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Hold the Phone 9·11사태 이후 힘겨운 시기에 백악관은 워싱턴의 각종 정보기관들에 조용히 물었다. 또 다른 공격을 차단하려면 어떤 무기가 필요하냐는 질문이었다. 그러자 미 국가안보국(NSA)은 미국 안에 사는 사람들의 정보를 수집하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청했다. NSA는 ‘No Such Agency’라고도 불린다. 그런 기관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말로 극비 정보기관이라는 의미다. 9·11 테러리스트들은 값싸고 구입이 쉬운 암호화된 전화를 이용했다. NSA는 사실 그런 그들의 대화를 도청하려 애썼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따라서 NSA 관리들은 기다렸다는 듯 자신들의 희망사항을 적어 보냈다고 당시 논의에 참석한 한 관리는 전했다. 사안의 민감성을 이유로 익명을 요구한 그 관리는 백악관이 미국 내 도청을 허락하리라고는 NSA 측이 예상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1970년대 워터게이트 사건 이후 NSA의 암호 해독자와 도청 전문가들의 도청 대상은 기본적으로 해외 거주 외국인 간의 통화에 국한됐다. 미국에서 사는 사람뿐 아니라 미국을 방문하는 외국인까지도 도청 대상에서 제외됐다. 그러나 9·11사태 이후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신속한 조치를 원했다. 대부분의 미국인이 테러리스트가 다시 공격해오기 전에 정부가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하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부시가 공표한 ‘국가 안보에 관한 대통령령’(일부 사항은 아직도 극비로 분류)은 테러리즘과의 전면전을 요구한다. 거기엔 전자 감청의 확대까지 포함된다. 따라서 내국인 감시를 극히 제한한 ‘미 통신정보령 18’(1980년)은 자취를 감추고, 아직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 새로운 내국인 감시 규정이 생겨났다. 절박한 시기는 절박한 조치를 요구한다. 민주사회도 전시엔 비밀 첩보활동의 필요성을 기꺼이 인정한다. 미국은 현재 1년에 400억 달러 이상을 정보 수입에 지출한다. 안전보장이냐, 사생활 보호냐의 힘든 선택이 주어지면 미국인 대부분은 아마도 안전보장을 더 많이 얻으려고 사생활의 일부를 희생할 듯하다. 더 골치 아픈 문제는 NSA의 정보분석가들이 과연 제2의 9·11사태를 막을 만큼 실제로 안전을 보장해줄지 여부다. 엄청난 양의 디지털 정보 속에서 마치 티끌과 같은 테러 정보를 찾아내야 하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부시가 9·11 이후 몇 주 동안 미국민의 심정을 제대로 읽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만일 부시가 미국 내에서 도감청을 실시할 광범한 권력을 NSA에 부여하는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더라면 의원들도 필시 통과시켰을 듯하다. 그러나 부시는 미국민의 지지를 구하지 않았다. 대신 국가 안보를 책임진 대부분의 국가원수처럼 비밀주의를 선택했다. 사실 미 행정부의 정보 책임자들은 NSA의 새로운 도청 계획을 의회 지도자들에게 비밀리에 브리핑했다. 그러나 의원 중 일부는 현재 정보 당국의 설명이 헛갈릴 뿐 아니라 자신들이 오도됐으며, 그런 설명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의원들의 입장에선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했거나 아예 그런 설명을 듣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느 경우든 간에 NSA가 도청을 확대했다는 이야기는 결국 새나갔다. 