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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핵무장 대응은 경제 악재”

“한·일 핵무장 대응은 경제 악재”

일본 민주당 중의원 4선인 대표적인 국제파 정치인 이와쿠니 데쓴도(岩國哲人·73). 부산 동서대의 석좌교수를 맡은 이와쿠니 의원을 만나 일본의 북한 핵 대응, 한·일 양국의 경제위기 대처 현황, 그리고 현 세계경제 위기를 낳은 자유방임 세계경제 체제의 대안은 무엇인가 등 폭넓은 이야기를 들었다.

5월의 한반도는 충격을 받아 어지러운 지경이다. 남쪽에서는 퇴임한 지 1년밖에 안 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투신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서거했다는 소식이 터져 나와 전 세계 언론을 강타했다. 이어 북쪽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조전을 보내면서 핵실험을 단행해 또다시 헤드라인을 차지했다.

이런 한반도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각은 어떠할까? 마침 일본의 대표적 국제파 정치가인 이와쿠니 데쓴도(岩國哲人) 민주당 중의원 의원이 방한해 5월 26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잠시 만났다. 그 자리에는 중앙일보종합연구원 곽재원 원장과 장제국 부산 동서대 부총장이 함께했다.

미국 메릴린치 뉴욕본사의 수석부사장을 지냈던 이와쿠니 의원은 1989년 고향인 이즈모(出雲) 시장선거에서 당선돼 정치가의 길로 들어선 인물이다. 시장 재임시절 그는 기존의 틀을 깨는 개혁을 속속 추진하면서 이즈모를 일본에서 가장 살기 좋은 지방으로 만들어 ‘지방행정의 달인’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올해 실시되는 중의원 선거에는 출마를 포기하고 국회 밖에서 일본 개혁에 동참하겠다고 한다. 이와쿠니 의원은 5월부터 부산 동서대의 특임교수(석좌교수)직을 맡기로 했으며, 이번에 첫 강의를 위해 방한했다.



>> 외신을 보니 이명박 대통령이 2개의 전선에 동시 직면해 있다는 기사가 있었다. 하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며, 또 하나는 북한 핵실험이다.

“정신없는 한 주가 될 것 같다. 한반도의 남과 북에서 동시에 엄청난 뉴스를 제공했다. 북한은 정말 상식이 통하지 않는 집단이라는 생각이 든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불행한 일을 당한 이 시기에 한편으로는 조문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핵실험을 감행한 것은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처사다. 돌아가신 분에게 조용히 조의를 표하는 것은 인간적인 상식 아닌가.”



>> 일본 국민의 분위기는 어떠한가?

“대부분의 일본 국민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안타깝게 여기고 있다. 70~80%는 조의를 표할 것이다. 부정의혹이 있었던 것은 사실 아니냐며 크게 동요하지 않는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일본 국민들은 이웃나라 전 대통령이 자살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해 인간적으로 동정하고 있다. 특히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고 한 유서 내용이 가슴 아프고 감동적이다.”



일본인 70~80% 조의 표하는 심정




>> 북한에 대한 일본 정치권의 분위기는?

“일-북한 간 최대 현안인 미사일, 핵, 납치문제 등을 둘러싸고 민주당 내에서도 북한은 대화 상대가 아니라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자민당의 고이즈미(小泉)내각 때는 대화와 압력을 섞어가며 북한에 대응했으나 그 이후에는 압력을 가하자는 의견이 우세해졌다. 하지만 나는 대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안에 한반도문제연구회를 결성한 것도 북한의 본심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효과적인 대응이 가능하다는 생각에서였다. 북한이 도발할 때마다 경제제재 이야기가 나오는데, 중국과 북한의 문이 완전히 닫혀 있지 않은 상태에서는 경제제재를 가해 봐야 역효과만 날 뿐이다.”



>> 일본이 패전 후 주권이 없는 상태에서 만든 헌법을 아직도 고치지 않고 있는 ‘방치(放置)국가’라고 비난하며 헌법을 개정할 땐 핵 포기를 반드시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북한이 계속 핵실험을 하면서 도발한다면 일본 내에서는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질 텐데.

“국민이 그런 안이한 생각을 갖지 못하도록 조절하는 것이 올바른 정치가의 역할이다. 온 세계가 핵 군비경쟁을 한다면 돈과 기술이 있는 일본은 핵무장을 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나라다. 그러나 일본은 전 세계에서 핵 피해를 당한 유일한 국가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자산이라고 표현하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일본의 숙명 같은 것이다. 인류의 비극을 막기 위한 선두에는 미국이 아니라 일본이 서야 한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핵무기 확산 방지에 적극적이다. 핵을 사용한 나라와 핵 공격을 받은 나라가 60년 만에 처음으로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1945년부터 64년이라는 참으로 긴 세월이 지났다. 오랜만에 부각되고 있는 핵무기 사용금지의 큰 흐름에 대해 미국과 일본이 한목소리로 세계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일부 극우파의 주장대로 북한의 도발에 자극 받아 한국과 일본이 핵 무장에 나선다면 그것이야말로 북한의 의도에 휘말리는 행동이다. 같은 패전국인 독일은 돈과 기술이 있으면서도 인류를 망하게 하는 핵무기를 갖지 않겠다고 약속했다는 점에서 훌륭하다고 본다.”



