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르바 부엉이를 기억하라
미네르바 부엉이를 기억하라
지혜 탐구는 소크라테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유구한 전통을 지녔지만 바로 오늘날의 경제 상황을 말해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특히 그것은 경제의 추세와는 거꾸로 가는 경향이 있다. 호황일 때는 애써 지혜를 찾을 필요가 없다. 경제 전문 TV를 통해 지혜가 끝없이 흘러나오고, 지혜를 구현했다는 잘난 인물들이 포브스지의 억만장자 목록 맨 위에 오르고, 매일 매일 자유시장의 영구한 진리가 입증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경제가 곤두박질치면 지혜를 자랑하던 현자들과 권위자들이 의회나 대배심에 나가 자신들의 무지를 참회한다. 그러면서 새로운 패러다임 찾기가 시작된다. 학자들은 현대 들어 지혜를 과학적으로 탐구한 첫 사례를 1970년대 심리학자 비비언 클레이턴의 연구로 간주한다. 당시 미국 사회가 너무나 어수선했기 때문에 당연지사였는지 모른다.
클레이턴은 지혜를 연구하는 최초의 경험적 실험 방법을 고안했다. 그녀는 지혜를 “지식을 얻고 그것을 논리적, 정서적으로도 분석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했다. 소크라테스가 지혜를 탐구한 것도 기원전 400년 전에 일어난 펠로폰네소스 전쟁(아테네가 스파르타에 패했다)이 ‘진창’에 빠져들면서 시작됐다.
따라서 최근 신경과학, 미술, 음악, 법학 등 다양한 분야의 학자 수십 명이 시카고 대학의 지혜 탐구 프로젝트를 위한 보조금을 받은 것도 우연이 아니다. 템플턴 재단이 자금을 대는 이 270만 달러 규모의 프로젝트는 ‘지혜 정의하기(Defining Wisdom)’라고 불린다. 지혜 탐구에 관한 여러 권의 책을 낸 터프츠 대학의 로버트 J 스턴버그에 따르면 지혜 연구는 여전히 학문적으로 비인기 분야다.
클레이턴은 1982년 연구를 접었고, 베를린의 막스 플랑크 연구소에서 바로 몇 년 전까지 그 뒤를 이었을 뿐이다. “오늘날 세계가 처한 상황이 지혜 연구가 왜 필요한지 잘 말해준다”고 스턴버그가 말했다. “로버트 맥나마라나 도널드 럼즈펠드를 보라. 머리만 좋고 지혜 없이 권력을 쥐었다가 일만 망쳐놓지 않았는가?”
‘지혜 정의하기’ 프로그램을 지휘하는 심리학자 존 카시오포와 하워드 너스봄은 지혜 연구의 전통적인 접근법을 배제했다. 대학원생에게 녹음기를 주고 양로원과 시골 이발소로 보내는 것으로는 미흡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계의 여러 인재로 넓이와 깊이를 더했다.
그들이 승인한 제안서 38건 중에는 컴퓨터 알고리즘(‘지혜의 수학적 측정 방법으로서의 데이터 압축’)과 고전 문학(‘지혜의 가격: 그리스와 로마 시에서의 공동체와 개인’)에서 지혜를 찾는 것도 포함됐다. 한 학자는 “통상 지혜와 관련된 지식이 전달되는 수단은 언어”라고 주장했다.
뻔한 소리처럼 들리지만 “음악적 경험의 심층적 측면에 대한 정밀 분석을 통해 지혜의 한 형태인 음악을 탐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고, 페로몬(곤충이 분비해 동류의 곤충에게 영향을 미치는 화학 물질) 연구를 추천하는 학자도 있다(‘개미의 지혜: 사교성과 호전성에서 경험의 역할’). 너스봄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발상의 전환을 추구한다. 지혜를 찾기 위해 동물 모델을 고찰하는 게 과연 합당할까? 아직 아무도 모른다.”개미가 우리에게 지혜의 실마리를 줄 수 있다면 실비아 마일스(77)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끊임없는 파티로 방탕한 생활을 해온 이 노 여배우는 지혜 탐구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러나 ‘대중문화의 소크라테스’인 평론가 헨리 앨퍼드는 신저 ‘노인들에게서 지혜를 찾는다(How to Live: A Search for Wisdom From Old People)’에서 마일스가 스튜디오54(브로드웨이 극장이며 맨해튼의 유명한 디스코테크였다)에서 체험한 것과 함께 거기서 얻은 지혜가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그녀의 생애를 파헤쳤다.
마일스가 자신을 혹평한 평론가 존 사이먼에게 샐러드 접시를 던진 일을 후회할까? 천만의 말씀이다. 생각을 바꾸기엔 너무 늦었다고 위안을 삼을 필요가 있다면 앨퍼드의 책이 적격이다. 또 마일스가 지혜의 이상형이 아니라고 여기는 독자들을 위해 앨퍼드는 문학 평론가 해럴드 블룸도 인터뷰했다.
블룸은 지혜가 “아주 음울한 주제”라고 말했다. 모호하면서도 불길한 예감을 주는 말이다. 어쩌면 그도 퇴직연금이 반 토막 났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른다. 카시오포와 너스봄은 지혜를 정의하는 동시에 지혜를 찾는다는 모순에 대해서는 굳이 변명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것을 찾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미리 선입견을 갖고 있다.
그들은 부분적으로 ‘지혜’를 자유시장 경제학의 기초인 의사결정의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패러다임에 대한 교정책으로 여긴다. 합리적인 선택이란 개인의 단기적 이득을 극대화할 때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사회 전반의 이득이나 장기적인 미래가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는다. 개미의 접근법과는 정반대다.
개미는 자신의 운명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곤충학자 버트 횔도블러와 E O 윌슨이 신저 ‘수퍼 오거니즘(The Super-organism)’에서 말하는 초대형 유기체의 부품으로 기능할 뿐이다. 개미집에도 풍년과 흉년이 닥치지만 일반적으로 개미들은 무모한 탐욕에서 무작정 집을 크게 지었다가 위기가 닥치면 무너지게 하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다이소 뉴핫템 ‘5000원 무선이어폰’, 이제 더 안 들어오나요?
2中, 지난해 전기·하이브리드차 판매량 41% 증가…역대 최대
3미래에셋증권, 회사채 수요예측서 2조1600억원 확보
4국토위, 14일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현안질의
5‘역대급’ 독감…4주 만에 환자 수 14배 폭증
6'코코아' 가격 치솟는데, 농민들은 농사 포기
7펄펄 내린 ‘대설’에 항공기 136편·여객선 77척 결항
8BYD, 일본서 도요타 제쳤다...다음주 한국 진출 앞둬
9‘고강도 쇄신’ 주문한 신동빈...“지금이 마지막 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