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란 술수 아닌 사상의 영역”
윌리엄 F 버클리는 추모의 글을 워낙 잘 써서 생존한 사람들이 그의 죽음 앞에 추도문을 남기기가 민망할 정도다. 그는 아이젠하워, 골드워터, 레이건의 삶을 촌철살인의 명구로 그 삶을 아우른 우아한 글들을 남겼다. 그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그가 어머니의 죽음을 애도한 글이다. “돌아가시기 닷새 전,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한 주를 흘려 보냈다… 간호사가 어머니를 화장실에서 모셔 와 안락의자에 앉히고는 어머니가 평소 하시던 대로 입술과 뺨에 립스틱과 연지를 바른 뒤 진주목걸이를 걸어 줬다. 그러자 2주 전 사경을 헤매기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어머니는 갑자기 손을 뻗어 거울을 움켜쥐었다. 간신히 얼굴에 거울을 갖다 대더니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간호사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나이를 먹었어도 이렇게 아름답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니?’” 아들은 이렇게 글을 맺었다. “그의 대답은 분명히 ‘예스’였다. 누군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버클리의 이런 글들은 나를 포함한 젊은 글쟁이 세대에게 영감을 주기에 충분했다(물론 절대 못 따라갔지만). 그러나 이런 글들은 글쓴이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버클리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것들(이를테면 그의 각별한 대가족, 가톨릭 신자로서의 믿음, 축복은 받았어도 제멋대로 굴러가는 조국)을 헌신적으로 뒷받침하는 글을 썼다. 그는 장난기가 있었지만 그렇다고 냉소적이진 않았다. 정치란 축제를 뛰어넘는 그 무엇으로 인식한 정치적 승부사였기 때문이다. 동시에 자신의 명성보다 더 큰 목표를 가진 논객이었다. 버클리는 미국 보수파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칠 정도로 보수주의를 사랑했다. 뛰어난 동료들과 함께 내셔널 리뷰를 만들면서 그는 극우 보수파를 일소하는 정풍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공산주의를 규탄한 ‘존 버치 협회’ 회원들이나 이타주의를 범죄로 여겼던 작가 아인 랜드의 추종자들, 그리고 지난 수십 년간 우파를 왜곡시켜 온 반유대주의자들이 대상이었다. 버클리의 이념적인 업적은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그는 보수주의자들이 더 이상 괴짜로 보이지 않도록 보수주의의 거친 모서리를 부드럽게 다듬는 것을 넘어 보수주의의 결점들을 철저히 털어냈다. 그러면서 버클리는 보수주의 내부 갈등의 상징으로 비쳤다. 폭넓은 자유주의와 강건한 가톨릭 전통주의의 양립을 추구한 그는 마리화나 합법화와 함께 라틴어 미사를 동시에 지지했다. 자유와 질서 간의 대립을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보기보다 현실로 받아들인 것이다. 오히려 세상사의 본질적인 속성으로 여겼다. 따지고 보면 보수주의는 합리적인 조화를 바라는 이념이 아니다. 오히려 물려받고, 인정하고, 방어하는 삶의 방식이다. 그의 업적은 또 있다. 촌뜨기처럼 보이지 않고도 보수주의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점이다. 오늘날의 보수주의자들은 그의 이례적인 삶에서 배울 점이 많다. 버클리는 늘 낙관주의자는 아니었다. 그의 보수주의는 삶의 극한에서 지니는 비극성도 포함한다. 그래도 늘 낙천적이었다. 엄격한 보수주의는 누군가를 설득하지도, 부추기지도 못한다. 가장 엄숙한 친구였던 휘태커 체임버스에게 그가 내셔널 리뷰 창간을 거론했을 때 체임버스는 서구의 암울한 운명과 함께 이를 구할 어떤 시도도 실패할 것이라고 이견을 달았다. 버클리는 그래도 미국엔 “왜 우리가 살아남아야 하는가”를 일깨울 잡지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버클리는 언변 좋은 말 싸움꾼일지도 모른다. 그는 한때 저명한 역사소설가 고어 비달이 자신을 “사이비 나치”로 폄하하자 전국 방송을 통해 공격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개는 귀족정치가 민주주의에 기여할 수 있는 겸양과 매너의 본보기가 됐다. 진보진영의 대표주자 격인 존 케니스 갤브레이스나 아서 슐레진저 같은 경쟁자들과도 대체적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겸손한 보수주의는 성난 보수주의보다 설득력을 발휘한다. 버클리는 무엇보다 정치가 전술과 권력이 아닌 사상의 영역에 속한다는 점을 잘 알았다. 보수파에게 그런 사상은 시간과 상황 변화에 따라 잘 바뀌지 않는다. 그는 자유의 목표를 “하느님에게 복종하고 조상들의 지혜에 따르며 어제의 투표 결과가 보여준 정치적 사실들에 굴복 당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모두 중요한 교훈들이다. 그러나 교훈이 사람을 대신할 수는 없다. 버클리의 죽음으로 보수진영은 (마치 레이건이 숨을 거두었을 때처럼) 사회를 통합할 거목을 잃었다. 진보주의 진영에서 종교적 보수주의자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세력으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은 인물이 또 한 명 줄었다. 버클리가 그 통합운동에 나선 이유는 그가 보수주의를 구체화하고 창조했기 때문이다. 버클리는 떠났지만 보수주의는 살아남을 것이다. 위대한 건축물은 건축가가 사라져도 살아남듯이. 그러나 그 건축물이 만들어진 과정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훌륭한 사람이 천수를 다하고 영예롭게 떠날 때 지나친 조의를 표하면 적절치 못하다. 그러나 보수진영과 미국이 느끼는 상실감은 크다. 한때 위트와 즐거움의 상징이었던 그가 남긴 공백이 크게 느껴진다. [부시 대통령의 연설문 작성자이자 정책보좌관이었던 필자는 현재 미국외교협회 수석 연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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