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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굴 위한 녹색 보조금?

누굴 위한 녹색 보조금?

기후변화 관련 산업은 향후 수십 년간 신규 공공지출 사업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고 하겠다. 각국 정부와 소비자는 풍력, 태양광, 기타 재생 가능 에너지 시장 육성에 해마다 1000억 달러의 녹색 보조금을 쏟아 붓는다. 그 목표들엔 그만한 가치가 있다.

예를 들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새 에너지원의 발굴을 촉진하며, 성장산업의 일자리 창출에 기여한다. 그러나 이러한 대규모의 법제화와 지출 노력은 당연히 보조금과 규제상의 특혜를 얻으려는 대대적인 쟁탈전을 낳게 마련이다.

미 의회가 ‘청정 에너지 법(Clean Energy bill·2012년까지 연간 600억 달러에 달하는 이산화탄소 배출권 관련 시장을 만든다)’을 입안할 당시 2000만 달러 이상을 뿌려대던 1150개 로비 단체를 보라. 정부는 새로운 산업 태동기에 종종 힘을 실어준다. 컴퓨터 칩과 인터넷만 해도 미국의 군사 관련 연구에서 촉발됐다.

방위산업 분야를 제외한다면 처음부터 그렇게 전적으로 규제와 보조금의 힘에 기대는 산업은 기후변화 산업 말고는 없을 듯하다. 하지만 이 분야는 엄청난 낭비를 유발할 뿐만 아니라, 규정을 악용하는 통로가 되고, 때로는 눈에 띌 만큼 기후변화 정책 목표에 역행하는 등 근본 결함을 내포한다.

가격 경쟁력이 크고, 친환경적인 브라질 사탕수수 에탄올은 미국과 유럽 농민의 집요한 로비에 막혀 구미 시장 진입이 봉쇄됐다. 심지어 유럽의 대부분 국가조차 더 저렴하고, 이산화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감소시킨다고 해도 경쟁 제품의 유입을 막고자 생물 연료에 관한 독자적인 ‘기술 표준’을 둔다.

보조금은 (바이오 에너지 생산에 들어가는) 원료를 기준으로 지급되므로 진일보한 기술 개발에는 아무런 인센티브도 따르지 않는다. 국제에너지기구(IEA)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독일에 불합리한 태양광 보조금(2013년까지 총 1155억 달러) 지급 중단을 촉구해 왔다.

이론적으로 보조금은 제조원가를 낮춰서 기후친화적 기술 시장을 조성하려고 지급된다. 그 뒤로는 단계적으로 낮춰서 없애야 한다. 하지만 독일의 태양광 계획은 보조금이 당초 목표와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오는 본보기로 찍혔다. 2001년 3%에 불과하던 재생 가능 전력의 비중이 최근 15%로 늘어났지만 재생 가능 전력에 대한 보조금(시간당 발전가능 ㎾ 용량 기준)은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났다.

이는 청정 에너지 가격이 갈수록 높아진다는 말이다. 독일 RWI 연구소의 에너지 경제학자 마뉴엘 프론델은 독일의 무분별한 보조금 정책이 세계적인 혁신을 가로 막고, 비용경쟁력을 갖춘 태양광 에너지 개발을 늦췄다고 밝혔다. 보조금에 힘입은 독일이 세계 시장의 제품을 사실상 부르는 값에 싹쓸이하면서 수 년간 태양광 모듈 가격은 고공행진을 계속했다.

2008년 스페인이 독일을 본뜬 유사 보조금 지급 계획을 폐지하기로 했을 때 비로소 글로벌 태양광 거품이 꺼져 가격도 떨어졌다. 독일 태양광 모델은 친환경 일자리 창출에도 어긋난다. 보조금은 새로운 산업을 일으켜 첨단기술 관련 일자리를 많이 만든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하지만 독일 태양광 생산업체는 점차 감소한다. 효율과 가격 경쟁력 압박을 거의 받지 않은 독일 상품은 중국 상품에 의해 시장에서 점차 밀려나는 모양새다. 녹색 기술은 더는 일반인들의 인식처럼 허약한 틈새시장이 아니다. 글로벌 풍력 터빈 시장만 해도 이미 연 500억 달러의 규모를 자랑한다.

그리고 농업 보조금 대부분이 농민이 아니라 농업 재벌기업과 거대 식품회사에 돌아가듯 이 분야의 보조금도 영세한 녹색기술 기업이 아닌 잘나가는 대형 녹색 기업의 몫이다. 뒤퐁, 지멘스, 전력 회사 그리고 투자은행이 보조금 또는 신규 탄소거래 시장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려고 안달이다.

화석연료 업계도 매년 5000억 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보조금을 받는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화석연료 보조금의 80%는 중국, 러시아, 이란 등 몇몇 개도국 소비자에게 주어질 뿐이다. 또 전체 에너지 공급량에서 화석연료가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하면 그 정도 보조금은 새 발의 피다.

누구도 환경정책에서 정부의 주도적 역할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지구촌의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가장 저렴하고 예측 가능한 방안 10가지 중 재생에너지 보조금은 순위에도 못 낀다. 이산화탄소 배출에 비용을 물리고, 감축을 의무화하는 다른 길을 찾거나, 시장 스스로가 최상의 기술을 선택하게 하는 방안 등이 훨씬 효율적이다. 각국 정부가 하루속히 제대로 된 해법을 찾기를 바란다.

[필자는 뉴스위크 베를린 특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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