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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생의 길 쌍용에 불량차는 없다”

“회생의 길 쌍용에 불량차는 없다”

지난 13일, 쌍용자동차가 77일간의 파업을 끝마치고 조업을 재개한 지 한 달을 맞았다. 유례없는 강경 파업은 극적인 노사합의로 끝을 맺었다. 그러나 돌아선 소비자들의 마음을 다시 잡는 것도, 채권단으로부터 신차 개발자금을 지원받는 것도 쉽지 않아 각오를 다질 수밖에 없다. 쌍용차 평택공장의 오후는 조용하면서도 분주했다. 근로자들은 활기차다기보다 비장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체어맨, 로디우스를 조립하는 2라인에서 직원이 진지한 모습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

▎체어맨, 로디우스를 조립하는 2라인에서 직원이 진지한 모습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

주위는 삼엄했다. 파업이 끝나고 조업이 재개된 지 한 달이 됐지만 지난 11일 경기도 평택시 칠괴동 쌍용차 평택공장 주변에는 검은 제복을 입은 경비 직원들이 긴장을 늦추지 않고 서 있었다. 정문은 물론 후문, 중문 등 평택공장을 둘러싼 모든 출입구가 마찬가지였다.

경비보다 안내에 중점을 둔 다른 회사와는 차원이 달랐다. 파업의 여파인 듯했다. 그 흔적은 다른 곳에서도 쉽게 엿보였다. 평택공장의 정문 역시 파업기간 파손된 구조물을 복구하느라 공사가 한창이다. 동행한 홍보실 직원은 “파업 때 소실된 구조물인데 이제서야 수리하고 있다”고 멋쩍게 웃었다.

조립라인을 둘러보기 위해 공장 내부로 들어가면서도 곳곳에서 파업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정리해고는 살인’이라는 노란색 페인트로 바닥에 쓴 글씨가 선명하게 눈에 띄었고, 공장 벽면에는 황급히 비슷한 색으로 파업 구호를 지워놓은 흔적이 보였다. 도장공장과 마주 보고 있는 본관 건물 뒤편은 성한 유리창이 없었다. 파업 때 도장공장에서 날아온 볼트와 너트로 유리창이 깨졌기 때문이다.

공장 관계자는 “값비싼 반사유리라 전체를 보수하려면 1000만원 정도가 든다. 우선 급한 생산시설부터 보수하고 나중에 교체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다행히 생산시설은 완전히 복구됐다. 조립라인으로 들어서자 쌍용차는 언제 파업이 있었느냐는 듯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체어맨W, 체어맨H, 로디우스를 생산하는 조립 2라인에서는 시간당 8대의 차가 생산되고 있었다. 안내를 맡은 곽용섭 차장은 “현재 조립 2라인은 하루 8시간 1교대로 정상조업을 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호황 때 시간당 14대를 생산하기도 한 점을 생각하면 지금 일감이 성에 차지는 않을 법했다.

바로 옆에 있는 조립 3라인의 상황은 좀 더 나은 편이다. SUV인 렉스톤, 카이런, 액티언 등을 생산하는 3라인은 시간당 22대의 차를 생산하고 평일엔 2교대, 토요일에는 특근도 한다. SUV 명가답게 회복도 가장 빠르다. 하지만 77일간 파업하면서 협력업체들도 영향을 받아 부품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점이 문제다.

 

▎파업 때 텅 비었던 후문 쪽 야적장에는 수출되거나 내수시장에 판매될 차량들이 줄지어 서 있다.

▎파업 때 텅 비었던 후문 쪽 야적장에는 수출되거나 내수시장에 판매될 차량들이 줄지어 서 있다.



