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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 기자의 공개 못한 취재수첩] 당재터널 뚫다 13번이나 무너져

[이호 기자의 공개 못한 취재수첩] 당재터널 뚫다 13번이나 무너져

▶경부고속도로 공사 중 터널과 교량이 연결된 부분.

경부고속도로 공사를 하면서 사실상 시공업체인 현대건설이 막판에 가장 고통을 느낀 것은 장비 때문도, 인력 때문도 아니었다. 정부의 협박으로 반쯤 죽었다고 했다. 정해 놓은 개통일자 때문이었다. 당시만 해도 국가적 물류 인프라 공사라고는 했지만 건국 후 최대의 고속도로 개통식이 될 것인 만큼 반드시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한다는 것이었고, 청와대로부터 확정일자를 받게 되면 하늘이 두 쪽 나도 변경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다음은 김영주 회장의 얘기다. “문제는 경부고속도로 전체를 수원공구, 천안공구, 영천공구 등 7개 구간으로 나눠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건설업체 16개가 덤벼들었는데, 맨 마지막 언양공구는 어느 업체라고 할 건 없지만 결국 중간에 나자빠지다시피 해서 현대건설이 마무리를 짓느라고 고생했어요. 그보다 더 절박했던 곳이 대전공구 중에 옥천구간에 있는 당재터널이 제일 난코스였단 말이죠. 거기만 뚫으면 경부고속도로는 다 끝났다고 할 정도로 힘들고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어요. 근데 대전공구가 얼마나 힘들었느냐, 한마디로 전체 공구 중에 제일 길고, 경부고속도로에 대형 다리(長大橋)가 전부 32개인데 그중 최고 높고 긴 장대교 6개가 대전공구에 들어 있어요. 장대교 전체 길이를 합치면 8km가 조금 넘는데 우리가 건설한 다리 길이만 1480m예요. 그러니까 현대가 공사비는 km당 똑같이 받으면서 완전히 대박이 아니라 피박을 썼다고 했을 정도예요. 다들 그렇게 말했다고요. 전체 토공량(土工量)을 100으로 볼 때 37%를 우리 현대가 해야 했다면 말 다한 거 아닙니까? 그러니 중장비들을 거의 집결시키고 인력도 대부분 옥천에 투입할 정도로 전부가 매달린 겁니다. 그럴 정도로 난코스고 현장 조건이 안 좋아요.”

-대전공구가 영천공구보다 더 길었습니까?
“더 길지요. 영천공구에 비해 1㎞ 정도 더 깁니다. 좌우간 청원군 옥산면에서 옥천군 청성면까지 74.4km가 대전공구인데 거길 지역 연고가 있는 동아건설에 안 맡기고 현대에 맡긴 이유를 나중에 보니까 알겠어. 최고로 험준한 지역이고, 우리처럼 태국 같은 열악한 조건에서 고속도로 공사를 해 보지 않은 동아건설 가지고는 어림없는 구간이에요. 풍부한 경험도 중요했지만 잘라내야 하는 바위 덩어리만 해도 보고를 받아 보니까 254만m2가 넘는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중에 상하행선을 합쳐 1120m나 되는 문제의 당재터널이, 이게 또 짝짝이 터널입니다. 상행선과 하행선의 터널 길이가 달라요. 터널이 휘어 있는데 60m나 차이가 납니다. 상행선 터널이 더 긴 겁니다. 터널 길이가 다르면 어떤 문제가 생기느냐, 터널을 빠져나오면 바로 강이니까 연결되는 대교가 또 ‘장애 다리’가 돼요. 한쪽은 길고 한쪽은 짧고. 그런데다가 터널이 길면 길수록 돌출 악재가 많이 나타나게 마련인데 터널의 항문 쪽에 배수가 잘 안 돼요. 그럼 물이 고인다는 얘기죠. 하여간 악조건이라는 악조건은 다 갖췄고 그런 중에서도 제일 이상한 것이, 대부분 터널공사를 해 보면 연한 암석에서 점차 강한 암석이 나타나거든요? 경부고속도로 전 구간에 6개 터널이 있지만 5개 터널은 전부 연암에서 강암으로 이어져요. 당재터널만 잡석층이 나와요. 그러니까 암반의 맥이 편마암에서부터 가지각색의 암반 맥이 형성돼 있더라 그거죠. 그러니 뚫어 놓으면 무너져 내리고 뚫다가도 무너져 내리고, 좌우간 뚫는 도중에 13번이나 낙반사고가 발생했으니 말이지요.”
박 대통령 스케줄 절대 못 바꿔


