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작전…속임수로 적을 무찌른다
양동작전…속임수로 적을 무찌른다
양동작전(陽動作戰·feint opera tion)은 아군이 계획한 작전지역에서 적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수행하는 기만전술을 말한다. 한쪽으로 쳐들어갈 것처럼 적을 교란한 뒤 반대쪽을 공격하는 ‘성동격서(聲東擊西)’와 같은 뜻이다. 이 같은 위장전술의 대가는 한나라의 명장 한신이었다.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팽성에 도읍한 뒤 서초 패왕을 칭한 항우는 유방을 경계해 한왕으로 봉했다. 군사 요충지인 관중(關中)에 머물고 있던 유방의 군대를 험난한 산악지형인 한중(漢中)으로 쫓아 우환을 제거하기 위함이었다. 한중은 후일 삼국시대에 촉나라 유비의 본거지가 되는 곳.
위나라의 조조가 정벌하러 왔다가 “먹자니 먹을 것도 없고 버리자니 아깝다”고 해서 ‘계륵(鷄肋)’이라 칭했던 그 땅이다. 유방은 관중을 떠나면서 잔도를 불태워버렸다. 잔도란 가파른 절벽에 나무 말뚝을 박아 만든 이동로를 말하는데 험한 한중으로 들어가려면 없어서는 안 되는 시설이었다.
따라서 다시 관중으로 나가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길이었다. 그런 길을 스스로 없앰으로써 항우에게 관중 땅을 넘볼 의사가 없음을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항우를 안심시키기 위한 전략이었다. 한중에서 세력을 키운 유방은 다시 중원을 장악할 의지를 키우게 된다.
유방은 한신을 대장군으로 삼아 관중을 정벌할 계획을 세웠다. 양동작전의 달인 한신은 우선 군사들을 시켜 불타버린 잔도를 수리하는 척했다. 관중을 지키던 초나라 장수 장한은 그 소식을 듣고 대부분 병력을 잔도 쪽으로 배치했다. 장한은 진승·오광의 난을 진압한 명장이었지만 한신의 계략을 간파하지 못했다.
그가 잔도만 쳐다보고 있는 사이 한신은 대군을 이끌고 옛길로 우회해 진창을 점령하고 끝내 관중을 함락시켰다. 여기서 ‘몰래 진창을 건너가다’라는 뜻을 가진 고사성어 ‘암도진창(暗渡陣昌)’이 생겼다.
명장 ‘한신’의 위장술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양동작전의 백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이었다. ‘사상 최대의 작전’이라 일컬어지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이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한 양동작전인 ‘보디가드 작전’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보디가드’란 작전명은 1943년 테헤란 회담에서 처칠이 스탈린에게 한 말에서 비롯된 것이다. “전시에 있어 진실은 너무 소중한 것이어서 거짓이라는 보디가드의 보호를 받아야만 합니다.”사실 독일군도 연합군의 유럽 본토 상륙작전의 목표가 프랑스 북부 해안이리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수백만 명의 병력과 대량의 무기와 탄약, 보급 물자를 실어 날라야 하는 대규모 군사작전을 성공시키려면 프랑스와 영국 사이의 최단 거리인 도버 해협을 건너 프랑스 서북부로 진격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디가드 작전의 기본 전략은 독일군으로 하여금 연합군이 프랑스 북부가 아닌 다른 곳에 상륙할 것이라고 믿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1차 위장 목표는 발칸반도와 노르웨이가 선택됐다. 발칸반도는 분명 상륙작전의 가능성이 있는 곳이었다. 유전 지대일 뿐 아니라 히틀러의 군수창고가 있었다. 연합군은 허위 정보가 담긴 무선통신을 주고받으며 발칸 상륙작전 준비를 서두르는 척했다. 이 작전은 분명 효과가 있었다.
히틀러는 프랑스에 주둔하고 있던 주요 사단을 발칸반도로 이동시켰고 프랑스에는 대신 후방의 약체 보병사단을 배치했다. 연합군은 또 스웨덴이 독일군에 철광석을 공급하지 못하도록 노르웨이 공격을 계획하고 있다는 거짓 정보를 흘렸다. 실제 작전 준비가 진행되는 것처럼 철저한 위장도 했다.
산악전을 위한 제4집단군이라는 위장 편제를 만들고 제설기 같은 산악전용 장비들을 조달했다. 고무풍선에 바람을 넣어 만든 가짜 바지선과 상륙용 함정들이 만들어졌으며 군함 굴뚝에서 나는 것처럼 연기를 피워 올리기도 했다. 노르웨이가 나치의 수중에서 벗어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스웨덴 주식시장을 조작해 노르웨이 주가를 올려놓기도 했다.
