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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일까, 월가일까

워싱턴일까, 월가일까

오바마의 경제 브레인. (왼쪽부터) 가이트너 재무장관, 로머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 서머스 백악관 국가경제위위원장.

이번 금융위기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그 책임 소재를 따지는 일은 주택 거품이나 주식시장 붕괴, 또는 경기 침체로 잃은 돈을 되찾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누구를 탓해야 할지를 알게 된다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질 것이다.

코미디언 존 스튜어트가 데일리 쇼에서 시도했듯 CNBC의 간판 프로그램 ‘매드 머니’를 진행하는 증권 분석가 짐 크레이머에게 모든 죄(크레이머는 “베어스턴스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 그 주식을 사라”고 했지만 바로 일주일 뒤 베어스턴스는 파산했다)를 덮어씌운 것은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했지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지침이 되지 않았다.

그 점을 감안해 윤리와 공공정책 문제를 두고 옥스퍼드대 스타일의 지적인 토론 공방전을 주최하는 ‘인텔리전스 스퀘어드 US’는 금융시장 전문가 6명을 초청해 “금융위기의 탓을 월스트리트보다는 워싱턴에 돌려야 한다”는 명제를 두고 토론을 했다.

그 명제를 지지하는 패널리스트는 하버드대와 옥스퍼드대의 역사학자이며 ‘돈의 부상:세계의 금융 역사(The Ascent of Money:A Financial History of the World)’를 쓴
니올 퍼거슨과 금융 전문 언론인이며 ‘부의 제국:미국 권력의 대서사(An Empire of Wealth:The Epic History of American Power)’를 쓴

존 스틸 고든, 미국 경제 추락에 대한 족집게 전망으로 ‘닥터 둠(비관적 예언자)’이란 별명을 얻은 뉴욕대 경제학 교수

누리엘 루비니였다.

그에 반대하는 패널리스트는 뉴욕 타임스의 경제 탐사보도 기자인

앨릭스 버렌슨, 공매(空買) 전문 투자기관 키니코스 어소시에이츠의 대표

제임스 카노스, 기업의 지배구조 전문 투자 조사업체 코퍼리트 라이브러리의 대표

넬 미나우였다. ABC뉴스의 금융 전문 기자 존 돈번의 진행으로 진행된 토론을 지상 중계한다.



니올 퍼거슨: 나도 잘못된 많은 부분이 금융업자들의 책임이라고 생각하지만 정치인들의 책임이 더 크다고 본다. 월스트리트에 오명을 씌우기는 너무도 쉽다. 눈치챘을지 모르지만 정치인들이 바로 그런 행동을 한다. 워싱턴 정가가 자신들의 책임을 슬쩍 떠넘기려는 술책이 아닐까.

이번 금융위기에서 4개 기관이 한 역할을 돌이켜 보자. 또 그 기관들의 소재지를 생각해 보자. 첫째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다. FRB는 주택 거품이 부풀어올라 터지도록 내버려 뒀다. 2001년 1월에서 2003년 6월 사이 FRB는 연방기금 금리를 6.5%에서 1%로 낮췄다. 그랬다가 다시 3년 동안 금리를 5.25%까지 아주 서서히 끌어올렸다.

그동안 주택 가격 인플레이션은 연간 7%에서 17%로 높아졌고, 2006년 1월 직전까지 연 15% 위에서 머물렀다. 둘째는 증권거래위원회(SEC)다. 크리스토퍼 콕스 위원장 아래서 SEC는 금융사들의 차입금 비율이 통제 불능이 되도록 방치했다. 12대 1에서 20∼30대 1까지 허용했다. 셋째는 연방의회다.

양대 모기지 업체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을 감독하는 데 완전 실패했다. 그 두 기관이 붕괴하기 직전의 차입금 비율이 65 대 1이었다. 마지막으로 백악관이다. “우리는 미국의 모든 국민이 자기 집을 갖기를 원합니다”고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2002년 10월 선언했다. 미국의 모든 국민이라니 말이 되는 소린가!

