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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준엽의 그림읽기] 섬세한 세련미와 품격 높은 멋

[전준엽의 그림읽기] 섬세한 세련미와 품격 높은 멋

그리 크지 않고 갸름한 눈, 높지 않은 작은 코, 조그맣고 얇은 입술, 반듯한 이마, 통통하고 둥근 얼굴, 좁은 어깨, 7등신 정도의 몸매. 지금 여러분은 200여 년 전 우리나라 미인을 만나고 있다. 오늘날 길거리에서 마주친다면 그다지 눈길이 가지 않을 평범한 모습이다. 더구나 청담동이나 압구정동 같은 첨단 패션의 거리에서 만난다면 다소 촌스럽게 보일 외모다. 조선 후기 인물화 분야에서 걸출한 기량을 보여준 신윤복(1758~?)의 ‘미인도’다. 신윤복은 김홍도와 함께 시대의 숨결이 생생하게 담긴 활력 있는 풍속화를 개척해 우리 미술 아름다움의 울타리를 넓힌 화가다. 특히 그는 조선시대 여성의 아름다움을 가장 많이 그린 화가다. 또 남녀의 사랑이나 풍류를 주제로 과감한 표현과 혁신적인 화풍을 확립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아직까지는 미미하다는 것이 안타깝다. 미인의 모습은 그 시대 아름다움의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래서 동서고금의 예술가들은 미인을 작품의 주제로 기꺼이 선택하는 것이다. 오늘날은 서구인 취향에 맞게 다듬어진 미의 기준이 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어서 커다란 눈, 날 선 높은 코, 크고 두툼한 입술, 작고 뾰족한 얼굴, S라인의 8등신 몸매를 갖추고 있어야 미인으로 대접받는다. 심지어 머리나 눈동자의 색깔까지도 서구인처럼 바꾸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일 정도다. 이런 기준으로 이 그림의 여인을 보면 ‘미인도’가 아니라 ‘보통녀’라고 제목을 바꿔 달아야 할 판이다. 하지만 이 그림의 미인은 우리가 버린 순수한 우리의 아름다움이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가 찾아서 다시 세워야 할 아름다움의 모범이 될 수 있는 소중한 그림이다. 스무 살도 되지 않을 듯 보이는 앳된 얼굴의 이 여인은 당시 유행의 첨단을 달리는 치장을 하고 있다. ‘트레 머리’로 불리는 가발의 크기도 적당해 보이며 옅은 화장을 한 얼굴에서는 청순함이 엿보인다. 타이트한(꼭 끼는) 저고리는 지금 입는다 해도 디자인에서 결코 뒤처지지 않을 듯 세련돼 보인다. 동정 옆과 겨드랑이 부분의 검은색, 자색이나 노리개의 청홍색이 아기자기하게 어우러지고 있다.


바로잡습니다
지난호에 소개한 세한도는 위의 그림임을 알려드립니다.
폭이 좁은 소매와 짧은 저고리 선이 매혹적으로 보인다. 이에 비해 유려한 선으로 처리한 치마는 풍성하고 여유 있는 멋을 풍기고 있다. 배꼽티처럼 짧고 착 달라붙는 저고리에 풍성한 항아리 모양의 긴 치마는 200여 년 전 유행했던 여인네의 아방가르드 패션인 것이다. 다소곳이 숙인 얼굴에 왼쪽 발을 살짝 내밀고 약간 비켜 선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이 그림은 고요함 속의 작은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여인의 아름다움을 사랑했던 탐미주의자 신윤복은 지금까지도 평가절하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우리 미술계가 아직도 유교적 도덕주의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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