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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외풍 ‘박태준 신화’마저 무너뜨렸다

정치 외풍 ‘박태준 신화’마저 무너뜨렸다

세계적 철강회사 포스코가 수장 교체기로 접어들었다. 1992년 25년 간 자리를 지킨 박태준 회장 퇴임 후 포스코 회장 자리는 정권교체와 궤를 같이했다. 포스코의 지난 시절 정치 외풍을 해부한다.
제2제철소 입지 선정을 위한 국회 조사단이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앞줄 오른쪽에서 둘째)의 안내로 배를 타고 전남 광양만 일대를 둘러보고 있다.

당시 포스코에는 이런 말이 공공연히 나돌았다. “김영삼 대통령이 김만제 회장에게 ‘박태준 회장보다 더 나은 회장이 돼 달라’고 주문했다”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6년 전인 1992년 가을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당시는 제14대 대선 레이스가 한창일 때다.

하지만 포스코로서는 외압에 의한 회장 교체란 불명예를 처음 안게 된 해다. 당시 포스코 회장이기도 했던 민자당 박태준 최고위원은 같은 당 김영삼 대선후보와 심각한 노선 갈등을 빚었다. 박 회장이 김 후보의 선거대책위원장직 제의를 거절한 것으로 알려지는 등 두 사람은 끝내 등을 돌리고 말았다.

결국 박 회장은 모든 정치 직함은 물론 그해 10월 포스코 회장직도 황경로 부회장에게 넘겨주고 해외 유랑길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임기 도중’ 하차였다. 1968년 4월 1일 포스코(당시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 창립 이후 25년 만에 벌어진 일이다. 박 회장은 포스코 창업자로서 사장 13년(1968.4~81.2), 회장 약 12년(1981.2~92.10)을 재임한 인물이다.

그는 설립 당시부터 국가기간산업체인 포스코 경영을 정치 외풍으로부터 지켜 내는 큰 울타리 역할을 한다는 평을 들었다. 하지만 그의 그런 역할은 당시의 정치 외압으로 인해 극적으로 무너졌다. 지금 이구택 회장이 물러나는 분위기와는 달라도 엄청 달랐다. 포스코와 정권이 마치 결사 항전하는 듯한 느낌마저 줄 정도였다.

당시만 해도 포스코(포항종합제철)는 사실상 국영기업이었다. 서울올림픽을 치렀던 1988년 6월 국민주 1호 판매를 통해 기업을 일부 공개하긴 했지만 정부 입김은 여전했다. 포스코는 임원 인사 때만 되면 인사안을 청와대로 들고 가 결재를 받느라 땀을 뻘뻘 흘리곤 했던 시절이었다.



1. 박태준 회장 해외 유랑길


1992년 정치 외압 못 견디고 한국 떠나


박태준 회장을 비롯한 포스코 창업 멤버들에겐 ‘포스코 맨’이라는 일종의 강한 자부심이 있다. 자신들이 목숨을 걸다시피 하며 이룩한 회사가 산업의 쌀이 돼 결국 대한민국 경제의 초석을 이뤘다는 생각이다. 포스코 영일만 신화가 없었더라면 조선 강국, 자동차 강국은 꿈도 못 꾼다는 일종의 자의식이다.

포스코 맨이 아니면 누가 국가기간산업인 포스코를 온전히 경영해 나갈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바로 이런 자의식은 김영삼 정부 때 결정적인 파국을 경험하게 된다. 박 회장은 1992년 해외 유랑길에 올라 그야말로 처절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 게다가 포스코 협력사로부터의 금품수수 혐의로 퇴임 2년 후인 1994년 10월 검찰에 기소되기까지 한다.

당시 포스코 기자실에는 “박 전 회장이 일본의 한 손바닥만 한 아파트에서 초라하게 목숨을 연명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포스코 창업자가 정권의 힘 앞에 무력해 지자 포스코의 큰 바람막이도 동시에 사라져버린 것이다. 김영삼 정권 초기인 1993년 포스코 임원이었던 L씨는 이렇게 회상한다.

“당시 포스코는 참 이상했어요. 박 전 회장을 평가절하하기 위해 평소 벽에 걸어 두었던 그의 사진을 모두 치우게 했습니다. 또 박 회장의 경영치적을 언급하지 못하도록 하는 촌극마저 벌어졌어요. 정권에 가깝다는 임원들과 박태준 인맥 사이에 팽팽한 내부 갈등조차 벌어졌습니다.”


2. 이어지는 문민정부 외풍


박태준 회장 이어 2·3대 회장도 중도 하차


박태준 회장의 고난은 마치 다른 포스코 회장들의 앞날에 대한 예고편 같았다. 박 회장에 이어 포스코 회장에 오른 황경로, 정명식, 김만제, 유상부 회장도 하나같이 비슷한 길을 걸었다. 정권교체와 때를 같이해 교체되고 교체 전후에 검찰에 의해 곤욕을 치르는 일이 반복됐다는 분석이다.


사실여부와 상관없이 이번 이구택 회장의 중도 하차도 그런 시각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황경로 회장은 박 회장이 물러나고 김영삼 문민정부가 출범하기까지 약 6개월간(1992.10~93.3) 회장을 맡았다. 보기 드물게 엔지니어 출신이 아니었던 그는 박 회장의 공백을 잠시 메운 한시적 회장이었다.

소위 ‘박태준 사단’의 충실한 멤버로 세간에 알려졌던 황 회장은 임기를 한참 남겨 둔 채 김영삼 정권 출범과 함께 물러났다. 그 역시 퇴임 3개월 후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 기소되는 수모를 겼었다. 박태준 사단에 대한 정권의 공세는 황 회장을 구속으로까지 몰고 간 것이다.

