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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애니메이션의 세계 진출

대학 애니메이션의 세계 진출

▶애니메이션 시나리오를 짜는 동서대 연구팀.

디자인에 강점이 있던 동서대는 영상·정보기술(IT)의 특성화로 후발 지방 사립대의 약점을 극복하고 있다. 동서대는 특히 연구·개발(R&D)에서 사업화 연계 기술개발(R&BD)로, 국내 산학에서 글로벌 산학으로 산학협력의 형태와 장(場)도 확장하고 있다.
지난 2005년 가을 제10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코앞에 둔 어느 날 일본 애니메이션 개발자들이 동서대(총장 박동순)에 들렀다. 동서대가 영화제를 계기로 산학협력 차원에서 초청한 사람들이었다. 동서대의 디지털 콘텐트 개발에 관심을 보이던 이들은 동서대가 기획하고 만든 애니메이션 <외계 천사 뽀뽀> 를 보고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줄거리는 괜찮은데 캐릭터가 왠지 투박하다는 이유였다. 애초 아시아 진출이 목표였던 동서대 측은 캐릭터 개발만큼은 한 수 위인 이들에게 새로운 캐릭터 개발 작업을 맡겼다. 메인 캐릭터인 뽀뽀를 제외한 뽀뽀의 가족 캐릭터 등은 이런 과정을 거치며 지난해 세상에 나왔다. 일본 개발자와 손을 잡고 캐릭터까지 모두 만든 동서대 측은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중국 애니메이션 시장을 뚫을 계획을 세웠다. 중국 시장은 한류 등으로 한국의 디지털 콘텐트에 관심이 많아진 반면 콘텐트 부족으로 허덕이고 있어 공략하기 좋기 때문이었다. 동서대는 영상 비즈니스 전문 교수 등을 앞세워 한국의 문화콘텐츠진흥원과 비슷한 단체인 동만산업기지(國家動漫遊戱産業振興基地)와 협의를 거쳐 애니메이션 박람회에 외계 천사 뽀뽀를 두 차례 출품했다. 디지털 콘텐트 중심의 영상·IT·디자인 특성화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동서대가 산학협력의 장(場)을 글로벌 무대로 넓히고 있다. 1992년 문을 연 동서대는 애초부터 학부 교육과정을 산학협력을 전제로 짠다. 교육과정 곳곳에 산학협력 활동이 포함돼 있는 것이다. 연구 분야에서는 비즈니스와 직결되거나 교육 효과를 높일 수 있는 기술개발 활동을 중시하며, 이를 직접 교육 과정으로 연결해 프로젝트 참여형 교육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순수 연구에 치중하기보다는 문제 해결이나 비즈니스와 직결되는 기술개발에 주안점을 두고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는 얘기다. 동서대는 특히 국내뿐 아니라 외국 기업·기관과 활발하게 교류하며 글로벌 산학협력의 모범이 되고 있다. 이 대학의 글로벌 산학협력 모델은 해외 유망 콘텐트나 기술을 도입해 사업화하는 인 바운드(In-Bound) 방식과 자체 기획 아이디어나 개발 계획을 해외 업체와 손을 잡고 작품으로 완성하는 아웃 바운드(Out-Bound) 방식으로 나뉜다.

