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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E&TRAVEL] 유칼립투스와 와인의 천국

[WINE&TRAVEL] 유칼립투스와 와인의 천국

▶바로사밸리에 있는 제이콥스 크릭의 포도밭.

호주의 바로사밸리는 현지 최대 와인 산지 중 하나다. 시드니 근처의 헌터밸리와 함께 호주 와인의 양대 산지로 손꼽힌다. 최근 바로사밸리는 와인뿐만 아니라 시드니 · 멜버른과 더불어 호주에서 꼭 가봐야 할 관광 명소로 급부상하고 있다.
후텁지근한 오후였다. 도로 양 옆에 늘어선 유칼립투스 나무들은 껍질이 타버린 듯 허물을 벗고 있었다. 더위를 싫어한다는 캥거루는 코빼기조차 내밀지 않았다. 호주가 20세기 이래 최악의 가뭄을 겪고 있다는 관광 안내원의 말이 과장은 아니었다. 남호주의 수도 아델레이드 시내를 벗어나 바로사밸리로 들어선 지 30분가량 지나자 호주 와인 울프블래스(Wolf Blass)의 양조장이 나타났다. 내부에 들어서니 뜨거운 한증막에서 갑자기 거대한 와인 셀러로 들어간 느낌이었다. 반갑게 맞이하는 울프블래스 홍보 담당자의 환대에 답례조차 잊을 정도로 찰나의 망중한에 빠져 버렸다. 와인 시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테이블 위엔 라벨의 색깔에 따라 종류별로 울프블래스의 와인들이 일렬로 놓여져 있었다. 유칼립투스처럼 타들어간 목구멍을 시원한 와인으로 축여가던 중 카베르네 소비뇽으로 담근 그레이 라벨의 와인을 들었다. 코끝을 스치는 향에서 낯선 허브향이 피어났다. 와인의 맛과 향을 설명하던 안내원에게 그 이유를 묻자 웃음을 터트리며 대답했다. “아, 그게 바로 유칼립투스 향이에요. 호주에는 유칼립투스 나무가 많아서 그 독특한 향이 나는 와인들이 많아요. 유칼립투스 향이 바람에 실려서 오크통에 스며든 건지, 유칼립투스 잎을 즐겨 먹는 코알라가 포도밭에서 ‘뒤처리’를 한 건지 아직도 미스터리입니다.” 바로사밸리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 코스는 호주 와인의 대명사인 펜폴즈(Penfolds) 와이너리 투어다. 펜폴즈는 세계적인 명품 와인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와인 ‘그랜지’를 생산하는 회사다. 독일 혈통의 막스 슈버트는 1948년에 펜폴즈의 수석 와인 메이커가 되자 프랑스 론 지역의 대표 포도 품종인 시라즈를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마침내 51년에 그랜지 에르미타지(Grange Hermitage)를 처음 내놓았지만, 전문가들은 “제정신인 사람은 아무도 마시지 않을 것”이라며 혹평했다. 회사 경영진은 와인 생산 중단을 지시했지만 그는 비밀리에 만들었다. 이 51년산은 지난 2003년 경매에서 5만500호주달러(약 4,200만원)에 낙찰됐다. 95년엔 미국의 와인 잡지 <와인스펙테이터> 가 ‘올해의 와인’으로 90년산 그랜지를 선정했다. 이 그랜지의 성공을 발판삼아 내수시장이 활성화됐던 호주는 매년 10억 달러 이상을 수출하는 와인 강국에 올랐다. 프랑스 포도 품종인 쉬라는 호주에서 시라즈로 통한다. 호주산 시라즈 와인은 초보자가 마시면 그 진하고 달콤한 맛에 매료된다. 펜폴즈에 가면 하루 동안 와인 메이커가 되는 ‘나만의 와인 블렌딩’ 투어가 준비돼 있다. 방문객들에겐 포도 품종 무르베드르·시라즈·그라나시가 주어진다. 이를 가지고 다양한 포도 품종을 맛보고 서로 블렌딩하면서 와인의 매력에 한층 다가갈 수 있다. 국내 대형 할인점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대중적인 와인 ‘제이콥스 크릭(Jacob’s Creek)’ 양조장도 가볼 만하다. 이 와인은 알기 쉬운 라벨과 가격 대비 높은 품질로 영국을 비롯한 해외 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제이콥스 크릭의 방문자 센터에 들어서자 한적한 시골이었지만 방문객들이 많았다. 미국에서 날아온 제이콥스 크릭의 고객부터 일본에서 온 순수 와인 애호가까지 양조장 내 시음장과 레스토랑엔 낯선 이방인들로 북적거렸다.