생산라인 언제라도 세울 각오기자가 방문한 11일 오후 3시쯤에는 라인이 불이 꺼진 채 멈춰서 있었다. 곽 차장은 “파업 기간에 협력업체들도 생산을 하지 않아 휴업을 하고 직원을 줄였기 때문에 생산이 재개된 지 한 달이 다 돼가도 아직 부품이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무리하게 생산량을 늘리기보다는 부품의 질이 못 미치면 생산을 중단하는 것을 택한 것이다. 김명호 생산2팀장은 “소비자들이 파업 후 가장 걱정하는 것이 품질이라는 것을 우리도 안다”면서 “직원들도 라인을 세우더라도 불량품을 만들 순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파업기간 동안 쌍용차의 1차 협력업체 하나가 도산했고, 그에 딸린 2개 협력사도 부도가 났다. 생존한 부품업체들도 다시 인원을 충원해야 되고, 작업자들이 숙달되는 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쌍용차에서 필요한 수준으로 필요한 만큼 부품을 공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곽 차장은 “부품업체가 부도나도 대체 생산 시설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부품 공급에는 차질이 없다”고 말했다. 파업의 가장 큰 피해는 사실 공장시설도 아니고, 직원 간의 갈등도 아니다. 소비자들의 불신이다. 파업 직후 나온 차는 뭔가 결함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곽 차장은 “그런 우려를 우리도 알고 있기 때문에 8월 말까지는 자동차 출고 전 A/S팀에서 공장에 내려와 한 번 더 점검했다”고 설명했다. 소비자에게 가장 자주 들어오는 클레임과 고장부분을 알고 있는 A/S팀이 공장 내부로 찾아와 깐깐하게 검사를 한 것이다.

자기들이 생산한 제품을 바로 앞에서 검사하게 할 정도로 공장사람들 자존심을 접으면서 일을 한 덕인지 작업 완성도는 상당히 높아졌다. 한 라인에서 몇 가지 차종을 생산하다 보면 생기는 이종(異種) 오조립 비율도 예전에 비해 현격하게 낮아졌다. 곽 차장은 “과거 7~8%까지 나오던 이종 오조립 비율이 요새는 거의 1% 미만으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평택공장 정문은 지난 파업 때 훼손된 구조물을 복구하는 공사 중이었다.

▎평택공장 정문은 지난 파업 때 훼손된 구조물을 복구하는 공사 중이었다.



더욱 끈끈해진 팀워크작업 정확도가 이렇게 높아진 것은 단순히 생산성 향상 운동 때문이 아니다. 21년째 쌍용차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명호 생산2팀장은 “지난번 파업으로 아픔을 겪으면서 직원들이 회사의 소중함을 느꼈기 때문에 일하는 자세가 달라진 것 아니겠느냐?”고 해석했다. 김 팀장은 “출근시간도 잘 지키지 않고, 조업시작 직전까지 담배 피우고 커피 마시던 일을 이제는 볼 수 없다”고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파업 전에 소홀히 했던 작업 전 체조나 청소, 근무질서 지키기 등이 완전히 달라졌다. 팀장이 독려해도 하지 않던 체조나 청소를 이제는 조업시간 전 자발적으로 한다. 퇴근시간이나 점심시간도 원칙대로 지킨다. 과거 오후 5시30분 퇴근이면 20분쯤에 생산라인에서 떠나기 시작해서 23분 쯤이면 정문 근처에 사람들이 모였다.

30분에 정문이 열리면 한꺼번에 우르르 밖으로 몰려나갔다. 하지만 파업 후에는 30분이 될 때까지 모두 작업에 매달려 있다는 것이다. 이는 지금 남아있는 2900여 명의 직원이 한때 5200여 명에 달했던 직원 중 살아남은 사람들이고, 회사가 폐업의 문턱에까지 갔다 온 것을 눈으로 목격했기 때문에 일어난 변화다.

지금 쌍용차 직원들은 파업 전의 그 직원들이 아니다. 그들이 일하는 자세를 생산성 같은 정량적 평가로 계산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공장에서 만난 쌍용차 직원들의 바쁜 동작에서 활기보다는 비장함이 느껴진 것도 이 때문이다. 쌍용차 측은 “파업 후 인원이 줄고 근무환경도 예전만 못해졌지만 직원들의 의지나 진지함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고 설명했다.

