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기업 오랜 못 간 다는 얘기 들었어?”
“그 기업 오랜 못 간 다는 얘기 들었어?”
|
#1최근 기자의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어젯밤 A기업 OOO 회장이 구속됐다는 소문이 업계에 파다하다. 확인할 수 있나?”
재계 순위 50위 내에 드는 A기업이 최근 검찰이나 공정거래위원회에 주변에서 자주 이름이 오르내렸던 것은 맞다. 이 회사 오너가 구속됐다면 큰 사건이다. 회사에 확인요청을 했다.
홍보담당 상무는 “다른 기자한테서도 전화가 왔더라. 직접 와서 보라”며 황당한 반응이었다. 상무는 “회장이 어떻게 되길 바라는 사람이 돌아다니며 루머를 퍼뜨리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검찰에 확인한 결과 사실이 아니었다.
#2 지방 중견 건설업체인 B사는 지난해 중순부터 업계와 금융권에 ‘위험하다’는 풍문이 돌았다. ‘미분양을 대거 숨기고 있는데, 오래가지 못한다’는 구체적 내용도 포함됐다.
이 회사는 K사, S사, P사 등과 함께 “곧 넘어갈 것”이라는 소문에 시달렸다(실제로 S사는 최근 법정관리를 신청했고, P사는 부도가 났다). 이 회사는 충청권에서 시공능력 평가액이 상위권에 속하던 회사였고, “기계약 공사 물량이 많아 자금 수급에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지만, 최근 부도처리됐다. 건설협회 관계자는 “전형적인 악성 루머의 희생양”이라고 말했다.
#3 C그룹사의 계열사 직원들 사이엔 2월 초 “이번 달 월급이 반액만 지급된다” “6월 중 구조조정이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1차 임원, 2차 간부급이라는 구체적인 내용까지 돌았다. 이 회사는 직원만 400명 정도 되는 회사다. 한 직원은 “계열 건설사가 어려워, 비핵심 계열사를 매각하고 나머지는 구조조정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회사에 확인한 결과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본사 관계자는 “추가 채용 계획을 준비하고 있는데, 계열사 구조조정이 말이 되느냐”며 “2월 월급도 제대로 지급됐다”고 밝혔다. 이 기업은 결국 허위사실 유포 사범을 찾아달라며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제계가 ‘루머’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근거 없는 낭설이 사실처럼 돌고,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증권가에 퍼지면서 기업에 타격을 주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 가뜩이나 어려운데 루머까지 기업에 스트레스가 되고 있는 것이다. 증권가에 도는 풍문이야 하루 이틀 얘기도 아니다.
하지만 최근엔 정말 ‘그럴듯하게’ 돈다는 게 문제다. 지난 연말 연초 검찰이 사설정보지(찌라시) 단속을 강화하면서 ‘찌라시발 루머’는 다소 잠잠해졌지만 인터넷이나 입소문을 타는 악성 소문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검찰에서 기업 정보 수집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한 수사관은 “지난해 중순 이후 기업 관련 루머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고 말했다.
한 대기업 홍보팀 차장은 “소문이 하도 구체적으로 돌아 솔직히 개인적으로 믿은 것도 있다”고 밝힐 정도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오너 아들이 모 기업을 인수해서 유상증자를 한다. 총알은 이미 마련됐다. 얼마 전 지분 일부를 처분한 것도 사전 작업이다. 여기엔 다른 그룹 2세도 포함돼 있다. 그 2세는 인수하려는 기업의 차명 대주주다.’
|
‘엘비스 프레슬리가 외계인이었다’면 안 믿지만 ‘살아있고, 딸인 미사 마리와 찍은 사진도 있다더라’면 혹하기 쉽다. 지난해부터 기업을 괴롭히는 소문도 너무나 구체적이다.
감자설, 유동성 위기설 등으로 지옥 오가
지난해 12월 중순 증권가엔 하이닉스가 곧 감자한다는 소문이 퍼졌다. 당연히 주가가 급속히 빠졌다. 회사 관계자는 “루머가 돌면서 하루에 주가가 11%나 빠졌다”고 밝혔다. 파문은 컸고, 채권단이 “사실 무근”이라고 밝혔다. 결국 회사는 경찰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아직 인터넷 메신저로 출처불명의 소문을 퍼뜨린 용의자는 검거되지 않았다.
하나은행도 지난해 말 지옥을 경험했다. 시중엔 ‘하나은행 유동성 위기가 심각하다’는 소문이 퍼졌기 때문이다. 부실 루머가 퍼진 것은 인터넷이었다. 한 인터넷 사이트에 ‘4월 전에 H은행, K은행, P은행 등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글이 퍼졌다. H은행은 하나은행으로 번역됐다. 리먼브러더스 사태와 키코(KIKO) 파문, 외화유동성 위기가 겹치면서 하나은행에는 예금 인출을 묻는 전화가 많았다고 한다.
