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 기자의 공개 못한 취재수첩] “박병재 부회장이 살려내십시오”
[이호 기자의 공개 못한 취재수첩] “박병재 부회장이 살려내십시오”
▶영창악기 박병재 대표이사 부회장은 2006년 5월, 영창 인수식을 마치고 취재진의 요청으로 영창피아노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
1947년, 광복을 맞이하고서도 2년여가 흐를 동안 한국의 산업은 불모지 그 자체였고, 보다 못한 재일교포 기업인들이 일본에서 경제단체를 결성하고 조국의 산업 발전을 위해 발 벗고 나섰던 모태가 ‘재일경제인동우회’였다. 그 후 근 반세기, 한국은 무역 대국으로 부상했고 국경 없는 시장에서 경이롭게도 조선과 반도체는 세계 최고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을 정도가 됐다. 그럼에도 세계적인 석학들이 한국을 ‘불균형의 나라’로 보고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들은 빈부의 격차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었다. 산업화를 얘기하는 것이었다. 조금 지난 이야기지만 2001년 6월,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에서도 유사한 비판이 나왔다. ‘한국의 산업은 균형을 발견하기 어렵다’는 것이 그것이었다. 그렇다면 불균형의 나라로 비친 까닭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는가. 어쩌면 그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한국의 ‘문화산업 빈곤’을 보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국가정책의 불균형이 빚어낸 결과이든 기업을 경영하는 경제주체들의 무관심 때문이든, 결과는 문화산업 빈곤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도 올해 연두기자회견에서 문화 콘텐트 개발과 수출을 중점적으로 지원하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 점에서, 정치적인 손익계산으로 그림 몇 점은 사줄망정 문화예술 산업에 투자하기를 꺼리는 것이 재계의 솔직한 분위기였다는 점에서,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건설회사가 쓰러져가는 악기회사를 인수한다고 했을 때, 업계의 반응은 의외였고 국민은 신선하게 받아들인 것이 사실이었다. 2006년 5월 현대산업개발이 영창악기를 인수했을 때였다. 뒤에 인수 배경이 담긴 인터뷰 내용을 소개하겠지만 사실 인천에 본사를 두고 중국에 대규모 생산기지를 갖추고 있는 영창악기는 삼익악기보다 2년 앞선 1956년 11월 설립됐다. 한때 피아노만으로 국내시장 70%를 장악했을 정도로 브랜드 가치와 제품으로서의 명성을 한껏 자랑했던 국내 최초이면서 최대의 악기 제조업체였다. 그러나 5000년 민족 역사가 세계 최강이 아니듯 최초라는 기업 역사가 자랑스러울 것은 하나도 없는 영창으로 전락했고, 역사가 지닌 우월성보다는 오히려 붉은 머리띠와 살벌한 구호가 영창의 대명사처럼 국민의 기억에 남아 있다. 87년 6·29 선언이 나온 이후 영창악기는 인천의 기업군 노조를 대표한다고 할 만큼 극심한 노사분규의 선봉장이 되어 죽음도 불사한다면서 기세를 떨쳤다. 그 당시까지 영창은 세계적인 피아노 국제 품질상을 받기도 했고 1000만 달러 수출탑과 석탑산업훈장을 수훈한 유일한 악기회사이기도 했지만 그들에게 과거의 영광은 이미 사주(社主)를 위한 것이었을 뿐 자신들에게는 착취당한 결과물의 훈장이요, 수출탑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영창악기만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벌써 85년 4월부터 산업현장을 뒤흔든 대표적인 노동쟁의가 인천에서 발생했고 삼익악기, 대우자동차, 대우중공업, 경동산업 등에서도 불길이 타올랐다. 6·29 선언 이후에는 더 극심해 인천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보면 불과 석 달 사이에만 3311건의 쟁의가 발생했다. 그런데 한편에서 보면 그들의 주장이 명분이나 일리가 전혀 없는 것만은 아니었다. 경제성장률이 85년 5.4%에서 86년에는 12.5%를 기록했고 국제수지도 47억 달러나 흑자를 냈는데 노동자들은 여전히 ‘선 성장·후 분배’라는 장밋빛 정책 속에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열악한 환경과 높은 산재율에 시달렸으니 소위 ‘노동자 투쟁’ 선언이 일방적이었다고 몰아붙일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그렇더라도 영창악기의 노사분규 결과는 불행이었다. 붉은 구호를 써 붙이고 민주화가 살길이라고 핏발이 서도록 외치면서 87년 9월에는 노조가 사장을 드럼통에 넣어 굴렸다(당시 노조는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는 국회 증언과 언론 보도가 나올 만큼 심각한 사회문제까지 일으켰고, 그 후에도 중국 피아노 반입 문제와 전체 노동자 45% 정리해고 등에 반발해 끊임없이 분규의 꼬리를 이어감으로써 강성노조의 표본처럼 인식되기도 했지만 그들에게 보이는 것은 쇠퇴의 길이었고 기다리는 것은 법정관리뿐이었다. 울산에서도 현대중공업, 현대자동차가 노사분규로 극심한 몸살을 앓았으나 그들과는 결과가 판이하게 달랐던 것이다.
