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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실업 우리는…] 취업을 포기한 사람만 80만 명

[청년 실업 우리는…] 취업을 포기한 사람만 80만 명



3년차 실업자 “500곳 시도”
경기도 소재 D대학을 졸업한 양모(31)씨는 곧 3년차 실업자가 된다. 대학을 졸업하고 1년 정도 이벤트 회사에 다니다 그만둔 후 자신도 예상치 못 했던 장기 미취업자가 돼버렸다. 처음에는 좀 쉬다가 일자리를 알아보겠다고 여유있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그는 취업을 단념한 상태다. 그는 “안될 것 뻔히 알면서 대기업에 온라인 이력서를 내본 것까지 합하면 500군데는 시도해 본 것 같다”고 했다. 이 사이 그는 중소 무역업체를 포함해 20여 군데에서 면접을 봤지만 모두 떨어졌다. 양씨는 “한 번은 아는 선배 회사에 이력서를 넣었는데, 온라인 접수 경쟁률만 200대 1이 넘어 기가 막혔다”고 했다. 그는 현재 대학 선배의 자취방에서 생활한다. 낮에는 거의 집에만 있고 게임을 하거나 잠자는 것이 낮 생활의 대부분이다.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은 지도 1년이 넘었다. 지인들과 연락은 메신저로만 한다. 그는 “돈이 없어서 친구를 만나지 못할 때는 ‘퍽치기’ 범죄라도 하고픈 생각이 들더라”고 말했다. 그에게 “힘든 일이지만 우선 들어가기 쉬운 직장이라도 구해보는 것이 좋지 않으냐”고 하자 “그런 데 가려고 2년 가까이 논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런데 양씨는 이제 취업을 시도하지 않기 때문에 통계청의 공식적인 실업률에도 잡히지 않는다.

일당 3만2000원에 몰려
최근 서울시는 행정업무 및 전산작업을 보조하는 행정 서포터스를 공개 모집했다. 서울 소재 전문대졸 이상 미취업자가 대상이었다. 일할 수 있는 기간은 4월 3일부터 6월 10일까지. 1100명을 뽑는 이번 모집에 지원자 수는 2775명. 2.52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서포터스에 선발되면 하루 6시간 동안 일하고 일당 3만2000원을 받게 된다. 주 5일 근무제이기 때문에 4월 한 달 동안 대졸 서포터스들이 받는 월급은 64만원이 된다. 우리나라가 정한 최저임금제 액수는 하루 2만4800원(8시간 기준)이다. 이에 앞서 지난해 하반기 행정 서포터스 모집에서도 1000명 모집에 2252명이 지원해 2.25대 1이었다. “2월에 대학 졸업이 있었기 때문에 경쟁률이 다소 올랐다”는 것이 서울시 고용대책과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취업박람회 경쟁률이라고 아세요”
지난 15일 고양 국제전시장(KINTEX)에서 열린 취업박람회에는 무려 1만 명의 구직자가 몰렸다. 대부분 20~30대였다는 것이 행사를 주최한 경기도 측의 얘기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100여 개 업체가 채용할 예정 인원수는 1500명. 취업 포털사이트인 인쿠르트 관계자는 “온라인 접수와 달리 취업박람회는 적극적인 취업 희망자가 오는 곳”이라며 “최근 열린 행사의 경쟁률은 10대 1 이상이 기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리서치 전문기관인 폴에버가 20~30대 취업박람회 참가 경험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런 행사를 통해 취업에 성공한 비율은 10명 중 1명을 겨우 넘는다. 올해 서울·경기 지역 24회를 포함해 전국에서 열릴 예정인 취업박람회는 40여 회. 10명 중 9명이 눈물을 흘리며 돌아갔다는 계산이다.

대졸보다 심각한 고졸 실업자
서울 공릉동에 위치한 경기기계공업고등학교의 김모 교사는 청년실업을 다루는 언론에 불만이 많다. “모두 대졸자 실업 문제만 얘기하는 데 정말 심각한 것은 우리 학생들”이라고 했다. 그는 “한 반에 절반 정도는 대학에 안 가는데 이 학생들이 졸업하고 나서 1년 안에 실업자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김 교사는 “대졸자들이야 눈높이 좀 낮추면 되지만 우리 학생들은 더 낮출 곳도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고졸 실업 문제는 대졸자보다 훨씬 심각하다. 정인수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에 따르면 지난해 청년 실업의 약 61%가 고졸 이하다. 숫자로는 22만5000여 명. 정 선임연구위원은 “대졸자는 취업에 걸리는 시간이 길다는 게 문제이지 취업은 한다. 그렇지만 고졸 이하는 직업훈련이 부족한 상태에서 열악한 일자리에 취업했다 그만두기를 반복해 실업상태가 되는 빈도가 더 높다”고 말했다.