>> 한·일 양국 모두 경제가 어렵다. 이번 사태로 경제가 더 흔들릴지 걱정이다.

“아소(麻生) 총리는 자신이 경제를 잘 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점에서는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두 나라 지도자 모두 경제전문가를 자임하고 있지만 경제성적표는 영 신통찮다. 물론 세계적인 경제위기 탓도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도 경제정책의 방향을 잘못 잡고 있는 것 같으며, 예산집행에도 낭비적 요소가 많은 것 같다.

돈을 뿌리는 데만 열을 올리고 있다. 아소 총리는 해외에 나가서도 일본이 몇 조 엔을 기부하겠다며 돈을 뿌린다. 이념 없는 예산, 이념 없는 지출이 많다. 통계적으로 보면 이번 경제위기 때문에 가장 피해를 본 나라는 원인 제공자인 미국보다 한국과 일본이다. 미국에 대한 경제의존도가 너무 높아서다.”



자본주의가 붕괴한다는 소리까지 들려




>> 우정성 민영화 등으로 대표되는 고이즈미 개혁은 주변국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동력이 많이 떨어진 것 같다.

“고이즈미 전 총리의 브레인이었던 다케나카 헤이조(竹中平藏) 전 총무상은 자유주의경제, 디레귤레이션(de-regulation) 등 미국에서 배운 것이 가장 좋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당시 일본에서 미국의 영향을 받은 고이즈미 개혁이 진행되고 있을 때 세계적으로는 이미 그 흐름이 끝나가고 있었다. 미국에서는 디레귤레이션, 즉 규제완화에 대한 반성으로 리레귤레이션(re-regulation)이 필요하다는 생각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세계적으로 디레귤레이션에 대한 반성의 바람이 불고 있는데도 다케나카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디레귤레이션을 통한 개혁을 밀어붙였다.”



>> 세계적인 경제위기 속에서 정부의 역할이 점점 커지고 있다. 작은 정부와 시장주의를 근본으로 한 신자유주의 몰락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최근 일본에는 공산주의에 대한 재고 움직임이 있으며, 공산당 입당 희망자도 늘어나고 있다. 자본주의가 붕괴한다는 소리까지 들린다. 그렇다고 마르크스가 되돌아온다는 것은 지극히 만화적이고 단순한 발상이다. 나는 자본주의의 틀 속에서 조금만 개량하면 신자유주의도 아닌, 그렇다고 공산주의도 아닌 좋은 시스템을 충분히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리레귤레이션이 그중 하나다. 정부의 적당한 규제는 필요하다.”



>> 큰 정부에 대해 찬성하나?

“그렇다. 여기서 크다는 의미는 공무원 수가 많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정부의 역할을 늘리자는 것이다. 이즈모 시장으로 있을 때 공무원의 일은 늘어났지만 공무원 수는 늘리지 않았다. 적은 세금으로 더 많은 일을 하자는 것이 내가 말하는 큰 정부다. 돈이 없으면 머리를 쓰라는 게 내가 주장하는 개혁이다. 반대로 머리가 없으면 돈을 쓰라는 게 아소 총리의 생각이다.”



>> 국제적 시각이 매우 넓은 것으로 아는데….

“나는 유럽에서 10년, 미국에서 10년, 아시아에서 10년 등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많은 것을 보고 경험했다. 나의 눈을 통해 보아온 그 세계를 미처 다녀본 경험이 없는 미래의 리더들에게 전하고 싶다.”



>> 부산 동서대의 요청에 따라 특임교수를 수락하셨는데 앞으로 계획은?

“1988년에 미국 버지니아대, 1999년에 중국 난카이대, 2008년에 중국 산시(山西)대 등에서 객원교수로 국제론, 정치, 경제, 행정 등 내가 경험한 분야를 중심으로 강의했다. 일본의 장래와 관련해 매우 중요한 파트너인 미국, 중국의 21세기 리더가 될 학생들에게 내 생각을 전하고 싶었다.

2005년 5월 23일에 기념강연 한 것이 인연이 돼 부산 동서대 설립자이신 장성만 이사장과 장제국 부총장 등의 요청으로 5월부터 특임교수로 강의하기로 했다. 미국, 중국과 더불어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 한국의 대학생들에게 내가 그동안 보아온 세계를 전하고 싶다. 아시아의 미래를 함께 생각하고 논의하는 기회를 준 동서대에 깊은 감사를 전한다.”



>> 스스로를 평가한다면?

