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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업은‘샌드위치’아니다

조선업은‘샌드위치’아니다

▶삼성중공업 닝보유한공사 야드의 골리앗 크레인 위에서 바라본 메가 블록. 메가 블록 공법은 삼성중공업이 세계 최초로 도입한 기술이다.

“중국의 추격이 무섭습니다. 중국의 조선업계는 정부 주도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입니다. 수주 전망이 불확실해도 설비를 증설합니다.” 중국 저장(浙江)성 닝보(寧波)에서 만난 강인표 삼성중공업 닝보유한공사 제조부장은 “5년 정도인 중국과의 조선 기술 격차가 2015년이면 2~3년 수준으로 좁혀질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은 꾸준히 설비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2012년이면 설비 능력 면에서 우리나라를 추월할 겁니다. 저가 수주를 하면 VLCC(초대형 유조선) 등 중국이 쉽게 따라잡을 수 있는 일반 선종은 차차 중국으로 넘어가겠죠.” 중국 조선소는 지난해 세계 10대 조선소에 세 곳이 끼었다. 조선·해운 시황 전문 분석기관인 클락슨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수주 잔량 기준으로 대련선박중공(240만 CGT(표준화물선 환산 톤수)·7위), 외고교조선(232만 CGT·8위), 후동중화조선(182만 CGT·10위) 등 중국의 세 조선소가 세계 톱10에 진입했다. 중국 조선소는 전년도인 2005년 신대련조선 한 곳만 10위권에 들었었다. 신대련조선은 이후 대련조선을 합병하고 대련조선중공으로 이름을 바꿨다. 상위 50위권으로 확대하면 중국 조선소는 16개가 포진해 일본(14개)과 한국(9개)을 앞질렀다. 일본 조선소는 전년도인 2005년만 해도 미쓰비시중공업·쓰네이시조선 등 두 곳이 세계 10대 조선소에 끼었지만 지난해엔 한 회사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한편 국내 조선소는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현대미포조선·현대삼호중공업·STX조선 등 6개사가 1~6위에 진치고 있다. 한진중공업은 중국 3사에 이어 9위를 차지했다. 세계 톱 10에 국내 조선소 7곳이 포진한 셈이다. 한·중·일 간 조선 기술의 격차는 얼마나 될까? 대한상의가 지난해 1월 275개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조선 산업의 중국과 기술 격차는 5.8년으로 평가됐다. 석유화학·철강·기계·전자·자동차 등을 포함해 6개 산업 중 가장 격차가 컸다. 234개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한 지난해 4월 상의 조사에서는 우리 조선 기술이 일본의 95.5% 수준에 이른 것으로 평가됐다. 역시 6개 산업 중 일본과의 기술 격차가 가장 작았다. 조선업은 “중국이 바로 등 뒤에서 쫓아오고 일본은 저만치 앞서 가는 상황”에 놓여 있지 않다. 지난해 한국의 조선 수주량과 선박 건조량은 모두 세계 1위였다. 수주량 2위는 중국, 건조량 2위는 일본이 차지했다. 고부가가치 선박도 한국의 점유율이 50%를 넘었다. 조선은 우리나라가 이른바 두 나라 틈에서 ‘너트크래커에 끼인 호두’ 신세가 아니라는 것이다.


중국과 격차는 불과 5년 지난 1월 하순 이건희 삼성 회장이 꺼내 신년 벽두 경영 화두가 된 샌드위치론은 조선에는 해당하지 않는 셈이다. 조용준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역시 한국은 조선의 절대 강자라고 못 박았다. 중국과의 기술 격차 5년에 대해서도 그는 쉽게 좁혀지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중국과의 격차에 대해 대우조선해양의 한 임원이 한 얘기입니다. ‘내가 사원일 때 5년이었는데, 지금도 5년이다. 앞으로도 5년 정도라고 봐야 하지 않겠느냐?’” 그는 반도체·철강 같은 소재 산업과 조립가공 산업인 조선은 경우가 다르다고 말했다. “소재 산업은 라인만 깔면 바로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장치 산업이기는 하지만 배를 만드는 데는 숙련공과 3만 개 이상의 부품이 필요합니다. 기본적으로 1~2년의 시차가 생길 수밖에 없어요.”

