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조기진단 체계 확립과 정부 지원이 급선무

조기진단 체계 확립과 정부 지원이 급선무

우리나라 치매환자 수는 알 길이 없다. 가장 최근 자료인 보건복지부가 산학협력단에 연구 용역을 줘 작성한 1998년 통계는 우리나라 치매환자 수가 65세 이상 인구의 8.3%라고 한다. 따라서 2005년 인구 규모 기준으로 알츠하이머 환자는 36만 2000여 명으로 추산되지만 직접 환자를 대하는 의료진은 더 많다고 판단한다. 이은아 서울시립서북병원(노인 폐결핵·치매 전문) 신경과 과장의 말이다. 예컨대 65세 이상 인구 중 30%라고 말하는 의사들이 있지만 10%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이런 숫자에 강한 거부감을 보인다. 우리나라 치매환자 중엔 알츠하이머를 앓는 사람이 가장 많다. 알츠하이머는 치매증상을 유발하는 90여 가지 질병 중 하나다. 알츠하이머는 경증(mild), 중증(moderate), 증등(severe) 순으로 진행된다. 기억력, (시간, 계절 등을 인지하는) 지남력, 판단력과 문제해결 능력, 집안 생활과 취미, 위생이나 몸치장, 사회활동 여섯 항목에 해당하는 증세를 0점에서 5점까지 매겨 그 진행도를 파악한다. 0.5~1점은 알츠하이머가 의심되는 정도며, 1~3점은 중증, 그 이상은 중등으로 판단한다. 대략 0.5점 정도면 가벼운 건망증이 생기고, 이후 언어 장애가 찾아온다. 1점 이상부터 길을 잃거나, 세수나 목욕을 혼자서 못하는 식으로 증상이 차차 심해지며, 2점 이상이면 대소변도 못 가리게 된다. 3점 이상이면 때때로 가족을 못 알아볼 정도로 상태가 나빠진다. 우리나라 베이비붐 세대는 한국전쟁 종료 직후인 1955년부터 가족계획 시행 직후인 63년 사이에 태어난 810만 명의 인구층이 해당된다. 이들이 알츠하이머에 취약한 15년쯤 후가 문제다. 65세 이상 노인에게서 치매가 급증하기 때문이다. 많으면 앞으로 15년 후 240여만 명이 알츠하이머 또는 치매환자가 된다는 얘기다.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한 정부는 치매 대책을 마련하는 중이다. 그러나 그 방향이 ‘요양’에 맞춰져 있다. 일례로 내년부터 시행하겠다고 발표한 ‘노인장기요양보험’은 거동이 불편한 치매환자가 요양시설에서 치료받을 경우 간병인 비용의 80%를 정부가 부담하는 내용이 골자다. 이은아 과장은 “아직도 치매는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에서 요양에 초점을 두는 듯하다”며 “그러나 혼자 몸을 가눌 수 있을 때 미리 병을 진단하고 치료를 통해 병세 악화를 막는 쪽이 환자와 가족에게 나을 뿐 아니라 사회적 비용도 줄이는 길”이라고 말했다. 일본 국립장수병원의 엔도 히데토시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치매를 조기 발견해 진행속도를 2년만 늦춰도 시설에 입소하거나 의료비에 드는 비용의 50%가 줄어든다. 실제로 조기에 치료 가능한 치매도 있다. 5년 전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고모(74)씨는 상태가 크게 호전됐다. 예전엔 신혼인 작은아들 내외 사이에서 잠을 잘 정도로 심술을 부렸다. 하지만 이젠 ‘사고’도 치지 않고, 며느리와 대화를 하며, 챙겨주는 밥도 잘 먹는다. 완전 정상은 아니어도 함께 생활할 정도가 되면서 작은아들 신모(35)씨는 “어머니의 상태가 이제 그렇게 심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고씨는 얼마 전 집에서 며느리가 내놓은 폐휴지를 거둬가는 수집상을 보고 “왜 우리 집 물건을 가져가느냐”며 그를 쫓아 집 밖으로 나갔다가 길을 잃었다. 고씨의 담당인 이 과장은 “고씨의 상태는 중증이지만 아들이 경증이라고 느낄 정도로 병세가 호전됐다”고 말했다. 고씨에겐 알츠하이머로 쭈그러든 뇌를 다시 활성화하는 약물이 투여된다. 담당의는 신씨 내외에게 어머니가 스트레스·영양 부족·흡연·음주와 같은 위험인자에 노출되지 않도록 했다. “알츠하이머를 포함해 조기에 진단하면 치료가 가능한 치매도 있다”고 이 과장은 말했다. 신씨는 “좀 더 빨리 진단을 받지 못해 제일 아쉽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엔 아직 알츠하이머를 포함한 치매 조기진단 체계가 없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안명옥 한나라당 의원은 2005년 국정감사 정책자료집 ‘효과적인 치매관리를 위한 정책과제’에서 60~70세 노인의 경우 가족 중 치매환자가 있거나 고혈압·당뇨에 노출된 사람은 우선적으로 검진받도록 의무화하고, 70세 이상 노인에겐 매년 치매 정기검진을 의무화하자고 제안했다. 