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대학 개혁 전도사 서남표 KAIST 총장

대학 개혁 전도사 서남표 KAIST 총장


국내 최고의 이공계 대학 KAIST(한국과학기술원)에 개혁 태풍이 몰아쳤다. 테뉴어(tenure·정년보장)를 신청한 교수 35명 가운데 15명을 탈락시켰다. 07학번 학생부터 영어로 수업을 받고, B학점 미만이면 등록금도 내야 한다. 학업성적 외에 창의성, 리더십, 인성 등을 종합 평가하는 방식으로 입시 제도도 바꿨다. 계속 진행형인 ‘KAIST 혁명’의 한복판에 개혁 전도사 서남표 총장이 있다.


서남표 총장은…
1936년 경북 경주 생
미국 MIT 학사·석사, 카네기 멜론대 박사
65~69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 교수
70~2006년 MIT 교수
76~84년 MIT 제조 및 생산선 연구소 소장
84~88년 미국 국립과학재단 공학담당 부총재
89~06년 MIT 석좌교수
2001년~ KAIST 석좌교수
2006년~ KAIST 총장
2007년~ 한국공학교육인증원 원장



<상훈>
87년 미국 과학재단(NSF) 올해의 국가공학자상
95년 KBS 해외동포상
97년 호암상 공학상
06년 국제생산공학아카데이(CIRP) 제너럴 피에르 니콜라우상
07년 미국플라스틱공학회 종신업적상
 


<저서>
<공리적 설계: 발전과 응용> (2001)
<복잡성: 이론과 응용> (2005)
<공리적 설계 및 혼성 구조의 구성> (2006)
‘KAIST에는 학생과 방학이 없다’는 말이 있다.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먼저 ‘학생이 없다’는 말은 학기 도중 그 넓은 교정에서 학생들을 찾아보기 힘들어서다. 다들 연구실과 강의실, 도서관 등에서 공부하느라고 하릴없이 돌아다니는 경우가 없다.

다음 ‘방학이 없다’는 말은 정작 학생들이 집에서 쉬어야 할 방학이면 여기저기서 학생들을 많이 볼 수 있어서다. 2월, 겨울방학인데도 도서관과 연구실, 기숙사에 가보면 학생들이 빼곡하다. 그래서 항상 좋은 의미의 긴장감이 도는 대전 KAIST에서 서남표(72) 총장을 만났다.

“KAIST의 목표는 딱 하나예요. 세계에서 제일 좋은 대학을 만드는 겁니다. 그게 어디 말처럼 쉽겠어요? KAIST 학생의 질은 미국 메사추세츠 공과대(MIT)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그런데 세계적인 지도자가 되려면 머리 좋은 것만으론 안 됩니다.

우리 학생들이 시키는 일은 잘 하는데, 이제 스스로 하는 힘을 기르도록 해야지요. 스스로 아이디어를 내고 실행하는 과정을 거쳐 혼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줘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한국 교육의 현실은 선생들이 시키는 것을 잘하는 학생을 착하다며 좋아하고, 독불장군처럼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면 교수들이 감당하지 못한 채 버릇 없다고 나무라고 그랬잖아요.”

미국에서 50년 넘게 공부하고 대학에서 강의해온 그가 2006년 7월 KAIST 총장을 맡아 귀국해 보니 듣던 대로 한국 대학 교육의 현주소는 말이 아니었다. KAIST의 학생 수는 MIT의 70% 정도인데 교수의 수는 40%다.

더구나 예산은 MIT의 10분의 1 정도로 ‘쥐꼬리 수준’이다. 학생 수와 교과목 수요 등을 따져 보니 교수가 300명 정도 더 필요한데도 물리적으로 어찌 할 방법이 없었다.

“한국에서 제대로 돌아가는 사립대학이 몇 군데 없어요. 복잡하게 따질 것 없어요. 수업료는 미국의 4분의 1 수준인데 교수들의 월급은 거의 비슷하거든요. 이것을 꿰어 맞추려다 보니 교수가 부족해 학생들을 일일이 지도하지 못하고 도매급으로 취급하는 것이죠. 그 결과 학생들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고….”
 


시키는 것 하지 말고 아이디어 내라


사정이 이렇다고 불만만 이야기하고 다닐 수는 없고, 어떻게든 ‘학교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책임감을 무겁게 느꼈다. 서 총장은 그래도 다른 대학에 비해 여건이 좋은 KAIST를 10년 안에 세계 10위권 대학으로 키우기 위해 두 가지 방법을 선택했다.

