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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춘도 아닌데 어쩌라고요!”

“매춘도 아닌데 어쩌라고요!”

한국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미국 시트콤 ‘프렌즈’. 여주인공 피비는 불임으로 고생하는 남동생 부부를 위해 선뜻 자신의 자궁을 빌려준다. 남동생 부부가 체외 수정을 통해 수정란을 만들어(시험관아기시술) 배아를 자신의 자궁에 착상하는 방식이다. 결국 고모가 조카를 낳는 셈이지만, 새로 태어날 아이는 친부모의 유전자를 고스란히 물려받게 된다. 남동생 부부는 그토록 기다리던 아이를 갖게 되고, 피비 또한 동생에게 최고의 선물을 줬다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 최근 국내 TV드라마에서도 ‘비슷한’ 설정이 등장했다. 한 방송국에서 인기리에 방송된 일일 드라마 ‘그 여자가 무서워’의 가난한 여주인공 영림은 자신을 버리고 부잣집으로 장가 든 옛 애인 경표에게 복수의 칼을 갈면서 돈 많은 한 불임여성(정 여인)의 대리모를 자청하고 나선다. 드라마에서 대리임신을 기정사실화하자 한 시민단체는 “대리모라는 불법적이고 비윤리적인 행위를 정당화하는 등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두 드라마가 똑같이 대리모를 소재로 다뤘지만 입장은 서로 다르다. 미국 드라마 ‘프렌즈’는 대리모를 이타적 대리모로 본 반면 국내 드라마는 상업적 대리모의 일단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상업적 대리출산조차 엄밀히 말한다면 불법이 아니다. 서울 서초경찰서 지능수사팀의 박호상 팀장은 “현행법상 대리출산과 대리모는 마땅한 처벌법규가 없다. 단지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 법의 사각지대일 뿐이다”고 설명한다. 불법도 아니고 그렇다고 ‘합법’도 아닌 상업적 대리출산은 대개 난자매매와 함께 이뤄진다. 그 중간엔 전문 알선업자(브로커)가 개입한다. 지난 3월 말 충남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 검거된 브로커 2명이 그런 경우다. 이들은 자신들이 개설한 인터넷 카페를 통해 의뢰인들에게 1차 소개비(회당 400만~500만원)를 받고 복수로 지원자 정보를 제공한 뒤 의뢰인이 최종 대리모를 선택하면 2차 소개비를 챙기고 연락처를 넘겨주는 수법을 써왔다. 이 인터넷 카페에 가입한 회원 수가 1200명에 달했다. 이 사건을 수사한 충남경찰청 사이버수사대 김구현 경사는 “최근엔 지원자의 연령이 낮아져 20대 초반에서 30대 초반이 대부분이었다”면서 “대리모 지원자 중에는 중국인(한족)들도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요즘에는 대학을 졸업했거나 대학에 재학 중인 미혼자들까지 대리모를 자청하고 나설 정도다. 심지어 유학비용을 마련한다고 대리모를 자원한 대학생도 있었다.” 4월 초에는 브로커와 난자 판매자, 시술의사 등이 개입된 커넥션이 군산경찰서 사이버수사대에 적발됐다. 트럭 운전기사로 신용불량자인 브로커 정씨는 블로그나 카페를 6곳이나 개설해 대리모 지원자 100여 명을 모집했다. 그 가운데 난자매매는 극소수에 불과했고 나머지 90%는 대리출산을 바라는 이들이었다. 브로커와 지원자 간의 e-메일 교신 중엔 이런 내용도 포함돼 있다. 한 의뢰인이 ‘난자공여도 하느냐’고 묻자 정씨는 ‘난자매매는 처벌돼도 대리모는 처벌규정이 없어 대리모 거래를 주로 한다’고 답했다. 경찰서에 연행된 뒤에도 정씨는 “법적 근거가 있느냐”고 항의했고, 결국 무혐의로 풀려났다. 난자매매 알선 흔적이 한두 건 있었지만 돈이 오간 증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수사한 군산경찰서 김석범 경사는 “법망을 교묘히 피해 철저히 상업적 목적으로 대리출산을 알선하는 브로커를 처벌할 법적 근거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정씨가 한 포털사이트에서 운영하던 ‘대××’란 카페는 아직도 운영 중이다). 박재완 전 한나라당 의원(현 청와대 정무수석 비서관)과 양승조 통합민주당 의원이 2006년 각각 ‘체외수정 등에 관한 법률안’과 ‘의료보조생식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두 법안은 다소 차이는 있지만 모두 영리목적의 대리모를 엄격히 규제하자는 취지다.

