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들을 자랑스러워 하세요”
“이 아들을 자랑스러워 하세요”
전장에서 스러져간 영웅들이 생전에 가족에게 보낸 편지는 유언장이 되고 말았다 2006년 2월 22일 아침, 전쟁은 새로운 양상으로 변했다. 그날, 수니파로 추정되는 일단의 파괴분자들이 시아파의 최고 성지(聖地) 중 한 곳인 사마라의 아스카리야 황금지붕 사원을 파괴했다. 반군의 공격에도 인내심을 발휘해 왔던 시아파의 자제력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몇 달간 바그다드의 여러 골목길과 공터에는 더 많은 시체가 나뒹굴었다. 시체의 다수엔 끈에 묶인 채 고문당한 흔적이 있었다. 주민들은 같은 종파 사람들이 사는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거나 아예 이라크를 떠났다. 2006년의 마지막 4개월 동안 약 1만 명의 이라크 민간인이 살해됐다. 설상가상으로 살인 특공대들은 이라크 정부군, 특히 경찰 내부에도 침투했다고 알려졌다. 미 국방부의 철군계획은 이라크 정부군의 훈련과 무장에 달렸다. 그러나 과연 미국은 미군의 지원으로 훈련받고 무장한, 비밀스러운 인종청소부 군대를 남겨놓고 이라크를 떠나야 할까?
렉스 페이지, 해병 일병 2006년 2월 24일, 팔루자. 안녕, 집에는 별일 없어요? 여기는 기온이 섭씨 27도 정도 되기 때문에 따뜻해요. 사마라의 황금사원 폭파 사건 이후 이곳에서는 내전이 발생하리라는 얘기가 떠돌아요. 그래서 주민들이 도시로 몰려들어요. 우리는 오늘 아침 도시 진입로 중 한 곳을 차단해야 했어요. 너무 많은 사람이 들어오려 애쓰기 때문이에요. 페이지(21) 일병은 6월 28일 팔루자의 한 건물 지붕 위에서 경계근무 중 저격수의 총탄을 맞고 사망했다. 사후에 상병으로 승진됐다.
제이슨 해밀, 육군 대위 2006년 3월 5일, 바그다드. 정말로 미치겠어. (시아파의) 황금사원이 폭파된 뒤 주민들은 통제불능 상태가 됐어. 내전 발발이 불가피해 보여. 반드시 일어날 거야. 우리가 여기 있는 동안 내전이 일어난다 해도 어쩔 도리가 없어. 우리 미군의 입장은 내전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거야. 우리는 한 발 뒤로 물러나 관망하겠지…. 하지만 시아파는 화가 났어. 그 지역에 안정을 회복하려 들어와 있다는 미군이 그렇게 못해서야(다시 말해 그들 편을 들지 않는다는 뜻이지). 그래서 때로는 시아파도 그런 뜻을 전달하려고 우리를 공격해. 하지만 우리도 나름대로 대처 능력이 있어. 해밀(31) 대위와 다른 두 명의 병사는 11월 26일 바그다드에서 폭발성 관통형 탄두(EFP)가 그들이 타고 가던 장갑차를 뚫고 들어오면서 사망했다. 해밀은 그 다음 날 귀국 예정이었다.
에이모스 C R 보크, 육군 중위 2006년 3월 12일, 바그다드. 우리가 말해줄 만한 최선의 내용은, 그 사건이 수니파 강경 세력의 소행이라는 점이야. 알카에다 같은 녀석들이라고 생각하면 돼. 그렇다면 누구에게 비난이 쏟아질까? 맞아. 바로 우리들이야. 실제로 거리에서 주민 중 일부가 그런 식으로 말하는 내용을 들었어. 그 사건이 미군 자살 폭파범의 소행이라는 얘기였어. 미군이 가장 좋아하는 전술이라는 얘기야. 평균적인 무슬림들이 그런 얘기를 들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지 짐작이 가. 그러나 시아파도 미군과 그 사건은 무관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수니파 사원 두 곳을 불태우고 몇몇 수니파 주민을 살해했어. 요즘 수니파는 자신들을 겨냥한 무차별 공격을 두려워해. 그래서 자기네 마을로 들어오는 차량들을 향해 마구 총질을 해대지. 경찰차도 마찬가지야. 다음은 이라크 정부 측 반응이야. 이라크 보안군은 하루 20시간씩 통행금지령을 발동할 예정이야. 보안군에는 이라크 경찰(IP)과 공공질서 대대(POB)도 포함돼. 이 부대들은 내무부에 소속돼 있는데, 사실 이라크 내무부는 이란 이외의 지역에서 활동하는 시아파 무장세력의 소굴이야. 이라크 정부는 보복 공격으로부터 수니파 주민을 보호하라는 지시를 IP와 POB에 내렸어. 그런데 이 기구들은 동시에 수니파를 살해하라는 지시를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받았지. 결과는 간단해. 그들 경찰과 군인은 돌아다니면서 수니파 주민을 죽이고 사원들을 파괴해. 그런 폭력행위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는 군경도 약간 있어. 하지만 그들 역시 폭력행위를 막아야 한다는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지 않아. 