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품 양산하는‘세계의 공장’ 중국
불량품 양산하는‘세계의 공장’ 중국
저가제품 앞세워 이룬 제조업 급성장의 부작용 자국과 세계를 혼란에 빠뜨려 왕하이를 찾는 고객들의 전화 벨소리가 계속 울려댄다. 왕은 경영 컨설턴트이자 중국에서 사기판매, 불량품, 위험상품 퇴치 운동을 벌이는 유명한 사회운동가다. 짝퉁 제품을 적발하고 사기 당한 소비자를 도우며 내부고발자를 보호한다. 내부고발자 중에는 괴롭힘뿐 아니라 더 심한 보복을 당하는 사람도 많다. “믿을 만한 품질 보증 체계가 중국에는 없다”고 10여 년 동안 소비자보호 운동을 해온 왕은 말했다. “아무도 몰래 당국에 사기판매를 신고한 사람이 의문사를 당하기도 한다.” 그런 모든 일 때문에 왕은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지난 몇 달 사이 경악할 만한 제품안전 추문이 잇따라 발생했다. 중국을 뒤흔들고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은 추문들이다. 독성 물질이 든 애완견 사료에서 유해성분이 함유된 치약, 미국의 도로 곳곳에 찢어진 채 널브러진 타이어에 이르기까지 중국산 불량 수출품이 미국 언론에 잇따라 폭로됐다. 이 같은 문제가 드러나면서 중국이 과연 세계의 공장으로서 임무를 수행할 능력이 있느냐는 의문이 심각하게 제기됐다. 지금은 잘 기억이 안 날지도 모르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전문가와 세계 언론은 중국을 보며 연방 탄성을 올렸다. 어쩌면 그렇게 빨리 공산품 수출대국으로 성장해 거의 모든 제품을 빠르고 싸고 품질 좋게(당시의 판단은 그랬다) 만들어내는지 모두 혀를 내둘렀다. 이제 그 이면의 추한 실상이 밝혀졌다. 지속적인 추문이 터져나오면서 기준이 느슨하고 엉망진창인 체계가 드러났다. 급속한 개혁으로 경제 분야에서 정부 권위가 약화된 탓이다. 중국 경제는 일사불란하고 엄격히 통제된다는 일반 인식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이런 사태가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한국과 일본 등 다른 나라들도 수십 년 전 유사한 성장통을 겪었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규모가 다르기 때문에 그만큼 위험도 크다. 중국 제품은 세계 대부분의 시장을 점령했다. 중국 정부가 하루빨리 이미지를 개선해 ‘메이드 인 차이나’를 일류(적어도 믿을 만한) 상표로 만들지 않는다면 소비자가 계속 위험에 노출되면서 중국의 수출주도형 경제 기적이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할지 모른다. 오늘날의 중국은 악덕재벌, 조직폭력, 원시적 자본주의가 판쳤던 100년 전의 미국과 아주 흡사하다. 이제 그때의 미국과 마찬가지로 모호한 규제, 허술한 단속, 만연한 부패, 그리고 소비자 의식부족을 틈타 막강한 기득권층이 이익을 챙긴다. 20세기 초 미국에서는 업튼 싱클레어의 ‘정글(The Jungle)’ 같은 소설의 생생한 묘사에 힘입어 가짜 약과 비위생적인 식품을 향한 국민의 분노가 폭발했다. 이를 계기로 결국 기념비적인 식품의약품품질법이 통과됐다. 중국도 이제 경쟁력을 유지하고 소비자를 보호하려면 비슷한 혁명이 필요하다. 특히 중국 국내에서 시급한 문제다. 수출품 추문도 문제지만 중국 내부 사정이 더 심각하기 때문이다. 내수용품을 생산하는 공장들은 의류, 가전제품 또는 반도체를 만들어 수출하는 공장보다 품질기준이 훨씬 낮다. 저우칭(周勍)은 싱클레어의 ‘정글’에 비견될 만한 사회성 강한 폭로물 ‘중국 식품안전 현장조사(What Kind of God)’를 저술했다. 이 책에서 저우는 머리털이 쭈뼛해지는 이야기를 하나씩 하나씩 풀어놓는다. 남성의 정자수를 감소시키는 첨가물이 들어간 해산물, 비소에 오염된 머리카락을 이발소 바닥에서 쓸어담아 부피를 늘린 간장, 호르몬이 들어간 패스트푸드를 먹고 얼굴에 털이 난 여섯 살짜리 사내아이와 가슴이 커진 일곱 살짜리 여자아이들 등. 책의 근거자료는 풍부했다. 수출품 추문은 처음이지만 중국 국내에서는 그런 문제가 아주 오랫동안 심각했기 때문에 피해자 수도 상당히 많다. 2006년 안후이(安徽)성에선 생산된 가짜 항생제를 복용한 뒤 여섯 명이 사망하고 80명이 이상 증상을 보였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2004년 유해성분이 함유된 분유를 먹은 후 50명 이상의 아기가 숨지고 200명이 심각한 영양실조에 걸렸다. 캔디를 먹은 어린이의 질식사, 인명을 앗아간 불꽃놀이 폭약, 유독성 얼굴 크림에 이르기까지 문제가 없는 제품이 거의 없다. 