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 기자의 공개 못한 취재수첩] “즉결처리 하려면 나부터 쏴라”
[이호 기자의 공개 못한 취재수첩] “즉결처리 하려면 나부터 쏴라”
▶박정희 대통령이 1973년 3월 울산 현대조선소에 들러 유조선의 골격을 만드는 과정을 살펴보고 있다. |
- 현지 대사관에서는 전화 때문에 속이 뒤집어질 정도로 업무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들었습니다만 위성전화가 현대에 설치돼 있었다니 너무 뜻밖인데, 그게 사우디 보안 당국에 걸리지 않았습니까? “그걸 전갑원이가 한 짓이야, 하하항. 그게 우너칙은 배에 설치를 하는 거래요. 그것도 주베일 항에 띄워놓은 배에 설치를 해서 본사하고 공사에 필요한 긴급사항이 있을 때 인공위성을 통해 연결하는 걸로 돼있었는데, 그쪽(사우디)도 위성을 연결해주는 본부 담당이 있을거 아니에요? 그 친구를 구워삶아서 제한적으로 하겠다, 해놓고는 전갑원이가 지휘본부 설계를 하면서 배에 설치할 장비를 숨겨가지고 지휘본부 숙소 안에 다 삭 해놓은 거야. 서류상은 배에 있는걸로 해놓고 실제 장비는 싹 돌린 거지. 그걸 우리 정보부가 어떻게 알았는지 박 대통령이 알아가지고 내가 혼이 났잖아, 하하항.” 현장 상황은 아비규환. 200대가 넘는 트럭이 담을 치듯 외부인사 출입을 차단시켰고, 일부 차량은 불길이 치솟았다. 불을 보면 흥분의 정도는 더 심해진다. 모든 근로자가 모여 중역 나오라 외치고, 대사 오라고 소리쳤다. 이미 저만큼 외곽은 사우디 비밀경찰이 기관총을 걸어놓고 포위하고 있었다. 근로자들은 쏠 테면 쏘라는 듯이 자기들끼리 뭉쳐 있었지만 그럴수록 공포감은 더했고 떨고 있는 근로자들도 분명 많았다. 더구나 3월의 밤은 매우 춥다. 기름을 쏟아 부어 모닥불을 피워 놔도 추워서 모피를 둘러싸고 있기도 했다. 우는 근로자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유양수 대사가 미 군용기로 활주로에 도착한 것이 새벽 2시30분. 해군사령관, 시장, 서장, COE사령관, 비밀경찰 사령관, 주베일 지역사령관, 방위군 사령관, 정보국장까지 30여명이 기다리고 있었고, 한국 정부를 대신하는 대사가 도착했으니 즉각 작전에 들어가겠다는 것이 그들의 강경한 입장 표명이었다. “정말 피가 끓어요. 즉각 작전에 들어가겠다는 건 해산을 명령하고, 듣지 않으면 사격을 하겠다는 얘깁니다. 피를 토하듯이 내가 그랬어요. 대사가 왔다는 건 사태를 해결하려고 온 거지 당신들을 위해서 정치적으로 온 게 아니다 말이지, 당신들이 사격하겠다는데 입회하러 온 줄 아느냐고, 즉결처리 하겠다면 나부터 쏴라 그랬어요.(잠시 말이 없었다) 핏발을 세우고 워낙 강하게 그러니까 둘러섰던 30여 명이 전부 굳어요. 비밀경찰 사령관도 주춤하고. 내가 진정을 하면서 미안하다, 내가 들어가겠다, 나를 믿고 기다려 달라고 아주 절실하게 그랬어요. 그런데도 비밀경찰 사령관은 굽히지를 않아요. 거기서 실랑이를 30분 이상 했을 겁니다. 내용을 알아야 되고, 내용을 알면 내가 해결할 방안이 있다고 설득을 해도 사우디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 다른 현장으로 파급되는 걸 막기 위해서도 강경한 진압은 불가피하다, 그렇게 나와요.”