이라크의 일부 지역(예컨대 그린존[미군이 치안을 맡은 안전지대])에서는 통금령이 효과가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이곳에서는 시행 첫 3일 동안엔 완전히 실패했어. 같은 날 보크는 삼촌에게도 메일을 썼다. 린 삼촌에게, 방금 평상시와 같은 장문의 e-메일을 보냈어요. 하지만 몇 가지 보충할 내용이 있어요. 첫째는 그 폭파 사건이 발생한 당일에 관한 내용이에요. 마흐디군(시아파 민병대)이 미군 전진기지(FOB) 인근에서 주민들을 살해하는 장면을 우리 소대 중 하나가 목격했어요. 소규모 총격전이 뒤따랐고, 마흐디군은 대패했어요. 우리 소대는 마흐디군 병사 5~7명을 사살하고, 그 두 배 정도에게 부상을 입혔어요. 또 네 명을 생포했지요. 그날 밤 순찰 임무를 겸해 그 포로들을 압송하는 임무를 맡았어요. 포로 중 두 명은 이라크 경찰이었어요. 그들이 그 사건 때문에 해임될지, 아니면 승진할지 궁금해요. 그때 이후로 우리 관할 지역에서 많은 폭파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요즘은 거의 하루 건너 마흐디군을 봅니다. 그리고 근무지로 가는 도로의 치안도 개선되지 않아요. 그들이 어저께는 FOB의 바로 바깥에서 M1 소총을 쏴댔어요. 요즘 매일 아침 폭발 소리에 잠을 깹니다. 보크(24)는 10월 23일 바그다드에서 반군의 급조 폭발물(IED) 공격으로 전사했다.
데이비드 테일러, 육군 소령 2006년 8월 9일, 바그다드(자신의 갓 태어난 아들을 그리며 쓴 일기 내용). 네가 몇 살이 될 때 이 글을 읽게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네가 다섯 살이 됐을 때 이 글을 읽는다면, 이 아빠가 18세 청년이 이해할 수준의 글을 써서는 안 되겠지. 네가 이 글을 읽을 때는 아직 어린 시점이라고 생각하고 글을 쓰겠다. 네가 이해하지 못하는 대목이 있다면, 나중에 네가 좀 더 자랐을 때 우리가 함께 얘기해 보자. 며칠 전 밤, 바그다드 거리에서 험비에 앉아있을 때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아빠는 우리 중대 중 하나가 민병대의 창고로 의심되는 장소를 공격할 때까지 대기하던 중이었다. 그곳은 치안 상태가 엉망이었지. 시간은 오전 3시였고 나는 피곤했다. 그리고 이 전쟁의 보다 복잡한 측면들에 관해 생각하기 시작했단다. … 우리는 시아파 민병대 중 한 부대가 로켓포와 IED, 그리고 각종 소화기를 비축해 두는 창고로 알려진 곳을 공격 중이었어. 2003년 우리가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시아파의 구원자였다. 당시만 해도 우리를 공격한 사람은 불만에 가득 찬 수니파뿐이었다. 그들은 사담 후세인에게 충성한 사람이었지.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달라져 시아파도 우리를 공격한다. 시아파 민병대는 수니파를 죽이고, 수니파 민병대는 시아파를 죽인다. 그리고 외국인 테러분자들은 수니파와 시아파를 모두 죽인다. 두 종파 간의 투쟁을 선동하고, 그래서 내전이 일어나게 하려는 의도에서지. 그들 모두는 미군을 표적으로 삼지만, 시아파와 수니파는 아직은 그런 속셈을 인정할 정도로 대담하지는 않다. … 짜증이 날 정도로 복잡한 상황이구나… . 이 모든 상황이 너하고 무슨 관련이 있을까? 그날 밤 전투에 돌입하게 될지 여부를 아직 모르는 상황에서 떠오른 생각이었다. 네가 세상의 모순을 이해하도록 너의 엄마와 내가 도와주는 일이 몹시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복잡한 윤리 문제를 그냥 다른 “모든” 사람과 똑같이 생각하지는 않으려 애쓰지만, 쉽지는 않구나. 네가 모든 상황에서 옳은 일을 행하도록 깨우쳐주는 일이 엄마·아빠의 책임이란다…. 그러나 이라크 같은 곳에서 그렇게 살아가는 일이 가능할까? 이곳에서는 부드럽게 행동했다가는 총맞아 죽는다.…