금융업자들은 거의 언제나 탐욕에 의해 움직인다. 보통 사람들 대다수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시장의 힘과 안정 사이에 균형을 맞추는 일은 정부의 책임이다. 내가 보기엔 워싱턴이 저 자신을 월스트리트에 팔아넘겼다.



앨릭스 버렌슨: 워싱턴을 탓하는 건 완전히 잘못된 판단이다. 미국의 항공산업을 생각해 보라. 지난 10년 동안 제트기 추락 사고는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연방항공국(FAA)이 SEC보다 규제를 더 잘해서 그럴까? 난 그렇게 보지 않는다. 오히려 항공업계가 안전에 그만큼 신경을 쓰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들이 그것을 도덕적 문제라고 보는지 실무적인 문제라고 보는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어쨌든 미국의 항공기는 지극히 안전하다. 그것을 월스트리트와 비교해 보라. 지난 10년 동안 월스트리트는 탐욕스러운 꼬마들 패거리가 좌지우지한 듯하다. 연봉이 100만 달러, 1000만 달러, 아니 1억 달러라면 장기적인 안목에서 경영을 할 인센티브가 없다.



존 스틸 고든: 월스트리트는 하나의 기관이 아니다. 개인의 집합체이며 본질적으로 군중의 광기에 영향을 받기 쉽다. 월스트리트를 탓하는 것은 폭풍우가 왔다고 대기를 탓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폭풍은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워싱턴은 줄무늬 와이셔츠를 입은 남자들(엄격하고 사명감이 투철한 사람들)의 집단이 돼야 한다.

그들이 규칙을 만들고 시행한다. 그런데 그들은 때로는 친구들의 편의를 위해 규칙을 바꾼다. 규제 장치가 완전히 와해됐다. 통화감독청, SEC, 저축기관감독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있지만 그 기관들 모두는 실질적 감독보다는 제 밥그릇 챙기기에만 골몰했다. 월스트리트 사람들이 돈 버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다면 정치인들은 재선에만 관심이 있다.

정치인들은 내일 조간 신문에 자신에게 유리한 기사가 나오길 원한다. 그게 선거 후인 2∼3년, 아니 5년 뒤 형편없는 정책을 만들어 낸다고 해도 선거 후의 일이라서 나중에 걱정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제임스 카노스: 주간지 비즈니스 위크는 1998년 S&P 500 기업의 최고재무책임자(CFO)들을 익명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상사로부터 재무제표를 조작하라는 요구를 받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답변은 놀라웠다. 45%가 그런 요구를 받았지만 거절했다고 말했다. 요구를 받았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는 사람은 12%였다. 33%는 그런 요구를 받은 적이 없다고 응답했다. 따라서 10년 전인 당시에 CFO 3분의 2가 장부를 조작하라는 압력을 받았다. 그게 내가 주식 공매사업을 하고 있고, 그 사업은 시장이 어떻게 되든 계속 번창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주된 이유다.



누리엘 루비니: 월스트리트 사람들이 탐욕스럽다는 데 동의한다. 그들은 때로는 어리석고 오만하며 무능하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대공황 이후 최악의 금융위기를 맞았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야 한다. 금융업자와 투자자들이 20년 전보다 더 탐욕스럽고 더 부도덕한가? 나는 월스트리트가 탐욕스러운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바람직한 정책이 그런 행동을 규제하기를 기대한다.

FRB의 역할은 파티가 한창일 때 펀치볼(술·설탕·우유·레몬·향료를 넣어 만드는 음료를 담아 놓은 커다란 사발)을 가져가 버리는 것이라야 한다. 그러나 FRB는 펀치볼을 가져가기는커녕 거기다가 독한 보드카까지 추가해 줬다. 앨런 그린스펀 전 FRB 의장이 이런 식의 금융 혁신 최대 독려자였다.