▶냉동보관 중인 정자와 난자

‘체외수정 등에 관한 법률안’은 대리출산 허용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보건복지가족부 안에 체외수정관리본부를, ‘의료보조생식에 관한 법률안’은 보조생식의 안정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국립의료원에 의료보조생식관리센터를 세울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강남차병원 여성의학연구소의 조정현 교수는 “국가가 자식을 가질 국민의 권리를 제약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말했다. 양승조 의원은 “4월 25일 임시국회가 열려도 법안 통과를 촉구할 상황은 아니다”며 “상임위 차원에서 심도 있게 논의한 뒤 손질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 사이에서도 대리모 문제에 대한 공론화가 안 돼 사회적 합의 도출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대리임신과 관련해 최근 특히 두드러지는 추세는 불임부부와 지원자 간의 ‘직거래’ 증가다. 뉴스위크 한국판이 만난 대리모 경험자는 “알선업자를 통하면 사기를 당할 수도 있고, 수수료 부담도 크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대개 ‘게시판 직거래’를 이용하며 남자가 전화를 걸어오면 곧바로 끊어버린다.” 대리모 지원자와 의뢰인(주로 불임여성)은 ‘27세 A형 서울 거주, 경험 있음’ ‘서로 절실하니 장난 사절합니다’ 등 짤막한 글과 연락처를 남긴다. e-메일과 전화로 서로의 조건을 확인한 뒤 의견이 일치하면 계약서를 작성한다. 가격은 3000만원에서 많게는 1억원을 훌쩍 넘는 경우도 있다. 의뢰인 부부와 대리모가 함께 배아생성 전문병원에 가서 병력 청취와 자궁 등 신체검진, 감염성 질환검사를 마치고 이상이 없으면 착상에 들어간다. 착상에 성공해 임신이 확인되면 의뢰인 부부가 자신의 집 근처에 대리모의 거처를 마련해 주고 수시로 드나들며 보살피고 병원에 동행하기도 한다. 전국에 120여 개에 달하는 배아생성 전문병원은 과연 산모의 대리모 여부를 알고 있을까? 대개는 눈치로 알지만 눈감아주는 형편이다(사실 대리임신이 ‘불법행위’도 아니다). 덕분에 대리모는 손쉽게 친모로 둔갑한다. 원래는 대리모가 출산하면 불임부부가 아이를 입양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지만 그런 거추장스러운 절차를 원하는 불임부부는 거의 없다(병원 입장에서도 수백만원에 이르는 시험관아기시술 수입을 쉽게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 배아가 순조롭게 자라면 분만은 일반 산부인과에서 하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출생증명서를 떼는 것도 친모와 대리모가 혈액형만 같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대리임신을 하는 여성들은 자신의 대리출산에 대해 부끄러울 게 없다는 입장이다. 얼마 전 두 번째 대리출산을 ‘무사히’ 마친 한 여성은 “대리임신은 내 직업”이라고 말했다. “물론 출산 후 두세 달은 상당히 힘들다. 산후조리하고 젖몸살 겪을 때 아기 생각이 많이 나고 뭔가를 잃은 것처럼 마음이 허전하다. 그러나 아기가 건강하게 태어났을 때 의뢰인 부부가 눈물을 흘리며 감격하는 모습을 보면서 희열을 느낀다.”
의뢰인 부부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편이다. “원래는 연락하지 않으려 했지만 여자분이 ‘은인’처럼 여기면서 종종 안부를 물어온다. 돌잔치 같은 가족 행사에도 초대하고 사진도 보내준다”고 그녀가 말했다. 최근 뉴스위크 한국판과 통화한 20대 미혼모(27)는 아이를 키울 돈이 부족해 대리모를 지원하고 나섰다. 그녀는 혈액형이 A형이며 난자 제공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회사를 다니며 친구와 둘이 살고 있지만 의뢰인이 나타나면 회사도 그만둘 작정이다. 그녀가 대리출산 대가로 요구하는 돈은 4000만원이다. “게시판에 글을 올린 뒤 전화를 많이 받기도 했지만 학력·키·외모 등 각종 인적 사항과 병력 등을 너무 까다롭게 물어 힘들었다”고 그녀는 말했다. 왜 이 일을 하느냐고 묻자 “성매매보다는 낫지 않으냐”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녀는 대리모 실태를 다룬 TV 프로그램을 보고 대리모에 대해 처음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인터넷은 대리모 알선자나 지원자들에게 중요한 도구다. 박재완 전 의원은 2005년 9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대리모 관련 사이트의 현황을 조사했다. 그 결과 2005년 4개, 2006년 13개, 2007년 7월엔 15개 사이트가 대리출산 알선업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박 의원의 조사 결과가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자 대부분의 웹사이트가 문을 닫았다. 