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도시는 지고 중소도시가 뜬다
한국의 고양, 일본의 후쿠오카 등 지금까지 별 볼일 없던 부(副)도시 활기찬 초고속 성장시대 맞아 런던·뉴욕·도쿄 같은 대도시는 우리의 머릿속에 실제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런 도시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재산·명성·미래를 함께 떠올리게 된다. 대도시는 한 나라의 경제와 정치를 좌우한다. 지난 반세기는 그런 대도시들의 시대였다. 그동안 인구 1000만 명인 대도시 수가 2개에서 20개로 불어났다. 그리고 리우·멕시코시티·뭄바이 같은 신흥 도시들이 새로 그 반열에 올랐다. 대도시들이 지배력을 확대하는 미래를 그린 많은 공상과학 소설가의 예언에 이의를 달 생각은 없다. 그러나 대도시의 시대는 끝났다. 1980년대 8% 이상이었던 전형적인 대도시 인구증가율은 지난 5년 사이 그 절반 이하로 둔화됐다. 그리고 앞으로 25년 동안 대도시 수는 더 늘어나지 않을 전망이다. 대신 앞으로는 더 규모가 작고 훨씬 더 평범한 부도시(Second City)의 시대가 온다. 앞으로 1년여 안에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시골보다 도시 주민이 더 많아진다. 21세기는 도시의 세기가 될 전망이다. 그러나 도심 자체는 갈수록 줄어든다. 이미 전 세계 도시 거주자의 절반이 주민 50만 명 이하의 도시에 산다. 부도시(준교외, 지역 중심지, 리조트 타운, 지방수도 등)가 번창해 간다. 2000∼2015년 사이 세계 최소 규모의 도시들(주민 50만 명 이하)은 23% 증가하는 반면 차상위 규모 도시(100만∼500만 명)는 27% 증가할 전망이다. 이 같은 추세는 세계적인 부동산 거품, 국제 이민 증가, 교통요금의 하락, 신기술의 등장, 그리고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가까워졌다는 사실 등과 같은 극적인 변화의 결과다. 이 같은 부도시의 부상은 뉴스위크가 선정한 톱10 리스트에 단적으로 나타난다. 세계 주요 10개국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도시들의 목록이다. 이 목록은 인구 75만 명 이상의 모든 도시를 대상으로 한 최신 유엔 예상치의 사전 배포분을 바탕으로 했다. 그중 대도시는 두 곳(모스크바와 런던)만 포함된다. 이 두 도시는 국가적 특성 때문에 소규모의 도시들을 계속 앞선다. 나머지는 모두 꿈 많은 중량급 도시들이다. 툴루즈·뮌헨·라스베이거스, 또는 지금까지 무명의 도시였던 플로리아노폴리스(브라질)·가지아바드(인도)·고양(한국)·후쿠오카(일본) 등이다. 이들도 머지 않아 유명해질지 모른다. 신흥도시들은 야심 찬 도시 개척자들을 낳는다. 따라서 툴루즈가 파리와 함께 2016년 여름 올림픽 유치경쟁을 벌인다 해도, 또는 후쿠오카가 같은 일로 도쿄에 도전한다 해도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톱10 리스트에는 여러 가지 커다란 추세가 드러나지 않았다. 하나는 고도성장 도시들의 신흥경제 집중이다. 이 동급 규모의 성장률 상위 150개 도시 가운데 중국이 55개로 압도적 다수를 차지했으며 인도네시아가 12개, 인도가 10개로 그 뒤를 따른다. 선진개발국 중에서는 어떤 도시도 상위 150개 리스트에 들지 못했지만 미국의 도시는 유럽과 일본의 도시들보다 더 빨리 성장한다. 그 한 가지 원인은 그런 나라들의 인구가 전반적으로 감소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초강대국인 중국과 미국의 상대적인 역동성을 보여준다. 미국과 중국 성장도시들의 성장률은 2%를 넘으며 한 무리의 소도시들이 그 뒤를 따른다. 반면 유럽의 성장도시들은 성장률이 0.5% 정도에 불과하다. 그정도만 해도 전형적으로 대다수 도시가 감소하는 유럽 지역에서는 아주 예외적인 사례다. 어떻게 보면 부도시의 부상은 대도시의 앞선 성공에 따르는 자연스러운(뜻밖이기는 하지만) 귀결이다. 1990년대 세계 시장이 번창하면서 대도시가 번성했다. 