지난해 12월 뉴욕 타임스는 NSA가 미국과 외국에 사는 사람들 간의 수천 건에 이르는 통화 내용을 영장도 없이 엿들었다고 폭로했다. 그리고 유에스에이 투데이지는 지난주 NSA가 미국에 사는 사람과 외국에 사는 사람들 간에 오간 수십억 통의 통화가 광대한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했다고 폭로했다. 통화 내용은 아니어도 전화를 건 시점, 수신자 번호, 통화 시간까지 포괄한다(미 행정부는 전화회사들에 통화자의 이름과 주소를 요청하지 않았지만 그런 정보는 인터넷만 두드리면 나온다). 그런 폭로는 부시에게 또 한 차례 타격을 주었다. 뉴스위크의 여론조사 결과 부시의 지지도는 뉴스위크가 조사를 한 이래 최저인 35%로 떨어졌다. 이번 폭로는 행정부의 CIA 국장 임명 과정을 지연시킬 가능성이 있다. 누가 되든 간에 신임 CIA 국장은 위기에 처한 CIA의 사기를 회복해야 할 처지다. 서서히 달아오르는 이번 추문은 행정부뿐 아니라 행정부에 도움을 준 전화회사들까지도 난처한 법적 문제에 휘말리게 할 가능성이 크다. 행정부 관리들은 도청이나 “정보 수집”은 오로지 알카에다 테러 용의자에 국한됐다고 늘 주장해 왔다. NSA가 다중을 겨냥한 정보 수집에 초점을 두는지는 확실치 않다. 사안의 민감성을 이유로 익명을 요구한 행정부의 한 고위 관리는 NSA가 영장이나 법원 명령도 없이 광범한 데이터 베이스를 뒤진 뒤 전자도청 대상자를 결정했다고 인정했다. 이 관리는 NSA가 수집한 정보가 테러리스트의 작전을 사전에 차단하는 데 도움을 줬다고 주장했다(그러나 그 관리는 구체적 내용을 밝히지 않았다). 만일 NSA의 도청으로 “제2의 9·11사태를 막았다면 그럴 만한 값어치가 있는 일”이라고 그 관리는 말했다. 그러나 뉴스위크가 인터뷰한 다른 관리들은 NSA의 계획으로 거둔 성과가 개인의 사생활 보호에 미치는 악영향을 상쇄할지에 의문을 표했다(행정부 관리들은 자칫 일자리를 잃을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공개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NSA 도청의 성과를 의심했다). 미국인 다수도 당연히 자신들이 아직 잘 모르는 방식으로 ‘빅 브러더’의 감시를 받지 않았는지 의아해했다. 예컨대 정부가 전화선뿐 아니라 인터넷 교신 내용까지 뒤졌음을 시사하는 증거가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선 한 사생활보호 단체(Electronic Frontier Foundation)가 AT&T에서 22년간 일한 마크 클라인의 증언을 일부 기초로 삼아 소송을 제기했다. 클라인은 2003년 초 AT&T의 샌프란시스코 본부가 NSA를 돕는 취지로 ‘밀실’을 짓는 광경을 목격했다고 주장했다. 얼마 뒤 클라인은 그 밀실에서 뻗어나온 케이블이 엄청난 양의 인터넷 교신을 감시하는 용도임을 알았다고 밝혔다. 미 서부 해안의 다른 도시에서도 유사한 작업이 진행 중이란 사실을 알았다고 그는 밝혔다. 이제 그는 NSA가 인터넷의 모든 데이터를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여 감시하는” 능력을 확보했다고 결론 내렸다. AT&T 측은 항상 법을 준수했으며, 고객의 사생활을 보호하려 노력해 왔다고 강조했다. 연방정부는 침묵으로 일관하다 알베르토 곤살레스 법무장관이 지난해 12월 19일 백악관 브리핑에서 “아직 공개되지 않은” 도청 계획의 “운영상의 여러 측면”을 다소 모호하게 언급했다. 유에스에이 투데이의 폭로 이후 부시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우리는 무고한 미국 시민 수백만 명의 사생활을 훑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그 말의 진실성 여부는 이번 주 상원 정보위원회가 개최할 마이클 헤이든 CIA 국장 지명자 인준 청문회에서 가려질 공산이 크다. 공군 4성장군 출신의 헤이든은 위기에 처한 CIA를 이끌어 달라며 부시가 뽑은 사람이다. 헤이든은 NSA가 도청 계획을 확대하던 9·11 전후에 NSA를 이끌었다. 