마이클 먼델, 육군 소령 2006년 9월 1일, 팔루자. 이라크 상황이 어떠냐고 많은 미국인이 묻는다. 이런 상황을 상상해 보라. 이곳에서는 밖에 나갈 때 반드시 무기를 휴대한 채 이웃집들을 정말로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 그 집들 중 한 곳의 지붕에 저격수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또 건물 밖에 너무 오래 머무르지 말아야 한다. 길거리에서 누군가가 당신을 겨냥해 박격포탄을 날릴지 모른다. 혹은 기관총 세례를 퍼붓거나 로켓 추진 유탄발사기(RPG)를 쏘아대기도 한다. 그런 만큼 밖에 나갈 때면 반드시 무장을 하고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엄폐물의 위치를 확인해둬야 한다. 항상 그래야 한다. 자동차를 몰고 식품점에 갈 때 결코 혼자 가서는 안 된다. 적어도 두 대의 차에 최소한 세 명씩 탑승한 채 함께 가야 한다. 또한 일행 중 적어도 한 명은 위생병이어야 한다.… 그리고 집 앞의 차도로 나가는 순간부터 낯설게 보이는 모든 물체는 위험하다고 간주하라. 그것이 그냥 쓰레기봉투이거나 빈 상자인 경우도 있지만, 원격 조종 폭탄일 때도 있다.… 결코 다른 차량이 접근하도록 방치해선 안 된다. 그런 차들을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 우리처럼 식품점으로 가는 평범한 차량인지, 아니면 폭탄차량인지 확인해야 한다. 어쩌면 기관총을 소지한 사람들이 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차량들이 너무 가까이 다가오면, 깃발을 흔들어 정차 신호를 보내고 조명탄을 쏘아올려라. 혹은 경적을 울리거나 자동차 라이트를 깜빡여라. 그런데도 그 차량이 비키지 않거나 당신을 향해 계속 접근해 오면 죽여야 한다. 그게 전부다. 만일 이런 방법들이 통하지 않으면, 그들은 분명히 당신을 죽이려 오는 사람들이다. 이것이 바로 이라크의 상황이다. 그 해 9월 종파 간 살인 행각은 계속 증가했다. 폭력사태를 진정시키려 미군 수천 명이 바그다드에 파견됐지만 진압작전은 예전처럼 실패했다. 파견 부대 중에는 제172 스트라이커 여단 병력도 포함됐다. 그들의 근무 기간도 연장됐다.
먼델 2006년 9월 14일, 팔루자. 언젠가 오드리는 이렇게 물었다. 이라크에 파견된 미군 병사들이 전쟁을, 그리고 부시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나는 몹시 냉소적이라는 대답밖에 하지 못했다. 이곳에서 매일 발생하는 일을 보면서(오늘도 IED 폭발로 죽은 어린이들 시신을 봤다), 약간이나마 냉소적인 태도를 갖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정치인의 고상한 말들은 이곳에서는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우리가 늘 하는 농담이 있다. “우리는 세계적인 반(反)테러 전쟁에서 우리의 몫을 수행 중이다”는 내용이다. 우리가 옳은 일을 한다는 사실을 의심한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이곳 전쟁터의 최일선에서 보면 만사가 매우 다르게 보인다는 뜻이다. 미국에서 정치인들이 아무리 큰소리로 떠들어대봤자, 이곳에서 죽어가는 아이들을 구급차에 태우는 데는 아무 도움이 안 된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일을 한다. 그런 생각을 하면 정말 분노가 끓는다.
로널드 폴슨, 육군 하사 2006년 10월 2일, 타르미야. 당신에게 이런 말을 했는데, 생각나요? 미군이 바그다드를 휩쓸어버리면 나쁜 놈들은 주변 지역으로 밀려나리란 얘기 말이야. 자, 어떻게 됐게? 그놈들은 아직도 여기 있어. 지난 2주 동안 우리 기지는 매일 박격포 공격을 받았지. 길가에 매설된 폭발물 때문에 우리 민정(民情) 담당 팀들 중 하나가 당했어. 정말로 화가 났지…. 하지만 그것은 결국 미군 탓이야. 우리가 지금 세계 최고의 테러분자들을 훈련시키기 때문이지. 우리가 돌아다니면서 돈을 나눠주고 건물을 지어줄 때, 적들은 폭발물 매설 기술을 훈련받아. 놈들의 공격이 성공할 때도 있고, 실패할 때도 있어. 하지만 문제는 놈들이 나날이 발전한다는 점이야. 폴슨 하사는 바그다드에서 약 65㎞ 떨어진 작은 마을인 타르미야에서 IED 폭발로 입은 부상 때문에 10월 17일 사망했다. 53세.
먼델 2006년 10월 5일, 팔루자. 우리가 “눈에는 눈” 식으로 대응한다 해도 그다지 나쁘지는 않을 듯하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다. 놈들은 당당하게 나서서 우리와 싸우려 하지는 않는다. 한 가지 이유는 우리의 화력이 보다 우수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아군이 여기서 한 명 부상하고, 저기서 두 명 죽는데도 응징을 못하니 미치겠다. 게다가 해병대원들은 주민들에게 인내심을 잃기 시작했다. 우리가 훈련시키는 이라크 정부군 중 이 지역 출신은 거의 없다. 대다수는 남쪽의 나시리야와 바스라 출신이다. 그들은 시아파고, 이곳 주민은 수니파다. 그러니 긴장이 고조된다. 이 얼굴없는 폭탄이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다.
