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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에 레드 와인 아주 좋던데요”

“홍어에 레드 와인 아주 좋던데요”

한국을 대표하는 식객 허영만 화백이 와인에 어울리는 한식 탐험에 나섰다. 포브스코리아는 3월호부터 허 화백과 함께 전국 곳곳을 누비며 와인에 어울리는 한식을 찾는다. 허 화백은 “자주 와인을 마시다 보니 한식과 어울리는 와인에 관심이 많다”며 “와인도 소주처럼 한식과 편안하게 마실 수 있어야 대중화 된다”고 말했다. 허 화백이 풀어놓을 이야기 보따리엔 만화 <식객> 을 연재하며 취재했던 한국 전통 음식은 물론, 와인 경험담도 담게 된다.

막걸리와 잘 어울릴 것 같은 허영만 화백이 와인에 입문한 지 얼추 4년이 지났다. 평소 맥주와 소주를 즐기던 그가 와인을 마시기 시작한 건 남다른 아내 사랑 때문이었다.

허 화백은 “와인은 나이가 들어도 집사람과 즐길 수 있는 술이더라”며 “지금은 아내가 나 몰래 셀러에서 와인을 꺼내 마시는 ‘술 도둑’이 됐다”며 껄껄 웃었다. 그러자 술자리를 함께 한 허 화백의 아들 석균 씨가 한마디 거들었다.

“저도 급할 땐 아버지의 셀러에서 와인을 가끔씩 빌립니다.”와인에 푹 빠지게 된 그는 얼마 전 스페인으로 와이너리 여행을 다녀왔지만 “아직도 와인을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와인을 마시며 지나치게 격식을 차리는 것에 대해선 거부한다. “와인도 음식이잖아요. 그냥 음식 먹는 건데 사람들은 너무 비장해요.”허 화백은 와인을 선물 받으면 반창고를 활용한다.

선물 받은 와인에 반창고를 붙여 볼펜으로 A갃갅 등급을 매겨 적는다. 등급을 나누는 기준은 ‘와인을 선물한 사람’이다. “대충 보고 선물한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등급을 매기죠. 대부분 B하고 C지만 가끔씩 A도 있어요. 마누라에게 A는 손도 못 대게 합니다. 하지만 정작 A가 무슨 와인인지 모를 때가 많아요.”

그래도 기억나는 A급은 있다. 프랑스 부르고뉴에서 DRC가 만드는 리쉬부르(Richebourg)다. DRC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이라 불리는 ‘로마네 콩티(Romanee-Conti)’를 포함해 라타슈(La Tache), 에쉐조(Echezeaux) 등을 만드는 양조장이다. 허 화백이 가장 마셔보고 싶은 와인도 ‘로마네 콩티’라고 한다.

‘식객’답게 와인에 어울리는 한식을 찾아내는 데는 남달랐다. “예전에 삭힌 홍어에 레드 와인을 맞춰봤더니 그 궁합이 환상적이더라”고 말했다. 홍어의 톡 쏘는 암모니아 냄새가 레드 와인의 텁텁함과 어우러지며 새로운 맛의 세계가 열렸다는 설명이다. ‘어떤 와인이었냐’는 질문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어진 설명을 들어보니 맞장구를 칠 수밖에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날 분위기가 굉장히 좋았어요. 결국 중요한 건 와인이 아니라 같이 마신 사람이 아닐까요.”다음은 허 화백이 추천하는 ‘와인에 어울리는 한식 1탄’이다. 한식당을 대표하는 고깃집과 요즘 제철을 맞은 해산물에서 ‘보석’을 찾았다. 허 화백처럼 평생 잊지 못할 자리의 재료들이다.



소 불고기엔 토스카나 레드 와인


허 화백과 처음 ‘탐험’에 나선 곳은 불고기로 유명한 서울 서초동에 있는 사리원이었다. 허 화백의 단골집으로 와인 값이 백화점 와인 숍과 비슷해 와인 애호가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양념에 따라 다양한 맛을 내는 소 불고기는 너비아니의 일종으로 고기를 얇게 저민 후 양념해 굽는 것이 특징이다. 사리원 불고기는 파인애플, 사과, 오렌지, 양파 등 다양한 과일·야채 소스를 사용해 달지 않으면서 고기 고유의 맛을 느낄 수 있다.

허 화백이 이곳에서 추천한 마리아주(mariage)는 소 불고기와 이탈리아 키안티 와인. 상큼하면서 풍부한 향이 사리원의 불고기 소스와 잘 어울렸다. 키안티 와인 중에선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을 레이블에 사용한 다빈치 와인을 주문했다.

먹는 것만큼이나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안창살 역시 와인과 환상적인 궁합을 자랑했다. 안창살은 갈비뼈 7번과 13번 사이 안쪽에 붙어 있는 횡경막 부위로 색상이 짙고 결이 굵다.

창문 안쪽 커튼 윗부분의 주름살처럼 생겨 붙여진 이름. 약간 질긴 편이지만 육즙이 많고 씹는 촉감이 좋아 레드 와인과 잘 어울린다. 안창살과 어울릴 레드 와인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생산된 맨(MAN)이란 와인. 맨은 세 명의 와인 메이커의 아내들 이름인 ‘Marie, Anette, Nicky’의 앞 글자를 따서 지어진 이름이다. 약간은 스모키한 향과 부드러운 타닌이 안창살과 멋진 조화를 이뤘다.



화이트 와인과 과메기의 궁합

허 화백이 요즘 집에서 와인과 즐길 만한 해산물 안주로 꼽은 것은 다름아닌 과메기다. “비릿하면서도 짭조름한 맛이 화이트 와인과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겨울철 찬 바닷바람에 며칠씩 말려 짭짤한 바다 내음을 한아름 품은 과메기는 지금이 제철. 좋은 과메기는 차지면서도 꾸덕꾸덕하게 씹히는 질감을 자랑한다.

이 맛을 살려주면서 과메기만의 비릿함을 감싸주는 데는 뉴질랜드의 소비뇽 블랑만한 와인이 없다고 한다. 약간 차갑게 둔 ‘실레니 소비뇽 블랑(Sileni Sauvignon Blanc)’은 잘 익은 열대 과일 향을 뽐내며 과메기의 기름기와 겉돌지 않고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와인에 어울리는 제철 해산물로 꼬막도 빼놓을 수 없다.

요즘 전라남도 벌교의 드넓은 갯벌에선 눈을 돌리기가 무섭게, 발을 떼기가 겁나게 제철 맞은 꼬막을 만날 수 있다. 벌교의 개펄은 물이 깊고 뻘이 차져 꼬막이 쫄깃하면서 진득하다. 그래서 예부터 임금의 수라상에 올랐다. 허 화백은 “와인도 꼬막만큼 편하게 마시면 좋은 것”이라고 말했다. 허 화백은 살짝 삶아 탱탱하게 살이 오른 꼬막에 초고추장을 곁들일 경우 이탈리아 화이트 와인인 ‘실레니 피노 그리지오’를 추천했다. 드라이하면서도 기분 좋은 복숭아 향이 꼬막의 질감을 한껏 살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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