상원 정보위의 론 와이든(오리건주·민주) 의원은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그의 신뢰성에 큰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와이든 의원은 NSA가 국제전화만 감청했다는 헤이든의 공식 발언을 가리키며 “국내 데이터 베이스 확보에 관해선 일언반구도 없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헤이든 지명을 지지하는 공화당 의원들은 대부분의 미국인이 사생활 침해가 이뤄져도 전자 감청 확대를 원한다는 초기 여론조사 결과를 근거로 반박이 가능하다(물론 여론조사 결과는 질문 문구에 크게 좌우된다. 나중 뉴스위크가 실시한 조사에선 사생활 침해를 우려하는 비율이 높아졌다. 예컨대 NSA의 데이터 수집이 “지나칠 정도로 사생활을 침해하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 53%가 그렇다고 대답한 반면 그런 정보 수집이 “테러리즘과의 싸움에서 필요한 도구”라고 말한 비율은 41%에 그쳤다). 대부분의 법률 전문가들은 정부가 “부당한 수색과 압수”를 금지한 헌법 조항을 위반하지 않는다면 엄청난 양의 전화 기록을 수집해도 된다는 주장에 동의하는 듯하다. 그럼에도 NSA에 협조한 AT&T·버라리존·벨사우스 등 대형 전화회사들은 법정에 서게 될 듯하다. 고객들이 낡고 모호한 연방통신법 규정을 들먹여 전화회사를 고소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전화회사들은 NSA에 협조한 대가로 돈을 받았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법을 준수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전화회사를 대변하는 변호사들은 당연히 연방정부가 중요한 계약 내용을 함구하도록 전화회사 측에 압력을 넣었는지 알고 싶어한다. 로키산맥 일대의 주들에서 사업을 하는 퀘스트라는 소규모 전화회사는 고객의 통화 기록 제공을 거부했다. NSA의 요청을 둘러싼 법률적 의구심이 결코 해소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미국인은 국내외에서 다른 사람들의 통화를 엿들을 필요성에 신중하다. 실제로 1929년 당시 헨리 스팀슨 국무장관은 암호 해독을 목표로 한 비밀 활동(일명 “Black Chamber”)을 중단했다. 그러면서 “신사는 다른 사람의 편지를 읽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의 적들은 반칙에 능하다. 따라서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시대 당시 미국 정부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상대의 비밀을 훔치고 도청하는 등 똑같이 비열한 조치로 맞섰다. 미국 정부는 CIA나 FBI처럼 약자(略字)가 눈에 익은 정보기관뿐 아니라 첩보위성 운영을 맡은 국가정찰국(NRO)처럼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정보기관으로 구성된 정보 수집망을 구축했다. 비밀이나 “검은” 활동에 보인 미 정부의 태도는 처음엔 ‘의연한’ 듯했다. 정책결정자들은 비밀 첩보원의 업무를 별로 알고 싶어하지 않았고, 대통령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그럴 듯하게 부인한다’는 원칙의 보호를 받았다. 따라서 자신들은 문제의 비밀을 훔친 과정을 정말 몰랐다거나 언론인의 전화가 도청당했거나 외국 정부가 전복된 사실을 몰랐다고 둘러댈 능력이 있어야 했다. 반면 미국의 첩자들은 체포될 경우 모든 책임을 혼자 떠맡아야 했다. 물론 실제로 그렇게 의연하게 책임을 지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워터게이트 사건 중 연방 수사기관의 국내 첩보 프로그램 운영이 드러났다. 국가의 진짜 적과 가상 적의 전화를 도청하고 우편물을 열어봤다. 75년 미 상원 첩보위원회(일명 ‘Church Committee’) 청문회가 열렸을 때 첩보 당국자들은 우물쭈물하며 책임을 떠넘겼다. 78년의 ‘외국정보감시법’(FISA) 등 새로운 법들이 제정됐다. 