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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귀속권 누구에게 있나

문화재 귀속권 누구에게 있나


미국 박물관들 유물 반환 문제로 몸살 일부 돌려줬지만 반대 논리도 만만찮아 1972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약칭 메트로 박물관)은 100만 달러를 주고 고대 그리스의 항아리 유물 한 점을 사들였다. 기록적으로 많은 액수였다. 그러나 ‘유프로니오스 크라테르(Euphronios Krater: 약칭 크라테르)’로 알려진 이 유물은 그만한 값어치가 있었다. 45ℓ 용량으로 포도주와 물을 뒤섞는 데 사용됐던 크라테르는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미술가 유프로니오스가 제작한 작품이다. 크라테르는 그의 작품들 중에서 지금까지 보존돼온 12개 중 하나일 뿐만 아니라 그의 서명도 새겨져 있다. 매입 당시 메트로 박물관장이었던 토머스 호빙은 크라테르의 고전적 아름다움에 반한 나머지 “지금까지 본 작품들 중 단연코 가장 아름답다”고 극찬했다(미켈란젤로는 듣기 거북했을 듯하다). 그러나 2500년 된 크라테르는 한 가지 큰 결함이 있었다. 도굴품이었다. 크라테르는 로마 인근의 에트루리아인 무덤에서 도굴돼 이탈리아 밖으로 밀반출됐고, 그로부터 몇 달 뒤 팔렸다. 메트로 박물관은 지난해에야 그런 불편한 진실을 알게 됐다. 박물관 측은 새로 단장한 화려한 고대 그리스·로마 유물 진열실들을 다음달 공개한다. 그러나 메트로 박물관에서 가장 주목받는 소장품인 크라테르는 그 상설 진열실들에 전시되지 않고 다른 방에 보관될 예정이다. 박물관 측이 내년에 크라테르를 이탈리아에 영구 반환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크라테르가 도굴품이었다는 사실은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 크라테르를 메트로 박물관에 매각한 미국인 미술품 거래상 로버트 헤트는 그 유물을 베이루트에서 한 남자로부터 입수했다고 말했다. 그 남자는 크라테르를 벽장 속의 구두 상자 속에 보관해 왔었다고 했다. 호빙은 그 얘기를 의심스럽게 생각했지만, 헤트는 증거 서류를 제시했다. 그러나 크라테르의 과거를 명확히 파헤치려 애쓰는 기자들은 그것을 “도굴품 항아리”라고 불렀다. 오래전부터 문화재 매입자들은 “묻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라”는 규범에 입각해 활동해 왔다. 메트로 박물관은 파란만장한 과거를 지닌 다른 유물 20점도 함께 반환할 예정이다. 또 보스턴과 LA 등지의 다른 박물관들도 소장품의 반환 문제로 이탈리아 측과 협상 중이다. 그리스·이집트·페루 등 다른 나라들도 고대 미술품들을 환수하려 노력한다. 고대의 보물들을 둘러싼 논쟁은 예전부터 있었다. 그리스는 영국으로부터 ‘엘긴 마블스(Elgin Marbles)’를 되찾아오려고 거의 200년 동안 노력해 왔다(엘긴 마블스는 BC 5세기에 세워진 파르테논 신전 외벽의 대리석 조각품들로 지금은 대영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그러나 이런 고대 미술품 환수 움직임은 문화유산을 둘러싼 복잡한 논쟁을 촉발했다. 필리페 드 몬테벨로 메트로 박물관장은 크라테르의 반환 협정에 서명한 직후 일련의 열정적인 연설을 했다. 연설에서 그는 이렇게 반문했다. 왜 고대문명의 유물들이 제작 당시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현대 국가들에 반환돼야 하는가? 그는“좋다, 법은 준수돼야 한다. 하지만 문화재는 인류 ‘전체’의 공동 재산이다”고 주장했다. 달리 표현하자면, 쟁점은 ‘누가 과거의 진정한 소유권자인가?’이다. 물론 그 대답은 누구에게 질문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최근 문화재 발굴지 국가들의 주장에 유리해 보이는 윤리의식상의 변화가 일어났다. 문화재 밀수를 반대하는 각종 국제 조약이 체결된 덕분이다. 불법 거래상들은 번창하는 암시장에 내다 팔 문화재를 확보하려 혈안이 돼 있다. 그래서 이탈리아·중국·터키·멕시코 등지의 고대 유적지를 무지막지하게 약탈한다. 이를 우려하는 국제적 경각심이 높아진 점도 그런 변화의 압박 요인으로 작용했다. 미국 고고학 연구소의 브라이언 로즈 소장은 이렇게 말했다. “미술품 시장에 나온 유물들은 그 역사적 맥락이 제거된 경우가 많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 ‘역사 살해’다.” 고고학자들은 문화재 시장이 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현재부터 1970년까지의 명확한 거래 내역과 출처가 밝혀지지 않은 유물들을 박물관에서 매입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로즈는 “그런 정도의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물관장들은 이런 새로운 시대정신에 대항한다. 