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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밑 한파 속에서 歲寒圖(세한도)를 다시 본다

세밑 한파 속에서 歲寒圖(세한도)를 다시 본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는 무값이다. ‘무값’이란 말은 값이 없다는 것이 아니고, 돈으로는 어떻게 그 값을 따져 계산할 수 없을 정도로 위대하다는 뜻이다. 세한도를 볼 때마다 나는 늘 추워지고 슬픔 속에 젖어 든다. 내 눈과 마음을 춥고 슬프게 하는 것이란 무엇인가.

세한도를 무값이 되게 한 위대함은 바로 그 ‘추워짐과 슬퍼짐’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추워짐과 슬퍼짐이란 것은 온실 속 같은 다사로움과 달뜸으로 인해 물러져 있는 의식을 냉철하게 하는 오싹함이다. 그 냉철로 인한 슬픔과 오싹함은 나의 흐물흐물해져 있는 삶을 성난 얼굴로 살펴보게 한다. 시인 김영랑의 표현을 빌리자면 ‘찬란한 슬픔’ 혹은 영롱한 이성의 촉기(觸氣)이다.



의식을 냉철하게 하는 오싹함 속의 온기

세한도의 추워짐과 슬퍼짐 속에서 온기 냄새를 맡는다. 세한도 속에 담긴 온기란 무엇인가. 세한도를 진짜 무값이게 한 것은 슬픔과 추움 속에 숨겨져 있는 온기의 값일 터다. 2009년의 새 아침은 춥다. 경제도 춥고 세상 인심도 춥고 권력자들의 코뿔소 같은 맹목의 치달음도 춥다.

우리 땅만 추운 것이 아니고 세계 모든 땅의 경제가 다 얼어붙었다. 신문이나 방송은 연일 추워 얼어붙어 떠는 경제와 인심 이야기만 신물 나게 하고 또 한다. 그러함 속에서 세한도의 눈물겨운 다사로움을 읽는다. 그 온기는 숨은 그림처럼 박혀 있다. 유마거사의 집처럼 텅 빈 집과 그 집 벽에 뚫려 있는 동그란(圓覺) 창문에 숨어 있고, 늙은 소나무를 부축해 주는 젊은 소나무의 줄기와 잎사귀들 속에 숨어 있다.

추사 김정희는 세밑의 혹한 속에서 세한도를 그렸을까. 만일 내가 그 당시 제주도에서 추사 김정희처럼 유배살이를 했다면 한겨울에 세한도 같은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가령 한겨울 혹독한 추위 속에서는 뙤약볕 여름을 생각하고, 후텁지근한 찜통 무더위 속에서는 엄동설한을 생각한다.

40년 전, 시원한 바람 한 줄기 불지 않고, 섭씨 30도의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 한낮에, 선풍기 하나 없는 교실에서 중학생들을 가르친 적이 있다. 학생들은 교복 윗도리를 모두 벗고 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학기말 시험을 앞두고 있었고, 학습 진도는 나가야 했으므로 수업을 강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더위에 지쳐 늘어진 나 스스로와 학생들을 다잡기 위해 “창문 닫아!”하고 명령했다.

“안 돼요!”

학생들이 아우성을 쳤다. 설마, 우리 선생님이 농담을 하겠지, 하는 생각으로 나를 대하는 학생도 있고, 우리 선생님이 더위 때문에 정신이상이 되지 않았는가, 하는 눈으로 나를 대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나는 칠판 옆에 걸려 있는 달력을 12월 달력으로 바꿔 걸었다. 맑은 호수 저쪽으로 하얗게 눈 덮인 산이 있는 달력이었다. 그 달력을 가리키며 나는 다음과 같은 말로 학생들을 이끌었다.

“이 겨울철에 덥다고 하다니…지금은 겨울방학을 앞둔 12월 중순이다. 자, 수업 시작한다.”