그 첫째가 대학 전체의 스탠더드를 올리는 것이고, 둘째가 (발전) 방향을 제대로 잡는 것이다. 스탠더드를 높이기 위해 테뉴어 심사를 강화하는 한편 학과 중심으로 학교를 운영하고, 공부 못하는 학생에게 수업료를 내도록 했다.

학교의 방향성은 교수도 모자라고 재정도 빈약한 상황에서 다하려 들지 말고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는 것으로 설정했다. 그래서 만든 것이 바이오 융합 연구소 등 6개 연구소(KAIST Institute)와 EEWS(에너지, 환경, 물, 지속 가능성=Energy, Environment, Water & Sustainability) 프로젝트, 고위험-고수익(High Risk-High Return) 연구 풍토 조성이다.

“사람들이 21세기에 살아 남기 위해 풀어야 할 과제를 KAIST가 앞장서 풀어 나갈 것입니다. EEWS는 인류가 해결해야 할 문제니까 이를 푸는 사람(교수와 학생)은 유명해질 겝니다. EWES의 목적은 인류가 필요로 하는 것을 해결하는 동시에 새로운 학문을 만드는 것이지요. 또 그 결과 한국에 새로운 산업이 생길 것이고 말이죠. 대학의 사회와 국민에 대한 보답은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EEWS의 가시적 성과가 언제쯤 나오느냐고 물었더니 “잘 몰라요. 누가 알아요. 재수가 좋으면 금방 나올 것이고”라며 껄껄 웃는다.

“목표야 가능한 빨리 내는 것이지만, 언제라고 말하면 내가 거짓말하는 것이 될 테고…. 분명한 점은 교육적 차원에서 보면 성공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설령 제품으로 나오지 않을 수 있지만 대학의 연구 문화를 바꾸는 것이므로 꼭 실패라고 볼 수는 없겠죠.”

서 총장의 대학 내 연구문화 북돋우기는 고위험-고수익 연구계획 주문으로 이어진다. 교수나 학생이나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연구비를 신청할 수 있다. 현재 얼음연료전지, 무정차 고속열차, 고속 고출력 광선 재결합 레이저, 달 탐사 착륙선 개발 등 6개를 진행 중이다.

특히 250kg급 달 탐사 소형 위성과 무인탐사 자동차 개발 프로젝트와 관련 KAIST는 올 1월 미 항공우주국(NASA) 에임스(Ames) 센터와 공동 연구를 위한 협약을 체결했다.

“교수는 물론 학생들도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해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과감하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지요. KAIST에까지 와서 교수들이 옛날에 하던 것 시키면 그대로 또 하고 그러지 말라는 거죠. 경쟁을 해야 합니다.

논문도 쓰려면 큰 것을 쓰라는 거에요. 왜 쓸 데 없는 연구를 합니까? ‘이런 것 하면 논문이 나올 것 같다’는 식으로 하지 말라는 겁니다. 논문이 나올 지, 안 나올지 모를 그런 연구에 몰입해야 큰 일을 낼 수 있지 않겠어요?”

서 총장은 그 대표적인 사례로 미국 보스턴과 샌디에이고 등 생물학과가 유명한 대학 근처에 몰려든 바이오테크(BT) 회사를 꼽았다. 보스턴 부근에 최근 15년 사이 약 300개의 바이오테크 기업이, 또 이들 기업에서 사용하는 기구를 만드는 회사가 150여 개 설립됐다. 그 결과 400조원에 가까운 시장이 형성됐다.

“40년대 양자학과 자동차 산업은 연관이 없었어요. 50년 DNA(유전자)가 발견됐는데 당시만 해도 DNA와 제약산업은 역시 관계가 없었고요. 그런데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분자생물학과 제약산업이 하나로 연결돼 있어요. 그래서 BT 기업이 유명 대학 옆에 들어서는 것입니다.”
 


과학과 기술이 붙어야 산업 발전한다


이 대목에서 서 총장은 과학기술부를 교육인적자원부에 통폐합한 새정부의 조직개편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 자신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찾아가 한 시간 반 동안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행정 하는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런지 과학은 여기 있고 기술은 저기 있는 것으로 생각해요. 증기 기관차가 나온 뉴턴 시절부터 지금까지 과학기술이 경제와 어떻게 연결돼 왔는지를 잘 살펴 보세요.