이를 위해 보건소 내 치매상담센터 설치를 의무화하고, 지역 병원과 연계해 1차 건강 검진을 받도록 하자고 했다. 그러나 당시는 치매의 정확한 정의를 명시한 법안 내용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안 의원은 2005년 5월 치매의 정의를 명시한 노인복지법 개정안을 제출했고, 지난해 12월 이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제 치매 조기진단 정책을 실행할 법적 근거가 마련된 셈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치매 조기진단을 위한 정책이 제정되지 않았다. 한편 알츠하이머 환자 가족에게 가장 큰 부담은 치료비용이다. 4년 전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이모(56)씨에게 매달 들어가는 비용은 60만~70만원이다. 알츠하이머 중증 환자인 이씨는 서울시립서북병원에선 정기 진료를, 고대병원에선 매주 30분씩 언어치료를 받는다. 지하철 관리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남편 지모(59)씨와 회사원인 작은아들이 받는 한 달 봉급의 30%가 치료비로 쓰인다. 작은아들은 “아버지 연세 때문에 2년 정도 지나면 나 혼자 어머니 치료비를 감당해야 하는데 그 생각을 하면 머리가 아파 온다”고 말했다. 알츠하이머 경증 환자는 정부로부터 약값 보험 적용과,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치매주간보호센터 이용 혜택을 받는다. 그러나 이씨 같은 중증 환자는 이 센터를 이용하지 못한다. 예산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또 경증보다 미미한 알츠하이머 환자의 약은 보험 적용이 안 된다. 더구나 병세가 악화돼 병원에 입원하면 상황은 더 나빠진다. 현재 서울시립서북병원의 치매환자 한 달 입원비는 간병인 비용(약 75만원)을 포함해 120만~150만원이다. 국고지원으로 운영하는 다른 일반 노인치매병원의 입원비는 170만~200만원, 대학병원은 비용이 그 이상으로 껑충 뛴다. 어느 경우든 간병인 비용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정부는 국민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을 대상으로 무료 간병인제를 운영 중이다. 그러나 이씨 같은 저소득층 가족은 간병인 비용을 자비로 충당해야 한다. 알츠하이머를 포함한 치매에 따른 사회적 부담은 점점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이제부터라도 치매가 불치병이 아니라는 인식하에 예방과 치료 확대를 목표로 정부 지원을 늘려야 한다. 조기진단시스템을 구축하는 한편,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치매주간보호센터에서도 중증 알츠하이머 환자의 치료가 가능하도록 예산을 증액하고, 저소득층 가정의 환자가 일반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간병인 비용을 지원하는 방안을 미리 마련해야 한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전세금 못 돌려줘" 전세보증사고 올해만 2조원 육박

2한강 경치 품는다...서울 한강대교에 세계 첫 '교량 호텔' 탄생

3서울 뺑소니 연평균 800건, 강남 일대서 자주 발생한다

4가상세계 속 시간을 탐구하다

5고령화·저출산 지속되면 "2045년 정부부채, GDP 규모 추월"

6해외서 인기 폭발 'K라면'…수출 '월 1억달러' 첫 돌파

7한국의 ‘파나메라’ 어쩌다...“최대 880만원 깎아드립니다”

8치열한 스타트업 인재 영입 경쟁…한국도 대비해야

9G마켓 쇼핑축제 마감 임박..."로보락·에어팟 할인 구매하세요"

실시간 뉴스

1"전세금 못 돌려줘" 전세보증사고 올해만 2조원 육박

2한강 경치 품는다...서울 한강대교에 세계 첫 '교량 호텔' 탄생

3서울 뺑소니 연평균 800건, 강남 일대서 자주 발생한다

4가상세계 속 시간을 탐구하다

5고령화·저출산 지속되면 "2045년 정부부채, GDP 규모 추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