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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 우대하면 나라가 부강해진다

상인 우대하면 나라가 부강해진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이토 히로부미 이 두 사람은 우리나라 역사에 큰 고통을 안겨준 인물이지만 정작 우리는 이들을 잘 모른다. 한국의 그 많은 책 중 이 두 사람을 연구한 책은 거의 없다. 홍하상 작가는 “이 두 인물에 대한 연구가 없다는 것은 큰 문제”라면서 “지금부터라도 이들에 대한 연구를 서둘러야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홍하상 작가.

▎홍하상 작가.

1583년 도요토미 히데요시(1537~98)는 일본을 사상 최초로 통일했다. 그 후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오사카성 축조였다. 오사카성은 10만여 명의 인부를 동원해 일사천리로 지어져 착공 3년 만인 1586년 완공되었다.

그가 오사카성을 그처럼 빨리 완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신상필벌 원칙 때문이었다.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약 5조원에 달하는 황금을 쌓아놓고 열심히 하는 자에게는 아낌없이 포상하고, 게으름을 피우는 자는 가차없이 죽였다.

그가 일을 잘한 신하에게 하루 저녁에 준 황금의 양은 요즘 화폐로 환산해 약 600억원이었다. 엄청난 인센티브를 준 것이다. 휘하 일꾼들은 기왕에 일하는 거, 열심히 하면 막대한 포상을 받는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열심히 일했다.



도요토미는 상인의 힘을 아는 리더완공된 오사카성은 일본에서 가장 컸다. 그 이유는 자기 권력의 절대성을 만천하에 과시하기 위해서였다. 이어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의 260여 제후를 무력화시키고 일본 경제가 자기 손아귀로 들어올 수 있도록 새로운 경제정책을 폈다. 도요토미는 다음과 같은 포고령을 내린다.

‘각 지방 제후들은 현지에서 생산되는 쌀과 채소, 생선 중에서 당장 사용할 분량을 제외하고는 모두 오사카로 올려 보내라.’쌀은 경제력의 척도다. 지방 제후 가운데 쌀 생산량이 많은 성주가 가장 강성한 군주인 것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자신에게 반감을 갖고 있던, 즉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 일본 제후들의 경제력을 박탈하는 것만이 그들을 무력화시키고 더 나아가 그들로부터 충성을 받을 수 있는 첩경이라고 생각했다.

1592년 일본의 쌀 생산량을 보면 전국적에서 2720만 석이 생산됐는데 그중 도요토미 영지에서 65만 석, 도쿠가와 영지에서 54만 석이 생산됐다. 통일됐다고는 하지만 도쿠가와가 도요토미에게 반대하는 영주와 손잡을 경우 적어도 경제력에서는 도요토미를 능가할 수 있었다.

도요토미가 전국의 쌀을 오사카로 집결시킨 것은 이런 점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쌀만 가지고 안심할 수 없었던 그는 부식인 채소, 그리고 유일한 단백질 공급원인 생선까지 당장 필요한 양을 제외하고는 오사카로 올려 보내라는 포고령을 낸다. 한마디로 지방 제후의 경제력을 완전히 빼앗으려는 계략이었다.

이제 막 일본을 통일한 서슬 퍼런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이었으므로 지방 제후들은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두 번째로 취한 정책은 일본의 유능한 상인들을 오사카성 아래로 집단 이주시키는 일이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본래 바늘장사 출신인 데다 전쟁을 치르면서 상인의 힘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상인이 화를 내면 천하의 제후도 놀란다’는 말처럼 도요토미는 자신이 일본을 통치하기 위해 상인의 상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천하의 상인을 오사카로 끌어모은다. 당시 일본에는 천하를 좌지우지하는 큰 상인이 많았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그중에서 교토의 대표적 상인인 후시미(伏見) 상인과 오미(近江) 상인, 오사카의 히라노(平野) 상인과 사카이(堺) 상인을 오사카성 아래에서 살도록 집단이주시켰다. 후시미 상인은 본래 천황가나 쇼군가에 비단옷을 납품하던 상인이었고, 오미 상인은 칠기 밥그릇을 파는 것으로 유명했으며, 히라노 상인은 약종상, 사카이 상인은 총을 만들어 팔았다.

이들은 일본 각지에서 장사하면서 수백 년간 상업 노하우를 꿰뚫고 있는 일본의 대표적 상인들이었다. 상인이 모이면 그곳이 상업, 즉 경제의 중심이 되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경제의 중심이 되면 힘이 생기고, 권력도 거기서 나온다는 것을 도요토미는 알고 있었다. 이때부터 일본의 최고 계급인 사무라이가 하층민인 상인에게 고용되는 사례가 생기기 시작했다. 돈의 힘이 작용한 것이다.