더구나 지금 새로운 산업은 과학과 기술이 딱 붙어서 나옵니다. 흔히 앞으로 우리를 먹여 살릴 신산업으로 불리는 BT나 NT(나노 기술)도 마찬가지예요. 유명한 스위스 제약회사 노바티스(Novartis)가 연구소를 스위스에서 보스턴으로 옮겼어요. 머크(Merck)라는 미국 제약회사도 보스턴에 부지를 물색 중이고….”

여기서 서 총장의 목소리가 더욱 커진다. 그는 인터뷰 내내 메모지 한 장 없이 자신의 생각과 철학을 막힘 없이 직설 화법으로 이야기했다. 각종 특허를 60여 개 갖고 있는 서 총장의 미래 한국의 과학기술과 산업 발전론은 이렇다.

“기초 연구는 지금까지 정부 몫이었다. 기업이 하기 힘든 구조다. 돈이 될 가능성이 작은데 어느 기업이 리스크를 택하려 들겠는가. 과학기술 분야는 정부가 리스크를 선택해야 한다. 이제 한국에서 자본만 갖고 큰 비즈니스를 하기 어려워졌다. 더구나 지금 잘 되는 산업도 더 이상 크기 힘들다. 조선과 철강 등 전통 제조업은 중국이 바짝 따라오고 있다. 철강 제품은 이미 중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시대가 됐다.

물론 지금까지 해오던 것을 잘해야 한다. 조선·철강업을 하긴 해야 하는데, 이것을 두 배로 만들어선 우리나라 국민소득을 두 배로 만들기 어렵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새로운 산업을 일으켜야 한다. 바로 지식을 기반으로 하는 산업, 이를테면 BT나 NT가 정답이다. 조선 산업도 배를 짓는 데서 벗어나 화물 선적과 하역의 효율성을 높이는 해양 시스템이 더 중요해진다.

지식산업에도 서비스 산업과 생산 산업이 있다. BT는 생산 산업이고 금융은 서비스 산업이다. 젊은이들이 자꾸 대기업에 취직하고 싶어하는데 한국이 잘 되려면 새로운 지식산업을 만들어내야 한다. 또 앞으로 지식산업을 더 잘 하려면 인재가 필요하므로 정부가 계속 더 투자해야 한다. 다시 말해 과학기술 분야의 리스크는 정부에서 져야 한다.”

서 총장이 KAIST 식구들에게 강조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각 분야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시스템 정비고, 그 방법으로 제시하는 것은 목적을 분명히 하는 사고방식(functional thinking)이다. 방법론을 갖고 괜히 티격태격하지 말고 목적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자는 주문이다. 목적만 분명하게 잘 정하면 그 다음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면서.

“자, 지금 목적이 서울로 가는 거라면 누구는 경부고속도로, 누구는 기차, 누구는 고속버스를 타고 갈 텐데 다 괜찮다는 것이죠. 서울만 가면 되니까.

물론 도착 시간이야 차이가 조금 나겠지만. 이게 좋으니 저게 좋으니 다투는데, 실제로 왜 싸우는지 들여다보면 이 사람은 이 목적, 저 사람은 저 목적을 생각하고 있는데 서로 방법을 놓고 얘기하니 싸울 수밖에 없는 거죠. 사업할 때 가장 먼저 정해야 하는 것이 바로 목적입니다.”


목적이 분명해야 통한다


▶KAIST 바이오융합연구소

여기서 서남표 교수는 목적론을 ‘수도꼭지론’에 빗대 설명한다. 수도꼭지의 목적이 물의 양과 온도 조절 등 여러 목적이 있다고 하자. 이 경우 수돗물 양에만 신경 쓰면 온도가 달라져 조절하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온도에만 신경 쓰면 양의 조절이 힘들다. 수돗물 양은 양대로, 온도는 온도대로 컨트롤하면 복잡하고 힘들다. 이때 목적을 바꿔 더운 물도, 찬 물도 나오게 하면 물의 양과 온도를 함께 조절할 수 있다는 논리다.

“정부 정책도 마찬가지죠. 목적이 뭐냐에 따라 옳을 수도, 그를 수도 있죠. 과학기술부 통폐합도 그래요. 목적을 정확히 설명해줘야 알아듣지요. 과학기술부가 주관하는 연구 과제의 첫째 목적은 지금까지의 산업을 더 잘 되게 하는 것이고, 둘째 목적은 앞으로 가망 있는 분야에 장기적으로 투자하는 것이지요. 한국의 보스턴을 대덕에 만들자는 것이 KAIST의 목적이듯 말입니다.”

