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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과 민병대의 협조 덕분에 이라크의 치안이 개선되는 대가로 여성들은 중세시대로 돌아간다. |
바그다드 남서부의 한 동네. 저항세력은 쫓겨났지만 서른 살의 가게 여점원은 여전히 두려움에 떤다. 1년 전만 해도 알카에다가 동네 거리를 지배했고 마흐디군 그 지역에 맹공을 가했다. 그러나 요즘은 살인자들을 쫓아내준 이라크인들이 오히려 무섭다. 미군은 몇 달 전부터 지하드(성전) 전사 용의자의 이름을 알려주는 현지인에게 금전적 보상을 하는 방식으로 질서를 회복했다. 그러면서 바그다드 도처에서 서로 비슷한 민병대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제각각 해괴한 규칙들이 있다. 어떤 단체는 사람들 앞에서 베일을 쓰지 않는 여자는 죽이겠다고 협박한다. 이 가게 점원은 지난해 5월 죽은 오빠의 상(喪)이 채 끝나지 않았지만 검은 옷을 4일 이상 입으면 위험을 자초하게 된다. 그 동네의 새 실력자들에게 상복을 입는 행위는 곧 신의 뜻에 의문을 제기하는 신성모독죄에 해당한다. 지난 1년 간 이런 민병대들이 이라크 전쟁의 양상을 바꿔놓았다. 미군은 그들을 “의식 있는 현지인(CLC)” 또는 “이라크의 아들들”이라고 부른다. 이라크인들은 그들을 ‘사와(각성)’라고 일컫는다. 안바르 지방에서 알카에다의 폭정에 대항해 가장 먼저 일어난 수니파 부족위원회를 본뜬 말이다. 이번 주 미 의회는 이라크 주둔 미군 사령관인 데이비드 페트라우스 장군과 라이언 크로커 이라크 대사를 불러 전황에 관한 증언을 듣는다. 민병대의 주 역할(그리고 그 상당수 멤버가 저항세력의 일원이었다는 거북스러운 사실)이 논의의 초점이 될 전망이다. CLC 같은 부족 집단들이 이라크의 사회구조, 특히 여성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논의할 가능성은 작다. 미국은 이라크에서 발을 빼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몇 가지 지저분한 타협을 해야 했다. 알카에다가 지배하는 수니파 지역을 빼앗으려고 몇 해 동안 헛수고를 한 미 지상군이 마침내 목표를 달성한 듯하다. 다만 그 대가로 평화유지의 열쇠를 쥔 성직자와 현지 지도자들에게 큰 권한을 부여해야 했다. 이제 이라크의 수니파 지역은 여러 덩어리로 나뉘고 법과 사회에 관한 견해가 제각각인 부족 지도자들이 다스린다. 바그다드의 일부 지역에선 블록별로 상황이 두드러지게 바뀐다. 이 지도자들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권력을 남용하는지, 그 작은 구역이 다시 중앙정부 관할로 들어갈지 여부는 누구도 모른다. “우리 나라는 80년대의 아프가니스탄을 닮아간다”고 여성지원단체 ‘위민포위민인터내셔널’을 세운 자이나브 살비가 말했다. 사담 후세인 시절의 이라크는 여성들에게 적어도 강제 세속주의라는 보호를 제공했다. 여성은 대학에 다니고 전문직 경력을 쌓도록 권유 받았다. 1990년대 들어 독재자가 정권 유지 차원에서 족장들에게 의존하고 유엔 제재로 경제사정이 악화되고 여성의 기회가 줄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2003년 이라크에 들어온 미국인들은 새 이라크를 남녀평등의 전시장으로 활용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전국이 폭력사태에 휘말리면서 그 꿈은 거리에 버려졌다고 여성운동가들이 말했다. 족장 중에는 일부 평등 지향적인 사람도 있다. 바그다드의 아드하미야 지구에 있는 여자대학은 사와의 지배구역이지만 학생들로 북적거린다. 안바르의 주도(州都)인 라마디의 사정은 사뭇 다르다. 부족 민병대가 여성들의 출근은 허용하지만 반드시 히잡을 써야 하며 일부다처제가 증가하는 추세라고 한다. 바그다드 남쪽의 아랍자부르 같은 농촌의 사와 지배 지역에선 여성이 좀처럼 외출을 하지 않는다. ‘사와 운동’의 태동지인 안바르에선 족장들이 통치권을 확실히 쥐었다. “개인 영지가 있으며 아무한테도 책임지지 않는다”고 국제관계위원회의 여권 전문가 이소벨 콜먼이 말했다. “부족 집단들이 알 카에다와 직접 연관되지 않았다지만 보수성은 그 못지않다.” 이 말은 조금은 과장일지 모른다. 지하드 전사들은 여성을 강제 결혼시키고 학교 문을 닫았으며 사람을 마구 죽였다. 부족 집단의 가치관은 이라크 헌법에 명시된 내용보다 더욱 중세적이다. 이번엔 무장세력이 미군의 후원을 받는다. 앞으로가 더 문제라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몇몇 사람의 눈빛을 보면 베일을 착용하지 않는 우리 여성들에게 뭔가 할 말이 있는 표정”이라고 바그다드 대학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마라 알리(27)가 말했다. “말을 꺼낼 적당한 때를 기다리는 것 같다.” 