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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청의 여행과 사람] - 코스타리카

[조주청의 여행과 사람] - 코스타리카

코스타리카는 스페인어로 ‘풍요의 해안’이란 뜻이다. 1,200m의 고원지대에 자리 잡은 이 나라의 수도 산호세에서는 금요일 오후만 되면 청춘남녀로 넘쳐난다. 특히 산호세의 도심인 모라상 공원에는 아슬아슬한 차림의 게이가 밤 거리를 유혹한다.
코스타리카의 수도 산호세의 심장부 모라상 공원에 어둠이 내리면 여기저기서 ‘밤의 꽃’이 피어난다. 밤꽃은 가슴선이 그대로 드러난 배꼽티에 아슬아슬한 미니스커트를 입고 나무에 기대어 그물 스타킹을 신은 다리를 꼬고 헤프게 미소를 흘린다.

클리니카 비블리카(Clinica Biblica)는 이곳 모라상 공원에서 세 블록쯤 벗어난 곳에 있는 종합병원이다. 밤이 되면 이 종합병원 앞 골목에는 키가 훤칠한 밤꽃들이 립스틱을 짙게 바르고 손님을 기다리며 늘어섰다. 남자들이 지나가면 엉덩이를 뒤로 빼고 치마를 살짝 들어올리는데 노팬티다. 어떤 아가씨는 남의 집 처마 밑에 앉아 앞 단추를 풀고 봉긋한 유방을 스스럼없이 보여준다.

술 취한 남자가 손으로 젖꼭지를 만지며 낄낄거려도 이 맘씨 좋은 밤꽃은 짜증 한번 부리지 않는다. 길가에 늘어선 수십 명의 이 아가씨(?)들은 모두가 게이, 그러니 여장 남자들인 것이다. 진짜 창녀들이 진을 친 곳은 다운타운에 있는 파르케 모라상 공원이다. 번화한 다운타운에 고목이 울창한 파르케 모라상이 후미진 종합병원 앞길보다 훨씬 목이 좋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장사에서 목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도심에서 세 블록 떨어진 컴컴한 골목에서 게이들이 목 빠지게 손님을 기다리며 삼삼오오 열악한 목을 한탄하다가 목 좋은 곳으로 거점을 옮기기로 의견을 모았다. 여기저기 따져봐야 모라상 공원보다 좋은 곳이 없다. 드넓은 모라상 공원 한구석을 차지하기로 하고 어느 날 밤 그들은 이곳에 집결했다.

창녀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한 것이다. 창녀들이 게이들에게 다가가 이곳에서 철수할 것을 요구했다. 게이들이 거부하자 창녀들은 즉각 하이힐을 벗어들고 공격을 감행했다. 한 시간여가 지난 뒤 클리니카 비블리카의 컴컴한 골목엔 코피가 터지고 눈이 멍든, 머리가 터지고 옷이 찢어진 패잔병들이 터벅터벅 모여들기 시작했다. 며칠 후 전열을 재정비한 여장 남자들이 또다시 모라상 진출을 시도했지만, 그들은 참담한 패배를 하고 말았다. 이 나라에서는 매춘과 도박이 합법이다.

1502년 중미 해안선을 따라 범선을 타고 가던 콜럼버스가 “풍요한 해안이구나”라고 한마디 던진 것이 세월이 흘러 이 나라 이름이 됐다. 스페인어로 코스타리카(CostaRica)는 ‘풍요의 해안’이란 뜻이다.
북미와 남미 대륙을 잇는 가느다란 끈인 중미는 고만고만한 나라들로 마디마디 엮어져 있지만 코스타리카는 그 가운데에서도 인구 300만 명이 채 안 되는 작은 나라다. 이 나라는 중남미의 다른 나라와 달리 인디오나 흑인이 거의 없이 정복자 스페인 피가 그대로 흐른다. 또한 정변이 전혀 없이 정치적으로 안정되고 경제적으로도 풍요를 구가한다.

그러나 국민의 기질은 중남미를 벗어나지 못했다. 산호세는 적도에 가깝지만 1,200m의 고원지대로 우리나라의 초가을 날씨처럼 시원하다. 금요일 해가 떨어지면 산호세 거리는 활기가 넘쳐난다. 언제 공장에서 일했느냐는 듯 쭉쭉 뽑아 입은 청춘남녀들은 디스코텍으로 달려가 토요일 아침 동창이 밝을 때까지 춤을 춘다.

이 나라에서 춤은 젊은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기분만 나면 춤을 춘다. 춤도 가지각색이다. 소카·푼타·로만티카는 비교적 점잖은 춤이고, 레게·살사는 야하며, 메렝게는 춤이라기보다 섹스를 흉내 낸다는 표현이 적합하다.
“정말이지 티카 티코(코스타리카 여자와 남자의 애칭)가 사랑할 땐 카푸치노에 럼주를 타서 한 잔씩 마시고 메렝게 율동으로 침대 다리를 부러뜨리기 일쑤지요.”
콧수염 티코가 익살을 떤다.

‘비키니 클럽’이란 네온사인이 눈길을 끈다. ‘비키니 클럽이라…. 아가씨가 모두 비키니만 걸치고 있겠구나. 어디 한 잔 마시며 늘씬한 코스타리카 아가씨 다리 맵시를 안주 삼아볼까’하고 어슬렁어슬렁 들어갔더니 비키니는 하나도 없다. 담배 연기가 자욱한 가운데 술병을 들고 돌아다니는 아가씨들이 비키니를 입은 게 아니라 올 누드다. 단돈 2달러 하는 맥주 한 병을 시켜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쭉 빠진 아가씨가 손님의 무릎 위에 마주 보고 앉는다.

열이 오르면 손을 잡고 구석의 쪽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간다.
코스타리카엔 여고생이 임신을 해서 배가 차오를 때쯤 자퇴하는 일이 빈번해 그녀들이 아기를 낳고 나서 고등학교 졸업 자격증을 얻을 수 있는 ‘바치제라토’ 제도를 정부에서 아예 만들어 놓았다. 만 18세가 법적인 성인의 하한선이지만, 아이를 두셋 가진 18세도 수두룩하다.

여고생이 임신을 했다고 해서 몰래 산부인과를 찾아가 낙태를 하는 일은 없다. 사회 통념상 처녀가 애를 낳는 것이 손가락 받을 짓이 아닐 뿐더러 병원에 간들 의사가 절대로 낙태 시술을 해 주는 법이 없다. 발각되는 날에는 의사 면허가 박탈되고, 철창행을 각오해야 한다.

이 나라는 가톨릭 국가다. 인공 유산은 가톨릭 교리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죄악이지만, 서로 사랑해 임신하는 것은 결혼하기 전 성년이 되지 않았더라도 조금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들의 지론이다. 남자가 임신을 시켜놓고도 결혼을 거부하면 그 남자는 자식이 성년이 될 때까지 수입 중 절반을 양육비로 꼬박꼬박 여자에게 바쳐야 한다.

어떤 아가씨는 아빠가 다른 세 아이를 키우며 아버지 셋으로부터 수입의 절반씩을 받아 아주 여유있게 살면서 주말만 되면 친정어머니에게 아이들을 맡겨 놓고 술 마시고, 춤추고, 외박하고 느긋하게 인생을 즐긴다나?



▲ 수영 강국답게 코스타리카에는 풀장이 많다.

▲ 중남미가 아니랄까봐 집수리를 하던 노동자들이 점심시간에 축구를 한다.

▲ 티카 티코들이 나이트클럽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


▲ 게이들은 서슴없이 젖가슴을 열어젖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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