테일러 2006년 10월 17일, 바그다드(일기장). 방금 네 엄마와 통화했다. 뒤쪽에서 네가 우는 소리를 들었다. 배고픈 모양이구나. 그러고 보니 네가 태어났던 때가 생각났다. 너를 품안에 껴안았었지. 네가 배고플 때마다 하던 몸짓이 있었단다. 여자들은 그것을 “코 박고 헤집기”라고 불렀지. 마치 돼지들이 먹을 것을 찾아 땅에 코를 박고 헤집듯 말이다. 넌 내 품에 안긴 채 머리를 들어올려 뒤로 젖힌 다음 다시 아빠 가슴에 부딪치기를 반복하곤 했단다. 그리고 네 입은 마치 젖을 빨려 애쓰는 듯 오물거리기 시작했지. 머리는 좌우로, 앞뒤로 흔들곤 했다. 본능적인 동작이었지만, 너의 태도는 단호했고, 또 너무도 생생했었다. 그것은 내가 목격한 가장 즐거운 장면 중 하나였다. 네가 그런 동작을 할 때마다 나는 웃지 않고는 못 배겼다. 그런 모습을 상상하면 언제나 미소가 번진다. 아빠는 지금도 웃는단다. 오늘 바그다드는 잔인한 날이었다. 자폭 테러범이 차에 폭탄을 싣고 경찰 검문소로 돌진했다. 검문소는 산산조각났지. 약 12명이 중상을 입었고, 그들 중 절반은 나중에 사망했다. 아수라장이었지. 한 명은 즉사했고. 우리가 폭발 현장을 경비하고 생존자들을 돌보는 와중에도 총탄이 날아왔다. … 어쨌든 그 일을 겪고 나서도, 네가 ‘코 박고 헤집기’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다시 웃음이 나온다. 테일러 소령은 10월 22일 바그다드에서 IED 폭발로 순직했다.
크레이그 포이텍, 육군 병장 2006년 10월 21일, 바그다드. 모술에서 우리는 매일 공격을 받았다. 그러나 이곳에서 우리는 표적이 아니다. 이라크인들은 종파 간 투쟁을 벌인다. 우리는 그 중간에 끼였다. 그러나 우리가 그 중간에 끼어들면 그들은 우리마저 공격하려 들지 모른다. 이곳의 문제는, 우리가 “허용된” 임무를 수행하는 데 장교들이 제동을 건다는 데 있다. … 우리가 총격을 받으면, 장교들은 우리더러 피하라고만 명령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우리가 하는 일에 어떤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우리는 이라크인들로부터 폭탄을 빼앗지만, 그들을 체포하는 일은 허락되지 않는다. 도무지 말이 안 된다. 포이텍(26) 병장은 10월 30일 바그다드 번화가에서 무기 수색 중 총에 맞아 사망했다.
먼델 2006년 11월 8일, 팔루자. 한 가지 더 말하고 싶은 점이 있다. 누구도 내 말을 근거로 이 전쟁에 관해 어떤 결정을 내리지는 않기 바란다. 바그다드, 라마디, 모술 등 다른 지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모른다. 나보다는 여러분이 더 많은 뉴스를 접하리라 생각한다. 나는 직접 보고 듣고 생각하고, 혹은 체험하는 일만 말할 뿐이다. 이 전쟁에서 어느 편이 이길지는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또 누가 이기든 신경쓰지 않는다. 내 임무는 부하들을 고국으로 데려가는 일이고, 그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선 어떤 일도 할 결심이다. 대니 캐트런(19) 상병과 그의 아내(18), 그리고 그들의 신생아는 이곳의 상황이 결딴나지 않기를 내게 기대한다. 그렇기 때문에 바그다드나 여타 지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관심 밖이다. 먼델(47) 소령은 2007년 1월 5일 팔루자에서 IED 로 사망했다(캐트런 상병은 아직도 이라크에서 복무 중이며 머지않아 귀국할 예정이다).
윌리엄 시과, 육군 병장 2006년 11월 14일, 바이지 외곽의 포브 수메랄. 어머니께, …우리가 이라크 파견 임무를 마치고 귀국할 때쯤이면 이 도시의 상황도 분명히 바뀌어 있으리라 생각해요. 하지만 이곳의 뿌리깊은 종파 간 증오심을 지워버리기는 불가능해요. 이 전쟁이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그들은 서로를 살육해 왔어요. 미국의 영향력이 아무리 커도 그 증오심을 치유하지는 못할 듯해요. 그러나 미군이 이른 시일 안에 철수해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물론 미군 전사자는 계속 늘어나고, 병사들의 불만은 커지겠죠. 하지만 미국 젊은이들이 조국의 품안에서 안락하게 지내려고 군에 입대할 정도로 무지하다면, 그들은 군대 생활을 잘못하는 겁니다. … 조국이 내게 베푼 은혜를 되갚는 기회를 얻게 돼서 저는 무척 자랑스러워요. 그렇게 생각지 않는 사람은 스스로를 부끄러워해야 해요. 만일 제가 귀국하지 못한다 해도, 엄마는 저를 자랑스러워하며, 내 아들 역시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다고 사람들에게 말하셔도 돼요. 시과병장은 2007년 1월 31일 바이지에서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21세였다.