불황 닥치면 한국이 가장 불리 조 센터장은 2015년까지는 중국이 세계 2위에 올라설 것으로 내다봤다. “언젠가 한국을 따라잡겠지만 지금의 설비 확장은 중국 자체의 조선 수요를 충당하려는 것일 뿐 그렇게 위협적이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20년 후엔 어떨까? 이건희 회장은 샌드위치론을 펼 당시 “앞으로 20년이 더 걱정”이라고 했었다. 샌드위치론의 귀결점인 ‘앞으로 20년 동안에 대한 걱정’에서조차 조선이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중국의 추격 속도가 눈부시기 때문이다. 강판 기술은 거의 따라왔다. 다만 일본이 품질 면에서 우리나라를 앞서 가고 있는 형국은 아니다. 그러나 해운 강국인 일본은 자기 나라 배를 건조하는 것만으로도 수주량의 절반을 채울 수 있다. 중국의 무기가 가격 경쟁력이라면 일본은 기술력이라는 비가격 경쟁력이 있다. 그렇다면 국내 조선업계의 과제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원가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다. 대형 조선소는 고정비용의 부담이 크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기술력은 뒤지면서 임금 수준은 거의 비슷하다. 일본은 내수용 외 일반 선종은 아예 손을 놓은 상태다. 양성호 삼성중공업 닝보유한공사 경영지원팀장은 “조선 불황이 오면 한국이 가장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발주량이 많으니까 비용이 분산돼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물량이 줄어들면 원가 경쟁력이 떨어지는 회사가 고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장 인력의 고령화도 피할 수 없는 조건이다. 일본 조선소의 생산직 평균 연령은 55세가 넘는다. 우리나라는 아직 40대를 유지하고 있다. 다행히 아직 10여 년은 버틸 수 있다. 노사 문제도 잠복하고 있다.
대안은 고부가가치 선박을 만드는 것이다. 기술력이 요구되는 비싼 배를 만들어 팔면 된다. LNG선, 해상 정유공장 격인 원유생산저장하역설비(FPSO), 쇄빙선(碎氷船), 초호화 여객선, 드릴 십 같은 배들이다. FPSO는 해저에서 원유를 뽑아 올려 정제를 하는 한편 저장도 한다. 삼성중공업은 지금까지 발주된 FPSO 55척 중 14척을 수주했다. 심해용 FPSO는 지난해 산업자원부가 선정한 세계 일류 상품에 뽑히기도 했다. 쇄빙선은 얼음이 뒤덮인 바다에서 얼음을 부수어 항로를 만드는 배다. 특히 5억 달러나 하는 초호화 여객선은 미래의 선종으로 평가받고 있다. 일본 역시 LNG선, 초호화 여객선 등에 주력하고 있다. 유럽 조선소들도 부가가치가 높은 초호화 여객선에 목을 매고 있다. 강인표 부장은 “삼성중공업은 쇄빙선과 유조선을 합체시킨 선종을 개발해 러시아에 납품하고 있다”고 말했다. 쇄빙선을 겸한 만큼 투자비가 절감되고 항해 기간도 단축된다. 삼성중공업 닝보유한공사는 1995년 설립됐다. 이 회사는 3000~3600t짜리 초대형 선체 블록을 제작한다. 10만5000t급 배를 만드는 데는 약 100개의 선체 블록이 필요하다. 이들을 용접해 15개로 만든 것이 메가 블록이다. 이들은 바다 건너 거제조선소의 도크로 옮겨져 완성 배로 건조된다. 메가 블록을 조립하기 위해서는 대형 해상 크레인이 필요하다. 2001년 세계 최초로 도입한 이 메가 블록 공법 덕에 삼성중공업은 도크에서의 작업 기간을 절반으로 단축했다. 도크의 회전율을 높임으로써 생산성이 크게 향상됐음은 물론이다. 닝보유한공사 야드에서는 장난감 레고 조립하듯이 선체 블록을 용접해 메가 블록을 만들고 있었다. 메가 블록은 8층 건물 높이의 철제 구조물이다. 완성된 메가 블록 위에서 내려다보니 거제조선소에서 진행될 조립 작업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강인표 부장은 메가 블록을 김밥의 가운데 토막에 비유했다. “닝보에서 만든 메가 블록은 김밥으로 치면 크게 썬 몇 개의 가운데 토막입니다. 거제에서 만든 선수와 선미 사이에 여기서 싣고 간 메가 블록을 끼워 넣고 용접을 하는데 오차가 1㎜ 미만입니다.” 메가 블록 공법은 국내의 인건비 상승과 인력 부족에 대한 대응책이기도 하다. 중국 조선소의 인건비는 국내의 절반 수준이다. 반면 중국엔 쓸 만한 인력이 그리 많지 않다. 기능 인력의 생산성은 국내의 10~20%선. 닝보유한공사는 고졸 인력을 뽑아 3년간 훈련시킨다. 하지만 1~5년 단위로 고용 계약을 하게 돼 있어 기술 축적이 잘 안 되고 있는 실정이다. 앞으로 중국 조선소들이 설비를 증설하는 과정에서 인력을 빼갈 가능성도 있다. 인허가 절차가 까다롭고 인허가 관련 기관이 많은 것도 외국 기업엔 부담이다. 닝보유한공사 측은 “환경과 관련한 규제는 국내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산업자원부가 세계 일류 상품으로 뽑은 삼성중공업의 심해용 원우 생산·저장·하역설비(FPSO).



