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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믈리에 기자 손용석의 와인&] 샴페인 버블에 담긴 황제의 사랑

[소믈리에 기자 손용석의 와인&] 샴페인 버블에 담긴 황제의 사랑

러시아 황제가 홍보대사를 자청했고, 브리티니 스피어스 등 미국 할리우드 스타들이 파티를 열 때 부의 상징처럼 내놓는 샴페인이 있다. 국내에선 한 병에 50만원에 달하지만 없어서 못파는 ‘크리스탈(Cristal)’이 그 주인공이다. 크리스탈을 만들고 있는 루이 로드레의 프레데릭 루조(Frederic Rouzaud?0) 사장이 얼마 전 한국을 찾았다.
크리스탈은 병 밑바닥이 움푹 패어 있지 않고 평평하다. 투명하기까지 하다. 샴페인뿐 아니라 전 세계 고급 와인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디자인이다. 1876년 샴페인 애호가였던 러시아 황제 알렉상드르 2세(Alexander Ⅱ)는 “나를 위한 특별한 샴페인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주문을 받은 프랑스 샹파뉴 지방의 와인업자 루이 로드레(Louis Roederer) 2세는 크리스탈 수공업자에게 대형 샴페인 병을 특별 주문했다. 폭탄을 숨기지 못하도록 밑바닥은 평평하게 만들었고 병 주위에는 황제의 문양을 둘렀다. ‘제정 러시아 황제 차르의 샴페인’ 크리스탈이 탄생한 배경이다. “잘 숙성된 샴페인은 거품의 크기가 매우 작습니다. 숙성이 덜 되면 거품 크기도 크죠. 그렇다고 샴페인이 너무 오래 되면 거품 자체가 줄어듭니다. 크리스탈은 거품이 작으면서도 끊임없이 피어 오르는 그런 샴페인입니다.” 지난해 말 처음으로 한국을 찾은 프레데릭 루조 사장은 8대(代)에 걸쳐 230년 동안 이어온 가족기업의 수장이라고 보기엔 아직 앳된 모습이었다. 막상 인터뷰가 시작되자 샴페인 가문의 도련님이 아니라 경영자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크리스탈의 가격이 비싼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생산 공정을 본다면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겁니다. 100가지가 넘는 생산 과정을 거쳐야 되고, 숙성 기간만 6년에 달합니다. 보통 회사들은 시장을 생각해서 제품을 만들지 모르지만 우리는 최고의 샴페인을 만드는 데만 집중합니다. 크리스탈은 수요를 생각할 필요가 없다. 항상 수요가 공급보다 많기 때문이다. 수요가 넘쳐나기 때문에 매출에 따라 국가별로 일정량을 할당하고 있다. 작황이 나쁘면 일부 제품은 아예 생산조차 하지 않는다. 6년 숙성을 거치는 크리스탈은 2001년과 2003년 빈티지(생산연도)가 없다. 대신 루조 사장은 1,400만 병의 와인을 프랑스 랭스 본사의 카브(지하 저장고)에 쌓아 두고, 매년 조금씩 시장에 푼다. 하지만 크리스탈의 마니아들은 전 세계 도처에 넘쳐나고 있다.
루조 사장은 “얼마 전 미국에서 자신의 파티에 크리스탈 150병을 사용한 사람이 있다고 들었다”며 “나조차도 그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많은 크리스탈을 구했는지 모를 노릇”이라고 말했다. 루조 사장은 크리스탈의 남다른 ‘유명세’ 때문에 미국 힙합 가수들로부터 ‘보이콧’을 당하기도 했다. 그가 영국 <이코노미스트> 와의 인터뷰에서 “크리스탈이 힙합 가수들의 대명사처럼 비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어쩌겠느냐. 사지 못하게 할 순 없지 않느냐”고 대답한 것. 그의 너무도 ‘솔직한’ 답변 때문에 힙합 가수들은 즉각 반발했다. 가수 비욘세의 연인인 힙합 가수 제이지(Jay-Z)는 ‘인종차별주의자’란 성명을 내고 대대적인 불매운동을 벌였다. 루조 사장은 “그 이후 크리스탈 매출이 더 늘었다”고 말했다. 루이 로드레는 이렇게 모은 돈을 고스란히 인수·합병(M&A)에 투자한다. 그래서 루이 로드레는 가족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에 진출해 있다. 미국의 워싱턴 주에서 스파클링 와인을 생산할 뿐 아니라 보르도 생테스테프의 크뤼 부르주아급 와인인 ‘샤토 드 페즈’와 ‘샤토 오 보세주르’, 그리고 프로방스의 로제 와인 ‘도멘느 오트’, 포르투갈의 ‘라모스 핀토사’를 소유하고 있다. “와인이 필요한 자리라면 언제 어디서나 우리 와인들로 구성할 수 있게 됐죠. 식전엔 스파클링 와인이나 샴페인을 즐기고, 메인 식사에선 보르도 와인을, 그리고 디저트엔 포트 와인을 곁들일 수 있겠죠. 한여름엔 맥주 대신 우리의 로제 와인을 즐기면 됩니다.” 2006년 말엔 명품기업 에르메스와 경합 끝에 300년 전통의 샤토 피숑 라랑드(Pichon Lalande)를 인수했다. 피숑 라랑드는 프랑스 보르도 메독 지역의 2등급 와인으로 1등급 못지않은 품질을 가졌다고 해서 슈퍼 세컨드(Super Second)라고 불리는 와인이다. “에르메스는 우리보다 훨씬 높은 금액을 제시해서 유리했지만 계약기간이 너무 길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로서는 가족들의 의향만 맞추면 되니까 절차가 간단했죠. 결국 라랑드의 주인인 라그젱(Lenquesaing) 마담이 우리의 손을 들어 줬죠.” 현재 전 세계 샴페인 시장은 돔페리뇽, 크루그 등을 생산하고 있는 LVMH 같은 다국적 기업들이 독식하고 있다. 하지만 루조 사장은 자신감에 넘쳤다. “우리는 일단 자체 소유한 포도밭 비중이 다른 회사들에 비해 월등히 높아요. 거대 기업들은 대부분 포도를 사들이죠. 샴페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포도 자체입니다. 그만큼 품질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죠. 그리고 다른 대기업들은 마케팅과 홍보에 너무 많은 돈을 씁니다. 또 주주들이 있기 때문에 작황이 안 좋은 해에 생산을 하지 않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와인만큼 패밀리 비즈니스에 적합한 사업도 없어요.” 현재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그의 아버지 장 클로드(Jean-Claude) 루조는 지금의 루이 로드레를 만든 주인공이다. 1974년산 샴페인에서 코르크에 문제가 생기자 80만 병을 전부 수거하는 결단을 내렸다. 루조 사장은 “내가 아버지에게 물려 받은 건 샴페인 회사뿐 아니라 열정과 인내”라며 “회사를 더 공격적으로 키워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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