3월 24일 현재 약 3230명의 미군 남성과 여성이 이라크에서 목숨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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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스 페이지, 해병 일병 2006년 2월 24일, 팔루자. 안녕, 집에는 별일 없어요? 여기는 기온이 섭씨 27도 정도 되기 때문에 따뜻해요. 사마라의 황금사원 폭파 사건 이후 이곳에서는 내전이 발생하리라는 얘기가 떠돌아요. 그래서 주민들이 도시로 몰려들어요. 우리는 오늘 아침 도시 진입로 중 한 곳을 차단해야 했어요. 너무 많은 사람이 들어오려 애쓰기 때문이에요. 페이지(21) 일병은 6월 28일 팔루자의 한 건물 지붕 위에서 경계근무 중 저격수의 총탄을 맞고 사망했다. 사후에 상병으로 승진됐다.
제이슨 해밀, 육군 대위 2006년 3월 5일, 바그다드. 정말로 미치겠어. (시아파의) 황금사원이 폭파된 뒤 주민들은 통제불능 상태가 됐어. 내전 발발이 불가피해 보여. 반드시 일어날 거야. 우리가 여기 있는 동안 내전이 일어난다 해도 어쩔 도리가 없어. 우리 미군의 입장은 내전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거야. 우리는 한 발 뒤로 물러나 관망하겠지…. 하지만 시아파는 화가 났어. 그 지역에 안정을 회복하려 들어와 있다는 미군이 그렇게 못해서야(다시 말해 그들 편을 들지 않는다는 뜻이지). 그래서 때로는 시아파도 그런 뜻을 전달하려고 우리를 공격해. 하지만 우리도 나름대로 대처 능력이 있어. 해밀(31) 대위와 다른 두 명의 병사는 11월 26일 바그다드에서 폭발성 관통형 탄두(EFP)가 그들이 타고 가던 장갑차를 뚫고 들어오면서 사망했다. 해밀은 그 다음 날 귀국 예정이었다.
에이모스 C R 보크, 육군 중위 2006년 3월 12일, 바그다드. 우리가 말해줄 만한 최선의 내용은, 그 사건이 수니파 강경 세력의 소행이라는 점이야. 알카에다 같은 녀석들이라고 생각하면 돼. 그렇다면 누구에게 비난이 쏟아질까? 맞아. 바로 우리들이야. 실제로 거리에서 주민 중 일부가 그런 식으로 말하는 내용을 들었어. 그 사건이 미군 자살 폭파범의 소행이라는 얘기였어. 미군이 가장 좋아하는 전술이라는 얘기야. 평균적인 무슬림들이 그런 얘기를 들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지 짐작이 가. 그러나 시아파도 미군과 그 사건은 무관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수니파 사원 두 곳을 불태우고 몇몇 수니파 주민을 살해했어. 요즘 수니파는 자신들을 겨냥한 무차별 공격을 두려워해. 그래서 자기네 마을로 들어오는 차량들을 향해 마구 총질을 해대지. 경찰차도 마찬가지야. 다음은 이라크 정부 측 반응이야. 이라크 보안군은 하루 20시간씩 통행금지령을 발동할 예정이야. 보안군에는 이라크 경찰(IP)과 공공질서 대대(POB)도 포함돼. 이 부대들은 내무부에 소속돼 있는데, 사실 이라크 내무부는 이란 이외의 지역에서 활동하는 시아파 무장세력의 소굴이야. 이라크 정부는 보복 공격으로부터 수니파 주민을 보호하라는 지시를 IP와 POB에 내렸어. 그런데 이 기구들은 동시에 수니파를 살해하라는 지시를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받았지. 결과는 간단해. 그들 경찰과 군인은 돌아다니면서 수니파 주민을 죽이고 사원들을 파괴해. 그런 폭력행위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는 군경도 약간 있어. 하지만 그들 역시 폭력행위를 막아야 한다는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지 않아. 이라크의 일부 지역(예컨대 그린존[미군이 치안을 맡은 안전지대])에서는 통금령이 효과가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이곳에서는 시행 첫 3일 동안엔 완전히 실패했어. 같은 날 보크는 삼촌에게도 메일을 썼다. 린 삼촌에게, 방금 평상시와 같은 장문의 e-메일을 보냈어요. 하지만 몇 가지 보충할 내용이 있어요. 첫째는 그 폭파 사건이 발생한 당일에 관한 내용이에요. 마흐디군(시아파 민병대)이 미군 전진기지(FOB) 인근에서 주민들을 살해하는 장면을 우리 소대 중 하나가 목격했어요. 소규모 총격전이 뒤따랐고, 마흐디군은 대패했어요. 우리 소대는 마흐디군 병사 5~7명을 사살하고, 그 두 배 정도에게 부상을 입혔어요. 또 네 명을 생포했지요. 그날 밤 순찰 임무를 겸해 그 포로들을 압송하는 임무를 맡았어요. 포로 중 두 명은 이라크 경찰이었어요. 그들이 그 사건 때문에 해임될지, 아니면 승진할지 궁금해요. 그때 이후로 우리 관할 지역에서 많은 폭파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요즘은 거의 하루 건너 마흐디군을 봅니다. 그리고 근무지로 가는 도로의 치안도 개선되지 않아요. 그들이 어저께는 FOB의 바로 바깥에서 M1 소총을 쏴댔어요. 요즘 매일 아침 폭발 소리에 잠을 깹니다. 보크(24)는 10월 23일 바그다드에서 반군의 급조 폭발물(IED) 공격으로 전사했다.