伊 몬도TV에 애니메이션 수출 인 바운드 방식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동서대가 국내 유명 애니메이션 업체인 ㈜레인버스·미국 디팜(Difarm)과 손을 잡고 만든 상업용 3D 애니메이션인 <알렉산더> 를 꼽을 수 있다. 이탈리아의 몬도(Mondo) TV에서 올 상반기에 방영될 이 애니메이션은 이들의 배급망을 타고 세계 곳곳에 배급될 예정이다. 동서대는 이 애니메이션의 아시아 판권 7%를 확보하는 실익을 챙긴 것은 물론, <알렉산더> 제작 과정에 동서대 학생 20여 명이 참여해 재교육이 필요 없는 탄탄한 실무를 익히는 수확도 거뒀다. 가상현실 상용화 기술 분야에서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독일의 프라운호프 IGD(컴퓨터그래픽개발) 연구소를 유치하는 양해각서를 맺은 것도 인 바운드(In-Bound) 방식의 예다. 동서대 박동순 총장은 2006년 11월 15일에 유럽을 순방 중인 허남식 부산시장과 함께 독일 프랑크푸르트 인근 프라운호프 IGD연구소의 호세 엔카르나시우 소장을 만나 동서대 유비쿼터스 관련 연구소(IAI) 설립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동서대가 기획해서 일본과 중국으로 수출할 애니메이션 <외계 천사 뽀뽀> 는 아웃 바운드 방식의 좋은 예다. TV용 애니메이션인 외계 천사 뽀뽀는 동서대가 자체 기획했으며, 캐릭터 개발을 끝내고 시나리오를 수정하고 있다. 대학이 주도한 한·중·일 3국 공동 비즈니스란 점에서 특색이 있다. 이런 다양한 글로벌 산학협력의 의미는 남다르다. 동서대 산학협력단의 안상협 부단장은 “글로벌 산학협력은 대학과 지역의 미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무척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이제는 국내가 아닌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어야 지속 가능한 성장을 기대 수 있다. 동서대가 부산이란 지역에 한계를 두지 않고 ‘Top 10 to the World’란 거창한 목표를 내건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또 이런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특성화·차별화가 필수 조건이며, 세계 시장을 무대로 산학협력을 해야 더욱 효과적이다. 더구나 글로벌 산학협력은 학생들에게도 새로운 기회가 된다. 중국이나 동남아를 넘어 미국 등으로까지 활동 무대를 확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의 미래 측면에서도 글로벌 산학협력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예컨대 동서대가 자리 잡은 부산 경제는 날로 위축되고 있다.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려면 부산을 기반으로 해결하려 해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해외 시장 개척은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부산이 한국의 제2 도시라지만 나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약한 편이다. 2005년 기준 지역 내 총생산(GRDP) 전국 비중은 부산 5.7%로 서울 등 수도권(47.4%)에 크게 못 미치는 실정이다. 더구나 지역 경제를 이끌 ‘스타 업종’이 확연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 영상·IT, 항만·물류, 조선 기자재, 자동차 부품, 신발, 섬유·패션 등 부산의 주력 업종 가운데 전체 비중에서 10%를 넘는 업종이 없다. 고만고만하게 키 재기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그나마 영상·IT와 항만·물류 쪽의 전망이 밝다. 특히 부산 지역의 차세대 성장 산업으로 떠오르고 있는 영상·IT 업종의 성장률은 연 20%가 넘는다. 부산정보산업진흥원 김규철 원장은 ‘부산 IT산업 현황 및 지역특화 R&D’ 주제 발표에서 “(디지털 콘텐트를 포함한) 부산 IT 산업은 연평균 23.2%씩 성장하는 등 지역 경제의 7%를 자치하고 있다”고 밝혔다. 동서대 등이 영상·IT를 앞세워 글로벌 산학협력까지 활발히 펼친다면 지역 경제를 먹여살릴 효자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크다.


