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스페인 시골 마을 '와인 핫플'이 되다[와인과 인문학]
기상천외 건축물...죽어가던 도시와 와이너리를 되살리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마르케스 데 리스칼 와이너리의 혁신
[김욱성 와인 칼럼니스트] 빌바오(Bilbao)는 스페인의 북부에 위치한 항구 도시로 1940년대 스페인 내전 직후 산업 발전이 시작되면서 도시 재건이 이뤄졌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철강 산업이 경쟁력을 잃고 쇠퇴하면서 실업률이 증가하고 청년들은 하나 둘 도시를 떠나기 시작했다.
끝 모를 경기 침체가 이어지자 빌바오의 뜻있는 정치인들과 시민들이 도시 활성화를 위한 논의를 시작했고, 결론은 바로 ‘문화산업의 힘’에 도시의 운명을 걸어보자는 것이었다. 주변 반대에도 불구하고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Guggenheim Bilbao Museum)이 1997년 10월에 개관했고, 매년 수많은 방문객들이 찾아오면서 빌바오는 관광과 문화, 미식의 도시로 재탄생하게 됐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7년간 1억 달러의 공사 비용이 들었다. 하지만 방문객이 몰리면서 이 비용은 3년 만에 모두 회수됐다. 미학적인 ‘문화 코드’로 죽어가는 도시를 온전히 살려내게 된 것이다.
빌바오 구겐하임은 단순 미술관 이상의 가치를 지니며 도시 경제 전체를 변모시켰다. 구겐하임이 오픈한지 3년 만에 약 5억 달러의 경제 유발 효과와 1억 달러의 새로운 세금수입을 창출했다. 매년 130만명의 여행객을 끌어들이는 문화 관광지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한 도시가 새로운 건축물로 인해 경제적 쇠퇴기를 극복하고 재정적 성장과 발전을 이룩한다는 ‘빌바오 효과’(Bilbao Effect) 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나게 됐다.
150년 와이너리의 환골탈태
이 미술관의 건축가는 바로 프랑크 게리(Frank Gehry)였다. 그는 캐나다 출신의 미국 건축가로 해체주의 건축의 대가로 알려졌다.
특히 그는 비선형적인 디자인 기법과 구성 요소의 해체를 통해 구조물의 역동성을 돋보이게 하는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었다. 그의 설계로 완성된 빌바오 구겐하임은 3만3000장의 티타늄 패널로 감싼 구조물이다. 중앙에 하중을 받치는 기둥이 없는 곡선적인 철골구조를 하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마치 번쩍이는 비늘로 뒤덮인 거대한 물고기를 보는 느낌을 준다.
중앙의 아트리움은 50미터 높이의 공간을 이룬다. 이를 중심으로 19개의 전시실이 3개층으로 퍼져 나가는 동심원 구조를 띠고 있다.
리히텐슈타인의 설치작품을 비롯해 팝 아트, 미니멀리즘, 개념미술, 추상주의 작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어 세계인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이런 빌바오 효과를 예사롭지 않게 지켜보던 와이너리(와인 양조장)가 있었다. 이 양조장의 이름은 빌바오 남쪽으로 120Km 떨어진 스페인 유명 와인 생산지 리오하에 있는 마르케스 데 리스칼(Marqués de Riscal)이다.
지난 2008년 설립 150주년을 맞았던 이 와이너리는 프랑크 게리를 불러들여 초현대식 건물을 짓고 완벽하게 거듭날 계획을 세웠다.
150년이라는 전통의 무게에 눌려 근근이 명맥을 이어가던 이 와이너리는 올드한 이미지 쇄신과 함께 생산설비의 현대화를 통해 환골탈태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프랑크 게리에게 건축 디자인을 맡겼다.
결국 이 와이너리는 총 건축 비용 6300만유로(940억원)를 들여 부속 호텔을 포함한 최고급 시설로 거듭났다. 와이너리의 오랜 전통과 초현실주의 건축미학을 접목시킨 최대의 프로젝트가 큰 성공을 거둔 것이다.
마르케스 데 리스칼이 자리한 마을의 이름은 시각장애인을 뜻하는 ‘엘시에고’(Elciego)다. 아주 오래 전 마을이 세워졌을 때 어떤 시각장애인이 이곳에 주막을 차리고 술과 음식을 팔았다 하여 유래된 이름이다. 조용했던 이 시골 마을에 시각장애인도 눈이 번쩍 뜰 만한 일이 벌어졌으니 바로 마르케스 데 리스칼의 대대적인 레노베이션이었던 것이다.
스페인의 시골 마을에 새로운 모습을 선보인 아방가르드한 건물 외양은 세계적으로도 가장 현대적인 와이너리 건축물 중 하나로 손꼽힌다. 프랑크 게리는 플라멩코를 추는 스페인 무희의 화려한 치맛자락을 모티브로 삼아 분홍, 금, 은색 티타늄을 휘감은 지붕을 디자인했는데, 마치 와인 잔 속에서 일어나는 파도처럼 보인다.
차갑고 딱딱한 물성의 티타늄 강판을 자연스럽고 리드미컬하면서도 따뜻함을 지닌 모습으로 표현한 구조물은 경외심마저 들게 한다. 오랜 전통의 무게로 녹슬어가던 마르케스 데 리스칼이 프랑크 게리의 설계 덕분에 완벽하게 새로 태어나 이제 스페인에서도 체류형 와인 관광지로 각광받게 됐다.
와인의 품격 갖춘 호텔
또한 마르케스 데 리스칼 내에는 ‘시티 오브 와인’(City of Wine)이라는 호텔도 함께 지어졌다. 이 호텔은 스위트룸을 포함, 43개의 방을 갖췄으며 메리어트 호텔이 위탁 운영하고 있다.
‘꼬달리’(Caudalie) 스파와 수영장을 갖추고 있으며, 객실 테라스를 통해 중세 마을을 내려다볼 수 있고 언덕 위에 우뚝 솟은 고풍스러운 성 안드레 성당도 감상할 수 있다.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도 지난 2007년 자녀들을 데리고 이 호텔에 머물러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리스칼의 후작’이라는 뜻의 마르케스 데 리스칼은 스페인의 왕 펠리페 5세로부터 후작 작위를 받은 스페인 장군 ‘발타자르 아메세가’(Baltasar Amezega)에서 유래했다. 그의 후손 기예르모 아메세가(Gillermo Amezega)가 작위를 물려받아 1858년 마르케스 데 리스칼 포도원을 설립하게 됐다.
이는 리오하에서 가장 오래된 와이너리로 포도원 면적은 540헥타르(ha)인데, 루에다 지역에도 350ha의 밭을 보유하고 있다. Eh 연간 700만병의 와인을 생산하며 60% 이상을 100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최고급 와인은 1986년 첫 선을 보인 바론 드 치렐 레세르바(Barón de Chirel Reserva) 와인으로, 수령이 100년 이상인 포도나무에서 작황이 좋은 해에만 생산된다. 좀더 현대적인 스타일의 핀카 토레아(Finca Torrea) 와인은 2009년부터 생산하기 시작했는데, 향긋한 과일 풍미가 돋보이며, 수령이 오래된 뗌프라니요와 그라시아노 품종을 섞어서 만든다.
김욱성 와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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