데이비드 테일러, 육군 소령 2006년 8월 9일, 바그다드(자신의 갓 태어난 아들을 그리며 쓴 일기 내용). 네가 몇 살이 될 때 이 글을 읽게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네가 다섯 살이 됐을 때 이 글을 읽는다면, 이 아빠가 18세 청년이 이해할 수준의 글을 써서는 안 되겠지. 네가 이 글을 읽을 때는 아직 어린 시점이라고 생각하고 글을 쓰겠다. 네가 이해하지 못하는 대목이 있다면, 나중에 네가 좀 더 자랐을 때 우리가 함께 얘기해 보자. 며칠 전 밤, 바그다드 거리에서 험비에 앉아있을 때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아빠는 우리 중대 중 하나가 민병대의 창고로 의심되는 장소를 공격할 때까지 대기하던 중이었다. 그곳은 치안 상태가 엉망이었지. 시간은 오전 3시였고 나는 피곤했다. 그리고 이 전쟁의 보다 복잡한 측면들에 관해 생각하기 시작했단다. … 우리는 시아파 민병대 중 한 부대가 로켓포와 IED, 그리고 각종 소화기를 비축해 두는 창고로 알려진 곳을 공격 중이었어. 2003년 우리가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시아파의 구원자였다. 당시만 해도 우리를 공격한 사람은 불만에 가득 찬 수니파뿐이었다. 그들은 사담 후세인에게 충성한 사람이었지.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달라져 시아파도 우리를 공격한다. 시아파 민병대는 수니파를 죽이고, 수니파 민병대는 시아파를 죽인다. 그리고 외국인 테러분자들은 수니파와 시아파를 모두 죽인다. 두 종파 간의 투쟁을 선동하고, 그래서 내전이 일어나게 하려는 의도에서지. 그들 모두는 미군을 표적으로 삼지만, 시아파와 수니파는 아직은 그런 속셈을 인정할 정도로 대담하지는 않다. … 짜증이 날 정도로 복잡한 상황이구나… . 이 모든 상황이 너하고 무슨 관련이 있을까? 그날 밤 전투에 돌입하게 될지 여부를 아직 모르는 상황에서 떠오른 생각이었다. 네가 세상의 모순을 이해하도록 너의 엄마와 내가 도와주는 일이 몹시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복잡한 윤리 문제를 그냥 다른 “모든” 사람과 똑같이 생각하지는 않으려 애쓰지만, 쉽지는 않구나. 네가 모든 상황에서 옳은 일을 행하도록 깨우쳐주는 일이 엄마·아빠의 책임이란다…. 그러나 이라크 같은 곳에서 그렇게 살아가는 일이 가능할까? 이곳에서는 부드럽게 행동했다가는 총맞아 죽는다.…
마이클 먼델, 육군 소령 2006년 9월 1일, 팔루자. 이라크 상황이 어떠냐고 많은 미국인이 묻는다. 이런 상황을 상상해 보라. 이곳에서는 밖에 나갈 때 반드시 무기를 휴대한 채 이웃집들을 정말로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 그 집들 중 한 곳의 지붕에 저격수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또 건물 밖에 너무 오래 머무르지 말아야 한다. 길거리에서 누군가가 당신을 겨냥해 박격포탄을 날릴지 모른다. 혹은 기관총 세례를 퍼붓거나 로켓 추진 유탄발사기(RPG)를 쏘아대기도 한다. 그런 만큼 밖에 나갈 때면 반드시 무장을 하고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엄폐물의 위치를 확인해둬야 한다. 항상 그래야 한다. 자동차를 몰고 식품점에 갈 때 결코 혼자 가서는 안 된다. 적어도 두 대의 차에 최소한 세 명씩 탑승한 채 함께 가야 한다. 또한 일행 중 적어도 한 명은 위생병이어야 한다.… 그리고 집 앞의 차도로 나가는 순간부터 낯설게 보이는 모든 물체는 위험하다고 간주하라. 그것이 그냥 쓰레기봉투이거나 빈 상자인 경우도 있지만, 원격 조종 폭탄일 때도 있다.… 결코 다른 차량이 접근하도록 방치해선 안 된다. 그런 차들을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 우리처럼 식품점으로 가는 평범한 차량인지, 아니면 폭탄차량인지 확인해야 한다. 어쩌면 기관총을 소지한 사람들이 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차량들이 너무 가까이 다가오면, 깃발을 흔들어 정차 신호를 보내고 조명탄을 쏘아올려라. 혹은 경적을 울리거나 자동차 라이트를 깜빡여라. 그런데도 그 차량이 비키지 않거나 당신을 향해 계속 접근해 오면 죽여야 한다. 그게 전부다. 만일 이런 방법들이 통하지 않으면, 그들은 분명히 당신을 죽이려 오는 사람들이다. 이것이 바로 이라크의 상황이다. 그 해 9월 종파 간 살인 행각은 계속 증가했다. 폭력사태를 진정시키려 미군 수천 명이 바그다드에 파견됐지만 진압작전은 예전처럼 실패했다. 파견 부대 중에는 제172 스트라이커 여단 병력도 포함됐다. 그들의 근무 기간도 연장됐다.