현장에서도 “파업이라는 사태에 공동 대처하면서 어려움을 같이 겪었기 때문에 팀워크는 더욱 끈끈해졌다”고 말했다. 이런 의식이 쌍용차의 품질향상과 경영정상화에 투영된다면 정부 지원이나 채권단 지원을 이끌어내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 마침 기자가 방문하기 이틀 전인 8일에 쌍용차 노조는 완성차 업계 최초로 민주노총 탈퇴라는 선택을 했다.

민주노총의 이름으로 싸운 77일에 대한 조합원들의 평가가 내려진 것이다. 공허한 구호가 아니라 몸으로 겪은 현실을 바탕으로 한 그들의 선택에 대해 ‘옳다, 그르다’라는 가치를 매기기는 쉽지 않다.

변절일 수도 있고, 변화일 수도 있지만 지금 평택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 중 한때 노조의 대의원이나 중급간부, 노조활동을 열심히 한 일반 노조원도 다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김 팀장은 “그런 사람들도 지금은 다들 열심히 일한다”고 말했다.



소비자는 쌍용차와 협상하지 않는다공장은 이렇게 정상화되고 있지만 아직 쌍용차가 시장에서도 ‘생존’ 판명을 받은 것은 아니다. 일단 파업은 멈췄고 조업은 재개돼 겉으로는 평온을 되찾은 듯 보이지만 쌍용차는 이제 시장과의 싸움이라는 더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다. 박영태 관리인은 “9월에는 5500대를 생산해 공장을 정상화시키겠다”고 의욕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시장에서 쌍용차를 그렇게 사줄지는 의문이다. 여기에 쌍용차는 1500억원에 달하는 신차 C200 개발자금도 없는 상황이다. 지난 2년여간 신차 출시가 없는 상황에서 쌍용차가 소비자의 선택을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만에 하나 정부의 지원이 없더라도 신차 개발을 하기 위해 쌍용차는 우선 부평공장 매각으로 280억원을 마련할 계획이고, 기타 유휴자산 매각으로 800억~900억원을 마련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또 월별 4500대 정도의 판매량을 유지할 수 있다면 매월 150억원 정도는 C200 등 신차 개발 자금으로 투자할 수 있을 것으로 경영진은 판단하고 있다.

이 역시 소비자와 시장의 평가가 좋을 때 가능한 일이다. 절반 가까이 줄어든 인력들도 완전히 정상화된 것이 아니다. 쌍용차 관계자는 “지난 8월에 7개월 만에 처음으로 월급을 100% 받아봤다. 물론 그것도 4월분이다”고 털어놨다. 월급이 아직 4개월치나 밀려있는 셈이다.

현장 근로자들의 경우 잔업, 특근 등이 없어지고, 1교대로 운영되면서 교대수당도 사라져 호경기 때 받던 월급의 70% 정도만 나오는 셈이다. 쌍용차 정문 앞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한 주인은 “요즘 통 밥을 먹으러 나오지 않는다”며 신기해 했다. 그만큼 생활이 팍팍해졌다는 얘기다.

생존을 위해 공장으로 돌아온 이들이기에 아직 월급이나 급여에 대한 불만은 없지만 언제까지 이런 상태로 공장을 운영할 수는 없다. 파업은 끝났지만 상처는 남아있다. 너나 할 것 없이 어려웠던 올해 쌍용차는 77일간의 파업으로 지난해 출시된 이후 꾸준히 인기를 끌었던 대형세단 체어맨W의 상승세에 찬물을 끼얹었고, 노후차 세제지원이라는 정부의 지원책도 파업으로 고스란히 날려보냈다.

극적인 노사 합의로 쌍용차는 다시 생산에 들어갔지만 소비자는 쌍용차와 협상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소비자는 선택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쌍용차는 이제 그 ‘차가운 선택’을 받기 위해 평택공장에 다시 불을 지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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