는 아기의 미래 건강에 정서적 행복이 얼마나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 준다. 특정한 핵심적인 ‘감정의 주요 행동지표’에 도달하지 못한 아기는 말하기와 읽기 습득에 어려움을 겪거나 후에 학교 생활을 잘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의사들은 감정적 반응을 읽어 냄으로써 3개월밖에 안 된 아기가 우울증·불안·학습장애, 그리고 어쩌면 자폐증에 이르기까지 있을 법한 정서장애의 초기 조짐을 보이는지 여부를 알아내는 방법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아기들이 기는지 앉는지를 묻는 대신 아기들이 보호자들과 세상을 어떻게 공유하는지에 관해 더 많은 질문을 한다”고 미국 소아과 학회 산하 초기 아동위원회 위원장인 체트 존슨 박사는 말했다. “아기가 물건을 가리키는가. 낯선 사람을 볼 때 어떻게 반응하는가. 이 같은 사회·정서·언어능력의 발달 수준이 아기가 성인이 됐을 때 성공할지를 점치는 데 운동기능보다 더 나은 예고지표다.” 위험인자를 지닌 어린이들을 멀지 않은 장래에 의사들이 지금보다 더 빨리 손쉽게 찾아내면 부모들이 상황을 반전시키는 데 필요한 시간을 더 많이 갖게 되리라는 게 과학자들의 희망이다.
심지어 아주 갓난아기가 드러내는 초기 감정 중에는 놀랍게도 감정이입이 있다. 실제로 다른 이들에 대한 관심이 아기들의 두뇌 회로 속에 깔려 있을지도 모른다. 우는 다른 아기 곁에 신생아를 내려놓으면 곧 둘 다 똑같이 울어 댈 가능성이 크다. “다른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으면 아기들이 따라 운다는 사실은 이미 예전부터 알려졌다”고 1970년대 유아 감정이입에 관해 최초의 연구를 했던 뉴욕대 마틴 호프먼(심리학) 교수는 말했다.
“문제는 왜 우느냐였다.” 아기가 정말로 같은 인간에 대한 동정심을 가졌을까 아니면 그냥 시끄러워 짜증이 났을까. 호프먼의 연구를 바탕으로 이탈리아에서 실시된 최근의 연구는 그 의문을 상당 부분 해소했다. 연구원들은 다른 아기들의 울음소리 녹음 테이프를 아기들에게 틀어 줬다. 예상대로 아기들이 따라 울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신의 울음소리를 들려주자 거의 따라 울지 않았다.
결론은 “태어날 때부터 어떤 기본적인 감정이입이 존재한다는 점”이라고 호프먼은 말했다. 그 감정의 세기는 시간이 흐르면서 약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6개월이 넘으면 다른 아기들이 울 때 따라 울지 않고 인상을 찌푸린다. 13~15개월이 되면 문제를 직접 해결하려 한다. 같이 놀던 친구가 울면 자신이 달래려 한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일은 양쪽 엄마가 다 있을 때조차 자신의 엄마에게 도움을 청한다는 점”이라고 호프먼은 말했다.
그런 감정이입의 일부는 또 다른 유년기 능력에서 나올지도 모른다. 바로 주변 사람들의 얼굴 표정으로부터 감정을 읽어 내는 능력이다. 지금은 그에 관해 더 많은 사실이 알려졌지만 “아직도 대다수 교과서에 6개월 미만의 아기들이 감정을 읽지 못한다고 기술돼 있다”고 필라델피아 라샐리대의 다이앤 먼테이그(심리학) 조교수는 말했다. 그런 믿음에 이의를 제기하기 위해 먼테이그는 모든 아기가 좋아하는 까꿍 놀이를 변형한 뒤 생후 넉 달짜리 아기 수십 명을 모집했다.
그녀는 먼저 환한 웃음을 띤 채 천 뒤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예상대로 아기들은 좋아했으며 그녀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아기가 관심을 갖는지 알아내는 오랜 경험법칙이다. 하지만 먼테이그는 네 번째 얼굴을 내밀 때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는 반응이 사뭇 달랐다. “아기들이 얼굴을 돌렸을 뿐 아니라” 다시 미소를 지을 때조차 돌아보려 하지 않았다고 그녀는 말했다.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 함은 아기가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전형적인 신호다. 화난 표정을 하자 아기들이 다시 관심을 보였지만 얼굴에서 기쁨이 사라졌다. “아기들은 긴장, 심지어 경계하도록 타고난 듯했다”고 먼테이그는 말했다. “영아에 관한 한 그것이 추론이라는 점은 잘 안다. 하지만 6개월 미만의 아기들이 표정에서 의미를 찾는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고 생각한다.”