더 나빠진 소식들
지난해 4년제 대학 졸업자의 취업률은 63%. 전문대졸 취업률은 83%, 고졸 취업률은 52%였다. 지난 16일 통계청은 더 우울한 발표를 내놨다. 통계청이 발표한 ‘2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1월 중 20∼29세 청년층 취업자 수는 405만3000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4.7%나 줄어들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3월 이후(-5.9%) 가장 큰 낙폭이었다. 앞서 국민경제자문회의가 발표한 ‘동반성장을 위한 새로운 비전과 전략’보고서에 따르면 향후 10년간 전문대 졸업자 54만여 명이 직장을 얻지 못해 실업자로 추락하거나 학력 수준보다 낮은 기술을 필요로 하는 직장을 찾아야 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 기간 동안 신규 인력 공급은 모두 579만 명으로 같은 기간 신규 수요(524만2000명)보다 54만8000명이 초과할 것으로 예상됐다.

취업을 포기한 그들, 니트족
니트(NEET)족. 취업할 의사도 없고, 노력도 하지 않은 실업자들을 일컫는 말이다. 한국노동연구원 추정치에 따르면 니트족은 국내에만 80만여 명이다. 노동연구원은 15~34세 인구의 5% 정도를 청년 니트족으로 보고 있다. 직장 갖기를 포기한 그들. 하지만 이들이 그냥 니트족이 된 것이 아니다. 이들이 실업자 관련 온라인 카페에 남긴 글들을 보면 상당수는 일각의 시각처럼 생각 없이 놀고먹는 젊은 한량들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대학 다닌 시간, 경제적인 비용 다 포기하면 생산직이라도 갈 수 있겠죠. 특히 외환위기 이후 졸업한 91~94학번들은 지금까지 장기 실업자 또는 니트족으로 전락한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나이 때문에 어느 곳이든지 지원 자체도 어렵습니다. 이 모든 책임이 우리에게만 있나요?”

25~29세 실업률 더 심각해질 것
가장 활력이 넘쳐야 할 청년 세대에 실업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구직을 못하거나, 구직을 준비 중인 청년 취업 희망자 수가 70만 명에 육박했다. 해결할 뾰족한 방법도 없다. 더구나 청년 실업 문제는 갈수록 더 심각해질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청년 실업 문제가 이 지경이 된 결정적 원인은 경제불황에서 찾을 수 있다. 보통의 경우 청년 실업률은 전체 실업률보다 높게 나타난다. 그런데 불황기에는 이 격차가 더 벌어진다. 기업들이 기존 근로자를 해고하기보다는 신규 채용을 억제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선임자의 특권’ 현상이다. 특히 현재 25~29세, 즉 본격적인 취업을 해야 하는 핵심 연령층이 큰 문제다. 원인은 인구 변화 추이에서 찾을 수 있다. 김석진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25세에서 29세 사이의 연령층 인구는 1998년 이후 빠르게 감소하다가, 2005년부터 증가세를 보일 것”이라고 분석한다. 70년대 초의 2차 베이비붐 세대가 이 연령층에 몰려있기 때문이다. 25~29세 연령대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하는 2009년까지는 취업 사정이 나아질 것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 김 연구위원의 분석이다. 이헌재 전 부총리가 자주 언급했던 ‘미스 매칭(Miss Matching)’ 현상도 개선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100명 중 82명이 대학을 가는 학력 과잉 현상이 향후 10년은 더 지속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이러한 수급 불일치로 인해 ‘마찰적 실업(일자리 자체가 없어서 발생하는 실업이 아닌, 구직자들이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일자리를 찾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시적 실업)’ 기간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취업을 해도 노동의 질은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중장기적으로 성장세가 담보되지 않는 한 기업들은 프랑스의 ‘최초고용계약(CPE)’처럼 비정규직 신규 채용을 포기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교육인적자원부의 대학 취업률 조사에서 ‘인문학과 최상위 취업률 8위에 올랐던 모 대학 중국어학과는 취업률은 100%였지만 정규직 비율은 0%였다. 2006년 대한민국 청년 실업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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