지난해 3분기 순이익이 적자전환한 것도 소문을 키웠다. 물론, 루머일 뿐이었다. 포스코는 지난 1월 ‘분기’도 아닌 ‘1월 적자설’까지 돌았다. 실제로 1월 수익은 전월 대비 대폭 줄었지만 적자를 볼 정도는 아니었다. 포스코는 “1월 경영실적이 가장 나쁠 것으로 예상은 되지만 흑자는 유지할 것”이라는 공식 자료까지 내야 했다.
하지만 철강시장을 불안하게 봐 오던 투자자들의 심리가 위축되면서 주가가 대폭 하락했다. 신용 경색이 심화하면서 기업 신용과 직결되는 소문도 끊임없이 생성되고 있다. 이미 피해를 본 기업도 많다. 대기업인 D사의 경우 차입금 상환이 어려워 회사채를 발행하려고 했으나 실패했다는 소문을 진화하느라 진땀을 뺐다.
소문이 퍼질 당시 이 회사는 회사채 발행이 완료된 상태였고, 최근 운영자금 확보 목적으로 대규모 회사채 발행에 성공했다. 이 밖에 H그룹, D그룹, G그룹이 유동성 위기설에 시달리고 있고, S사는 대규모 구조조정이 결정됐다는 풍문이 돌고 있으나, 회사 측은 “완전한 낭설”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또 다른 S사의 경우 상당한 투자를 해 온 수입차 시장에서 철수할 것이란 소문에 시달리고 있다. T기업의 경우는 오너 일가에 대한 검찰 수사 임박설이 파다하다.
미네르바식 루머도 등장
모 대기업 정보수집 담당 관계자는 “2월 중순에 증권가에서 재무구조가 나쁜 것으로 평가됐다는 그룹사 여러 곳의 실명이 퍼지면서 어렵다는 정도에 그치던 소문이 사실처럼 돌고 있다”고 말했다. 소위 ‘미네르바식 루머’도 최근 나타난 현상이라고 한다. 뜬구름 잡는 식으로 ‘모 기업이 넘어가기 직전’ ‘대형 M&A 임박’이 아니라, 구체적인 수치와 이론과 배경을 그럴듯하게 섞어 돌아다니는 것이다.
명퇴설과 구조조정설도 요즘 단골 루머다. 대기업, 중견기업이 ‘루머 스트레스’에 시달릴 정도면 코스닥 시장이나 중소기업군은 말할 것도 없다. 한마디로 별의별 소문이 나돈다. 자본잠식 후보기업, 분식회계 의심기업 리스트가 돌아다니는가 하면, 주가가 이상 급등락하는 기업이 속출하면서 조회공시 요구도 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2월 조회공시 요구 건수는 전년 대비 100% 넘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시장에 나돌고 있는 풍문 중엔 악성 루머로만 보기 어려운 것도 물론 있다. L기업 비자금설, T사 검찰 조사설, H사 유동성 위기설 등은 취재 결과 사실로 확인되기도 했다. 문제는 근거 없는 악성 루머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한 유명 연예인이 실체 없는 악소문에 자살을 택한 것처럼, 기업도 불황을 틈타 활개치는 루머에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지난해 내내 각종 루머에 시달렸던 우림건설의 김진호 사장은 이코노미스트에 이런 말을 남겼었다. “문제는 루머의 진위가 아니다. 사실 여부는 중요치 않다. 루머가 돈 것 자체로 벼랑으로 몰린다. 금융기관도 루머가 양산된 것을 두고 색안경을 낀다. 신뢰를 회복하는 데 6개월이 넘게 걸렸다. 악성 루머에 대해선 정부 차원에서 막아줬으면 한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1147회 로또 1등 ‘7, 11, 24, 26, 27, 37’…보너스 ‘32’
2러 루블, 달러 대비 가치 2년여 만에 최저…은행 제재 여파
3“또 올랐다고?”…주유소 기름값 6주 연속 상승
4 정부, 사도광산 추도식 불참키로…日대표 야스쿠니 참배이력 문제
5알렉스 웡 美안보부좌관 지명자, 알고 보니 ‘쿠팡 임원’이었다
61조4000억원짜리 에메랄드, ‘저주받은’ 꼬리표 떼고 23년 만에 고향으로
7“초저가 온라인 쇼핑 관리 태만”…中 정부에 쓴소리 뱉은 생수업체 회장
8美공화당 첫 성소수자 장관 탄생?…트럼프 2기 재무 베센트는 누구
9자본시장연구원 신임 원장에 김세완 이화여대 교수 내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