이 같은 현상은 금융 같은 첨단기술 또는 ‘지식기반’ 산업을 가진 메트로폴리탄 지역에서 더욱 뚜렷했다. 뉴욕과 런던의 부흥, 그리고 상하이 또는 홍콩의 폭발적인 성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보너스는 두둑해지고 은행들은 배를 불렸으며 모두가 탐내는 세계 대도시들의 부동산 가격은 급등했다. 그 결과 워싱턴에 본사를 둔 브루킹스 연구소의 인구통계학자 윌리엄 프레이의 표현에 따르면 뉴욕·런던·도쿄 같은 ‘제한 지역(gated region)’이 탄생했다. 이곳에서는 그 도시를 포함해 다수의 주변 교외지역까지 아주 부자가 아니면 거주하기 어렵게 됐다. 이 같은 현상에 따라 교외지역의 확산이 더욱 심화됐다. 도심과 전통적인 교외 주거지역의 집값이 비싸지면서 사람들은 더 먼 준교외 지역으로 밀려났다. 그리고 대도시로 장거리 통근을 하게 됐다. 프레이의 지적에 따르면 미국 주요 메트로폴리탄 지역의 평균 통근시간은 지난 15년 사이 약 90분으로 배가 됐다. 펜실베이니아주 파이크 카운티 같은 시골지역이 뉴욕에서 근무하는 직장인들의 알맞은 하숙집이 됐다. “믿기 어려운 얘기지만 라스베이거스 같은 지역이 지금은 실제로 일종의 로스앤젤레스 교외 주거지”라고 프레이는 말했다. 한 주에 몇 회씩 편도 여섯 시간씩 차를 몰아 통근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그는 지적했다. 장거리 통근은 일본에서는 오랜 전통이지만 유럽에서도 확산된다. 런던에서 기차로 약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초라한 해변 휴양지였던 브라이턴은 이제 예술가와 언론인들이 거주하는 ‘해변의 런던’이 됐다. 최근 집값이 크게 오른 이 도시는 이제 도시의 필수조건인 유명건축가의 상징적인 건물(프랭크 게리의 미래지향적인 주거용 타워와 스포츠 복합건물)을 유치하려 한다. 자신들의 성공을 홍보하려는 목적이다. 부도시로 번성하는 도시가 있는 반면 실패하는 도시가 생기는 이유는 뭘까. 그 해답은 한 지역사회가 대도시에서 밀려나는 사람과 기업들을 받아들일 수단을 갖췄는지에 좌우된다. 한 가지 열쇠는 특히 최대의 상업중심지로 연결되는 뛰어난 수송수단이다. 고양은 생긴 지 이제 10년밖에 안 됐지만 한국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도시다. 그 한 가지 요인은 서울에서 지하철로 30분 거리에 있기 때문이다. 델리 교외의 구르가온과 노이다 같은 신생 IT 중심지(가지아바드가 새로운 베드타운 역할을 한다)는 모두 델리로 연결되는 도로망을 잘 갖췄다. 유럽의 값싼 항공료는 글래스고로부터 볼로냐에 이르는 여러 지방 수도에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 부동산 중개인들에 따르면 어떤 도시에 라이언에어나 이지제트 연결노선이 신설되면 그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즉시 30% 이상 뛰어오른다. 아시아에서도 도시 간을 연결하는 저가의 단거리 항공편수가 증가한다. 부도시의 또 다른 성장요인은 업무의 분산이다. 거기에는 신기술의 영향이 컸다. 현재 뉴욕과 런던 같은 대도시의 금융거래는 어느 때보다 많아졌다. 하지만 금융·오락문화·첨단기술 같은 성장 서비스 산업의 일자리 다수가 두바이·라스베이거스·탈린·다롄(大連)·케이프타운 같은 지역으로 이동하는 추세도 뚜렷하다. 국제적인 부동산 서비스 회사 존스 랭 라샐리는 이런 도시들을 ‘떠오르는 도시의 별들’이라고 부른다. 이런 지역은 인터넷 기반시설을 개선했을 뿐 아니라 종종 첨단기술 단지와 대학을 갖추고 성장산업을 이끌어갈 인재들을 배출한다. 도시 분산화의 대표 사례인 프랑스 몽펠리에를 살펴보자. 80년대까지는 커다란 지중해 마을이었다. 다만 훌륭한 대학교 하나, 다수의 아름다운 고급주택, 그리고 IBM 생산기지 하나가 있다는 점이 달랐다. 고속철도가 일단 연결되자 파리 사람들이 주말을 즐기려고 몰려들기 시작했다. 일부가 집을 구입하면서 중산층 전문직 종사자 기반이 형성됐다. 이들은 탄력근무제를 이용해 파리에서 사흘 일하고 남쪽의 이 마을에서 이틀을 보냈다. 