R&D에서 R&BD로 진화 동서대가 이렇게 글로벌 산학협력까지 펼칠 수 있는 기반은 산업 현장의 요구를 반영한 맞춤식 교육이다. 특히 비즈니스 중심의 산학협력을 추진해 교육과정에 녹이고 있다. 디지털콘텐츠학부장인 윤태수 교수는 “전공별 산학협의회에서 현장의 애로 사항을 파악하고 기업의 요구 사항을 반영해 교육과정을 편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동서대는 비즈니스에 기반을 둔 새로운 연구·개발 개념인 ‘R&BD(Research&Business Development)’ 시스템을 갖췄다. R&BD는 시장·기술·사업 개발이 결합한 R&D 시스템이다. 연구·개발 자체를 비즈니스 대상으로 본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R&BD 시스템에 따른 산학협력은 다양한 형태가 가능하다. 먼저 학(學)→산(産) 모델이다. 대학 측이 사업 계획을 세우거나 개발한 뒤 기업과 결합하는 형태다. 동서대는 영화 <들소> ·애니메이션 <외계 천사 뽀뽀> ·게임 ‘랭킹 온라인’ 제작 등에서 이 모델을 적용했다. 이와 거꾸로 산(産)→학(學) 모델도 여럿 있었다. 기업이 먼저 사업 아이디어를 제안하거나 장비 등을 제공한 뒤 대학과 결합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한국 루슨트 테크놀로지스는 무선 기지국과 부호분할다중접속방식(CDMA) 이동통신 시스템 장비를 동서대에 기증했다. 동서대를 이 장비를 부산 지역 중소 통신업계의 이동통신 기술 교육과 장비 테스트에 활용하고 있다. 산(産)·학(學)→산(産) 모델도 성공적이었다. 대학과 기업이 공동으로 기획하고 개발·사업화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동서대의 학교기업인 동서필름에서 제작한 여성 전문 프로그램인 ‘해피 플러스’가 부산방송(KNN)의 전파를 타고 있다. 대학 측에서 제작한 프로그램이 케이블TV에 방송되는 유일한 사례다. 국내외의 이런 다양한 산학협력 덕에 동서대는 2004년에 교육인적자원부가 지역의 특성에 맞는 인재 양성과 지역 산업의 육성을 목표로 추진한 ‘지방대학 혁신역량 강화사업(누리·NURI)’에서 전국 사립대학 가운데 가장 많은 5개 사업단의 중심 대학으로 뽑혔다. 또 2004년에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종합평가에서 ‘발전 전략과 비전’ 부문에서 전국 1위에 올라 최우수 대학으로 뽑혔다. 이뿐만이 아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2005년에 동서대를 ‘대학혁신과 경쟁력’ 부문에서 전국 대학 가운데 ‘베스트 4’로 선정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2006년 2월에 발간한 <대학 혁신-7대 유형별 전략> 이란 제목의 단행본에서 동서대를 대표적인 지역 거점의 실무 교육형 대학으로 분류했다. 동서대의 취업률도 자연스레 높아졌다. 2003년 동서대의 취업률은 전국 5위, 부산·경남 1위에 올랐고, 해마다 80%에 가까운 취업률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특성화 학부의 취업률은 100%에 가깝다. 산학협력 덕을 보는 건 동서대 학생뿐만 아니다. 동서대와 손을 잡은 기업도 산학협력을 반기고 있다. 애니메이션 전문인 ㈜네오테크놀러지의 공기정 사장은 동서대 영상사업단 덕에 기사회생한 케이스다. 공 사장은 “동서대 영상사업단 교수의 마케팅 지원이 없었다면 투니버스란 메이저 채널에 점토 애니메이션 <도라독스> 를 올릴 수 없었을 것”이라며 고마움을 전했다. 그는 이어 “ <도라독스> 시즌 2도 영상사업단 교수와 작가 등의 도움을 받아 기획했다”고 덧붙였다. 지방의 조그마한 애니메이션 회사라 인력과 마케팅 능력 등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데 이를 산학협력으로 메웠다는 얘기다. 동서대 뉴밀레니엄관에 입주해 있는 원격 제어 전문업체 이지포트의 윤종진 사장도 산학협력 덕을 많이 봤다. 윤 사장은 “센터 안에 있어 정보를 빨리 얻을 수 있으며 고가 장비도 공짜로 활용하는 것은 물론 제품의 디자인 문제 등도 지체 없이 해결할 수 있다”며 활짝 웃었다.


“경쟁력 키우려면 대학별 역할 분담부터”


장제국 동서대 국제협력위원장

“국립대는 순수 연구 중심으로, 지방 사립대는 비즈니스 관련 응용 중심 등으로 역할을 잘 나눠야 한국 대학의 경쟁력이 커집니다.” 동서대 설립자인 장성만 박사의 장남이자 동서대 국제협력위원장인 장제국(44) 박사의 대학 육성론이다. 지금처럼 국립대에서마저 순수 학문을 배척하고, 사립대는 너도나도 이른바 잘나가는 분야에만 몰려서는 고른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장 박사는 특히 대학의 설립 목적이 무엇이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어떤 프로그램 등이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에서는 대학 인가와 평가 때 그런 잣대가 가장 중요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런 뜻에서 그는 “동서대와 같은 지방 사립대가 성장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IT 등 인기 분야에 몰리는 현상을 이해하지만 전체 대학의 경쟁력을 감안하면 서로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잘 되거나 될 것 같다는 이유로 무턱대고 몰리면 공멸하는 길일뿐이란 얘기다. 그는 이런 편중 현상을 막으려면 대학을 연구뿐 아니라 응용 중심의 잣대로도 평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특정 대학의 새로운 교육 과정이나 프로그램은 엄연히 고유의 자산인 만큼 서로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애초 동서대 설립 때부터 특성화 전략을 염두에 뒀다고 말하는 장 박사는 씨를 뿌리고(Seed), 뿌리 내리고(Plant), 수확을 거두는(Harvest) ‘SPH 3단계 프로그램’으로 동서대의 산학협력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역점을 두고 있는 디지털 콘텐트 분야는 남들이 투자할 수 있을 만큼 뿌리 내리고 있는 단계이며, 유비쿼터스 등 분야는 이제 씨를 뿌리는 단계라고 말했다. 해외 캠퍼스 설립과 해외 기업 제휴 등 네트워크 구축도 씨를 뿌리는 과정이라고 설명하는 그는 장기적으로 동서대는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헤드쿼터 역할을 하고 콘텐트나 제품 생산 등 나머지 작업은 현지에서 진행할 계획이라고 비전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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