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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 망령 지구촌 덮치나

인플레 망령 지구촌 덮치나

중국 경제의 경기 사이클을 설명하는 용어로 ‘활(活)-난(亂)사이클’이라는 게 있다. 경기가 살아난다(活) 싶으면 곧 과잉성장으로 이어져 혼란(亂)에 빠지고, 혼란하면 곧 정부의 강력한 긴축(收)정책이 뒤따른다. 긴축정책 실시로 경기가 죽고(死), 경기가 죽으면 부양책(放)이 이어지고, 부양책을 실시하면 또다시 살아난다(活)는 논리다. ‘活-亂-收-死-放-活’의 사이클이다. 중국을 빼놓고는 세계 경제를 논할 수 없을 만큼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중국의 비중은 높아졌다. 중국발(發) 인플레가 세계 각국의 소비자를 위협하고 있는 게 단적인 예다. 우리가 지금 ‘활-난의 중국 경제’에 관심을 갖는 것도 그 때문이다.

◇중국 거리 배회하는 인플레 망령= 최근 중국 충칭(重慶)의 한 까르푸 매장에서 시민 3명이 죽고, 31명이 병원에 실려가는 압사사고가 발생했다. 식용유가 화근이었다. 까르푸는 당시 개점 10주년 특판 행사로 식용유 가격을 20% 싸게 판매한다고 고시했다. 개장과 함께 쇼핑객들이 식용유 매장으로 달려들었고, 그 과정에서 압사사고가 터졌다. 비슷한 사고는 상하이 푸둥(浦東)에서도 벌어졌다. 이곳에 자리 잡고 있는 할인매장 테스코는 사은행사로 식용유 3000병을 절반 가격에 판매했다. 수백 명의 시민이 식용유를 사기 위해 몰려드는 바람에 19명이 병원에 실려가야 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건은 중국의 인플레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중국 언론은 전하고 있다. 중국 식용유 가격은 요즘 하루가 다르게 뛰고 있다. 작년 40%가량 오른 데 이어 올 들어서도 50% 이상 올랐다. 식용유 가격이 급등하자 평범한 고객 사은행사에 쇼핑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좀 더 싼 가격에 식용유를 사두겠다는 심산이다. 지난 수 년 동안 안정세를 유지해왔던 중국 물가에 경고등이 켜진 것은 지난해 말이다. 1%선에 머무르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작년 12월 2%선으로 뛰어오르더니 올 3월에는 정부의 저지선인 3%를 훌쩍 넘어버렸다. 이후 6월에 4%선, 7월 5%선 돌파 행진을 이어가더니 급기야 8월에는 6%선마저 무너졌다. 지난 10월 CPI는 6.5%가 올라 1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로써 올 들어 10월까지 CPI 상승률은 4.4%에 달해 중국 정부의 3% 억제 방침을 무색케 했다. 돼지가 문제였다. 작년 여름 양쯔(揚子)강 유역에서 발병된 돼지 청이(靑耳)병이 전국적으로 확대, 돼지고기 공급이 급감하면서 물가가 오르기 시작했다. 예부터 돼지고기는 ‘주량안천하(猪粮安天下·돼지고기와 양식이 천하를 편안하게 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국인에게 중요한 식품이었다. 지난 13일 국가통계국이 발표한 10월 CPI에서도 돼지고기 값은 전년 동기 대비 무려 54.9%나 폭등했다.