그것은 광적인 발악이었다. 학생들도 내 뜻을 알고 더불어 미쳐 주었다. 나는 젊었을 적에 여름철이면 더위를 피해 가지 않고 정반대의 겨울을 생각하며 더위를 사냥하고, 겨울이면 추위를 피해 가지 않고 더위를 생각하며 추위를 사냥하곤 했다. 추사 김정희도 세한도를 세한의 어느 날 그린 것이 아니고 한여름에 그렸는지 모른다.

아니다. 추위와 고독을 추위와 고독으로 사냥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소설 『추사』를 쓰기 위해 제주도 탐방을 수차례 했다. 여름철에도 하고 겨울철에도 했다. 제주도를 원악도라고 불렀다. 원악도(遠嶽島)일 수도 있고 원악도(遠惡島)일 수도 있다. 추사를 제주도로 유배 보내면서 그의 적들은 “제주도까지 오고 가다가 풍랑으로 인해 죽어버려라” 하고 저주했을 터다.

제주도는 따뜻한 곳으로 알려져 있지만, 내가 경험한 대정현의 겨울 한파는 고추알바람과 더불어 매서웠다. 대정현의 한여름은 소금기 어린 눅눅한 바람으로 인해 후텁텁했다. 냉방시설이 없고 난방시설이 부실한 그 시절 그곳에서 추사 김정희는 어떻게 살았을까. 더위와 추위와 싸워야 하고, 모기와 파리와 빈대와 벼룩과 이와 지네와 옴과 풍토병과 싸워야 했다.

거기다가 그를 가시울타리 속에 유배시킨 한양의 적들이 문득 내려 보낼지도 모르는 사약(死藥)에 대한 공포와 싸워야 했다. 높은 벼슬을 하고 있을 때는 찾아오곤 했다가 유배에서 풀릴 기미마저도 보이지 않게 되자 담을 쌓아버린 무정하고 야박한 세상 인심과 혹독한 절대고독하고도 싸워야 했다.




추위와 고독을 추위와 고독으로 사냥한다

세한도를 그리던 무렵의 추사의 심사를 나는 이렇게 추리했다. 이상적이 보낸 책들을 뒤적거리기도 하고 붓의 털들을 쓸어보기도 하고 먹의 향기를 맡아보기도 했다. 그래, 나 이 겨울 한파 속에서 그대의 온정이 있어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뜨거운 감회를 주체할 수 없어 하늘을 향해 얼굴을 쳐들고 심호흡을 했다. 이상적에게 무엇으로 보은을 할까.

시방 나의 형편으로는 난을 쳐 주거나 그림을 그려 보은하는 수밖에 없다. 설 전후의 추위를 견디고 있는 난이나 소나무를 통해 내 마음을 형상화시켜 주자. 줄기가 없지만, 칼 같은 잎사귀와, 봉이나 흰 코끼리의 눈 같은 꽃으로 기품을 드러내는 난이 도학자풍이라면, 줄기가 튼실하고 헌걸찬 소나무는 유학자풍이다.

소나무가 지맥 속에 뿌리를 깊이 뻗고 짙푸른 하늘을 푸른 가지로 떠받치고 있는 것을 보면 공자의 모습이지만, 그것이 드리우고 있는 거무스레한 그림자를 먼저 보고 태허(하늘) 속에 우듬지를 묻고 사유하고 있는 자세를 보면 깨달은 석가모니의 모습이다. 하늘과 달과 별과 구름과 안개와 바람과 새들과 소통하는 소나무의 몸은 신화로 가득 차 있다.

추사는 문득 겨울 한파와 적막과 침잠 속에서 다사로운 몸피를 둥그렇게 키우고 있는 우주의 시원을 형상화해 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림 한 폭이 머리에 그려졌다. 설 전후(세한)의 고추 맛보다 더 매운 찬바람이 몰아치자, 모든 짐승과 새들은 모습을 감추고, 푸나무들은 죽은 듯 말라 적막하건만, 건장한 소나무만 푸른 가지를 뻗은 채 우뚝 서서 제 몸을 지탱하기 힘들어 하는 늙은 소나무 한 그루를 부축하고 있다.