R&D 투자 늘려야 승산 크다 조선은 동양의 세력이 서구를 잠식해 가는 동세서점(東勢西漸) 형 산업이다. 조선 산업의 주도권이 일본에서 한국으로 넘어오는 데 30~40년이 걸렸다. 언젠가는 주도권이 중국으로 넘어갈 것이다. 그 과정에서 중국이 저가 수주로 공급을 늘려 시장을 교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강인표 부장은 “중국과의 수주전에서 누가 승자가 될지는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도 캐퍼를 늘려 나가고 있습니다. 2012년이면 공급량이 늘어나고 중국과의 출혈 경쟁이 불가피할 겁니다. 중국의 저가 공세를 당해 내기는 어렵겠죠.” 조용준 센터장은 조선 업계가 연구개발(R&D)에 투자를 많이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돈을 많이 벌 때 차세대 선종 등에 대해 업계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회사마다 1조~2조원의 현금을 쌓아 놓고 있습니다. 그동안에야 일본을 따라잡기 바빴지만 이제 1등이 됐으니 새 영역을 만들어 가야죠. 부가가치가 높은 분야를 찾아내기 위한 R&D를 하라는 겁니다. 미래가 보여야 직원도 새로 뽑죠. 과거엔 그룹 차원의 사업에 돈을 내줘야 했지만 이제 그럴 일도 없지 않습니까?” 그는 일본처럼 거대한 해상 철구조물-메가 플로트(부유체)를 만들어 해양 도시를 조성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도시에 공항도 유치할 수 있고 교도소 등 사람들이 육지에서 추방하고 싶어하는 시설을 옮길 수도 있다. 대도시 인근 해상에 보잉747 같은 대형 여객기가 이착륙하는 공항이 떠 있는 것이다. 세계 최강의 조선 기술을 응용하면 우리도 이런 꿈의 공항을 만들 수 있다. 일본은 10여 년 전부터 이런 대형 해상 구조물을 만들어 다목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실험하고 있다. 12개 조선소와 5개 철강사가 참여한 이 프로젝트로 대형 부유 구조물에 관한 기본적인 요소 기술은 개발을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후발 주자의 추격을 걱정한다면 리딩 국가가 아니다. 진정한 조선 강국이라면 일등에 연연하기보다 새로운 분야를 개발하고 그 분야에 투자해야 한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샌드위치 신세’에서 벗어나는 첩경일는지도 모른다. 시장 선점은 가장 확실한 수익 확보 전략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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