-전혀 모르고 공사에 들어갔다는 말씀 아닙니까.
“60년대에 뭘로 암반 측정을 합니까. 그런 장비나 기술이 있어요? 그때 전체 공구소장을 당시 이사였던 양봉웅 회장(전 고려산업개발 회장)이 맡았고 건설사무소장을 지영만 소장이 맡았나 그랬는데, 전부 예정했던 공기 안에는 어림없겠다는 겁니다. 그 당시 국내에서 터널만큼은 자타가 인정했고 따를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로 유명했던 이가 공영토건에 있던 이문옥씨예요. 그이도 와서 보고는 완공 예정일로 잡은 게 6월 30일인데 그때까지는 턱도 없고 12월이나 돼야 가능하겠다는 겁니다. 아주 빨리 몰아대도 9월 전에는 어림없다는 거지요. 국내 최고의 터널 전문가라는 사람이 그렇게 얘기를 하니 죽을 노릇 아닙니까? 개통일자는 이미 7월 7일로 잡아놨는데 말이요. 그건 대통령이 참석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잡은 것도 아니고 청와대와 건설부가 협의해서 잡는데 한 번 결정해 놓으면 바꿀 수가 없는 걸로 돼 있단 말이죠.”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는 천재지변이 아닌 한 변경이 있을 수 없겠지요. 권위도 권위지만 시간을 쪼개서 쓴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사실 그게 사람을 잡는 일이에요. 감히 대통령 스케줄을 건설업자가 바꾼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고 우리도 그걸 안단 말이죠. 그러니까 그때 건설부장관이 이한림 장관인데, 늦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보고를 받았을 것 아닙니까? 이문옥이라는 사람도 이 장관이 가 보라고 해서 왔었거든. 얼굴이 상기돼가지고 언성이 높아지는데, 이 장관이 뭐라고 했는지 압니까? ‘당신들 분명히 각오해. 일정 변경은 절대 있을 수가 없어. 정주영 회장도 가능하다고 해서 잡았는데 단 하루라도 개통식 날짜가 늦어지면 각하 모시고 하늘에서 헬기로 준공식을 할 거야. 그럼 어떻게 되는 줄 알지? 너희 회사 문 닫아야 돼!’ 명예회장님이 언제 가능하다고 했어요? 자기네들이 잡아 놓고. 그렇지만 막 공갈을 치고 그러니 명예회장님인들 아무리 배짱 좋고 유들유들해도 개통을 늦출 수가 있어요? 굉장히 당황했지요. 그래가지고 아예 공사현장에서 살다시피 하셨어요. 그렇게 되니까 나한테 만사 제치고 상행선 맡으라고 말이야. 하행선은 지 소장인가 이 소장인가 맡고. 그때부터 전쟁입니다.” 14개 국내 기술용역업체가 실시설계를, 16개 건설업체와 3개 군 공병단이 참여하고 기술지원은 미국 디루케인 인터내셔널이 했지만 1차 서울∼수원 구간 완공에 이어 최종 대전∼대구 구간만 완성되면 완전 개통인데 완공 한 달여를 남기고 ‘당재 귀신’한테 발목이 잡혔다는 것이다. 68년 8월 19일 착공할 때만 해도 옥천구간을 제외한 대전공구는 대림산업, 아주토건, 삼부토건이 시공에 참여했지만 2년도 안 돼 현대가 달라붙은 당재터널을 보고는 아예 그들 3사는 녹다운 되다시피 하고 육군 1202건설공병단까지 동원됐지만 난공사를 당해 낼 재간이 없었던 셈이다. 현대도 숙명이다 하고 덤볐지만 현장 기사들은 말할 것도 없고 소장까지 퍽퍽 나가떨어질 정도였다는 것이 김영주 당시 부사장의 회고였다.

▶1970년 7월 경부고속도로 준공식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이한림 당시 건설부 장관(맨 왼쪽), 정주영 현대건설 회장(맨 오른쪽)과 함께 테이프 커팅을 하고 있다.

“그때 이한림 장관이 명령을 내려가지고 대한민국의 건설국장이라는 국장은 다 모였습니다. 서울은 말할 것도 없고 각도에 있는 국장들, 건설업체 이사급들, 전부 다 모였어요. 그만큼 개통일자를 맞추려니까 피가 마르고 다급했고 어려운 공사였다는 얘기지요. 하여간 한 달 정도 남았는데 우리 직원 중에 성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시피 했어요. 말단은 말할 것도 없고 소장이 맥을 못 춰요. 원체 피로가 겹치니까. 말단들도 다 대학 출신이고 최고학부 나온 귀한 자식들인데 그냥 쓰러져요. 도저히 안 돼서 목욕탕에 집어넣고 몸 좀 풀라고 하니까 첨에는 옷을 못 벗어요. 창피하다고. ‘이 자식들아, 다 똑같아!’ 소리를 지르니까 옷을 벗는데 보니 차마 눈뜨고는 못 보겠어. 옷 색깔하고 몸뚱이 색깔이 땀으로 더러워져서 악취까지 풍기고 똑같아. 발가락이 다 붙었어요. 신을 벗을 새가 없으니까. 그러니까 땀이 나도 작업화를 벗을 새가 없으니까 발가락 사이가 다 붙은 거예요.”