뉴스위크 한국판이 직접 만난 대리모 경험자도 “예전에 비해 카페나 게시판이 많이 줄어 글을 올릴 곳이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을 뿐 브로커들의 수법은 더욱 교묘해졌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3개월 정도 주기로 카페나 게시판을 열고 닫았지만 지금은 여닫는 주기가 3일~1주일로 더 짧아졌다. 게다가 브로커들은 ‘대리모’ ‘난자매매’ 등 직접적인 단어를 사용하기보다 ‘불임부부’ 같은 이름으로 위장 카페를 만든다. 이들 브로커는 개별적으로 활동하지만 서로 긴밀히 연락을 주고받으며 점조직 형태로 일한다. 의뢰인들의 요구사항이 많기 때문에 브로커들은 ‘특별한’ 명단을 공유하기도 한다(물론 약간의 소개비는 필수다). 대리모 브로커들은 국경을 넘나들기도 한다. 중국 여성과의 국제결혼을 알선하는 한 인터넷 중매업체는 지난해까지 중국인 대리모 광고를 꾸준히 올렸다. 가격은 통상 의뢰인 부부가 2000만원을 브로커에게 건네면 약 1200만원이 중국인 대리모에게 돌아간다. 이런 경우는 체외수정에 따른 대리임신보다 직접적인 성관계를 통한 대리임신이 더 흔하다. 대리모의 배란기에 맞춰 의뢰남성이 현지를 방문하고, 만일 임신에 실패하면 다음 배란기에 다시 방문하는 식이다. 아이를 낳아 한국으로 데려오는 방법은 두 가지다. 중국 현지에서 낳아 한국으로 입양하는 방식과 한국에서 출산하고 불임여성이 직접 나은 것처럼 출생신고를 하는 방식이다(외국인 대리모의 경우엔 친권분쟁 우려가 없다). 그러나 요즘은 이러한 인터넷 중매업체 웹사이트들이 대부분 자취를 감춘 상태다. 박재완 전 의원의 이강원 보좌관은 “조사 발표 이후 정부 당국이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과거엔 국제결혼 중개업체, 외국인 노동자센터 등의 웹사이트 게시판에서도 대리모 구인광고가 눈에 띄었지만 지금은 자취를 감추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한다. 군산경찰서 김범석 경사는 “한국인 브로커들끼리 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중국의 ‘대리출산 업체’와 연결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직장인 김용목씨가 최근 중국 출장 길에 겪은 일은 더 충격적이다. “요즘은 중국 브로커들이 대도시 곳곳에 상주하면서 인터넷 등을 통해 노골적으로 장사하는 사례가 는다”고 말했다. 자문변호사까지 갖춘 중국 대리모 알선업체들은 대개 4만 위안(약 500만원)에서 많게는 10만 위안(약 1200만원)을 요구한다. 마치 물건값 매기듯 대리모들은 외모와 학력 등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대리모 출산이 불법인 중국에서 브로커들이 이렇게 대놓고 장사하는 이유는 한국인 수요가 많기 때문”이라고 김씨는 말했다. 중국의 일부 알선업체는 대부분 체외수정 대신 중국 여성과 직접 성관계를 통한 대리임신을 주선한다. 대리모 계약은 흔히 갑(의뢰인), 을(대리모), 병(브로커) 3자 간에 맺어진다(‘을’의 법적인 남편이 있으면 함께 서명에 참가한다. 당사자 간의 직접 계약일 때는 ‘병’이 제외된다). 뉴스위크 한국판이 입수한 ‘대리모 계약서 및 임신동의서’ 원본은 체외수정에 의한 대리임신이 아닌 경우도 해당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총 27개 항에 걸쳐 한결같이 ‘시험관 및 인공수정 시술’로 언급돼 있기 때문이다. 문제 부분은 인공수정 부분이다. 인공수정은 ‘처리된 정자를 여성의 자궁 속에 집어넣는 과정’이므로 결국 대리모의 ‘난자공여’에 해당한다(불법 난자매매는 2005년 제정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에 따라 위법). 계약서엔 ‘을’의 인권침해 조항도 자주 눈에 띈다. “ ‘갑’은 기형아 출산시 친권을 거부할 수 있다(17항)” “5일 이상 연락두절시 ‘갑’은 ‘을’에게 계약을 파기할 수 있으며 ‘을’이 받은 금액의 2배(병원비 포함)를 ‘갑’에게 돌려줘야 한다(7항)” “‘을’은 분만 및 출산시 자연임신 때처럼 합병증 등에 따르는 사회적·경제적·법적·도덕적 책임을 진다(22항)” 등이다. 기밀유지 의무 조항도 눈에 띈다. “ ‘갑’과 ‘을’은 시험관 및 인공수정 시술에 대한 모든 부분을 절대 비밀로 하며 언론이나 방송에 노출하지 않는다(6항)”.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발표한 ‘2005년도 배아현황’에 따르면 국내에선 총 2만1154건의 체외수정시술이 실시됐다. 병원의 신고에 의한 집계여서 실제 규모는 더 클 것으로 보인다. 그중 상업적인 대리모시술이 차지하는 비중도 상당할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대리모를 통한 출산에는 늘 뜻밖의 변수가 도사린다. 베이징에 사는 조선족 부유층 불임부부는 얼마 전 강남의 한 병원에서 시누이를 대리모로 해 꿈에도 그리던 딸을 낳았다. 그러나 친모인 김씨는 그 뒤로 적잖은 마음고생을 치렀다. 아이를 직접 낳은 시누이의 지나친 애정 때문이었다. 김씨는 결국 둘 사이를 떼어놓기 위해 딸을 데리고 베이징을 떠나야 할 정도였다. 인기 시트콤 프렌즈에서 대리모 출산의 당사자들은 모두가 해피엔딩이었다. 하지만 경이로운 생명과학이 실제 세계에서도 모두에게 행복한 결말을 가져다줄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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