그 부축으로 말미암아 늙은 소나무는 간신히 푸른 잎사귀 몇 개를 내밀고 있다. 그 두 나무 옆에 집 한 채가 있는데, 그 집은 마음을 하얗게 비운 유마거사처럼 사는 한 외로운 사람의 집이다.‘세상의 모든 중생이 앓고 있는데 어찌 깨달은 자가 앓지 않을 수 있겠느냐’며 칭병하고 누운 채 문병하러 오는 불보살들에게 불가사의 해탈의 진리를 설하는 유마거사.

그는 일체의 탐욕으로부터 벗어난 손님들에게 깨달음의 세계를 보여줄 심산으로 그의 집 거실을 텅 비워 놓았다. 세한 속에서 얻은 불가사의 해탈의 무한광대하고 둥근 깨달음(圓覺)은 텅 빈 하늘을 흡수지처럼 빨아들인 신묘한 힘이다. 수미산을 겨자씨 속에 넣고, 세상의 모든 바닷물과 강물들을 한 개의 털구멍 속에 다 쑤셔 넣을지라도, 수미산과 겨자씨와 사해의 물과 털구멍들이 모두 끄떡도 안 하는 그 신묘한 힘은 공자와 맹자의 어짊과 안빈낙도와 노장의 무위와 다르지 않다.

그 힘은 그 집의 주인으로 하여금 장차 병에서 일어나 중생들과 더불어 살게 할 터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내내 추사의 머리에는, 고향 예산의 용산에서 살던 어린 시절, 측간에 갔다가 들어오면서 보았던 한겨울의 들판 한복판에 서 있던 소나무 네 그루가 떠올라 있었다. 그림은 일사천리로 그려졌다. 어린 시절, 예산의 집에서 바라다보이는 그 겨울 들판 한복판에는 누가 왜 소나무 네 그루를 남겨 놓았을까.

아, 나무
인도의 한 왕자는,

푸른 우듬지를 하늘로 쳐들고 있는 나무를 보며,
‘나무(南無·그곳에 이르게 해 주십시오)’라고 말했지만,
나는 말한다, 그곳에 이르려면 ‘나(我) 무(无·없음)’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어디에 이르게 해 달라는 나무인가,
그곳은 내가 나를 텅 비운 채 돌아갈 태허,
그 푸른 하늘의 시공이다.


그 그림을 이상적에게 주기로 작정했다. ‘세한도’라는 세 글자를 오른쪽 위에 가로로 쓰고, 그 옆에 세로로 ‘우선 이상적의 참된 삶을 상찬한다’고 쓰고, 그림 왼쪽에 내리 글씨로 가슴에 쌓여 있는 말을 늘어놓았다.


세한도 속에 숨어 있는 희망의 빛

“그대, 지난해에는 ‘대운’ ‘만학’ 두 문집을 보내왔고 금년에는 ‘우경의 문편’을 부쳐왔는데, 이는 세상에 흔히 있는 일이 아니다. 그 문집들은 그대가 천만리 밖에서 여러 해 동안 애써 구득한 것이며, 쉽사리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아낌없이 주었다.

세상의 풍조는 오직 권세와 이익만을 붙좇는데, 신산의 노력으로 얻은 결과를 권세 이익 얻을 수 있는 사람에게 바치지 아니하고, 바다 밖의 한 야위고 파리해진 사람에게 돌리기를, 마치 세상이 권세 이익에 붙좇는 것과 같이 하고 있으니 이게 어인 일인가.