바로 여기가 아동 연구의 과제와 위험에 관해 곰곰 생각해 봐야 할 좋은 시점인지도 모른다. 피험자 아기들은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의 머릿속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내려면 종종 그들의 얼굴과 몸짓 언어를 읽어 내야 한다. 이것이 추론적인 듯하지만 그렇지 않다. 수십 년간의 시행착오를 거쳐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관찰기술을 정교화했으며 다양한 자극에 대한 아기의 수많은 일관된 반응에 초점을 맞췄다.
아기들이 한 사물을 얼마나 오래 응시하는지, 어떤 물건에 손을 내미는지, 어떤 물건을 보면 무서워하거나 싫어하며 움츠리는지를 보고 종종 경험 많은 과학자는 필요한 모든 정보를 알아내기도 한다. 최근 들어 과학자들은 뇌파검사(EEG)와 레이저 시선추적 기술을 추가해 분석의 정확성을 더했다. 조만간 첨단 자기공명영상(MRI) 스캔을 활용해 뇌 속 깊은 곳도 들여다보게 된다.
첫돌이 가까워지면 아기들은 점차 사회학습 능력이 고도화된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좇음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추론하기 시작한다. “다른 이들의 시선을 이해함으로써 아기들은 다른 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고 아기 수천 명을 대상으로 ‘시선 좇기’를 조사한 앤드루 멜트조프 워싱턴대 교수(심리학)는 말했다. “사람의 눈을 보면 무엇에 관심 있는지, 다음에 무엇을 하려는지 등 많은 것을 말해 준다. 아기들도 그것을 아는 듯하다. 그런 식으로 아기들은 우리 문화의 숙달된 일원이 되는 법을 배운다.”
멜트조프와 동료 레첼 브룩스는 생후 10~11개월째 아기에게 이런 능력이 처음 나타나며, 그것이 아기의 정서적·사회적 성장의 중요한 지표일 뿐 아니라 훗날 언어발달 수준을 예고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들의 연구에서 첫돌까지 시선을 잘 따라잡지 못한 아기들은 두 살 때 고급 언어 능력이 크게 떨어졌다. 아기들과 노는 시간이 대체로 적은 우울증 엄마의 자녀뿐 아니라 시각장애아의 언어 발달이 느린 이유도 그런 요인으로 풀이된다고 멜트조프는 말했다.
실제로 아기는 태어난 지 몇 달 만에 초능력에 가까운 관찰력을 보이기 시작한다. 사람의 얼굴도 어렵지 않게 구별한다. 미네소타대에서 신경과학을 연구하는 찰스 넬슨 교수(현재 하버드대 재직)는 유아들의 실질적 구별 방식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 생후 6개월 된 유아들을 대상으로 주의력이 지속 가능한 시간 동안, 차례로 서로 다른 침팬지 사진을 보여 줬다.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새로 제시되는 사진에 주목했다.
유아들은 각각의 침팬지를 쉽게 구분해 냈고 새로운 사진을 보여 줄 때마다 높은 관심을 보였다. 어른들 같으면 동물원에서 하루 종일을 보낸다 해도 그 많은 침팬지를 구별해 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월령이 좀 더 높은 유아들은 구별하지 못했다. 생후 9개월 된 유아의 경우 침팬지를 구별하는 능력은 상실했지만 사람 얼굴에 대한 관찰력은 높아졌다.
넬슨은 그 실험을 한 단계 발전시켜 생후 얼마가 돼야 사람 얼굴에 나타난 미묘한 표정 차이를 간파하는지를 알아봤다. 사실 표정 읽기는 사회성 발달의 핵심 주춧돌이다. 그는 뇌파 움직임을 측정해 유아의 뇌 속 깊숙이 탐구하는 새 연구를 설계했다. 넬슨은 인근 지역의 신생아를 둔 거의 모든 부모에게 실험 참가 요청 편지를 보냈다.
올 여름 초 대그니 윈버그가 실험에 참가했다. 엄마 아매티와 함께 함박웃음을 지으며 연구실로 들어선 생후 7개월의 대그니는 64개의 스펀지 감지기가 부착된 모자를 썼다. 넬슨의 보조연구원인 대학원생 멕 몰슨은 한 여성을 찍은 여러 장의 사진을 재빨리 보여 주기 시작했다. 사진마다 표정은 조금씩 달랐는데 행복감과 두려움을 다양하게 나타냈다. 대그니가 싫증을 내거나 시선을 돌리면 다음 사진으로 넘어갔다. 그러는 사이 컴퓨터는 시종일관 대그니의 뇌 활동을 밀착 추적하면서 각각의 사진에 대한 미세한 정신적 반응을 측정했다. 60장을 보고 나자 아이는 훌쩍이며 조바심을 내기 시작했고 그 실험단계는 그렇게 끝을 맺었다.