그 법에 따라 연방 수사기관이 미국 안팎에서의 국제전화를 도청하려면 사전에 비밀 법정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아야 한다. NSA의 국내 첩보활동은 전면 금지됐다. 프랭크 처치(아이다호주) 상원의원이 75년 청문회에서 한 발언은 이제 와서 보면 불길한 예감이었고 예지력까지 있는 듯했다. 첩보 남용을 조사할 목적으로 구성된 위원회의 위원장이었던 처치 의원은 NSA가 가장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 비밀 첩보기관의 권한이 워낙 막강해 “미국 국민을 겨냥한다면 사생활을 보호받을 사람이 한명도 없다. 전화 통화든 전보든 가리지 않고 모두 감시하는 능력을 지녔기 때문에 그 어디에도 숨을 곳이 없다.” NSA는 실제로 엄청난 능력을 지녔다. 사안의 민감성을 이유로 익명을 요구한 미국의 한 고위 정보 당국자가 뉴스위크에 한 말이 이를 뒷받침한다. NSA의 비밀 수퍼 컴퓨터가 워낙 많은 열을 내뿜기 때문에 외국 첩보기관의 감지기에 잡힐 우려가 있었다. 따라서 아예 눈과 얼음을 공수해 컴퓨터를 위장하는 방안이 줄곧 논의됐다고 한다. 그러나 NSA도 “귀머거리가 돼간다”는 우려가 커진다. NSA의 전성기는 소련의 통신 라인을 감시할 때였다. 예컨대 모스크바에서 시베리아의 미사일 기지로 보내는 극초단파는 엿듣기 쉬웠다. 그러나 새로운 적은 그렇게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2002년 헤이든 대장은 뉴스위크에 이렇게 말했다. “전에는 움직임이 느리고 기술적으로 뒤떨어진 자원 부족 국가의 통신구조를 추적했다. 그때는 상당히 좋은 성과를 올렸다. 하지만 지금은 알카에다 요원이 이스탄불의 가게로 달려가 100달러만 내면 최첨단 통신장치의 구입이 가능하다. 굳이 돈을 들여 그런 장비를 개발할 필요가 없어졌다.” 의견을 들어보면 NSA의 통신기술이 아직도 뒤떨어진다는 중론이다. 상원 정보위원회는 2002년 12월 보고서를 냈다. NSA가 매일 전 세계에서 6억5000만 건의 첩보를 수집하는데 그중 “실제로 사람이 검토하는 내용은 극소수에 불과하며 수집된 정보 대부분이 데이터의 홍수 속에 실종된다”는 지적이다. 헤이든이 그해 뉴스위크에 밝힌 바에 따르면 NSA는 기술 변화에 늦게 대응했으며, 자신도 적의 “신호와 암호를 알아볼 수준으로” 바꾸는 데만 집중했다. 헤이든의 가장 야심적인 정책 중 하나는 이른바 ‘개척자’(Trailblazer)였다.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NSA의 많은 데이터 베이스를 파악하고 활용하도록 돕는 일이다. 메시지를 더 효율적으로 찾아내 추출하면 방대한 분량의 데이터 통신에서 특징을 발견해(일명 ‘데이터마이닝’ 과정) 테러 용의자 색출에 도움이 될지 모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약 10억 달러 상당의 쓰레기(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만 생겨났다. “완전하고 참담한 실패였다”고 그 프로그램을 잘 아는 CIA 중견 요원 로버트 D 스틸은 말했다. NSA에서 수석 암호 해독가로 30년간 일한 에드 조지오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개척자 얘기만 나오면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 대체 뭐가 잘못됐을까. NSA는 어설픈 상의하달식 접근 방식을 시도한 듯했다. 하나의 거창한 해결책으로 너무 많은 수요를 충족시키려 했다. 그보다는 소기업가들이 아이디어 경합을 벌이는 실리콘밸리를 닮은 방식을 도입해야 했다. 캘리포니아주 몬테레이 소재 미 해군 대학원의 저명한 ‘네트워크’ 첩보 전문가 존 아퀼라는 “빅 브러더의 진짜 문제는 ‘리틀 브러더’들을 충분히 활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리틀 브러더’는 데이터 베이스를 상업적으로 활용하는 데 전문가가 된 기업들을 가리킨다. 