아시아개발은행(ADB)과 세계보건기구(WHO)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연간 3억 명 이상(미국 전체 인구와 맞먹는 숫자)의 중국인이 식품이 유발하는 질병에 걸린다. 물론 중국 당국은 피해를 줄이려 노력해왔다. 소비제품 추문에 연루된 당국자에게 중형이 선고되기 시작했다. 중국 국가식품약품감독관리국(SFDA)의 정샤오위(鄭篠萸) 초대 국장이 지난 5월 사형 선고를 받았다. 가짜 약품을 승인하는 대가로 뇌물을 받은 죄다. 미국에서 16마리 이상의 애완견 사망과 관련된 멜라민 공장의 고위 관계자들도 구속됐다. 지난주 미국에 수출하는 양식 메기가 논에서 흘러든 농약과 약품을 먹고 자란다는 기사가 미국 언론에 보도되는 시점에 중국 당국은 올해 초 실시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수출 식품 중 표준에 미달하거나 오염된 제품은 1%에도 못 미친다는 내용이었다(내수용 제품은 20%). 하지만 과거의 미국처럼 중국도 대대적인 개혁작업을 시작했다고 결론짓기는 아직 시기상조다. 중국의 정치는 미국과 다르며 위험이 따른다는 점도 한 가지 이유다. 올해 초 저우칭이 ‘중국식품안전현장조사’를 출간할 때 국영 출판사는 내용을 대폭 손질하고 책의 배포와 홍보도 거의 하지 않았다. 물론 싱클레어의 책처럼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여론의 반응을 최대한 억제하려는 목적이었다. 당초 그 책은 정치국원들의 호평을 받았지만 1980년대 반체제 활동을 한 그의 이력 때문에 그 후 책의 의미를 평가절하하려는 노력이 뒤따랐다고 저우는 주장했다. 저우는 1989년 천안문 민주시위 이후 3년 가까이 징역을 살았다. 사실 중국에서 저우 같은 고발자는 아직도 조심해야 한다. 특히 지역 권력자의 이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경우에는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 왕하이의 고객인 장쑤(江蘇)성의 정치는 자기 회사를 고발했다가 쓰라린 체험을 통해 그 교훈을 얻었다. 육군병원에서 품질관리기사 교육을 받은 그는 2004년 우시(無錫) 부근 펭야오 제약회사가 가짜 알약을 아프리카에 수출한다고 당국에 신고했다. (정은 전에 그 공장에서 일했지만 1990년대 비슷한 사건을 폭로하려다 해고됐다. 그는 자신의 안전이 우려된다며 익명을 요구했다.) 정에 따르면 공장 측은 그 약이 말라리아 등 곤충을 매개로 한 질병을 막아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거짓말이며 그 약을 복용한 아프리카인들이 숨졌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신고 직후 정은 괴롭힘을 당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허위 번호판을 단 자동차에 치이기도 했지만 아직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어디를 가든 미행과 감시를 당한다. 자동차 사고도 고의였다”고 그는 말했다. 정은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은 장궈칭 공장장이며 그가 지역의 당이나 행정 관리들과의 연줄을 동원해 보호막을 치고 공장 영업을 계속한다고 주장한다(장은 그런 주장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중국 정부가 내부 비판은 쉽게 억눌렀을지 몰라도 국제적인 경제 압력에 저항하기는 쉽지 않다. 불량 수출품을 둘러싼 망신과 논란(기침약에 첨가된 디에틸렌 글리콜 때문에 2006년 7월 이후 파나마인 93명 이상이 숨진 일 등)을 계기로 몇몇 중국 당국자가 다른 관료들에게 대책을 마련하라고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중국 지도부가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지렛대 삼아 국내 경제개혁을 추진했듯이 [이번의] 국제적인 압력을 이용해 공중보건과 식품안전 문제 개선에 착수할 듯하다”고 앨버타 대학의 중국학자 웬란 장은 말했다. 저술가 저우칭은 지난 5월 정샤오위 전 SFDA 국장이 사형선고를 받은 이유가 “미국의 애완견과 파나마의 기침약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지방정부에 미치는 중앙정부의 영향력이 예전만 못하기 때문에 개혁작업이 훨씬 더 어려워졌다. “베이징 정부가 중국 전체를 효과적으로 통제하지 못한다는 조짐이 뚜렷하게 나타난다”고 장은 말했다. “특히 수백만의 민간기업이 생사의 경쟁을 벌이는 시장경제에는 정부의 말발이 거의 먹히지 않는다.” 30년 전에는 중국의 대형 제조업체가 모두 국유기업이었기 때문에 정부의 품질통제가 가능했다. 