이 말은 그들이 문화재 매입 기준을 엄격하게 제정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그들은 그렇게 했다. 또 미술품 절도와 유적지 약탈을 개탄하지 않는다는 뜻도 아니다. 그들도 개탄한다. 그러나 박물관장들은 문화재 취득이 본질적으로 비윤리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박물관에 부여된 사명의 중요성을 옹호한다. 방대한 양의 문화유산을 안전하게 보존해 많은 사람에게 관람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사명이다. 시카고 미술 연구소의 제임스 쿠노 소장은 이렇게 말했다. “문화재를 반드시 원적지 국가로 반환해야 한다는 식의 법규는 백과사전적이고 보편주의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박물관의 존립 취지에 어긋난다. 일반대중에게 인류 공동의 문화유산을 접하는 기회를 부여해 다른 문화의 이해를 증진시키는 일은 중요하다.” 그리고 드 몬테벨로 관장이 지적했듯 고대 미술품들은 전리품으로서(예컨대 루브르 박물관에는 나폴레옹이 이집트 정복 때 착취해온 보물들로 가득하다), 혹은 거래를 통해 늘 이곳저곳 옮겨다녔다. 그리스 유물인 유프로니오스 크라테르가 로마 인근의 무덤 속에서 발견됐다는 사실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 세기 전 미국과 유럽의 박물관들은 ‘분배’ 방식으로 획득한 다른 나라의 유물들로 자기네 진열실을 채웠다. 서방세계의 고고학자들이 유적지를 발굴한 뒤 그곳에서 나온 유물들을 현지 국가와 합법적으로 나눠갖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요즘 가장 심각한 문제를 지닌 곳은 오래된 박물관이 아니라 신설 박물관인 LA의 게티 박물관이다. 게티 박물관은 1970년대부터 열심히 문화재들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이 박물관에서 가장 매력적인 소장품으로 영롱한 빛을 발산하는 고대 그리스의 장례용 황금 화관(花冠)은 1993년 115만 달러에 매입했다. LA 타임스에 따르면 게티 박물관의 고대 유물 큐레이터인 매리언 트루에는 처음엔 그 화관의 매입을 거절했다. 그녀는 거래상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 박물관이 개입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물건”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분명히 무엇인가가 그녀의 마음을 바꿨고, 게티 박물관 측은 1년도 안 돼 황금 화관을 매입했다. 그러나 실제로 그 화관은 장물이었음이 밝혀졌고, 지난달 게티 박물관장은 그리스 아테네로 날아가 황금 화관의 반환 협약에 서명했다. 이탈리아 역시 게티 박물관의 소장품들을 면밀히 주시해 왔다. 한 미술품 거래상의 창고를 급습한 이탈리아 경찰은 그곳에서 각종 도굴품의 사진들을 발견했다. 도굴품의 상당수는 여전히 흙먼지로 뒤덮였다. 도굴품의 이동 경로를 추적한 이탈리아 경찰은 그중 일부가 게티를 비롯한 미국의 여러 박물관에 소장돼 있음을 발견했다. 이탈리아 당국이 트루에를 문화재 밀거래 혐의로 기소하면서 미국 박물관계는 또 한번 충격받았다. 그녀의 공동 피고인은 다름 아닌 로버트 헤트였다. 유프로니오스 크라테르를 메트로 박물관에 매각했던 바로 그 사람이다. 두 사람 모두 혐의를 부인한다. 그들의 재판은 약 1년 전 로마에서 시작됐는데 아마도 초대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통치기간보다 더 오래 지속될 듯하다. 지난해 봄 게티 박물관의 마이클 브랜드 관장은 이탈리아 측이 도난당했다고 주장하는 소장품 52점을 놓고 이탈리아 당국과 협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을께에는 26점을 즉시 반환하고 나머지의 처리 문제는 계속 협의한다는 데 합의했다. 그러나 11월이 되자 브랜드는 협상에 전혀 진척이 없다고 발표했다. 청년의 모습을 새긴 희귀한 청동 조각상이 걸림돌이었다. 게다가 이 청동상은 애당초 공해상에서 발견된 데다, (이탈리아가 아닌) 그리스의 유물이었다. 이 ‘승리의 청년상’을 둘러싼 갈등은 고대 유물의 귀속 개념이 때론 지극히 복잡해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1964년 이탈리아 파노 지방의 어부들이 유고슬라비아 근해에서 조업하던 중 그물에 이 청동상이 걸렸다. 어부들은 그 유물을 파노로 가져간 뒤 매각했다. 이탈리아 법원은 청동상 매입자들이 문화재 관련법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두 차례나 판결했다. 그리고 1970년 무렵(정확한 날짜는 아무도 모르는 듯하다) 이 청동상은 브라질로 넘어갔다가 다시 영국으로, 그리고 마지막에는 독일로 옮겨졌다. 그리고 뮌헨의 한 거래상은 그 유물을 J 폴 게티에게 매각했다. 