이 실험의 목적은 아기의 뇌 영상이 어른과 유사한지 아닌지를 보는 것이다. “우리는 아기가 어른과 같은 방식으로 감정을 분류하는지 보려 한다. 예컨대 어른들은 살짝 띤 미소를 보고 행복감으로 분류하는데 아기들도 같은지 알고 싶다”고 몰슨은 말했다. 아직 명확한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넬슨은 유아들이 이처럼 중요한 관찰과 정서적 유대 능력을 키워 나간다면 자폐증 같은 정서장애 초기 증상을 보이는 아이도 치료가 가능할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또 한편 연구자들은 아기와 관련된 또 다른 통념, 즉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생각을 타파하기 위해 애쓴다. 월령 9개월 이하의 유아에게는 ‘대상 영속성’ 개념(예컨대 엄마가 방을 잠시 나갔다고 해서 영원히 사라진 것이 아님을 아는 능력)이 없다고 오랫동안 여겨졌다. 그러나 캘리포니아대(샌타크루즈) 심리학과 왕수후아 교수는 생후 10주 정도부터는 그 개념을 이해한다고 말한다. 그는 월령 2∼3개월의 유아들을 데리고 작은 인형극 실험을 해 봤다. 우선 아이들은 전부 무대 위의 오리 한 마리를 본다. 이때 왕 교수는 오리에게 덮개를 씌워 무대를 이리저리 옮기다 덮개를 벗긴다. 어떤 때는 오리가 그대로 있지만 때로는 무대 바닥에 난 문을 통해 아래로 사라지기도 한다. 그러나 아기들은 오리가 사라졌음을 알고 오리를 찾아 텅 빈 무대를 골똘히 응시한다. “생후 두 달 반 정도 되면 이미 대상의 존재 지속성 개념을 이해한다”고 그는 말했다.
아이가 처음 말을 배우려 할 때는 외부 세계, 특히 부모와의 관계를 형성하는 탄탄하고 잘 발달된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이의 말은 단순한 흉내 내기 이상이다. 코넬대 심리학과 마이클 골드스타인 교수는 8개월 된 유아들을 두 집단으로 나누고 무선마이크와 송신기가 달린 옷을 입혔다. 한 집단의 어머니는 아이가 옹알이를 하면 활짝 미소를 짓거나 사랑스럽게 토닥이는 등 즉시 반응을 보이도록 한 반면, 다른 집단의 어머니는 미소는 짓되 아이가 무슨 소리를 내든 상관없이 불규칙하게 반응하도록 했다.
짐작했던 대로 즉각적인 반응을 받은 아이는 그렇지 않은 아기보다 옹알이를 더 많이 했고 그 수준도 더 빨리 높아졌다. 그러나 무엇보다 골드스타인의 흥미를 끈 점은 부모가 부지불식간에 자녀와 ‘옹알이 단계’을 높여 가는 방식이었다. “4개월 때는 부모의 관심을 끌었던 옹알이가 8개월 때 되면 같은 반응을 얻지 못한다. 따라서 아기는 여러 소리를 조합해 가며 새로운 옹알이법을 찾는다”고 그는 말했다.
워싱턴대 발성·청취학 교수이자 유아언어학 권위자인 패트리샤 쿨 교수는 10년 전, 유아들의 외국어 학습 능력이 어떤 연령대보다 가장 뛰어나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연구 결과가 발표되자 부모들은 자기네 꼬마 아인슈타인들이 유아용 침대를 졸업하기 전에 러시아어나 프랑스어 익히기를 꿈꾸며 외국어 테이프를 정신없이 사들였다. 하지만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쿨은 그 이유를 찾아 새로운 연구에 돌입했다.
그는 중국어를 하는 어른들을 생후 9개월 된 미국 아기들과 한방에 두고 장난감을 보여 주면서 중국어로 말하게 했다. 12단계의 실험을 거친 결과 아기들은 미묘한 중국어 발음을 구별해 냈다. 하지만 영어에만 노출된 또 다른 아기들 집단은 중국어를 구별해 내지 못했다. 그리고 쿨은 비디오테이프와 오디오테이프를 이용해 유아들에게 이전 실험과 똑같은 중국어 학습을 시켰다. 하지만 이 집단은 중국어를 한마디도 배우지 못했다. 쿨은 감정적 유대가 없으면 아기들에게 테이프 소리는 단지 진공청소기 같은 또 하나의 배경 소음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정말이지 그 결과에 놀랐다. 우리는 아기들이 아주 푹 빠진 듯 TV를 뚫어져라 쳐다봤기 때문에 뭔가를 배우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쿨은 테이프를 통한 외국어 교육이 실패한 이유를 밝히려면 더 많은 연구가 수행돼야 한다고 했다. “언뜻 보면 사람은, 아니면 적어도 유아는 배우고 따라 할 사람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어쨌든 아기들이 대단한 존재임에는 틀림없다. 양말 한 짝은 어딘가에 벗어 내버리고 콩반죽을 온통 얼굴에 덮어쓰고 있을지라도 그 안에는 예리한 관찰력과 감수성, 추론 능력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내재돼 있다. “지난 15년 동안 우리는 유아의 능력에 초점을 맞춰 왔다. 즉 무엇을 알고 있으며 또 언제 그것을 알게 됐느냐에 관심을 쏟았다. 하지만 지금은 유아의 이 모든 능력이 나중의 성장 발달에 대해 무엇을 예고하는지가 관심사다. 한마디로 유아기 때의 능력이 아동기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라고 워싱턴대의 멜트조프는 말했다.