일부 여성은 사와 운동이 시작된 지난해 경고 신호를 접했다. 수하이르 샤키르는 자신이 거주하는 바그다드 동쪽의 부촌에선 알카에다가 발을 붙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사와가 들어왔고 점점 공격적으로 변해 갔다. 지난해 봄 하루는 사와 검문소에서 샤키르의 차를 세웠다. 한 청년이 운전석 옆으로 오더니 왜 히잡을 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권총을 휙휙 돌렸다. “마치 카우보이처럼 손가락으로 권총을 돌렸다”고 샤키르가 말했다. 그 뒤론 히잡을 하고 다녔다. 그녀는 몇 달 뒤 또 봉변을 당했다. 이번엔 검문소 조장이 여자는 운전을 하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 출근하려면 꼭 차가 필요하다고 통사정했지만 검문소는 근무시간에만 지날 수 있고 오후 5시 이후론 안 된다는 소리만 들었다. 괴롭힘은 계속됐다. 주유소의 사와 경비원들이 남자의 호위도 없이 외출한다고 나무랐다. “아는 것도 없고 교육도 받지 못한 10대 애들”이라고 그녀가 말했다. “힘이 생기고 무기가 생기니까 다른 사람의 삶을 통제하려 든다.” 전국적으론 이라크 사회를 개방하려는 투쟁을 계속하는 여성도 있다. 예컨대 나르민 오트만 여성부장관은 “명예살인”을 없애자는 캠페인을 벌인다. 바람 피운 부인이나 혼전섹스 혐의가 있는 딸을 죽이면 이라크 법에서 고작 3년 형을 받을 뿐이다. “살인은 살인”이라고 오트만이 말했다. 쿠르드족인 그녀는 청바지와 랠프 로렌 독서안경을 좋아한다. 이라크 여성이 바람 피운 남편을 죽이면 죄목은 살인이다. 오트만은 남자도 같은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를 이끄는 종교정당들의 반발이 거세다. 그들은 오트만의 제안이 이슬람에 위배된다(명망 있는 일부 학자의 견해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법무부는 법정에 회부되는 명예살인 건수가 얼마나 되는지 오트만에게 알리기조차 거부했다. 지금까지 그녀와 지지세력이 규합한 서명자는 70명에 불과하다. 의회에 법안을 제출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수치다. 오트만은 서두를 생각이 없다. “우리가 패배할 거라고 여긴다. 더 토론하고 로비도 해야 한다.” 그러나 포기할 생각도 없다. 이라크 북부 쿠르드 지역의 지도자들은 비슷한 조치를 채택했다. 사미라 무사위 의원은 미군이 사와 같은 집단들을 지나치게 신뢰해 이라크를 진보화할 가능성이 작아지지 않았는지 걱정한다. “족장들은 크게 존경 받지만 상당수가 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그녀가 말했다. 교육수준이 낮으면 낮을수록, 특히 여권 문제 등에서는 반동적인 사고를 하는 경향이 있다고 그녀는 생각한다. 미군은 사와를 키우는 데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준이 있어야 한다.” 현재 미군은 지하드 전사들의 공격이 크게 감소한 사실에 너무 도취돼 남녀 성차별 따위 문제로 고민할 시간이 없다. “자기네끼리 용인할 만한 적당한 수준을 찾아내지 않겠는가”라며 사와 프로그램의 미군 측 진행자 가운데 하나인 마틴 스탠턴 대령이 말했다. “그들의 문화 안에서 어찌 되든 그건 우리가 간섭할 일이 아니라고 본다.” 연합군은 여러 해 동안 시아파 집단이 남부 지방에서 자기네 가치관을 강요하도록 방치했다. 안정을 우선시했기 때문이다. 이제 그곳 여성은 대부분 히잡을 하고 다닌다. 일부 여성은 시아파 민병대의 압력에 밀려 직장을 그만뒀다. 사실 서구식 사고방식이 반드시 이라크 실정에 맞지는 않는다. 하버드 법대 교수 노아 펠드먼은 2003년 임시통치기구의 헌법 고문 자격으로 이라크에 갔다. 그해 봄 족장들이 폴 브레머 최고행정관에게 접근해 성난 추종자들의 입을 다물게 하겠다는 제의를 했었다고 회고했다. “그들에게 ‘이라크를 중세시대로 되돌릴 생각은 없다’고 말해줬다”고 펠드먼이 말했다. 미군 사령관들은 그 뒤 족장들의 도움 없이 저항세력과 싸우느라 4년 세월을 허송세월 했다. “다른 방식을 써봤지만 통하지 않았다”고 이소벨 콜먼이 말했다. “족장들이 사태를 정리한다. 문제는 어느 선까지 가느냐는 것이다. 우리는 모른다.” 그건 누구도 모른다. 그러나 일부 이라크 여성은 사와가 이미 너무 많은 힘을 얻었고 이제는 돌이키기 어렵게 되지 않을까를 걱정한다.
With BABAK DEHGHANPISHEH, HUSSAM ALI and SALIH MAHDI in Baghd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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