“나는 중의원 의원으로서 정치활동을 하면서 정치가 스쿨의 필요성을 느꼈다. 당선된 후에 비로소 세상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의원이 되기 전부터 아시아와 세계에 대해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의원이 된 후 자기 선거구의 도로나 보육원 같은 작은 문제를 바라볼 것이 아니라 커다란 논의가 가능하도록 아시아의 문제, 이웃 한국의 문제, 세계의 문제를 알아야 한다.

그런 것을 가르치고 공부하는 정치스쿨이 필요하다. 본국의 일을 잊으라는 것은 아니다.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세계의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공부한 다음 자신의 나라, 자신의 선거구로 돌아가 정책을 실현해 나가야 유능한 정치인이 될 수 있다.”



정치인은 세상에 대한 공부 미리 해야


이 대목에서 그는 “일본의 2세, 3세 정치인들은 고생을 모르고 자란 사람들”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을 이어갔다.

“고생을 모르는 정치가들이 어떻게 고생하는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나. 선거에 나가기만 하면 무조건 당선되는 사람들이 세상의 문제를 어떻게 알 수 있나. 그렇다고 고생을 경험한 사람만이 정치를 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적어도 정치가가 되려면 세상에 대한 공부를 미리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프리카 사람들의 문제, 아시아의 농업문제, 미국 정치가들의 생각 등 인터내셔널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 앞으로 정치적 계획과 입장이 있다면 정리해 달라.

“나는 중의원 4선을 끝으로 다음 선거에는 출마하지 않을 생각이다. 내년 참의원 선거에 나갈지는 아직 미정이다. 지금으로서는 국회 밖에서 일본을 바꾸는 일에 동참하는 것도 검토 중이다. 궁극적으로 내가 추구하는 것은 ‘클린 정치, 그린 경제’다. 좋은 마음으로 좋은 일을 하면서도 돈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부정에 휩쓸리는 정치에서 벗어나 클린한 정치를 실현하는 데 동참하고 싶다.

그리고 앞으로 정치가와 경제인들은 그린 경제를 추구해야 한다. 사실 이 세상의 가장 큰 주주는 지구다. 그동안 지구가 가만히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배당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구가 갑자기 열을 내고 화를 낸다면 큰일이다. 우리는 앞으로 지구에게도 배당을 해야 한다. 그것이 그린 경제다.”

메릴린치 부사장 출신 국제파 정치인
이와쿠니 데쓴도 누구인가?

일본 민주당 중의원 4선인 그는 대표적인 국제파 정치인이다. 1936년 오사카(大阪)에서 태어난 그는 도쿄대학 법학부를 졸업했으며, 닛코(日興)증권에서 근무하다 모건스탠리를 거쳐 메릴린치 뉴욕본사 수석부사장까지 오른 금융전문가다.

1989년에는 제2의 고향이자 부인의 고향인 이즈모(出雲)에서 시장직을 맡아 달라는 요청을 받고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시장 재임시절 ‘행정은 최대의 서비스 산업’ ‘작은 관공서, 큰 서비스’ 등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각종 개혁을 단행해 이즈모를 일본에서 가장 살기 좋은 지방으로 만들었다.

이즈모는 그가 재임한 지 2년 만에 도요타, 소니 등과 함께 일본 최우수 기업의 하나로 일본능률협회(JMA)로부터 마케팅 최우수상을 받았다. 삼성그룹과도 깊은 인연이 있다. 그는 메릴린치 수석부사장으로 뉴욕에서 근무할 때 이병철 회장이 3남인 이건희 현 명예회장을 자신에게 소개하며 앞으로 삼성그룹을 크게 키울 아들을 잘 도와주기 바란다는 말을 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그 후 세월이 흘러 이건희 회장이 ‘신경영선언’을 하기 3개월 전인 1993년 3월 이즈모시로 찾아와 새벽 3시가 넘도록 삼성 개혁에 대해 깊은 토론을 했다고 한다. 그는 개혁이 더딘 일본에 대해 “한국인들은 일본에서 배우려는 열정이 강하고, 배운 것을 곧바로 실천에 옮기는데 그런 한국을 우리가 오히려 배워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있다.

어릴 때 정치가, 교육자, 신문기자를 꿈꿨던 그는 인생을 통해 세 가지 꿈을 모두 실현한 행운아다. 취재기자는 아니지만 국회의원을 하면서 지방신문에 연재한 ‘이치가쓰산슈(一月三舟)’는 유명세를 탄 칼럼이다.

멈춰있는 배에서 보는 달은 움직이지 않으며, 북쪽으로 가는 배에서 보는 달은 북쪽으로 움직이는 듯 보이며, 남쪽으로 가는 배에서 보는 달은 남쪽으로 움직이는 듯 보인다는 이 불교용어는 한쪽으로 치우침을 경계하고 있다.

중국과 미국의 대학에서 강의한 경험이 있는 그는 이번에 부산 동서대의 석좌교수 요청을 수락했다. 한·일 양국의 우호적인 관계를 짊어지고 나갈 젊은 리더를 키우는 데 자신의 경험과 역량을 쏟아 붓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에서 받아들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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