문민정부 초기 1년간(1993.3~94.3) 회장으로 있다 임기를 못 채우고 물러난 정명식 회장은 엔지니어 출신이다. 박태준 회장을 지근에서 보필하며 포스코를 일구어 냈던 그 역시 박태준 사단의 일원으로 평가됐다. 문민정부가 그에게 임기를 보장할 리 만무했다. 그렇지만 포스코 격동기에 경영을 안정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소문난 등산애호가인 그는 포스코에 불어 닥친 삭풍을 소화해 내느라 자주 산에 오르곤 했다. 보기 드물게 검찰 기소라는 불명예를 안지 않은 회장으로 기록됐다. 이처럼 박태준, 황경로, 정명식 등 1~3대 회장은 공히 김영삼 정부와 각을 세웠던 CEO들이다. 결국 세 사람 다 정권에 의해 중도 하차했다고 볼 수 있다.


3. 김만제, 유상부 회장의 운명


정부 교체와 최고경영자의 길 같이했다


김영삼 정부는 고심 끝에 비장의 김만제 회장 카드를 내놓았다. 외부인사 영입이었다. 김영삼 정부와 함께했던 4대 김만제 회장은 전직 회장 6인 중 유일한 비(非)포스코 맨, 비(非)박태준 사단이다. 서강대 교수(경제학), 한국개발연구원장, 한미은행 초대행장, 재무부 장관, 경제부총리 등 화려한 경력을 자랑했던 그는 ‘포스코 개혁’의 기치를 내걸었다.

정치인이라기보다 경제전문가란 인상이 짙었던 그를 포스코에 입성시켜 ‘박태준 사단을 배제시킨 포스코를 확 바꿔 놓겠다’는 심산으로 비쳤다. 당시 포스코에는 이런 말이 공공연히 나돌았다. “김영삼 대통령이 김만제 회장에게 ‘박태준 회장보다 더 나은 회장이 돼 달라’고 주문했다”는 것이다.

그 때문인지 김 회장은 재임 중 포스코의 다소 폐쇄적이고 획일적인 기업문화를 바꾸려고 애를 많이 썼다. 또 구조조정 전문가답게 포스코 계열사의 구조조정 등도 강하게 추진했다. 그의 포스코 경영에 대한 평가는 다소 엇갈린다. 기간산업인 포스코를 잘 모르고 섣부른 경영을 많이 했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폐쇄적이고 낡은 포스코 경영 관행을 깨고 21세기로 가는 포스코의 길목에 새로운 레일을 깔았다는 평도 듣는다.하지만 김영삼 정부와 영욕을 같이했던 그도 재임 4년 만(1994.3 ~98.3)에 물러난다. 임기를 2년 남긴 시점이었다. 김 전 회장 역시 퇴임 1년 정도 후 업무상 횡령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김대중 정부 출범과 함께 회장직은 5대 유상부 회장에게 넘어간다. 유 회장은 김대중 정부와 거의 같은 기간인 5년(1998.3~ 2003.3) 동안 재직한다. 당시 정치적으로 재기했던 박태준 전 회장의 커다란 후광을 입었다는 얘기도 들었다. 경영 성적이 좋다는 평과 함께 연임이 확실시됐던 그도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 갑자기 연임의 뜻을 접게 된다. 임기 말에 그 역시 검찰에 기소되는 수모를 겪었다. 정권 실세를 돕기 위해 포스코 계열사를 동원해 타이거풀스 주식을 비싼 값에 사 줬다는 의혹 때문이었다.

포항 포스코 전용부두 전경

포스코엔 왜 정치 외풍이 계속될까?
“지분 너무 흩어져 오히려 정권 개입 빌미 제공”
포스코 회장들의 재임 기간은 박태준 11년 7개월(사장 13년 포함 시 24년 7개월), 이구택 6년, 유상부 5년, 김만제 4년, 정명식 1년, 황경로 6개월 등의 순이다. 하지만 기간이나 경위와 상관없이 크게 보면 1993년 이후 차례로 들어선 4개 정권(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에 의해 6명이 모두 교체되는 결과를 보였다.

포스코엔 왜 이 같은 정치 외풍이 계속될까? 민영화됐음에도 아직도 ‘포스코=국민기업’이란 인식이 국민의 뇌리 속에 깊이 박혀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선거에 의해 국민으로부터 신임 받은 정권이므로 국민기업 포스코를 손볼 수 있다는 생각을 은연중 하게 된다는 분석이다.

또 2000년 이래 민영화가 진행돼 이미 포스코의 외국인 지분이 40%를 넘었고, 국내 지분이 잘게 쪼개져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포스코 한 간부는 “포스코는 정권 주도로 건설된 국가기간산업체여서 결국 정권에 의해 좌지우지돼 왔다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 그리고 지분이 너무 흩어진 점도 오히려 정권 개입의 빌미가 된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또 한 가지. 포스코는 원체 회사 규모나 그 중요도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한국의 대표적 기업이자 세계 굴지의 회사다. 그만큼 비즈니스가 엄청나다는 얘기다. 이권이나 자리가 많아 정권으로서는 ‘인사나 돈’이란 면에서 관심을 가질 만하다는 얘기다.

실제로 포스코는 창립 40년째인 지난해 조강 연산 3300만t, 연 매출 39조6420억원을 기록해 세계 굴지의 회사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기간산업체인 포스코 경영이 정권의 외풍에 의해 계속 흔들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포스코 회장 자리는 다른 기업에 비해 좀 독특한 면이 있다.

정권과 국민기업 사이를 오가며 줄다리기하는 자리다.
목표는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 그러려면 정치논리보다 경제논리가 앞서야 하고, 정치 외풍도 사라질 때가 됐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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