그러나 이제 예전의 국유기업들을 포함해 많은 제조업체가 규제가 허술한 민간부문으로 빠져나갔다. 이런 대기업은 그들의 감시 역할을 맡은 지역 당국자들로부터 종종 특혜를 받는다. 그리고 기업들은 통상적으로 현지 경찰에 뇌물을 제공하고 심지어 경찰관에게 개별적으로 봉급을 주기도 한다. 규제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유럽연합(EU) 방식의 식품기본법을 채택하고 중복되는 법규와 분야를 정리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은 아직도 기관마다 공표하고 따르는 지침이 다 다르다. 중국은 또 품질결함을 기록하는 적당한 체계가 없다. 따라서 훗날 당국자가 기준 위반 사실을 몰랐다고 발뺌하기가 쉽다. 컨설팅 회사 AT커니의 장빙에 따르면 제품이 일단 유통된 뒤에는 결함의 원인을 추적할 방법이 거의 없다. 그런 품질관리 체계가 없기 때문에 불량이 많이 발생하고 그에 따라 고도의 산업생산 분야에서 독일·일본 같은 나라들과 곧 대등한 위치에서 경쟁할 경제강국이라는 중국의 이미지가 나빠진다. 중국의 고급 수출품은 한국이나 대만 제품 수준에 더 가깝다고 오하이오 주립대학 피셔 경영대학원의 오데드 솅카 교수는 말했다. 쉽게 말해 멕시코와 일본의 중간 수준이라는 말이다. 중국 정부는 경제성장을 계속하려면 품질개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최근 미국의 중국산 불량 타이어 회수 조치는 그런 문제가 앞으로 더 많이 발생할 가능성을 말해준다. 그렇게 되면 중국 브랜드의 이미지가 더 퇴색하면서 해외시장 확대의 야심도 꺾이게 된다. 예컨대 중국의 자동차 제조사 체리 자동차(奇瑞 汽車)는 크라이슬러와 손잡고 1년 이내에 소형차와 준소형차의 미국 수출을 시작할 계획이다. 그러나 미국시장에서의 추문이 치명타가 될지도 모른다. 길리(吉利) 같은 다른 중국 자동차 제조사는 이미 서구 수출계획을 연기했다. 안전과 성능기준을 따르기가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다. 중국산 랜드윈드 SUV는 최근 독일의 한 자동차 클럽으로부터 충돌시 안전평가에서 20년래 최악의 등급을 받았다. 진짜 문제는 중국 관료집단의 체제 일부가 국내 품질수준에 너무 익숙해져 그런 불량품이 유럽·미국·일본에서 자신들의 평판에 얼마나 큰 피해를 주는지 아직도 깨닫지 못한다는 점일지도 모른다. 엄격한 소비자 중심 사회의 사고방식이 아직 뿌리내리지 못했다. 지난 6월 말 워싱턴 DC에서 중·미 전략협상이 열렸을 때 미국 당국자들이 제품안전 문제를 제기하자 중국 대표단은 허를 찔린 듯 다음 협상 때까지 논의를 연기하자고 요청했다. 다행스러운 점은 과거를 돌이켜 볼 때 중국 정부는 일단 마음을 정하면 추진 속도가 빠르다는 점이다. 아시아의 다른 많은 국가도 초기 성장단계에서 비슷한 애로를 겪었다. 대만도 한때 제품이 조잡하다는 평가를 받다가 나중에 품질을 개선했다고 메릴린치 홍콩 지사의 첨단기술 분석가 댄 헤일러는 돌이켰다. “처음에는 남의 기술을 모방한 제품으로 짭짤한 수출 수입을 올린다”고 헤일러는 설명했다. 학습곡선의 다음 단계는 “공정과 비용을 줄여 수익을 올리자”는 방향으로 간다. “그러나 그 방법은 먹히지 않는다. 학습곡선의 다음 단계는 품질보증이다. 이제 중국이 이 지점에 이르렀다.” 아시아의 다른 선두주자들처럼 중국 기업들도 앞으로 강력한 절대명제에 직면하게 된다. 안전과 품질 수준을 높이지 않으면 해외 시장에서 밀려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중국 기업들은 법과 규제가 강력한 나라의 기업들보다 적응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지도 모른다. 중국이 크고 이미 세계화된 나라이기 때문에 더욱 걱정스럽다. 예컨대 중국의 도로망이 급속히 확대되면서 물자와 자동차의 동서 간 이동이 훨씬 수월해졌다. “새로 생긴 그 많은 도로의 끝에 위치한 모든 농어민이 갑자기 중국의 다른 지역 그리고 더 나아가 다른 세계로 연결됐다”고 워싱턴 DC 닉슨 센터의 드루 톰슨 중국학 연구팀장은 말했다. “그러나 그 농어민을 모두 국제표준으로 끌어올리는 일은 극히 어렵다.” 그러려면 먼저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는 싱클레어 같은 비판론자들을 억누르지 말고 냉철한 눈으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With JONATHAN ADAMS and JONATHAN ANSFIELD in Beij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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