먼델 2006년 9월 14일, 팔루자. 언젠가 오드리는 이렇게 물었다. 이라크에 파견된 미군 병사들이 전쟁을, 그리고 부시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나는 몹시 냉소적이라는 대답밖에 하지 못했다. 이곳에서 매일 발생하는 일을 보면서(오늘도 IED 폭발로 죽은 어린이들 시신을 봤다), 약간이나마 냉소적인 태도를 갖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정치인의 고상한 말들은 이곳에서는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우리가 늘 하는 농담이 있다. “우리는 세계적인 반(反)테러 전쟁에서 우리의 몫을 수행 중이다”는 내용이다. 우리가 옳은 일을 한다는 사실을 의심한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이곳 전쟁터의 최일선에서 보면 만사가 매우 다르게 보인다는 뜻이다. 미국에서 정치인들이 아무리 큰소리로 떠들어대봤자, 이곳에서 죽어가는 아이들을 구급차에 태우는 데는 아무 도움이 안 된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일을 한다. 그런 생각을 하면 정말 분노가 끓는다.
로널드 폴슨, 육군 하사 2006년 10월 2일, 타르미야. 당신에게 이런 말을 했는데, 생각나요? 미군이 바그다드를 휩쓸어버리면 나쁜 놈들은 주변 지역으로 밀려나리란 얘기 말이야. 자, 어떻게 됐게? 그놈들은 아직도 여기 있어. 지난 2주 동안 우리 기지는 매일 박격포 공격을 받았지. 길가에 매설된 폭발물 때문에 우리 민정(民情) 담당 팀들 중 하나가 당했어. 정말로 화가 났지…. 하지만 그것은 결국 미군 탓이야. 우리가 지금 세계 최고의 테러분자들을 훈련시키기 때문이지. 우리가 돌아다니면서 돈을 나눠주고 건물을 지어줄 때, 적들은 폭발물 매설 기술을 훈련받아. 놈들의 공격이 성공할 때도 있고, 실패할 때도 있어. 하지만 문제는 놈들이 나날이 발전한다는 점이야. 폴슨 하사는 바그다드에서 약 65㎞ 떨어진 작은 마을인 타르미야에서 IED 폭발로 입은 부상 때문에 10월 17일 사망했다. 53세.
먼델 2006년 10월 5일, 팔루자. 우리가 “눈에는 눈” 식으로 대응한다 해도 그다지 나쁘지는 않을 듯하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다. 놈들은 당당하게 나서서 우리와 싸우려 하지는 않는다. 한 가지 이유는 우리의 화력이 보다 우수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아군이 여기서 한 명 부상하고, 저기서 두 명 죽는데도 응징을 못하니 미치겠다. 게다가 해병대원들은 주민들에게 인내심을 잃기 시작했다. 우리가 훈련시키는 이라크 정부군 중 이 지역 출신은 거의 없다. 대다수는 남쪽의 나시리야와 바스라 출신이다. 그들은 시아파고, 이곳 주민은 수니파다. 그러니 긴장이 고조된다. 이 얼굴없는 폭탄이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다.