- 실제로 해결 방안은 가지고 가셨던 겁니까? “내용도 모르는데 어떻게 방안이 있겠어요. 만나서 들어보면 나오겠지요. 노사분규느 대부분이 처우 때문에 일어나는 거 아닙니까. 나중에 파악이 됐지만 지금 생각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모든 근로자가 어려운 환경에서 일을 하면서 자기들끼리는 통하니가 동아나 극동건설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비교를 해보지 않았겠어요? 그게 발단의 하나예요. 노임 얼마 받아? 오버타임은 얼마냐? 반찬은 닭고기냐 쇠고기냐, 이거거든. 제일 민감하죠. 그걸 비교해보니까 현대가 임금도 좀 싸고 부식까지도 조금 뒤떨어지니까 불만이 쌓였는데, 얻어맞은 운전수가 있었다는 거 아닙니까? 그렇다면 원인을 알았으니 해결이 안 될 이유가 없어요. 그런데도 사령관들은 이미 한계를 넘었다는 거고, 시장은 전원 연행해서 구속시킬 수박에 없는데 저항하면 사살할 수밖에 없다고 나오는 겁니다. 그걸 설득하는 데 정말 힘들었어요. 제발 나한테 맡겨 달라고 했지요. 그랬더니 반신반의하면서도 내 체면을 세워주고 그대신 나를 경호하겠다고 나왔으요. 경호하겠다는 건 사우디의 의무예요. 거기서 또 언쟁을 했어요. 고맙지만 혼자 들어간다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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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상황에서 대사님 혼자 맞서겠다는 생각을 하셨단 말씀입니까?/font> “솔직히 비장한 각오를 했어요. 그러나 대사가 자기 국민 문제를 해결하러 들어가겠다면서 자국 국민을 믿지 못해 제3국의 경호대에 둘러싸여 들어간다는 게 말이 됩니까. 사우디 사람들이 그런 광경을 보고 뭐라고 하겠어요. 대사 신변을 보호하는 건 사우디 정부의 책임이 맞지만 나는 우리 국민을 믿는다고 했어용. 그게 그 사람들에게 수습을 할 수 있겠구나, 기대를 주는 것이기도 하다고요. 만약 내가 생명을 잃는다 해도 그 상황에서 사우디 보호를 받는다는 건 대사의 자세가 아닌 겁니다. 결국 내 뜻을 받아줘서 그 당시는 허재영 건설관(나중에 건설부장관)이지, 그 사람하고 한진희 노무관(나중에 노동부차관)을 대동하고 들어가는데, 그 시각이 일출 전 새벽 5시인가? 동이 트기 시작하면서 세 사람만 긴 그림자를 달고서 말 한마디 없이 들어가는 겁니다. 그 광경은 정말 뭐라 표현하기 어려워요. 광활한 모래와 시커먼 바다, 거기에 여명이 밝아오고 새벽이 점점 걷히면서 아수라장이 된 현장이 드러나는데,이건 정말…. 처절하게 절규해ㅐㅆ던 근로자들이 전부 지치고 늘어져 있고 말이죠. 말은 산업전사라고 불러주고 국가발전의 역군이라고 치켜세우고 그랬지만 본인들한테는 그런 말들이 사치스러울 뿐이라고요. 잘살아보겠다는 소망, 내일에 대한 꿈, 그것때문에 사랑하는 처자식 놔두고 이름도 생소했던 열사의 땅 사우디까지 온 것 아닙니까. 눈물이 나더라고요 솔직히 정 회장이 옆에 있었으면 ‘당신 자식들이라면 저렇게 되도록 하겠느냐’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어요.”
- 정 회장은 그때까지 오지 않았습니가? “모르지요. 나는 연락 받고 미군 군용기로 다급히 현장에 왔으니까. 나중에 보니까 지휘본부에 날아와 있더구먼. 그 분도 고생은 많이 했어요.” 폭동 주동자 20명 중 5명 구속
- 대사가 왔다는 걸 알았을 때 그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나도 그렇게 유순한 사람들이라고는 상상을 못했어요. 대사가 왔다니까 전부 지쳐 있다가 반가움 반, 경계반, 그런 심정들인데 그것도 잠깐이고, 내가 첫마디부터 이번 문제를 당신네 편에서 해결하겠다, 이게 가장 중요했어요, 대사가 당신들 편에서 얘기할 테니 나를 믿고 소요를 중단하자, 그랬더니 박수가 터져 나오고 막 울고 그래요. 그 말이 터닝 포인트가 된 겁니다. 당신들 편에서 해결하겠다고 한 게. 그렇게 되니까 현대 간부들이라고는 다 도망가고 숨고 그랬는데 박규직(나중에 현대엘리베이터 사장)이라고 이사였나 상무였나. 아주 착한 사람인데 그 사람만 피를 흘리면서도 머리에 부앧를 감은 채 사무실에서 나와요. 그때부터 실마리가 잡힌 겁니다. 박수를 치고 울고 그러기에 내가 그랬어요. 여러분들 조건은 대표를 뽑아 협의를 하도록 하겠다, 그 전에 이렇게 추한 모습을 외국인들한테 보여서 되겠느냐, 절대 보이지 말자, 전부 청소하고 어지러워진 주변부터 정리하자, 그랬더니 알겠습니다!얼마나 우렁차게 대답을 하는지, 태양이 벌겋게 떠오르는데 나중에는 대한민국 만세까지 부르고 말이죠. 그걸로 수습이 된 겁니다.” 주변을 경계하며 바리케이드까지 쳐 놓은 채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던 비밀경찰들도 근로자들의 외침과 청소하는 모습에 어리둥절해쏙,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30여 명의 사우디 주요 요인은 희한한 광경을 본다는 듯이 자진해 바리케이드를 치우도록 명령하고 있었다. 현장을 청소하고 200여 대의 트럭이 마치 사열 받듯 질서정연하게 정문을 떠나 공사현장으로 출발할 때는 시장과 사령관들이 근로자들에게 손을 흔들어주기까지 했다. 아랍인들로서는 평생 처음 보는 감동을 경험했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소요는 끝이 아니었다. 유 대사가 사건 수습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사이에 사우디 정보기관의 정보수집 능력이 뒤어나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었지만 우리 대사관에서도 파악하지 못했던 주동자들을 이미 파악하고 20명 중에 5명을 주베일 특별위원회에 념겨 구속시키고, 현대 간부 5명도 소환해 조사에 들어가고 있었다. 그때가 3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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