서 총장은 KAIST가 교육과학부 아래 기관으로 들어갈 경우 다른 대학과 차별화한 특성이 사라질까 봐 내심 걱정하고 있다. 서 총장 부임 이후 KAIST는 이번 신입생부터 입시 제도를 확 바꿨다.

학업성적이 좋아도 교수 3명이 지원자 14명과 하루 종일 인터뷰하는 2차 평가(창의성·리더십·자원봉사 평가)에서 나쁘면 탈락시킨다. 그 결과 과학고의 실험 학습이 늘고 과학고 입시도 창의성을 중요하게 보는 등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학문도 인천상륙작전 식으로!


서 총장의 대학 개혁은 오늘도 진행형이다. 학교 행정을 수술하는 1단계 개혁에 이어 올해부턴 연구 시스템을 쇄신하는 2단계 개혁에 들어갔다. 기존 학과를 조정하거나 재편하는 한편 새로운 학과를 만드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그 배경으로 서 총장은 학문 연구의 인천상륙작전론을 편다.

“6?5전쟁 때 맥아더 장군이 인천에서 치고 올라가 뒷길을 자르니까 전세가 역전되지 않았습니까? 학문도 마찬가지예요. 따라가다 보면 한없이 뒤만 좇아가야 합니다. 미리 나가 앞에서 진을 쳐야 따라잡을 길이 보이지요.”

그 전략으로 KAIST는 IT(정보기술) 대학을 설립한다. 대개 이런 경우 다른 대학에서 전기과와 전산학과를 두는 것과 달리 KAIST는 콘텐트 엔지니어링(Content Engineering)과 콘텐트 매니지먼트(Content Management)학과를 둘 계획이다.

과거 컴퓨터가 처음 나와 하드웨어 개발이 돈이 되던 시절의 전기·전산과로는 승부를 걸 수 없으니 소프트웨어와 콘텐트·데이터베이스 관리 및 디자인과 디지털화를 연구하는 학과를 개설하는 것이다. 비슷한 이유로 해양 시스템과를 새로 만들 생각이다.

“조선업을 크게 보면 배는 해양 시스템의 한 부분입니다. 항구에 가 보면 짐을 내리거나 싣지 못해서 그냥 서서 기다리고 있어요. 전체 시스템으로 보면 배를 많이 만드는 것만이 솔루션이 아니에요. 배를 많이 지어 항구 밖에 세워 놓는 게 목적이 아니고, 짐을 싸게 빨리 올리는 것을 목적으로 삼아야지요. 어떻게 배가 빨리 들어오고 나가게 할 것인지 전체를 봐야 합니다.”

그는 바이오 산업 관련 학과를 한데 모아 생명과학대(College of Life Science)를 세울 계획도 갖고 있다. 생물학과는 자연과학대에, 바이오 엔지니어링 같은 다른 과는 공과대에 소속돼 있는 옛날 방식의 조직을 바꿀 참이다.

KAIST는 경영학석사과정(MBA) 학생들에게 실전 투자를 해보라며 학교 기금 10억원을 내놓는 새로운 실험에 착수했다. 금융전문대학원은 2월 15일 이 돈으로 ‘카이스트 학생투자펀드(KSIF, KAIST Student Investment Fund)’를 출범했다.

학생들더러 투자하라고 학교가 돈을 대주기는 KAIST가 국내에선 처음이다. 외국 대학에선 학생투자펀드(SIF)를 교과목으로 둔 곳도 있다.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 SIF는 2000만 달러가 넘는 돈을 굴린다.

“교육은 이론과 현장에 필요한 내용을 모두 담아내야 합니다. 금융 현장에서 곧바로 쓸 수 있는 인력이 되려면 돈을 잃거나 따본 경험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돈을 잃어도 교육 경비로 생각하겠습니다.”

서 총장은 그렇다고 대학 이름을 브랜드로 내걸고 본격적인 수익사업을 벌이는 데는 회의적이다. 미국 MIT 교수 시절 MIT 발전 회사(MIT Development Corporation) 프로젝트에 따라 그가 발명한 쇠 깎는 기계에 코팅 처리해 오래 가도록 하는 곳 등 여러 회사를 차렸는데 몇 년 뒤 대부분 문을 닫은 경험이 있어서다.