87년 노사분규로 사라질 위기 결국 삼익악기와 함께 한국의 양대 악기제조회사 중 하나로 꼽혀왔던 영창악기는 노사분규와 경영 실패 등으로 50년간의 창업 역사를 마지막으로 이 땅에서 사라질 위기를 맞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했던 영창이 사라지지 않았다. 자타가 인정하는 피아노 제조기술을 비롯해 시장의 욕구에 부흥하는 전자악기 기술력이 그들에게 있었다는 것도 생명수 역할을 했겠지만 무엇보다 행운은 현대산업개발이라는 백기사의 등장이었다. 2006년 5월, 영창악기 인수 계약서에 서명하던 그날, 인수단장이면서 사실상 영창악기를 회생시켜야 하는 힘든 과제를 안은 박병재 대표이사 부회장을 현대산업개발 본사에서 만났다. 영창악기 인수계약 서명식을 끝낸 직후였다. 박 부회장은 재계에서도 낯선 인물은 아니었다. 인지도가 높다 보니 DJ 정권 시절 정계에 입문하라는 강요에 못 이겨 총선에서 지역구 공천을 받았다가 포기하기도 했지만 그는 68년 현대자동차에 입사한 이후 현대·기아차 부회장까지 지낸 인물이었다. 그의 이력은 자동차와 인연을 끊고 현대정보기술 회장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재무 분야를 제외하고는 개발에서부터 판매와 해외공장 운영까지 거치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할 정도로 화려해서 ‘기업백화점 경영자’라는 닉네임이 붙어 있을 정도였다. 최근에는 대선을 앞두고 ‘다스’(전 대부기공)가 BBK사건과 함께 관심의 중심으로 부상했지만 92년 대선 때 ‘대부기공’ 문제를 놓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이명박 전 현대건설회장 사이에서 가장 심한 고초를 겪은 사람이 박 부회장이기도 했다. 영창악기와 관련이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깊은 내용까지는 들어가지 않겠지만 한마디로 없어지게 된 대부기공을 끝까지 지킨 인물이 박 부회장이었던 것이다. -현대산업개발이 인수금액 286억5000만원을 법정 기일에 납입하게 되면 새로운 영창악기의 CEO로 박 회장(전 직함으로 인터뷰했다)님을 임명한다고 했습니다. 임명장은 받았습니까. “인수단장 임명장만 받은 거지요. 정리 채권 납입일이 아직 안 됐으니까. 이런 말씀은 하시두만요. 정몽규 회장님이 영창악기 문제로 저를 보자고 불렀을 때 회장님하고 얘기가 끝나니까 이방주 사장(현대산업개발)을 불러요. 그러더니 ‘됐어요. 박 부회장님(자동차에 있을 때 직함이다)이 맡기로 했습니다.’ 그래요. 그건 사전에 회장님이 이 사장하고도 누구한테 경영을 맡길지 의견을 많이 나누셨다는 얘기겠지요.” 2006년 6월 현대산업은 인수금액 납입을 완료하고 곧바로 박 부회장을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임명했다.
-영창악기라고 하면 지긋지긋한 회사 아니었습니까. 현대자동차도 노사분규 때문에 머리가 터질 정도로 악몽 같은 경험을 하셨는데 어떻게 현대산업에서 영창을 생각하게 됐는지 정몽규 회장을 아는 사람이라면 전부 의아하게 생각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요? 근데 분명한 게 있어요. 정몽규 회장님이나 나나 어제까지의 영창은 생각 안 해요. 몰라요. 알 필요도 없어요.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정말 태산 같은데 어제의 영창악기가 어떻게 했다, 그거 생각할 여유가 있겠어요? 물론 기업 이미지는 절대적으로 중요한데 국민이 불행했던 과거에 대해 좋지 않은 기억을 하고 있다면 빨리 불식시키고 정말 완전히 새로운 인식을 가지도록 해드려야 되겠지요. 그러기 위해서도 할 일이 태산 같다는 겁니다. 그러고 우리 현산(현대산업개발)이 인수하기 전까지 영창으로서도 뒤늦은 감은 있지만 노사가 새로운 인식을 가지고 기업 회생을 위해 다각도의 노력은 했습디다. 비록 피아노 시장에서 독과점 폐해가 우려된다는 공정거래위원회의 판단 때문에 제동이 걸려 무산되긴 했지만 삼익악기하고 M&A를 해서 합병까지 해보려고 열의를 다했잖아요?”