주택담보대출에서 계약금도 없애고, 자금 출처 검증 규정도 없앴으며, 원금 상환 없이 이자만 납입하는 모기지, 역상환 모기지(negative amortization:주택구매자가 이자금액보다 적은 금액을 내고 미납된 원금 및 이자는 대출 원금에 가산하는 방식), 미끼 금리(teaser rate:금리 재조정 전까지 일시 적용되는 낮은 이자율) 등 독성 모기지를 잔뜩 만들어 놨다.

FRB는 그런 것을 규제할 권한이 있었지만 이를 외면했다. 워싱턴에는 지난 10년 동안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있었는데 그것이 지금의 금융위기를 부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바로 자유방임주의다. 금융기관들이 자율 규제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알게 됐다시피 자율 규제란 규제는 없다.



넬 미나우: 월스트리트는 용서받기 어려운 세 가지 과오를 저질렀다. 첫째, 계산이 틀렸다. 계산자를 사용하지 않고 형편없는 통계에 의존했다. 둘째, 인센티브가 잘못됐다. 그들은 거래의 질이 아니라 양에 근거해 급여를 받았다. 셋째, 주주들의 감독이 형편없었다. 누가 대주주인가?

월스트리트의 거물들이다. 누가 그런 터무니없는 연봉을 주는 데 찬성했나? 물론 워싱턴도 형편없이 행동했다. 하지만 1998년부터 2008년까지 6억 달러 이상이 규제 철폐를 위한 로비, 즉 은행들의 자기자본 규정을 없애는 로비에 사용됐다는 사실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고든: 전적으로 옳은 얘기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보면 워싱턴이 그 돈을 챙겼다.



미나우: 워싱턴은 자체적인 시장 시스템을 갖고 있다. 또 정치인들은 재선에 성공하고 싶어 한다. 그들이 돈을 챙겼다. 하지만 당신은 그곳의 희생자들을 탓하고 있다.



퍼거슨: 아니, 뇌물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희생자인지 이해가 안 간다. 혹시 당신의 도덕심 위성항법장치(GPS)가 고장 난 건 아닌가.



미나우: 로비 통계를 보면 돈을 챙긴 사람의 절반이 원래부터 규제에 반대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것 역시 정치의 일부다. 그들은 공직에 출마해 규제 철폐 공약으로 선출된 정치인이다.



퍼거슨: 바로 그거다. AIG는 89년 이래 선출된 관리들과 당에 930만 달러를 직접 갖다 바쳤다. 그 돈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들 중에는 상원 재무위원장과 금융위원장도 포함된다. 그게 워싱턴의 심장부가 썩었다는 걸 말해 주지 않는다면 내가 무슨 다른 증거를 보여 줘야 할지 모르겠다.

카노스: 키스톤 캅스(무성 코미디 영화에 나온 좌충우돌 경찰관들)가 총도 제대로 못 쏘는 어수룩한 갱들을 잡지 못했다고 해서 그 갱들의 죄가 사면되는 건 아니다.



버렌슨: 월스트리트는 지난 15년 동안 정부의 간섭 없이 자율 규제 조건을 스스로 정했다. 그렇다면 그들이 당연히 어른답게 행동해야 했지만 전혀 그러지 않았다.



미나우: 책임 공방과 논란이 많지만 예컨대 폴 볼커 전 FRB 의장 같은 전문가가 증권화된 파생상품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한다면 그런 상품은 판매할 수 없다는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폴 볼커 규칙이라고 하면 어떨까?



퍼거슨: 미국 건국 때부터 워싱턴과 뉴욕 사이에는 긴장이 팽팽했다. 알렉산더 해밀턴(미국의 초대 재무장관으로 10달러짜리 지폐에 초상화가 있다)은 미국이 금융 강국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모든 건국의 아버지들이 동의하지는 않았다. 미국의 정치 문화에서 뉴욕의 힘이 얼마나 강하냐에 관한 문제가 오랜 논쟁의 씨앗이었다. 지난 10년 동안은 뉴욕이 우세했다. 그래서 다른 곳이 하시라도 반격을 가할 상황이 됐다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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