독일군은 연합군의 대규모 노르웨이 침공 작전이 있으리라고는 믿지 않았지만 어떤 규모든 공격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했다. 결국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진행되는 동안 최정예 SS기갑부대를 포함한 20만 명의 독일군 병력이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머물러 있었다. 그들을 묶어둔 연합군 제4집단군 병력은 고작 362명이었다.
이 같은 양동작전으로도 상륙작전의 최종 목표지가 프랑스 북부가 되리라는 독일군의 예상을 깨뜨릴 순 없었다. 프랑스 북부만큼 상륙작전의 조건이 맞아떨어지는 곳은 없었기 때문이다. 대규모 상륙작전을 위해 항만시설은 필수불가결한 요소였다. 연합군은 노르망디 상륙작전 2년 전인 1942년 8월에도 프랑스 북부 항구도시 디에프에 기습 상륙하려다 항만을 지키던 독일군 수비대에 패퇴한 적이 있었다.
따라서 독일군은 연합군이 이번에도 상륙작전 성공의 관건인 신속한 병력 증강을 위해 대형 항구를 손에 넣으려 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연합군에게는 바로 이 대목이 독일군을 속일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이었다. 프랑스 북부 중에서도 최적의 상륙 지점은 파드칼레였다. 파드칼레는 도버 해협을 가로지르는 최단 루트였으며 대형 항만 시설을 갖춘 항구였다.
연합군은 파드칼레가 아닌 다른 상륙 후보지를 물색하면서 독일군이 연합군이 파드칼레에 상륙할 것이라고 믿도록 대대적인 양동작전을 펼쳤다. 우선 파드칼레와 맞닿은 영국 동남부에 병력을 증강하는 것처럼 위장했다. 가짜 상륙용 함정과 군함들을 해안에 배치하고 비행장에는 모형 비행기들을 줄지어 세웠다.
영화 스튜디오의 세트 디자이너들까지 고용돼 도버 해협 근처에 가짜 석유저장소와 접안 부두시설을 만들었다. 영국 여왕과 연합군 사령관이었던 몽고메리 장군이 이 가짜 시설을 방문했고 이는 언론 보도를 통해 대대적으로 선전됐다.
병법은 ‘속임수’ 일환
연합군은 유럽대륙을 공습할 때도 노르망디에 한 번 폭격을 할 때마다 파드칼레에는 두 번씩 폭격을 가해 파드칼레가 상륙지점이 되리라는 독일군의 믿음을 더욱 확고하게 만들었다. 또 하나의 좋은 위장 기회가 생겼다. 1944년 5월 전쟁포로였던 독일군의 한스 크래머 장군이 건강 악화로 독일로 송환되게 된 것이다.
크래머 장군은 조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자신이 영국 동남부를 거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실제 그의 이동 경로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위해 한참 병력 증강 중이던 영국 서남부 지역이었다. 그는 고국으로 돌아가 상부에 자신이 들은 바와 본 바, 즉 잘못된 정보를 보고했다. 독일군 지휘부의 뇌리에 파드칼레는 더욱 확고한 상륙지점으로 자리 잡았다.
1944년 6월 6일 수송기 2316대가 연합군 공수부대를 노르망디의 독일군 배후에 투하함으로써 상륙작전이 개시될 때 독일군 주병력인 제15군은 파드칼레에서 도버 해협 건너 영국 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만약 독일군이 연합군의 양동작전에 속지 않았다면 전쟁은 몇 년 더 계속됐을 것이다.
프랑스 작가 쥘 베른은 “남에게 당하면 곤란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남에게 하라고 시키는 것이 모든 전쟁의 바탕을 이루는 원칙”이라고 말했다. 적을 속일 수 있다면 최선이지만 적에게 속는 것은 최악의 상황을 초래하는 것이다. ‘병법은 속임수(兵子詭道也)’라는 손자의 말처럼 전쟁에서 이기는 지름길은 적의 허를 찌르는 속임수일 수밖에 없다.
전쟁뿐 아니라 모든 경쟁에서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상대를 속일 때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디가드 작전에는 앞서 설명한 것들 외에 수많은 양동작전이 동시에 펼쳐졌다. 주요 기본계획만 6개였고 부수작전 36개로 그것을 뒷받침했다. 이 중에서 한 가지라도 어설프게 수행된 게 있었다면 상륙작전은 실패했을지도 모른다.
속임수일수록 오히려 전력을 기울여 진짜처럼 보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를 속일 수 없고 헛수고로 힘만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속임수에 실패해서 역공 당하는 건 그야말로 재앙이다. 온 힘을 쏟아 부을 준비가 안 됐거나 그럴 의지가 없는 경우 속임수는 사용하지 않는 게 낫다. 상대가 속아넘어가는 척하면서 기습적으로 허를 찌르는 전략을 구사하면 자칫 치명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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