브랜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이탈리아 측은 청동상의 반환이 보장되지 않는 한 추가 협상을 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이탈리아는 자국 법원에서 합법적 거래라는 판례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태도를 보였다. 브랜드는 “문화재 반환을 요구하는 국가들은 스스로 주장하는 내용에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그 청동상을 반환하라는 이탈리아 측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탈리아가 벌이는 싸움은 단순히 소유권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이제는 국가적 자긍심, 정치, 도덕적 설득력의 문제가 됐다. 그런 차원에서 이탈리아는 대대적인 언론 공세를 벌여왔다. 이탈리아의 정치적 야심가인 프란체스코 루텔리 문화부 장관은 월스트리트 저널의 칼럼을 이용, 게티 박물관 측과의 협상이 결렬된 이유를 나름대로 설명했다. 또 이탈리아 관리들은 관련 정보를 미국 기자들에게 풍부하게 제공했다. 그래서 클리블랜드·프린스턴·미니애폴리스 등 미국의 여러 지역 박물관들은 자기네 소장품을 이탈리아가 노린다는 사실을 취재차 전화를 걸어오는 미국 기자들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될 정도였다. 요즘 미국의 박물관장들은 자기네 진열실 안에 불법 문화재가 있지 않은지 전전긍긍한다. 그래서 소장품 중 의심스러운 문화재와 앞으로 매입하게 될 문화재의 출처를 철저히 조사하도록 지시했다. 일부 박물관은 반환 요구를 가까스로 물리치기도 했다. 일례로 세인트루이스 박물관에는 3200년 된 다채로운 색상의 희귀한 미라 관이 소장돼 있다. 지난해 한 이집트 관리는 그 관이 이집트의 어느 창고에서 도난당한 유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세인트루이스 박물관장인 브렌트 벤저민은 휘하의 직원들이 1998년 그 유물을 매입하기 전에 여러 학자와 인터폴(국제경찰기구), 심지어 카이로 박물관장의 도움을 얻어 철저히 조사했다고 밝히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는 그 유물이 도난품이라는 증거가 충분하다면 당연히 돌려주겠다는 뜻을 처음부터 분명히 했다. 하지만 입증 책임은 상대방에게 있다.” 그러나 이런 식의 반환 요구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최근 중국은 1925년 이전에 만들어진 중국 공예품의 수입을 금지해 달라고 미 국무부에 요청했다(미 국무부는 답변을 보류 중이다). 페루는 예일대학 피바디 박물관을 상대로 고대 잉카 도시 마추픽추의 유물을 반환하라는 소송을 제기할 작정이다. 이 거대한 유물은 마추픽추를 발견한 예일대 고고학자 히램 빙엄이 1912년 미국으로 가져갔다. 페루 측은 마추픽추 유물들이 공동분배 방식이 아닌 단기 대여 형식으로 예일대에 보내졌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박물관들은 새로운 해법을 모색 중이다. 일부 박물관장은 이탈리아가 합법적인 문화재 시장을 개설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런 시장에서 정부가 ‘국보’급이 아닌 유물의 해외 수출을 허가하자는 제안이다. 일본엔 그런 제도가 있다. 문화재 대여 프로그램의 확대가 최선책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대여 방식은 이탈리아가 미국 박물관들을 상대로 추진 중인 반환 협상에서 내건 ‘당근’이기도 하다. 그러나 드 몬테벨로 같은 사람들은 결국에는 합법적 미술품 시장의 활성화 쪽으로 무게추가 기울어지리라 믿는다. 그리고 유물들의 출처를 추적하는 데 인터넷의 막강한 위력이 어떻게 발휘될지를 상상해 보라. 그러나 현재로선 박물관들의 문화재 매입 건수가 부쩍 줄었다. 그렇다고 박물관의 진열장이 썰렁하지는 않다. 지금 메트로 박물관에서는 새로 만든 진열실들에 수천 점의 매력적인 유물을 배치하느라 일꾼들이 비지땀을 흘린다. 소벽(小壁:조각으로 장식한 경우가 많다), 흉상, 도자기, 보석류 중 다수의 유물은 사실상 고대 로마가 야만족의 약탈을 당한 이래 메트로 박물관의 저장실 밖으로 나온 적이 없었다. 이 박물관은 세계적으로 가장 위대한 문화재들이 소장돼 있는 곳 중 하나다. 메트로 박물관에서 이 예술품들을 감상하는 기회를 누리는 관람객 수가 연간 400만 명이나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왠지 숙연해진다. 이야말로 박물관의 존립 가치를 옹호하는 가장 강력한 논거가 아닐까? With ANDREW MURR and BARBIE NADE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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