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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소주·오이소주?

레몬소주·오이소주?

젊은 세대가 자주 찾는 술 중 하나가 칵테일 소주다. 레몬소주, 키위소주, 체리소주 등 소주에 과실 원액이나 분말, 탄산음료 등을 타서 만드는 일종의 혼합 소주다. 쓴맛이 없어 특히 여성들에게 인기가 좋다. 대학가나 유흥가 주점의 메뉴판에서 아주 쉽게 접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술은 불법이다. 엄밀히 따지면 주류 제조 허가를 받지 않고 파는 ‘밀주’에 해당된다. 현행법상 이 술을 팔다가 적발되면 행정처분을 받는다. 무면허 주류 제조는 ‘조세범 처벌법’에 의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만원 미만의 벌금에 해당하는 처벌을 받게 된다. 그럼에도 칵테일 소주를 파는 술집 주인도, 마시는 이들도 이 사실을 대부분 모르고 있다. 심지어 관련 감독기관인 국세청과 세무서 공무원들도 명확한 기준을 몰라 헷갈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코노미스트는 6개 서울·지방 세무서에 ‘칵테일 소주를 팔면 처벌을 받느냐’고 물었다. 네 곳은 ‘불법’, 한 곳은 ‘문제없다’, 또 한 곳은 ‘판단하기 어렵다’는 답이 돌아왔다. 서울지역 한 세무서 공무원은 “소주에 다른 원액이나 과실 등을 섞어 팔면 주류 제조에 해당하기 때문에 적발되면 처분을 받는다”고 했다. 반면 경기도 소재 세무서의 주류 담당 공무원은 “혼합 소주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세무서를 관할하는 국세청 입장은 어떨까. 국세청 관계자는 “단속 대상인 것은 맞다”고 했다. 다만 “단속에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칵테일 소주뿐 아니다. 삼계탕 집에서 제공하는 인삼주도 식당에서 담근 술이라면 불법에 해당한다. 돈을 받는 것은 물론 서비스(무료)로 내놓아도 불법이다. 복어요릿집에서 자주 접하는 ‘데운 정종’도 예외가 아니다. 흔히 복어 꼬리를 태운 것을 정종에 섞어 나오는 이 술도 무면허 주류 제조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지방으로 내려가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관광지에서 흔하게 접하는 지역 특산주 중에도 ‘밀주 아닌 밀주’가 허다하다. 충청남도 서천의 유명한 특산주인 ‘한산소곡주’도 마찬가지다. 서천문화원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초 조사해 본 결과 조사대상 1483가구 중 340가구가 소곡주를 빚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하지만 실제로는 60~70%는 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밀주 단속 통계조차 없어 물론 소곡주를 가양주(술을 빚어 판매하지 않고 가정 내에서만 마시는 술)로만 마신다면 처벌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상당수 농가가 이를 관광객 등에게 판매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한산소곡주 제조 면허를 받은 곳은 12곳. 결국 나머지 수백여 가구가 밀주를 만들어 유통·판매하는 ‘밀주업자’라는 얘기다. 면허를 받지 않고 술을 제조해 판매하면 조세포탈법에 근거해 처벌을 받는다. 최근 서천군은 소곡주를 합법적으로 생산·판매하기 위해 생산 농가를 모아 영농법인을 설립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면허는 농림부 장관이 추천해 특허청에서 ‘농민주’로 받을 계획이다. 이 같은 사정은 다른 지역 특산주도 마찬가지다. 안동 소주, 서울 문배주, 경기도 흑미주, 전주 이강주, 괴산 고추술, 진도 홍주 등 유명한 전통술도 제조 면허를 받은 곳은 극히 일부에 불과해 상당수가 불법으로 유통·판매되는 실정이다. 술에 붙는 세금과 제조 면허 등을 규정한 ‘주세법’과 관련 예규에 따르면 ‘주류판매업의 면허를 받은 자가 판매 등의 목적으로 소지한 주류를 당초 주류의 종류·품목·규격·용량 등에 변화를 가져오게 한 행위는 주류의 가공·조작으로 본다’고 돼 있다. 이를 규정한 이유는 ‘안전’과 ‘주세’ 때문이다. 그러나 수많은 주점과 지역에서 허가 없는 주류가 팔리고 소비자들은 무심코 마시고 있다. 법 적용도 모호한 구석이 많다. 가령 소비자가 일식집에서 ‘소주에 오이를 섞어 달라’고 요구할 경우는 처벌을 받지 않는다. 한때 소주와 특정 약주를 반씩 섞은 ‘오십세주’가 유행했을 때 문제가 안 된 것도 고객들이 자발적으로 요구한 경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업주가 메뉴판에 ‘오이소주’, ‘오십세주’를 명시해 판매하면 불법이다. 국세청 측은 “안전상 문제가 미미한 측면도 있고, 분기마다 단속을 벌이지만 행정 지도의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비현실적인 실정법을 그대로 두고, 잠재적인 무면허 제조업자를 방치하는 행태는 ‘단속의 한계’라는 이유만으로 넘어갈 일이 아니다. 칵테일 소주가 시중에 출현한 지 10년이 넘었다. 등산로마다 무면허로 술을 파는 노점이 즐비하다. 면허를 받지 못해 ‘밀주’로 팔리는 지역 특산주는 통계도 잡히지 않는 지경이다. 이쯤 되면 관련 규제를 풀거나 법(주세법)을 개정해야 한다.

▶국세청에 웬 술 연구소?



국세청 vs 농림부 싸움 전문가들은 “이 같은 사례는 국세청이 주류 행정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데서 이유를 찾는다. “규제 기관의 성격인 국세청이 주류 산업을 총괄하다 보니 전통주를 비롯한 우리 술 산업 발전이 막히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세청 입장은 다르다. “충분히 규제를 풀어놨고, 유연하게 주류 행정을 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논란은 주로 국세청과 농림부 사이에서 벌어진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주류행정’을 놓고 양 부처는 10년 넘게 샅바싸움을 하고 있다. 일종의 ‘주권(酒權) 쟁탈’이다. 농림부는 “왜 세금을 걷는 기관인 국세청이 주류 행정을 다 맡고, 술 연구소까지 있나”라는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 술 연구소란 국세청 산하의 ‘기술연구소(옛 주류연구소)’를 말한다. 이곳은 주질 분석과 주조기술 등을 연구하는 기관이다. 서울 마포구 아현동에 위치한 기술연구소의 전신은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 산하의 양조시험장이다. 농림부 산하 농촌진흥청의 한 연구관은 “국세청 기술연구소는 전형적인 일제 잔재”라고까지 말했다. 이에 대해 국세청 S과장은 “술의 원료가 곡물이라는 이유로 농림부가 지속적으로 주류행정을 가져가려고 하는데 세계 대부분 나라에서 주류행정은 국세청이 맡는다”며 “그리고 국세청은 그동안 주류 제조와 관련돼 많은 규제를 풀어놨다. 농림부가 농민주 추천을 남발하는데도 거의 받아줬다. 농림부가 부처 볼륨을 늘리려고 쓸데없이 시비를 걸고 넘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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