▶영창악기 본사 인천공장. 대규모 생산공장은 중국 톈진에 있다. |
정세영 회장 1주기 때 인수식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제동을 걸지 않았으면 회생할 수 있었던 기업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게 질문하면 내가 어떻게 대답해요. 물론 질문의 의도는 알겠는데 이제부터는 어제의 영창으로 보시면 안 된다니까…. 우리가 맥이 빠지잖아요. 물론 600%가 넘는 높은 부채비율에다 파업과 누적된 피로감, 그리고 최악의 불황까지 겹쳐 독자적인 경영이 도저히 불가능하니까 법정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겠지요. 그러니까 우리가 나서서 인수를 한 거고. 근데 정말이지 이젠 미래를 봐줘야 해요. 이건 아주 중요하다고. 어제까지는 다 덮어주고 이제부터 시작하는 걸음마 회사라고 생각해서 격려와 힘을 넣어줘야 해요.” 인수 첫날에 과거의 영창으로 회귀하는 기억을 해달라고 요청하는 것도 도리는 아니다 싶었다. 화제를 돌렸다.
-현대산업이 영창악기를 인수한다는 것은 언제 아셨습니까? “그게 나중에는 언론에도 보도가 됐지만 나한테는 지난 2월 26일(2006년) 오전 9시30분쯤에 직접 몽규 회장님이 전화를 주셨더군요. 그 시간에 직접 전화를 하셨다는 건 뭔가 중대한 문제가 있다는 거거든요? 자동차에서 모시고 있었으니까 잘 알잖아요. 조금 긴장을 했는데 지금도 현대정보기술에 있느냐고 물어요. 아니라고. 그럼 잘됐으니 곧바로 만나자고 해서 찾아뵈니까 영창악기 말씀을 하십디다. 그때 처음 알았지요.”
-현대산업에서 영창악기가 웬말인가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까? “그 얘기를 다 하자면 길지만 내가 그런 의문을 가지는 건 잠깐이고 말씀을 들어보니 여러 가지로 정말 많은 고민을 하셨습디다. 뒤에 질문이 있으면 기억나는 대로 얘기를 하겠지만 왜 악기회사를 인수하는가, 악기회사를 인수하게 될 때 여러 가지 신경 써야 하는 문제에서부터 누구한테 맡겨야 되나 하는 문제까지, 명예회장님(정세영)이라도 계셨으면 저렇게까지 고민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이 고민을 하셨어요. 아마 사모님(정세영 명예회장의 부인)도 조언을 해주신 것 같아요. 그리고 우선협상 대상자 공표가 2월 28일 나오고 언론에는 3월 2일자로 실렸는데 재계에서도 의아했겠지만 현대가의 어른들과 집안에서는 얼마나 예민하게 봤겠어요. 거기까지도 몽규 회장님이 인수 전에 생각을 안 할 수 없었을 테니 얼마나 고민을 했겠어요. 평소 별로 설명이 없고 말수도 적은 분이지만 눈에 보이더라고. 더 이상 내가 드릴 말씀이 없겠더라니까요? 그러니 말씀을 다 듣고는 영창악기를 내가 최대의 열정을 쏟아 넣어 마지막 작품으로 키워 보겠다는 말만 하고 물러나왔지요.”
-영창악기라면 국내 최대의 악기회사였고, 법정관리였지만 질곡에서 헤어나게 된 셈이고, 더구나 현대산업개발이라는 최우수 기업이 인수하는 데다 범현대가에서 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사회적인 관심이 집중될 테마가 되는데, 왜 언론 취재도 차단시킨 채 인수식을 공개적이고 화려하게 하지 않았습니까? “언론을 차단한 건 아니에요. 생각해 보세요. 명예회장님(정세영) 1주기가 어제(5월 21일)였고, 장자인 몽구 회장께서 저렇게(구속) 돼 있는데 동네방네 소문 내고 북적거리며 잔치 기분 낼 상황이에요? 잔치 거리도 아니지만. 내가 조용히 격식만 차려서 하자고 했어요. 그래서 현대 친인척들은 하나도 안 불렀고 서명식에는 정몽규 회장, 이방주 사장, 리딩투자증권 박대혁 사장, 우리은행이 주거래니까 문동성 부행장, 그리고 영창악기 이호석 사장하고 영창악기 국내외 대리점 대표들을 포함해 20여 명만 참석했던 겁니다.” 그러나 현대산업이 브랜드 인지도에서 국내 최고의 위치에 올라있는 건설회사로서 어떻게 생소한 악기회사를 인수하게 됐는지 그 배경은 궁금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다. <계속>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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