◇돼지가 문제다?= 중국의 일부 관변학자는 ‘별로 문제될 게 없다’고 말한다. 돼지고기 등 식품가격만 잡으면 인플레는 잡힐 것이라는 주장이다. 국가통계국 경제분석가인 야오징위안(姚景源)은 “지난 10월 식품을 제외한 CPI는 약 1.1% 오르는 데 그쳤다”며 “공산품 가격은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중국 경제가 본격적인 인플레 국면으로 접어들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중국 국내외 금융시장 전문가들의 분석은 다르다. 돼지고기 파동은 인플레를 촉발시키는 역할을 했을 뿐, 인플레의 실질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는 주장이다. 그들이 지적한 실제 인플레 이유는 ‘유동성’이다. 블룸버그의 유명 칼럼니스트인 앤디 무커지는 “무역흑자로 매달 200억 달러가 넘는 돈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고, 은행자금은 지금 이 시간에도 주식시장·부동산시장 등으로 빠져나가고 있다”며 “혹 돼지고기값이 안정되더라도 임금과 서비스 가격 상승을 막기 어려울 것이며, 그 배후에는 막대한 유동성이 도사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통계는 그의 분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올 들어 10개월 동안 중국의 무역흑자는 2123억6000만 달러에 달했다. 일단 중국으로 들어온 달러는 중국인민은행(중앙은행)으로 모아지고, 다시 인민폐(人民幣)로 환전돼 시장에 풀린다. 통화량이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실제 은행금리는 마이너스다. 현재 1년 만기 예금금리는 3.87%로 물가상승률(4.4%)을 밑돌고 있다. 당연히 은행에서 돈이 빠져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은행에서 이탈한 자금은 대거 주식시장으로 몰려들어 증시를 달구고 있다. 문제는 식료품에서 시작된 인플레가 공산품, 원자재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달 중국의 생산자물가지수(PPI)는 3.2%로 최근 9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랐다. 중국 선인(申銀)증권연구소의 리후이융(李慧勇)연구원은 “지난 7월 이후 PPI가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는 것은 인플레가 산업 전반으로 퍼져가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라며 “게다가 국제유가 및 원자재 급등도 중국 물가에 부담을 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활(活)-난(亂) 파동’에 빠져드나= 중국 경제는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세 차례의 인플레 시기를 겪었다. 1985년, 1988~1989년, 1993~1995년 등이다(도표 참조). 당시 중국 경제는 인플레를 잡기 위해 강력한 긴축정책을 실시했고, 이로 인해 경제는 성장률이 급락하는 등 타격을 받아야 했다. 경제가 과열조짐을 보이는 등 혼란(亂)해지면 긴축정책(收)을 실시하고, 그 여파로 경제가 죽는다(死)는 사이클을 탄 것이다. 특히 두 번째 인플레 시기에 중국 공산당은 정치적 위기를 겪어야 했다. 89년 발생한 천안문(天安門) 사태가 그것이다. 베이징 대학에서 시작된 민주화 시위가 순식간에 전국적으로 확산된 데는 인플레가 도사리고 있었다. 당시 물가는 18% 안팎까지 급등했다. 물가 폭등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이 대거 시위에 참여, 시위가 커진 것이다. 세 번째 인플레 시기(1993~1995년) 이후 중국 경제는 고성장-저물가라는 ‘비(非)정상적’ 안정세를 보여왔다. 그러나 2001년 들어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투자가 문제였다. 지방정부가 정치적 업적을 늘리기 위해 무리한 투자에 나서면서 투자 붐이 일었다. 고정자산투자 증가율이 2001년 12.1%를 기록하더니 2003년에는 26%를 넘어섰다. 이 같은 상황에서 부동산·주식시장이 과열로 치닫고 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인플레가 닥친 것이다. 중국 금융당국은 긴장하는 빛이 역력하다. 인플레를 잡지 못할 경우 지난 89년 천안문 사태를 낳게 한 사회불안이 야기될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다. 중국인민은행은 올 들어 은행지준율을 아홉 번 올렸고, 금리도 다섯 번이나 인상했다. 문제는 이 같은 긴축조치가 제대로 먹혀들어가지 않는다는 데 있다. 강력한 긴축조치에도 불구하고 올 들어 9개월 동안 고정자산투자증가율은 25.7%를 기록, 과잉투자가 식지 않고 있다. 경제성장률은 11.5%에 달해 중국 정부가 설정한 적정성장률(8%)을 5년째 웃돌고 있다. 중국 칭화(淸華)대학 중국·세계경제연구센터의 리다오쿠이(李稻葵) 교수는 “중국 경제의 특징이었던 ‘고성장-저임금-저인플레’구조가 깨지고 있다”며 “저우 행장도 중국 경제가 고성장-고인플레 시기로 진입하는 것을 막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발 인플레 현실화되나= 중국은 그동안 세계의 물가안정을 지탱하는 힘이었다. ‘세계의 공장’ 중국에서 만들어진 싸구려 제품은 세계 각국의 할인매장을 장악한 지 오래다. 중국의 인플레는 이 구조를 깨뜨릴 요소다. ‘메이드인 차이나’ 제품의 수출가격을 높이게 되고, 이는 세계적인 물가인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카네기재단의 알버트 카이델 연구원은 “중국의 일부 수출품 가격이 오르고 있다”며 “머지않아 세계는 중국 제품이 주는 물가안정 혜택을 누릴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위안(元)화 평가절상이 중국 제품의 수출가격을 높이고 있다. 중국은 최근 위안화 절상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의 압력을 피해 보겠다는 뜻도 있지만, 위안화 평가절상을 통해 인플레를 잡아보자는 취지가 강하다. 카이델 연구원은 “미국 등 선진국은 중국 제품을 대체할 만한 소비품을 다른 나라에서 찾기 어렵다”며 “위안화 평가절상은 중국 제품의 수출가격을 높여 결국 세계적인 물가인상을 부채질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제 원자재값 폭등 뒤에도 중국이 있다. 중국은 세계 원유 소비의 약 9%, 철강 수요의 약 25%, 시멘트의 40%를 먹어 치우고 있다. 중국은 곡물가격 안정을 위해 밀, 옥수수 등 곡물 수입을 크게 늘리고 있다. 중국의 등장으로 국제 원자재 가격이 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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