▶KAIST에서 만든 휴먼 로봇 ‘휴보’및 학생들과 함께 가진 즐거운 시간.



“대학은 학생 중심으로 움직여야”


“중요한 것은 누가 돈을 내 리스크를 떠안느냐입니다.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남에게 팔 줄 알아야 하고, 공장을 세울 때까지 비용이 많이 들어갑니다. 결국 누군가 투자를 해야 하고, 투자가 많이 들어올수록 교수 지분은 적어지죠. 벤처캐피털이 돈을 대도록 하고 그들이 원하는 아이디어를 개발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더구나 한국은 시장이 적어 성공하기 더욱 힘듭니다. 학교에 사업할 돈이 있으면 미국에 사무소를 내는 게 낫지 않을까요. 미국은 시장이 워낙 크니까 성공하면 큰 돈을 벌 수 있지요. 한국에서 성공한 네이버가 미국에서 사업을 벌였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구글처럼 세계적인 회사로 성장했을 지도 모르죠.”

실제로 KAIST는 샌프란시스코 사무소 개설을 준비 중이다.

서 총장의 개혁에 대해 대학 내부에서 반대의 목소리도 들린다. 대학 측은 그동안 거의 무료였던 등록금을 지난해 1학년부터 학점(절대평가)이 3.0 이상이면 무료, 2,0 이하면 연간 1500만원, 2.0 초과~3.0 미만에는 비례 부과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성적에 관계없이 모두에게 장학금을 주면 나태해진다는 논리에서다. 이에 대해 일부 학생들은 자신들의 의견이 배제된 100% 영어 강의와 학점에 따른 수업료 징수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지금 아무리 설명해도 당장 불편하고 돈을 내야 하는 것만 생각하니 이해가 되지 않고 불만스러울 수 있지요. 학생들이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지도자로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지금은 이해하기 어려워도 20년 뒤 사회 생활을 하면서 깨달을 겁니다.”

대학 측은 학생들에게서 받은 등록금으로 병원을 지어 무료로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오랜 MIT 교수 생활에서 경쟁 원리를 체득한 서 총장은 한국 교수 사회에 대해 강한 어조로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여러 나라를 돌아다녀 보니 어느 나라든 영어를 못하는 국가는 핸디캡이 많더라고요. 프랑스 교수들이 영어를 잘 못해요. 그래서 국제 무대에서의 활동이 미약합니다. KAIST도 국내에서 공부한 분들이 가장 걱정이 많다는 것 압니다. 문학을 영어로 가르치려면 쉽지 않죠.

과학 기술이야 공식도 쓰고 하면 그래도 나은데. 이런 어려움을 이해하지만 그래도 어떡합니까? 대학이 학생들 교육시키는 곳이지 교수님들이 편하라고 있는 건 아니잖아요.

지금까지 한국 대학은 모든 게 교수 중심으로 운영돼 왔습니다. 대학은 마땅히 학생 중심으로 움직여야지요. 교수도 학생과 1대 1로 배우는 자세로 가르쳐야 한다고 봅니다. 교수라고 어떻게 다 압니까? 학생은 어리고 뭐가 뭔지 몰라서 자신이 모르는 점도 잘 모르지만 교수야 경험이 많고 아는 게 많으니까 자신이 모르는 점을 잘 알지요.

‘너는 학생, 나는 교수’ 하며 편 가른 뒤 학생이 물어보면 정작 자신도 모르면서 ‘이것도 몰라’하며 가르치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어떤 교수는 교재도 쉬운 것 쓰고 대충 가르치고, 어떤 교수는 여러 어려운 교재를 갖고 힘들게 가르치는데 나중에 학생들이 평가한 것을 보면 쉽게 대충 가르친 교수의 점수가 좋지 않더라고요. 학생들도 교수 실력을 다 압니다.”

그는 매사에 철두철미하지만 마음은 따뜻한 사람이다. 숙명여대 초청으로 대학 개혁에 대해 강의한 뒤 이경숙 총장에게 KAIST 테뉴어 심사에서 탈락한 교수의 취업을 부탁하기도 했다.

서남표식 개혁의 추동력은 대화와 설득, 솔선수범의 리더십에서 나온다. 자신의 외부 강연이나 원고 집필로 들어오는 수입은 학교 발전기금으로 내놓는다. 승용차로 이동하면서 10분 이상 자투리 시간이 나면 노트북을 연다.