신용카드 회사들은 ‘데이터 마이닝’ 기술을 활용해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알아내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 끊임없이 휴대전화를 바꾸는 마약 밀매범을 FBI가 추적하는 데도 효과가 있었다(이 기술은 빈번한 전화번호 변경을 감시한다). 그러나 테러범 색출은 더 어려울지 모른다. 우선 테러범들은 휴대전화를 사용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례로 오사마 빈 라덴과 이라크 반군 지도자 아부 무사브 알자르카위는 컴퓨터 디스크나 메시지를 인편으로 주고받는다. 웹사이트에 메시지를 숨겨놓는 테러범도 있다. 상대방에게 비밀번호를 알려주면 그 웹사이트에 들어가 메시지를 읽는다. 거기엔 전자통신(e-메일이나 전화)이 수반되지 않으므로 NSA로선 알 도리가 없다. 효과적인 데이터 마이닝 기술이 있었다면 9·11사태의 예방이 가능했을지 모른다고 클린턴 행정부 당시 국가안보회의에서 일한 필립 보비트는 말했다. 2001년 9월 10일 NSA는 알카에다가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에서 공중전화를 도청하던 중 두 건의 메시지를 포착했다. “경기는 내일 시작된다”, 그리고 “내일이 0시다.” 이 메시지가 무슨 뜻인지 아무도 몰랐다. 심지어 9월 12일까지 번역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납치범 중 그 이전의 알카에다 음모에 연루된 두 명의 신원이 CIA와 FBI의 컴퓨터에 저장돼 있었다. “그때 신용카드 번호, 항공사 상용 고객 우대 프로그램, 그리고 두 사람이 사용한 휴대전화 번호를 대조해 봤더라면 데이터 마이닝을 통해 그들과 연결된 다른 17명을 쉽게 적발했을지 모른다. 그들은 같은 날, 같은 시각에 네 편의 비행기에 타고 있었다.” 보비트가 최근 뉴욕 타임스에서 밝힌 내용이다. 9·11 이후 4년 반이 지난 지금 NSA는 ‘내일이 0시’라는 데이터를 다시는 안 놓칠 만큼 장비와 운영을 개선했을까. 미 행정부 고위층은 여전히 반신반의한다. 뉴스위크의 취재에 따르면 정부의 몇몇 고위 법률 전문가는 NSA의 데이터 수집과 검색 프로그램에 우려를 나타냈다. 법률적 이유에서라기보다 그 유효성이 의심되기 때문이다. NSA 프로그램의 법적 적합성 심사에 관여한 미국 정부의 한 고위 관리도 마찬가지였다(그도 사안의 민감성을 이유로 신분을 밝히지 않았다). 그는 조잡한 비용-효과 분석에 신경이 쓰였다고 말했다. NSA 프로그램은 미국인의 사생활을 침해할 위험이 있었다. ‘오독 가능성’은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 내셔널 저널의 셰인 해리스는 한 출판 대리인의 예를 떠올렸다. 그는 과거 오사마 빈 라덴을 인터뷰한 기자의 대리인이다. 패턴을 잘못 분석하면 그를 테러 용의자로 만들기도 한다. 그처럼 무고한 사람들을 정부로 불러들여 조사하는 위험을 정당화하려면 실제로 테러범 체포 확률이 높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연방 수사기관들이 붙잡은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아이만 패리스라는 트럭 운전사다. 그는 용접기로 뉴욕의 브루클린 다리를 절단하겠다는 다소 허무맹랑한 음모를 꾸몄다(체포된 알카에다의 한 지도자가 패리스의 신원을 누설한 듯했다. NSA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물론 첩보기관들이 항상 자신들의 성과를 자랑하지는 않는다. 첩보계에 정통한 한 미국 관리가 뉴스위크에 말한 바에 따르면 NSA는 미국의 도시 지역을 노린 또 한 차례의 공격도 사전에 차단했다. 그 당국자는 NSA 도청 방식의 노출을 우려해 음모 내용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미국 정부 안에서 NSA에 어느 정도의 권한을 줘야 할지를 둘러싸고 최소한 약간의 논란은 있었다. 2004년 봄 법무부의 고위 법률 전문가들은 무영장 도청에 반대했다. 