-그렇게나 상황이 다급했군요.
“당재터널 공사가 그랬어요. 물론 다른 구간도 여유는 다 없었고 건설쟁이들 생활이 그때는 그럴 정도였어요. 콘크리트 쏟아 붓고 단 1초가 아까웠으니까. 운전수가 소변을 못 보고 바지에 싸고 그랬어요. 공구소장이 퍽퍽 나자빠졌다면 말 다한 거 아닙니까. 워낙 죽게 생겨서 대전에 사람을 보내가지고 의사를 데려오고 주사를 맞으라니까 나 혼자만 어떻게 맞느냐고 소장이 도망가요. 그걸 호통 쳐서 링겔(링거)을 맞히는데 사무실에서는 못 맞겠다고 그래요. 구석방에 집어넣고 주사를 꽂으니까 1분도 안 돼서 쓰러져 잡디다. 원체 피로해서 그랬겠지만 구석방에서 맞겠다는 것도 이유가 있었어요. 명색이 소장이고 이사인데, 몸을 봤더니 때가 더덕더덕 붙었어. 먼지가 꽉 차 있는 터널 속에서 24시간 왔다 갔다 했으니 오죽 했겠어요?” 당시만 해도 박 대통령의 최대 치적으로 추진된 프로젝트였고, 일부에서는 차기 선거를 앞둔 선거용 공사라는 비난도 있었지만 2차 5개년 계획의 성공적인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정치성을 떠나 고속도로 건설은 사실상 경제의 생명선이라는 데 이견을 달 수가 없었다. 세계적인 경제 분석 전문 기관들도 같은 견해였고 66년에 경제기획원이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에 한국의 교통조사를 의뢰했을 때 IBRD 조사단이 내한해 조사한 조사보고서(66년 6월)를 보면 ‘물동량에 비해 도로의 시설용량은 턱없이 부족하다. 현대적 도로 개발 없이는 경제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정주영 회장은 정치적 논쟁에 휘말릴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공사는 막판까지 왔고, 현대건설의 조직을 확대하면서까지 고속도로 공사에 모든 것을 쏟아 넣는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했다. 68년 말 주주총회에서 이미 조직 확대를 선언하고 69년 1월부로 자신이 회장으로, 정인영 부사장을 사장으로, 이춘림을 건축담당 부사장, 정순영을 관리담당 부사장, 김영주를 중기담당 부사장으로 승진시키면서 대대적으로 조직개편을 단행했고 김준식과 이명박을 비롯한 새로운 이사 승진은 준공식을 앞둔 70년 4월에 단행하는 것이다.
이명박 이사가 장비도입 맡아
물론 이 시점에서 정 회장은 특별한 안목을 보이기도 했다. 고속도로 공사가 시작되고 인천항 증설과 각 지역의 댐 공사 등이 계속되고 도로포장과 건설경기 활성화가 예견되자 70년 1월 단양시멘트를 현대시멘트주식회사로 분리해 독립시키고 정순영 부사장을 사장으로 만들어 내보내는 것이다. 시멘트 생산량이 수요에 비해 불필요할 정도로 많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데도 오히려 증산해야 한다고 그렇게 했다. 결과는 갈수록 시멘트 수요가 늘었고 심할 때는 웃돈을 주고도 구입하지 못할 만큼 절대량이 부족해 결국 정부의 당초 예측이 빗나간 셈이 됐다. 당재터널도 시멘트공장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면 예정된 공기를 맞추지 못했을 거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였다. 또 하나가 중장비기계공장의 대대적인 증설이었다. 이것이 훗날 현대중공업의 중장비 제작과 연결되기도 하지만 정 회장은 원효로에 있던 중기공장을 서빙고로 확장해 옮기고 그때부터 새로운 장비들을 대거 도입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때 장비 도입이 바로 이명박 이사의 역할이었다. 태국 현장에서 막 돌아왔을 때는 과장이었지만 쾌속승진을 하면서 불과 몇 달 사이에 부장을 거쳐 이사로 만들어 놓고는 현대건설 자산보다 더 많은 돈을 투입해 장비를 구입하라고 특명을 내린 것이다. 이명박 전 회장은 당시를 회고하면서 너무 엄청난 일을 맡으니까 오히려 웃음이 나더라고 했다. “어마어마한 거야. 최신 장비를 그 당시 현대건설만 500만 달러어치를 수입했으니까 현대건설 총 자산이 500만 달러가 안 될 때라는 걸 생각해 보세요. 그 장비가 얼마나 되겠는지. 그걸 내가 맡아가지고 수입을 해서 경부고속도로 공사 현장 사방에 깔아놓는 건데, 그때는 잠도 못 자는 거고 그걸 나보고 하라니까 기가 콱 차고 웃음이 나더라고요 그냥, 허허헝. 그럴 거 아니에요. 그게 한두 푼짜리도 아니고 최신식인데. 그런데다가 만의 하나 잘못 구입된 장비가 고속도로 현장에 투입돼서 말썽이라도 생겨 보세요, 그 후에 닥칠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다고요. 식은땀이 나는 거지. 그전에는 장비라는 게 미8군에서 불하 받은 걸 썼는데 소위 말하면 최신 유압식이라는 거. 그러니 명령을 받았으니까 하긴 하는데 기가 막히는 거지요.”

-그 엄청난 일을 다른 중역도 많이 있고 장비기술자들도 있었을 텐데 왜 회장님한테 맡겼을까요?
“그건 정주영 회장한테 물어봐야지 뭐, 정 회장 만나거든 한번 물어봐, 허허헝.”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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