새벽 시간에도 본인이 직접 e메일에 답장한다.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차를 타 들고 온 비서에게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건넬 정도로 아랫사람을 배려한다.

서 총장 부임 이후 미국에서 보내오는 학교 발전기금이 눈에 띄게 늘었다. 1월 말 현재 1250만 달러의 기금을 모금했다. 서 총장은 학교를 상징하는 조형물 옆에서 사진을 찍으며 “이게 넘어가면 내가 돈을 물어줘야 한다”고 하는 등 유머가 넘친다.

총장 임기(2010년 7월)를 마치면 미국으로 돌아가 쓰던 책을 마무리하겠다는 그는 미국 과학재단 공학 담당 부총재 시절처럼 KAIST에서도 “(내가 개혁한 것을) 남이 들어와 바꾸지 못하도록 자리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되는 시기가 빨리 와 한국에서도 책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자식은 부모 행동을 배웁니다”


네 딸 모두 미국 명문대 보낸 비법


서남표 총장은 고등학교 때 미국으로 이민 가 MIT(학·석사), 카네기 멜론대(박사)를 졸업한 뒤 MIT 기계공학과에서 36년 동안 강단에 섰다. 바이오 등 다른 분야와 기계학을 접목한 ‘응용기계학’을 도입, 일찍이 학문 융합에 앞장섰다.

1984~88년에는 미국 과학재단(NSF)에서 공학 담당 부총재로 있으면서 미국 과학연구 정책과 예산을 총괄했다.

능력을 따지는 미국 주류 사회와 세계 과학계에서 ‘닥터 냄수(Nam Suh)’로 통하는 그는 2006년 7월 “조국에 마지막 봉사하는 기회로 삼고 싶다”며 KAIST 총장에 취임했다.

그는 자식 농사를 잘 지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네 딸 모두 명문대를 나와 하버드대 교수와 뉴욕타임스 기자 등으로 일한다. 부인도 일찍이 이화여대(약학과)를 나와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공부했다.

“전 만날 밖에서 일만 하느라 (아이들 교육에) 기여한 게 없어요. 제 주의는 하고 싶은 것 마음대로 하도록 하는 거예요. 아이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았어요. 사람 귀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나 있어 뭐라고 하면 한 쪽 귀로 들어왔다가 다른 쪽으로 나가거든요. 대신 부모들이 하는 행동은 눈으로 보고 그대로 배웁니다. 눈이 뒤에도 있으면 앞에서 본 게 뒤로 나갈 텐데….”

서 총장은 칠순을 넘긴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건강하다. 목소리도 젊은이 못지않게 쩌렁쩌렁하다. 가끔 걷는 것 외에 특별한 건강관리 방법이 없다는 서 총장.

주변에선 모든 일에 의욕을 갖고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 건강을 지키는 비결이 아니겠느냐고 귀띔한다. 평소 학교 계단을 두 계단씩 오르는 서 총장은 일주일에 80시간 일하라고 강조한다.

“남들이 자꾸 나이 많다고 하는 데 전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사는 것 자체를 젊게 살려고 하고. 항상 학생들이랑 함께 있어서 그런지….”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명세빈 "17살 연하남에게…" 나이트 부킹썰까지

2"엎질러진 물…죽겠더라" 박현호♥은가은, 무슨 사연?

3한일 상의 회장단 "에너지·첨단기술 민간 협력 강화"

4카카오스타일 지그재그, ‘블랙 프라이데이’ 역대급 흥행…일 거래액 100억 행진

5한경협 "조세 전문가 82%, 상속세 완화에 긍정"

6고양·의정부시·동대문구·세종시 '2024년 스마트도시' 인증

7BAT로스만스, 합성니코틴 전자담배 ‘노마드 싱크 5000’ 출시

8바이든 정부, 반도체 보조금 규모 줄인다…5억 달러 넘게 축소

9김종민 '11세 연하♥' 눈 뜨자마자…"혼자 몸 아녔으면"

실시간 뉴스

1명세빈 "17살 연하남에게…" 나이트 부킹썰까지

2"엎질러진 물…죽겠더라" 박현호♥은가은, 무슨 사연?

3한일 상의 회장단 "에너지·첨단기술 민간 협력 강화"

4카카오스타일 지그재그, ‘블랙 프라이데이’ 역대급 흥행…일 거래액 100억 행진

5한경협 "조세 전문가 82%, 상속세 완화에 긍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