결국 그 프로그램은 사생활 보호 목적의 새로운 법이 채택될 때까지 여러 달 동안 연기됐다. NSA의 자료 수집 프로그램도 중단됐는지, 아니면 어떤 식으로 수정됐는지는 확실치 않다. 미 정부는 내부의 문제를 외부에 공개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법무부의 내부 감사기구인 전문책임국(OPR)은 법무부의 법률전문가들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강압적인 심문과 무영장 도청에 법적 하자가 없다고 말했는지, 또 그 과정에서 법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는 비윤리적 행위를 했는지 여부다. 그러나 OPR 요원들은 지난주 조사를 중단해야 했다. 조사에 필요한 보안 허가를 정부에서 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알카에다나 일부 수상한 테러 분파가 다시 공격에 나서기 전에 적발하려면 첩보 교범의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 전자도청 같은 통신정보 활동(SIGINT)뿐 아니라 구식의 인적 첩보활동(HUMINT)이 동시에 필요하다. CIA와 FBI가 조금만 더 잘했으면 9·11 방지가 가능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분통이 터진다. 98년 알카에다가 케냐와 탄자니아 주재 미국 대사관에 자폭테러 공격을 가한 후 현지 경찰은 공범 한 명을 체포했다. 그는 자살폭탄 공격을 하기 전에 마음을 바꿨다. 신병을 인도받은 미국 정보 당국은 그를 설득해 예멘에 있는 알카에다 안가의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NSA는 그 안가의 전화선을 도청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미국 요원들은 2000년 1월 쿠알라룸푸르에서 알카에다 테러 대표자 회의가 열린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9·11 납치범 중 두 명이 그 회의에 참석했다. 나와프 알하즈미와 칼리드 알미흐다르였다. 어찌된 일인지 CIA는 이 두 테러범의 신원을 FBI에 제때 알려주지 않았다. 결국 행동이 굼뜬 FBI는 테러범들이 9월 11일 비행기를 납치해 건물들로 날아들기 전에 그들을 색출하지 못했다. 그것은 인간의 실수였다. 하지만 그 한 가지 원인은 국가안보 조직들에 만연된 비밀주의 문화였다. CIA와 FBI는 밥그릇 다툼을 벌이며 기밀을 공유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정보계의 개혁이 이뤄지고 잇따라 망신도 당했으니 이제 두 정보기구가 좀 더 정신을 차렸으면 좋겠다. 고(故) 대니얼 패트릭 모이니핸 상원의원의 말마따나 냉전 중 과도한 비밀주의는 국가 안보에 득보다 해를 더 많이 끼쳤다. 지나치게 비밀주의적인 세계에선 가정이 검증되지 않으며 엄정한 사고가 억압받는다. 예컨대 CIA가 옛 소련의 몰락을 예측하지 못한 한 가지 이유는 CIA 분석가들이 외부 경제학자와 전문가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거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격언대로 “입이 가벼우면 배가 가라앉는다”는 말도 옳다. 그러나 부시 팀은 9·11 이후 새로운 규칙을 두고 공개 토론이 벌어지도록 용납하지 않았다. 그 결과 안보와 사생활 보호 간의 필수적 절충을 둘러싼 여론의 지지를 확보할 기회를 놓쳤다. 인터넷에 능한 테러범들의 색출 방법을 찾기는 매우 어렵다. 정부 당국자, 그리고 제아무리 NSA의 수퍼첩보원이라 해도 동원 가능한 모든 도움이 필요하다. With MICHAEL HIRSH, MICHAEL ISIKOFF, DANIEL KLAIDMAN, RICHARD WOLFFE, HOLLY BAILEY, and JOHN BARRY 강태욱·차진우 t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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