▶피터리먼의 와인 시음장

통유리로 된 레스토랑 창가에 앉아 창밖 포도밭 풍경을 보며 호주의 대표 품종 시라즈로 만든 와인 한 잔을 마시고 있자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호주 와인 양조장들은 대부분 외지 관광객을 위해 방문자 센터를 꾸며놓았다. 호주 와인의 역사를 담은 전시장부터 와인숍, 레스토랑이 어우러진 방문자 센터를 둘러보고 나면 자신도 모르게 호주의 매력에 빠져들고 만다. 바로사밸리에서 맛볼 수 있는 대표 음식은 캥거루 스테이크다. 슬라이스된 캥거루의 육질은 소고기 못지 않게 부드럽고, 닭고기처럼 담백했다. 캥거루 고기는 한국의 보신탕처럼 호주 내에선 ‘뜨거운 감자’다. 캥거루가 호주를 상징하기 때문에 그 고기를 먹는 것에 대해서 논란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마다 캥거루 수를 유지하기 위해 일부러 도축할 정도이기 때문에 식용으로 하자는 여론이 힘을 얻고 있다. 바로사밸리의 또 다른 와인 명가 피터리먼 와이너리는 ‘품질’ 하나로 승부하는 양조장이다. 영국에서 열리며 와인업계의 올림픽이라 불리는 국제와인대회에서 2003년에 이어 지난해도 우승할 정도. 화이트 와인의 대표 주자로 드라이한 리슬링 와인이 품질 좋기로 유명하다. 피터리먼의 하워드 던컨 수출 담당자는 “지금 전 세계 화이트 와인의 트렌드는 향은 화려하되 맛은 드라이한 와인”이라며 “보통 스위트한 와인에 많이 사용되는 리슬링이나 세미옹 품종을 드라이하게 만들기 시작한 곳이 바로 호주였다”고 말했다. 그는 “호주산 와인은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 와인 만큼 잠재력이 있다. 포도를 재배하기에 알맞은 기후에 와인 제조자들이 발휘하는 실험정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좌) 펜폴즈의 ‘나만의 와인 블렌딩’ (우) 캥거루 스테이크와 와인

바로사밸리에 가면 시라즈 등 레드 와인에 사용되는 포도 품종으로 만들어진 스파클링 와인을 만날 수 있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시도. 이 밖에도 이탈리아나 프랑스의 전통 포도 품종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와인에 대해 항상 연구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호주인들의 노력을 느낄 수 있다. 바로사밸리에서 와인 못지않게 자주 발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유칼립투스 나무다. 국내에선 아로마 향으로 유명한 유칼립투스가 호주에선 국수(國樹)에 가깝다. 이 나무는 아름답지 않은데다 잎에는 독성까지 있다. 더구나 이 나무는 가끔 산불을 내는 촉발제가 돼 가뜩이나 비가 내리지 않는 섬나라가 순식간에 용광로처럼 돼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산불이 나도 자신은 절대 죽지 않는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한다. 그래서 가물고 더운 호주에 그나마 울창한 산림을 형성한다. 유칼립투스는 호주의 상징 코알라도 먹여살린다. 코알라는 유칼립투스의 독성에 면역돼 있어 코알라에게 유칼립투스는 ‘블루오션’이다. 게으르고 예민하기로 유명한 코알라가 호주에서 살아남는 이유다. 바로사밸리를 찾을 때는 와이너리의 게스트 하우스에서 숙박할 수도 있다. 와이너리 게스트 하우스는 호주 현지의 신혼여행객들에게 각광받을 정도로 로맨틱하다. 남호주의 이국적인 풍경을 담은 아델레이드 시내에도 호텔이 많다. 바로사밸리는 멜버른에서 비행기를 타면 한 시간 거리에 있다. 바로사밸리를 찾기 전에 국내에 있는 호주 정부관광청(www. austrailia.com)이나 호주 와인투어 전문여행사인 휘테스 트래블(www.winetour.co.kr)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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