테일러 2006년 10월 17일, 바그다드(일기장). 방금 네 엄마와 통화했다. 뒤쪽에서 네가 우는 소리를 들었다. 배고픈 모양이구나. 그러고 보니 네가 태어났던 때가 생각났다. 너를 품안에 껴안았었지. 네가 배고플 때마다 하던 몸짓이 있었단다. 여자들은 그것을 “코 박고 헤집기”라고 불렀지. 마치 돼지들이 먹을 것을 찾아 땅에 코를 박고 헤집듯 말이다. 넌 내 품에 안긴 채 머리를 들어올려 뒤로 젖힌 다음 다시 아빠 가슴에 부딪치기를 반복하곤 했단다. 그리고 네 입은 마치 젖을 빨려 애쓰는 듯 오물거리기 시작했지. 머리는 좌우로, 앞뒤로 흔들곤 했다. 본능적인 동작이었지만, 너의 태도는 단호했고, 또 너무도 생생했었다. 그것은 내가 목격한 가장 즐거운 장면 중 하나였다. 네가 그런 동작을 할 때마다 나는 웃지 않고는 못 배겼다. 그런 모습을 상상하면 언제나 미소가 번진다. 아빠는 지금도 웃는단다. 오늘 바그다드는 잔인한 날이었다. 자폭 테러범이 차에 폭탄을 싣고 경찰 검문소로 돌진했다. 검문소는 산산조각났지. 약 12명이 중상을 입었고, 그들 중 절반은 나중에 사망했다. 아수라장이었지. 한 명은 즉사했고. 우리가 폭발 현장을 경비하고 생존자들을 돌보는 와중에도 총탄이 날아왔다. … 어쨌든 그 일을 겪고 나서도, 네가 ‘코 박고 헤집기’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다시 웃음이 나온다. 테일러 소령은 10월 22일 바그다드에서 IED 폭발로 순직했다.
크레이그 포이텍, 육군 병장 2006년 10월 21일, 바그다드. 모술에서 우리는 매일 공격을 받았다. 그러나 이곳에서 우리는 표적이 아니다. 이라크인들은 종파 간 투쟁을 벌인다. 우리는 그 중간에 끼였다. 그러나 우리가 그 중간에 끼어들면 그들은 우리마저 공격하려 들지 모른다. 이곳의 문제는, 우리가 “허용된” 임무를 수행하는 데 장교들이 제동을 건다는 데 있다. … 우리가 총격을 받으면, 장교들은 우리더러 피하라고만 명령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우리가 하는 일에 어떤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우리는 이라크인들로부터 폭탄을 빼앗지만, 그들을 체포하는 일은 허락되지 않는다. 도무지 말이 안 된다. 포이텍(26) 병장은 10월 30일 바그다드 번화가에서 무기 수색 중 총에 맞아 사망했다.
먼델 2006년 11월 8일, 팔루자. 한 가지 더 말하고 싶은 점이 있다. 누구도 내 말을 근거로 이 전쟁에 관해 어떤 결정을 내리지는 않기 바란다. 바그다드, 라마디, 모술 등 다른 지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모른다. 나보다는 여러분이 더 많은 뉴스를 접하리라 생각한다. 나는 직접 보고 듣고 생각하고, 혹은 체험하는 일만 말할 뿐이다. 이 전쟁에서 어느 편이 이길지는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또 누가 이기든 신경쓰지 않는다. 내 임무는 부하들을 고국으로 데려가는 일이고, 그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선 어떤 일도 할 결심이다. 대니 캐트런(19) 상병과 그의 아내(18), 그리고 그들의 신생아는 이곳의 상황이 결딴나지 않기를 내게 기대한다. 그렇기 때문에 바그다드나 여타 지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관심 밖이다. 먼델(47) 소령은 2007년 1월 5일 팔루자에서 IED 로 사망했다(캐트런 상병은 아직도 이라크에서 복무 중이며 머지않아 귀국할 예정이다).
윌리엄 시과, 육군 병장 2006년 11월 14일, 바이지 외곽의 포브 수메랄. 어머니께, …우리가 이라크 파견 임무를 마치고 귀국할 때쯤이면 이 도시의 상황도 분명히 바뀌어 있으리라 생각해요. 하지만 이곳의 뿌리깊은 종파 간 증오심을 지워버리기는 불가능해요. 이 전쟁이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그들은 서로를 살육해 왔어요. 미국의 영향력이 아무리 커도 그 증오심을 치유하지는 못할 듯해요. 그러나 미군이 이른 시일 안에 철수해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물론 미군 전사자는 계속 늘어나고, 병사들의 불만은 커지겠죠. 하지만 미국 젊은이들이 조국의 품안에서 안락하게 지내려고 군에 입대할 정도로 무지하다면, 그들은 군대 생활을 잘못하는 겁니다. … 조국이 내게 베푼 은혜를 되갚는 기회를 얻게 돼서 저는 무척 자랑스러워요. 그렇게 생각지 않는 사람은 스스로를 부끄러워해야 해요. 만일 제가 귀국하지 못한다 해도, 엄마는 저를 자랑스러워하며, 내 아들 역시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다고 사람들에게 말하셔도 돼요. 시과병장은 2007년 1월 31일 바이지에서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21세였다.
3월 24일 현재 약 3230명의 미군 남성과 여성이 이라크에서 목숨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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