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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경쟁…능력 있는 직원 승진·보상”

“내부경쟁…능력 있는 직원 승진·보상”

자칭 ‘고약한’ 사장이 있다. 일할 땐 에누리도, 변명의 여지도 없다. 잘한 사람에겐 입이 떡 벌어질 만큼 포상하고, 못한 사람에겐 채찍을 주저 없이 휘두른다. 스스로 일하지 않으면 버티지 못하는 구조다. 내부경쟁 시스템 도입으로 공기업에 새 바람을 불어넣고 있는 한국중부발전 배성기 사장의 이야기다.

1989년, 한국중부발전 배성기(56) 사장(당시 통상산업부 과장)은 이집트 소재 UN에스캅(아시아·태평양 경제사회위원회)으로 발령 받았다. 아시아·태평양 30여 개국 공무원이 함께 일하는 곳이었다.

긴장과 기대감이 뒤섞인 감정으로 UN에스캅에 출근한 첫째 날. 한국식 관료문화에 익숙했던 그의 폐부엔 비수가 꽂혔다. 조직 업무를 마치 내 일처럼 처리하는 철두철미함에 놀랐다. 하급자의 일을 상급자가 거리낌없이 떠맡는 시스템에도 충격을 받았다.

“상급자가 먼저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더라고요. 일할 땐 누구 하나 딴청을 피우지 않았습니다. 직위고하를 떠나 조직 업무가 곧 나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듯했죠. 깜짝 놀랐습니다.”



자율경영 깃발을 들다1993년 국내에 복귀한 뒤에도 그는 그때의 긍정적인 충격을 간직했다. 그를 두고 성공한 관료, 통상·에너지 분야의 1인자라는 찬사가 쏟아졌지만 정작 스스로는 2% 갈증을 느꼈다. UN에스캅에서 받은 자극 때문이었다. “우리나라 관료 조직은 지시와 명령에 익숙하죠. 자율은 없습니다. UN 근무시절의 경험을 토대로 조직을 변화시키고 싶었지만 역부족이었죠.”

2006년 산업자원부 정책홍보실장을 끝으로 공직을 떠난 배성기 사장은 그해 한국생산성본부 회장에 취임했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던 만큼 그를 옥죄는 것도 많았다. 그 가운데 실적 압박은 가장 큰 스트레스였다. 한국생산본부는 무자본 특수법인이다. 스스로 벌지 않으면 곳간이 마를 수밖에 없다.

더구나 그가 회장에 취임했을 땐 정부 지원도 끊긴 상태였다. 어떻게 해야 할까? 불철주야로 고심하던 그는 UN에스캅에서의 경험을 떠올렸다. “스스로 일하는 분위기를 만들지 않으면 실적을 낼 수 없다고 확신했죠. 그래서 각 부서장에게 폭넓은 재량과 함께 무거운 책임을 줬습니다.”

한국생산성본부 회장에 취임한 후 그가 도입한 첫째 제도는 ‘강의실 팔기’다. 경영컨설팅과 교육을 하는 이 본부엔 40여 개의 크고 작은 강의실이 있는데, 이를 입찰에 부친 것이다. 최고가를 제시한 부서에 가장 크고 좋은 강의실을 할당하는 방식이다. 입찰 가격을 달성한 부서엔 파격적 성과금 지급을 약속했다.

최고 실적을 올린 부서엔 한 달간 해외여행 기회도 줬다. 스스로 일하는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얘기다. UN에스캅처럼 말이다. “많은 성과금을 받기 위해선 무엇보다 강의실을 채워야 했습니다. 어땠겠습니까? 그야말로 불이 붙었습니다. 나중엔 각 부서 스스로 교육생을 효과적으로 유치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냈죠. 두 번째 입찰 땐 좋은 강의장을 얻기 위해 필사적으로 경쟁할 정도였습니다.”