태사공이 말씀하시기를 ‘권세 이익을 얻기 위해 어울리는 자는 상대에게 권세나 이익이 없어지면, 그 상대와의 사귐이 성글어진다’고 하였는데, 그대는 그러한 풍조 속에 살면서도, 왜 (초연히 스스로 권세 이익 얻기 경쟁의 테두리 밖으로 벗어나서) 권세 이익을 따지고 가리면서 나를 대하지 않는 것인지, 그렇다면 태사공의 말씀이 잘못된 것인가. 공자님이 말하기를 ‘가장 추운 때에 보면, 소나무 잣나무가 가장 나중에 시들어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하셨는데, 과연 보니, 소나무 잣나무는 바로 사계절을 일관해서 시들지 않고, 세한 이전에도 하나의 소나무 잣나무이고 세한 후에도 하나의 소나무 잣나무이다.

지금 그대는 나를 대하기를, 권력 가지고 있던 이전이라서 더함도 없고, 제주도에 유배된 이후라서 덜함도 없다. 이전의 그대는 칭찬할 게 없었을지라도 이후의 그대는 성인의 칭찬을 받을 만하다….”

오늘날 역사 속에서 추사는, 다만 추사체라는 특이한 글씨체를 창안한 천재 서예가로 자리매김해 있을 뿐이다. 추사가 당시에 살아낸 신산하고 참담한 삶은 간과된다. 추사가 얼마나 새로운 삶을 추구한 사람이었는가, 조선조 후기, 안동 김씨 60년 세도라는 암흑기 속에서 세상을 어떻게 바꾸려 했는가 하는 것은 추사체 글씨들과 세한도로 말미암아 가려져 있다.

나는 세한도에서, 어두운 세상 속에서 멀리 새 삶을 내다보며 살아낸 남자의 분노와 인고와 절대고독의 삶을 읽는다. 세한도에 서 있는 나무들의 잎사귀들은 많지 않다. 그 잎사귀들은 쭈뼛거리고 앙당그러져 있다. 세한도 속에는 희망의 빛이 숨어 있다. 추사 김정희가 안동 김씨를 중심으로 뭉쳐진 적들에게 쫓겨 제주 유배를 가지 않을 수 없는 단초를 제공한 사람은 순조 임금의 아들 덕인세자(시호는 효명세자)였다.

덕인세자는 조선조 후기 암흑시대의 희망이었다. 순조 임금은 아버지 정조의 사후, 11세의 나이로 임금이 되었고, 장인 김조순의 품 속에 장난감처럼 들어 있었다. 정치 권력은 안동 김씨인 장인 김조순의 손아귀에 있었다. 안동 김씨들에게 주눅이 들어 있는 순조는 정조 임금의 기상을 닮고 총명한 덕인세자에게 대리청정을 하게 했다. 덕인세자 19세 때였다.

덕인세자는 정조가 못한 일을 하겠다고 나섰고, 벼슬을 팔아 치부하는 부패한 세력들을 하나씩 쳐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장차 추사 김정희를 중용하려고 했다. 그러던 덕인이 대리청정 3년 만에 급사하고 말았다. 안동 김씨들은 먼저 덕인세자의 주변 사람들에게 덕인세자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고, 덕인이 중용했던 신하들을 모두 죽이고 유배 보냈다. 죽거나 유배 간 사람들 가운데 추사가 끼어 있었다.


역사는 되풀이된다

세한도를 보면서 역사를 생각한다. 역사는 되풀이된다. 추사 시대에 박해 받은 추사의 무리는 오늘날 어떤 사람들이며, 추사의 무리를 박해한 안동 김씨 무리는 오늘날의 어떤 무리일까. 역사에는 역사를 올바르게 이끌려는 동의 세력과 그 세력을 무력화시키고 퇴행시키려는 반동의 세력이 있다.

세한도를 보면서, 안동 김씨를 중심으로 결집된 무리에게 주눅 들어 있는 사람들은 오늘날의 누구일까를 생각한다. 오늘의 세한이 슬프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세한도 속에는 기다림이 몸을 웅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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