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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청기 값 거품 뺐다

보청기 값 거품 뺐다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보츠와나의 오지 마을 오체까진 먼 길이다. 그래도 하워드 와인스타인(57)은 다녀오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오체는 주민 3500명이 칼라하리 사막 가장자리에 모여 사는 메마른 땅이다. 와인스타인은 5년 전 처음 그곳으로 갔다. 새로운 삶을 원해서다. 비정부 단체 캐나다세계대학서비스(WUSC)가 그를 오체로 보냈다. 아프리카의 청각장애인들이 부담 없이 구입할 수 있는 보청기를 만드는 회사를 세우는 일이 임무였다. 그러나 오체 주민들은 어떤 물건이든 돈 주고 살 형편이 못 됐다. “우리 사무실은 방 하나에 의자 두 개뿐이고 직원도 없었다. 무에서 시작했다.” 바로 그가 찾던 일이었다. 첫 장애물은 기술이었다. 캐나다에 살 때 와인스타인은 배관사업으로 돈을 벌었다. 축받이통이나 비데라면 모르는 게 없다. 그러나 청각과학에 관해선 아는 게 없었다. “데시벨과 팅커벨(‘피터팬’에 나오는 요정)의 차이도 몰랐다”고 그가 말했다. 그렇지만 문제의 심각성을 이해하는 데 굳이 생리학 학위가 필요하진 않았다. 세계보건기구는 전 세계 청각장애인이 약 2억5000만 명이라고 본다. 그중 3분의 2가 개도국 주민이다. 그런데도 보청기의 연간 생산량은 1000만 대에 못 미친다. 왜 그럴까? “배터리 때문”이라고 와인스타인이 말했다. “개당 1달러인데 1주 정도 간다.” 통상적으로 하루 1달러가 평균 임금인 나라에서는 그것도 엄청난 고가다. “아프리카, 중남미, 아시아의 빈민은 배터리가 떨어질 때까지 보청기를 쓰다가 서랍에 처박아 두거나 팔아 치운다”고 와인스타인이 말했다. 와인스타인은 사업모델을 바꿔야 했다. 기업인 시절의 경험을 살려 전주들과 이야기하고, 전자제품 전문가와 상담하고, 제조업체와 흥정을 했다. 미국 정부가 운영하는 아프리카개발재단(USADF)에서 약간의 지원을 받고, 이윤이 남지 않아도 좋다는 전자제품 전문가와 기업 간부들의 도움을 얻어 마침내 색다른 물건을 선보였다. 충전이 가능한 태양열 전지를 사용하는 저렴한 보청기 ‘솔라에이드’다. 생김새는 평범하다. 작은 플라스틱 조각을 귀 뒤에 꽂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값은 100달러가 안 된다. 시중에 나온 가장 싼 모델의 5분의 1에 불과하다. 충전 가능한 배터리는 개당 1달러로 수명이 2~3년이다. 이 모든 게 전력을 공급할 방법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그래서 호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크기의 충전 장치를 만들었다. 벽의 소켓에 꽂거나 장치된 태양열 집열판을 이용하면 된다. 와인스타인은 충분히 활용되지 않는 또 하나의 에너지원을 이용했다. 다름아닌 청각장애인이다. “수화를 익히려면 손과 눈의 정교한 조화가 필요하다. 청각장애자는 보청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정교한 용접과 초소형 전자기술에 매우 적합하다”고 그가 말했다. 아프리카의 빈 사무실은 지금 잘나가는 비영리사업 기지로 변했다. 30개 국에서 약 2만 명이 솔라에이드 보청기, 충전기, 배터리를 이용한다. 와인스타인은 현재 아쇼카 재단과 레멜슨 재단의 지원으로 상파울루 대학 기술진과 함께 2세대 디지털 보청기 개발에 한창이다. 그는 브라질이 중남미 진출의 교두보라고 생각한다. 요르단에도 비영리 기업을 세워 중동 전체를 시장으로 삼을 계획이다. 그 다음엔 중국과 인도다. 앞으로 3~5년에 걸쳐 전부 1000명의 청각장애인을 고용하고자 한다. 몇 해 전만 해도 자선사업이란 와인스타인과 거리가 멀었다. 밸브와 수도꼭지를 만드는 회사를 키워 큰돈을 받고 어느 포춘 500대 기업에 판 뒤 사장직에 눌러앉았다. 1990년대 초에는 대다수 사람이 꿈꾸는 삶을 살았다. 몬트리올의 대저택 외에도 앞에 호수가 보이고 뒤에 스키장이 있는 시골 별장도 구했다. 그러던 1995년 어느 날 밤 하늘이 무너졌다. 열 살짜리 딸이 동맥류에 걸려 잠을 자다가 사망했다. “완전히 절망했다”고 그가 말했다. 회사에서 해고되고 힘들게 심리치료를 받다가 회사를 새로 차렸으나 사업감각을 잃어 도산했다. “어떤 것도 의미가 없었다”고 그는 말했다. 2001년 가난한 아프리카 사람을 돕는 월급 1000달러짜리 일자리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른 지원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상처 부위에서 축복이 시작된다는 말을 한다. 바로 내 얘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업계를 설득하는 것이 만만치 않았다. 보청기 제조업체들은 개당 500달러에서 1만 달러까지 지불하는 고급 소비자의 수요를 맞추는 데 돈을 투자한다. 대형 업체들을 저가 시장으로 내려가도록 설득하는 일은 대형 제약회사에 말라리아, 결핵 등 “빈민 질병”을 치료할 저렴한 약품을 개발하라는 주문과 같았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 눈에 장벽이 보일 때 와인스타인의 눈엔 미개척지가 보였다. 사운드디자인테크놀로지스의 샘 모크와 댄 칼슨도 마찬가지였다. 그 회사는 토론토에서 보청기에 쓰는 마이크로프로세서를 만들어 연간 40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린다. 두 사람은 얼마 전 와인스타인과 팀을 이루기로 결심할 때 자선사업이란 생각만 하진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그의 사업모델은 주류 경제권 외곽에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한다”고 칼슨이 말했다. 칼슨은 새 디지털 보청기의 설계와 완성 작업도 돕는다. “당장은 큰돈이 안 되겠지만 오래 버티면 워낙 큰 시장이라 고객기반이 반드시 커질 것이다.” 그런 논리라면 아무리 냉담한 투자가의 귀라도 솔깃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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