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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요리사’가 쏘아올린 한국음식의 경쟁력[김현아의 시티라이브]

도시경쟁력의 숨겨진 무기, 음식 음식과 도시①
명소가 끌어들이는 맛집? 맛집이 명소를 만들기도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왼쪽부터), 김학민 연출, 김은지 연출, 안성재 셰프가 넷플릭스 예능 '요리 계급 전쟁 흑백요리사' 제작발표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김현아 가천대 사회정책대학원 초빙교수] 올 추석연휴에 첫 방영을 시작한 넷플릭스 ‘흑백요리사’를 보면서 나는 에드워드 글레이저가 생각이 났다. ‘도시의 승리’의 저자 글레이져는 대부분의 도시에서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위대한 극장보다 위대한 식당들이라고 했다. 교통과 물류의 발전으로 우리는 먼 나라의 음식을 이전보다 손쉽게 어디서나 사서 맛볼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특별한 음식을 경험하기 위해 여행을 가고 특정한 장소를 방문한다. 원조 지역이 갖고 있는 환경과 문화가 곁들여 질 때 느끼는 그 맛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루키는 그의 위스키 탐방 여행기에서 “좋은 술은 여행을 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면” (2020, 문학사상). 그런데 앞으로는 요리사가 누구인지도 중요해질 것 같다. 같은 재료, 같은 메뉴라도 음식에 스토리를 입히는 쉐프의 철학과 기교가 같지 않기 때문이다. 평소 요리 프로그램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흑백요리사에 흠뻑 빠졌다. 요리계급전쟁이라는 다소 자극적인 부제를 보고 너무 선정적이지 않을까라는 우려를 했지만, 이 프로그램에서 소개되는 음식과 그 조리과정의 스토리는 진지하고 희망적이기까지 했다. 

들기름이나 삭힌 홍어, 된장, 고추장, 간장을 바탕으로 쉐프들이 만들어내는 한국음식의 서양화(한국 재료로 만든 서양음식)는 예술의 경지라는 생각까지 들게 했다. 가뜩이나 K-Food의 영향력으로 한국음식을 먹으러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는 외국인이 많아진다고 하는데 이 시리즈 덕분에 한국 요리사들의 음식을 맛보러, 그들이 운영하는 식당을 방문해서 그 음식을 맛보러, 아니 그 요리를 경험하러 오는 관광객까지 늘어날 것 같다.

명소가 맛집을 끌어들이는가, 맛집이 명소를 만드는가 

‘식량’이라는 표현이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수단으로서의 ‘먹을 것’을 의미한다면, ‘음식(혹은 요리)’은 한 나라, 한 지역의 자연환경, 경제, 정체성을 아우르는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을 연상케 한다. 과거에는 ‘식재료’가 신선하고 풍부한 지역의 음식문화가 발달했다면 이제는 그 음식을 만들어내는 창의적인 사람들이 많은 곳이 음식문화를 이끌어 간다. 단순히 ‘식재료’보다 ‘가공(혹은 요리)’의 부가가치가 더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핫플(Hot Place)’이 식당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핫플에는 더 유명한 식당과 요리사들이 모여든다. 예전에는 궁궐이나, 사적 등의 문화유산을 보러 여행을 갔다면 이제는 ‘맛집 탐방’을 위해 여행을 가는 일이 더 많아지고 있다. 흑백요리사에 출연한 쉐프들이 운영하는 식당의 위치도 흥미롭다.(언론에 노출된 식당위주로 집계한 국내 식당 24개) 흑백 요리사 통틀어 이들 식당이 가장 많이 위치한 지역은 ‘강남구(7개)’이다. 그 다음으로는 용산구(4개), 마포구(3개) 순이다. 광역단위로 엮어보면 강북권(한강이북)이 11개, 강남권이 9개로 강북권에 더 많이 위치한다. 유명 쉐프기준이 아니라 검색엔진에서 ‘맛집’으로 검색되는 식당의 밀집정도 역시 1위부터 3위까지가 동일한 결과가 나왔다.(강남구, 용산구, 마포구 순) 공교롭게도 맛집이 많이 몰려있는 지역은 ‘볼거리’도 많은 지역이었다.

볼거리가 많아 사람들이 몰리니, 맛있는 식당들이 모여든 것인지, 아니면 유명한 식당이 먼저인지는 알 수 없으나 도시의 경쟁력을 높이는 요소들은 분산되지 않고 집결되어 서로에게 시너지를 내고 있음이 분명하다. 흑백요리사 쉐프들의 현란한 요리경연을 보면서 나는 스페인의 ‘핀초스(Pintxos)’가 떠올랐다. 핀초스는 스페인의 북부 산 세바스티안에서 발전한 작은 타파스 형태의 요리로, 그 자체로 작은 한 입 거리의 요리이지만, 지역적 특성과 미식 혁신을 결합해 산 세바스티안을 전 세계적으로 미식가들이 찾는 도시로 만든 일등 공신이었기 때문이다. 
대전 유성구 도룡동 성심당 DCC점 앞이 빵을 사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산 세바스티안, 미식으로 도시가 살아나다

산 세바스티안은 한때 어업과 무역으로 번영했던 항구 도시였다. 하지만 19세기 초 나폴레옹 전쟁과 스페인 내전을 겪으면서 도시경제가 큰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이런 위기 속에서 도시가 다시 회복된 전환점은 바로 미식 산업이었다. 산 세바스티안이 세계적으로 미식의 중심지로 자리잡은 것은 1970년대 이후이다. 당시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는데 대표적인 레스토랑으로는 아르작(Arzak)과 아케라레(Akelarre)가 있으며, 미슐랭 쓰리스타의 세계적인 미식 명소이다. 그렇지만 이 도시가 유명해진 건 단순히 유명 레스토랑 때문만은 아니었다. 

핀초스 문화를 빼놓을 수 없다. 핀초스는 작은 빵 위에 해산물, 육류, 치즈, 야채 등 다양한 재료가 올려지는 한입 크기의 음식이다. 여기에 맛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창의적인 소스와 가니쉬가 더해지는데 이의 형태와 종류가 무궁무진하다. 다양한 핀초스를 ‘핀초스 바’에서 즐기는 ‘바 투어 문화’도 특별하다. 산 세바스티안에는 수십 개의 핀초스 바가 있는데, 각 바마다 대표적인 핀초스를 맛보며 이동하는 방식으로 음식을 즐긴다. 이런 경험은 단순히 음식을 먹는 것을 넘어, 사회적 활동이자 문화적 경험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러한 경험적 음식문화는 이 도시의 브랜드가 되어 관광객들에게 독특한 미식 경험이 됐고 세계 각지에서 많은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핵심요소가 됐다. 

현재 산 세바스티안은 인구 약 18만 명의 작은 도시이지만,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을 많이 보유한 도시이다. 미슐랭 가이드를 비롯한 다양한 요리 평가 기관들이 산 세바스티안을 극찬하면서, 매년 수만 명의 관광객들이 미식을 경험하기 위해 도시를 방문하고 있다. 특히 2016년에는 산 세바스티안이 유럽 문화 수도로 선정되면서 문화와 미식의 융합을 통한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이루고 있다. 이 도시의 ‘미식산업’은 몇몇 스타 레스토랑만의 먹거리가 아니라 지역 생산자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지 어시장에서 가져온 해산물과 바스크 지방에서 재배한 농산물이 주재료로 요리의 맛과 가치를 더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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