치열한 내부경쟁은 실적 개선을 이끌었다. 수년째 450억원을 맴돌던 이 본부의 매출은 2006년 550억원, 2007년에는 660억원으로 늘어났다. 눈에 보이는 실적만 좋아진 것은 아니다. 직장 만족도는 물론 이직률도 급격하게 하락했다고 그는 말했다.



공기업 문화 바꾸는 전직 공무원“조직경영은 시스템입니다. 어떤 시스템을 택하느냐에 따라 조직의 존폐가 결정되죠. ‘내가 일하면 부서가 돈을 벌고, 부서의 주머니 사정이 좋아지면 조직이 살아난다.’ 한국생산성본부의 실적이 개선된 것은 이런 단순한 시스템이 정착됐기 때문입니다.”지난해 10월부터 그는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이번엔 한국전력 자회사 한국중부발전의 수장이다. 2001년 발전부문 경쟁체제 도입으로 설립된 한국중부발전은 화력·양수발전소를 통해 전기를 생산해 한국전력에 팔아 수익을 남긴다. 국내 발전설비 용량의 14%를 차지하고 있으며 괜찮은 실적을 뽐내고 있다. 하지만 배 사장은 이번에도 조직 시스템에 칼을 대고 있다.

체질을 개선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결론에서다. “발전회사에 에너지 수요는 중요합니다. 그런데 국내 전력소비 증가율이 꾸준히 감소하고 있습니다. 2013년엔 2% 이하로 떨어질 게 불을 보듯 뻔합니다. 환골탈태하지 않으면 발전회사의 미래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는 이를 발전회사의 문제로만 보지 않는다. 에너지 수요가 줄어들면 발전회사의 수지가 악화된다. 그러면 불가피하게 전력요금을 인상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국민이 피해를 본다는 얘기다. 그가 취임 직후 ‘피드백 5개년 중기경영 계획’을 수립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5년 뒤 한국중부발전의 모습을 냉철하게 분석해 체질 개선을 꾀하자는 취지다. 조직구조를 태스크포스(TF)팀 중심으로 전환한 것도 같은 이유다. 미래 핵심과제와 주요 현안을 발 빠르게 해결하기 위해서다. 배 사장은 매주 열리는 간부회의에서 24개 TF팀장의 보고를 가장 먼저 받을 정도로 심혈을 기울인다.

TF팀은 현재 양수발전기 이용률 향상 등 193건에 달하는 관리과제를 발굴·시행하고 있다. 또 성과주의 인사시스템을 도입했다. 부장급 이상 58개 직위를 전부 공모하고, 승진추천배수도 2배에서 5배로 확대했다. 좋은 아이디어를 낸 직원에겐 특별승진도 가능하게 했다. 성과금도 대폭 늘렸다.

능력 있는 직원에겐 승진 기회와 보상을 주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이 회사는 올 상반기 1조7690억원의 매출을 기록, 전년 동기비 10% 성장했다. 지난해 988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지만 올해엔 1200억원의 흑자를 달성할 전망이다. 그럼에도 배 사장은 담담하다.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든 것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이제 막 첫 삽을 떴을 뿐이라는 얘기다. 그럼 그의 둘째, 셋째 목표는 뭘까? 다름 아닌 미래 먹을거리 찾기다. 한국중부발전의 차세대 성장동력을 발굴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배 사장은 “국내 전력수요는 향후 크게 증가하지 않을 것”이라며 “발전회사가 성장하기 위해선 해외 진출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중부발전이 녹색발전소 수출에 전력을 기울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회사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에서 폐목재·펄프·야자수 기름 부산물을 활용한 친환경 발전소 건설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녹색 에너지 시장을 개척해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배 사장의 의지가 묻어 있는 프로젝트다.

그는 “한국중부발전은 공익을 위해 경영효율 개선과 비용절감 노력은 물론 미래 성장동력을 찾는 작업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시때때로 철밥통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는 공기업의 환골탈태를 지켜봐 달라는 당부의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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