몇몇 질문에는 현재 답이 밝혀지고 있다. 예컨대 수줍음을 생각해 보자. 예전부터 아동의 15∼20%는 천성적으로 숫기가 없고 겁이 많다고 생각돼 왔다. 하지만 어떤 아이는 그런 성격을 쉽게 극복하는 듯 보이는 반면 오히려 더 악화되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의사들은 그 차이를 낳는 근본 원인을 알지 못했다. 최근 메릴랜드대의 네이선 폭스가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수줍음은 주로 생물학적 요인에서 비롯된다. 그는 생후 9개월 된 아기 수십 명에게 뇌파측정기를 달아 간단한 실험을 수행하면서 그 사실을 증명했다. 낯선 사람이 인사를 하자 ‘내성적인’ 유아들은 긴장했으며 불안·두려움과 관련이 있는 뇌 일부의 활동이 훨씬 활발해졌다. 외향적인 아기들은 그 낯선 사람에게 손을 뻗었고 뇌파 영상을 판독한 결과 즐거움 같은 긍정적 감정을 관장하는 뇌의 활동이 증가했다.
하지만 몇몇 아이를 대상으로 15년 동안 추적 연구를 수행해 온 폭스는, 아이가 자라서 어떤 어른이 될지는 부모의 양육 방식에 따라 크게 다르다고 말했다. 부모의 과잉보호를 받은 아이나, 부모가 부끄러움이나 유아 시절의 소심함을 극복하도록 용기를 북돋워 주지 않았던 아이는 어른이 돼서도 여전히 부끄럼 많고 소심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자녀가 감정적 문제에 잘 대처하도록 상냥하게 도와주고 마음을 터놓도록 잘 구슬릴 줄 아는 자신감 있고 섬세한 부모를 둔 아이들은 어린 시절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매우 중요한 발견인 까닭은, 내성적인 아이는 다른 문제에도 봉착할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다.
조지워싱턴대 메디컬 스쿨에서 소아정신과 임상교수로 재직 중인 스탠리 그린스펀은 유아에게 언어와 학습장애, 자폐증을 비롯한 여타의 문제 소인이 있는지 파악하는 진단도구의 개발 권위자 중 하나다. 최근 그는 유아가 특정 성장단계마다 성취해야 하는 사회적·감정적 ‘주요 행동지표’를 나타낸 진단표를 완성했다(그래픽 참조). “의사들이 이 진단표를 바탕으로 유아들을 구분하고 만약 자녀가 그 과제를 달성하지 못할 때 부모는 정확히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해 줄 수 있기를 바란다. 현재 우리 앞에 놓인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부모가 직관적으로 아이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알 수는 있지만” 부모가 자녀를 평가할 때는 어쩌면 “이미 아이를 되돌려 놓을 결정적 순간을 놓친 다음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라고 그린스펀은 말했다.
그렇다면 부모는 이 모든 새로운 정보를 가지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진정부터 하자. 아이의 지각능력이 예상 외로 훨씬 높다고 해서 전화를 받느라 잠시 동안 아이를 침대에서 울게 내버려 뒀다고 아이의 인생이 치명타를 입게 된다는 얘기는 아니며 가끔 벌어지는 부부 싸움을 아이가 목격했다고 해서 아이가 결국에는 퇴학당하고 자동차나 훔치는 인생을 살게 되리라는 얘기도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가 마음 깊이 바라는 것은, 그리고 아이가 튼튼하게 자랄 수 있는 요인은 부모·자식 간의 상호작용, 일대일의 시간, 무수한 눈맞춤 등이다. 아이의 방을 ‘교육’ 완구와 그림으로 가득 채운다고 되지 않는다. 한 아이의 사회·감정·학습 생활은, 처음으로 아이가 부모에게 눈을 맞추고 부모가 아이에게 조용히 미소 짓고 또 아이가 미소로 화답하는, 부모·자식 간의 최초의 대화들로 시작된다. 아이는 항상 부모에게 말한다. 그 말을 들을 줄 알아야 한다.
With T. TRENT GEGAX,
MARGARET NELSON, KAREN BRESLAU, NADINE JOSEPH
and BEN WHITFORD
차진우·이정명 jinch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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