곧 대기업들이 이 지역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의료기술 업체와 전자회사가 다수 이주했으며 IBM은 이곳의 서비스 사업에 투자를 확대했다. 전문직 종사자의 유입에 발 맞춰 시 당국은 편의시설을 갖추기 시작했다. 오페라 극장을 세우고 전차노선을 신설해 도심 자동차 유입을 억제했다. 그 결과 “이 도시는 이제 국제적인 사업가들로 넘쳐난다. 완전히 새로운 도시, 새로운 사회”라고 프랑스 도시계획 전문가 나시마 바론은 말했다. 지금은 부도시들이 대도시에 의존하지 않는 자립경제를 구축하기가 훨씬 더 쉬워졌다. 기업과 근로자들이 주요 도시 도심의 문제점들을 피하려고 노력하면서 생긴 변화다. “경제적으로 한 도시가 일정 규모에 도달하면 생산성이 하락하기 시작한다”고 마리오 페치니는 설명했다. 파리에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지역경쟁력 담당부서의 책임자인 그는 그 한계점을 약 600만 명으로 잡는다. 그 수준을 넘어서면 부동산 가격, 이동 시간, 간헐적인 혼란(가령 최근의 파리 폭동) 때문에 “도심은 부자들에게나 살기 좋은 곳이 되고 외곽 지역도 일하고 살기가 더 어려워지는 상황이 유발된다.” 한편 문화생활이 대중화되면서(지금은 소읍에도 고급 발효빵, 국제적인 신문이 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대도시의 문화와 혼란을 두고, 또는 모든 일의 편안함과 지루함을 두고 하나를 택해야 할 필요가 없어졌다. 웨스트 팜 비치 같은 미국 도시에 유럽 스타일을 본뜬 카페가 속속 들어선다. 네덜란드의 그로닝겐 같은 유럽의 미니도시는 필립 스타크가 설계한 박물관과 재단장한 도심으로 수백만 관광객을 끌어모은다. 은퇴하는 베이비 붐 세대들은 미국의 다수 선벨트(미국 남부 온난지대) 도시뿐 아니라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과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많은 도시에 새 생명(그리고 자금)을 불어넣는다. 이민자들도 큰 역할을 한다. 라스베이거스 같은 지역에서는 저임 노동력이었던 그들이 새로운 중산계급으로 탈바꿈하며 도시의 성격을 바꿔나간다. 영국에서는 동유럽 이민자 수십만 명이 도시뿐 아니라 북부와 해안지대 소도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북부와 해안지대 소도시는 농업·건설, 그리고 저급 서비스 직종 근로자가 절실히 필요하다. 언젠가 그들은 돈을 벌어 고국으로 돌아갈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그 돈으로 프라하나 바르샤바가 아니라 땅값이 더 싼 브르노나 크라코프 같은 곳에서 땅을 살 가능성이 높다. 인구 50만을 넘는 중유럽과 동유럽의 60개 도시가 앞으로 몇 년 뒤에는 기업 이전의 최고 인기지역으로 꼽히리라고 존스 랑 라샐리가 전망한 큰 이유 중 하나다. 그것은 물론 부도시가 언제까지나 소규모로 남지는 않으리라는 뜻이다. 실제로 일부 국가는 적극적으로 부도시의 성장을 촉진한다. 중국은 서진 정책으로 내륙지방 소도시 투자를 장려한다. 이탈리아는 서로 근접하면서 각자 다르지만 보완적인 문화활동을 펼치는 도시들로 이뤄진 관광중심지를 조성하려 한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구심점 없이 비효율적으로 널리 펼쳐진 뉴저지 꼴이 되는 상황”이라고 프레이는 말했다. 부도시들이 상징적인 건물에 자금을 지원하거나 뉴욕 소호와 닮은꼴을 만드는 등 마케팅에 안달하는 모습을 보면 벌써 자본이 생산적으로 활용되는지 의구심이 든다. 부도시들이 내세우는 최대 장점 중의 하나가 지역적인 특색이라면 왜 이름난 대도시들을 흉내 내는가. 정책결정권이 넘겨진 덕택에 많은 중소 도시들은 어느 때보다 자유롭게 자신의 앞날을 결정할 수 있게 됐다. 이제 라스베이거스, 툴루즈 같은 부도시들의 시대가 왔다. 기회를 날려버리지 말아야 한다. With JASON OVERDORF in New Delhi 차진우 jincha@joog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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