일본은 사실상 그때부터 사농공상의 위계질서가 깨지면서 근대화 바람을 불렀다. 우리는 구한말까지 양반계급이 사회의 변화를 막은 측면이 있는데 이와 대조되는 장면이다.

▎강의를 경청하고 있는 CEO들.

▎강의를 경청하고 있는 CEO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이 상인들을 오늘날 오사카의 중앙구 본정 통일대로 집단이주시키는데, 이 지역을 가리켜 센바(船場)라고 한다. 센바란 선착장을 말한다. 오사카는 108개의 다리가 있는 운하의 도시다.

천하의 모든 물산이 바다나 강을 통해 오사카로 올라오면 그것들은 다시 운하를 통해 센바에 모였다. 바로 그 센바 지역에 천하의 물산이 모였고 천하의 상인들은 그 물건들을 오사카성이나 교토, 그리고 전국으로 보냈던 것이다.

도요토미에 의해 1580~90년대에 오사카에 정착한 이들은 그 후 오사카를 물산의 중심, 상거래의 중심으로 만드는 데 앞장섰다. 그리고 이들이 바로 오늘날 상인의 도시 오사카를 만들어 나갔던 것이다. 센바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오사카의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 시장이다.



군인계급에 일자리 주는 게 급선무오사카가 일본의 경제 중심지로 탄생하는 데 결정적 공헌을 한 인물이 있다. 바로 요도야 조안이라는 상인인데, 당시 오사카의 가장 큰 문제는 홍수였다. 쌀이 많이 모이는 오사카에 홍수는 그야말로 최대의 적이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가장 큰 고민도 바로 이것이었다.

이때 요도야 조안이 이 문제를 해결해 준다. 그는 오사카 주민들에게 “돌 한 가마니를 가져오면 쌀 한 가마니와 교환해 준다”고 말했다. 처음 반신반의하던 주민들은 그 말이 사실임을 알고 밤낮으로 돌을 주워담아 가져왔다. 1년으로도 모자랄 것이라던 제방 쌓기는 불과 1주일 만에 끝났다.

쌀은 많이 들었지만 제방을 미처 쌓지 못해 여름에 홍수를 만나면 홍수로 버리는 쌀이 더 많기 때문에 결코 손해 보는 계획이 아니었다. 요도야 조안의 지혜에 도요토미도 탄복했다고 한다. 센바가 일본 경제를 좌지우지하면서 센바상도라는 것이 탄생한다. 센바상도란 손님에게 이기는 것이 아니라 손님에게 지는 정신이었다.

그 정신의 핵심은 ‘돈을 남기는 것은 하(下), 가게를 남기는 것은 중(中), 사람을 남기는 것은 상(上)’이었다. 센바상도는 돈보다 가게, 가게보다 사람, 즉 고객을 가장 중시하는 정신이다. 자신을 믿어주는 고객이 있는 한 사업은 영원하기 때문에 그들은 눈앞의 이익보다, 가게를 남기는 것보다 사람을 남기고 싶어 했다.

CEO로서 도요토미의 안목은 임진왜란 후 조선 도공들을 대규모로 데려간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당시 유럽에는 중국의 경덕진 도자기가 부와 권위의 상징이었다. 1800년대까지 무려 8000만 개가 유럽으로 넘어갔다. 도자기가 넘어가면서 중국으로 금화나 향신료 등 다양한 문물이 돌아왔다. 부도 축적됐다.

도요토미가 하필 조선 도공을 데려간 것은 바로 이 시장을 봤기 때문이다. 중국 경덕진 도자기와 경쟁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조선 도공밖에 없었다. 이후 일본의 자기는 유럽에서 경덕진 도자기를 밀어내고 최고의 사치품으로 자리 잡았다. 8000만 개 도자기 시장이 일본의 수중에 들어왔고, 일본은 이후 막대한 부를 쌓으며 국력을 축적해 나갔다.

도자기 산업은 연관효과도 컸다. 다기(茶器)세트가 나오면서 차산업이 발전했고, 다기와 다탁 등 연관산업도 일어났다. 다실에 놓일 화병이 만들어지면서 화도(花道: 꽃꽂이)가 발전해 일본의 대표적 문화로 자리 잡았다. 또 다실에 걸어 놓을 그림 등이 발전하면서 화가도 늘어났다. 이처럼 도요토미의 안목은 지금의 여느 그룹 CEO보다 뛰어났다. 미래를 보고 지금 무얼 해야 할지를 고민한 사람이었다.



교토는 야채반찬과 채소요리 유명도요토미의 CEO 관점은 임진왜란에서도 드러난다. 전국시대를 지내고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가 볼 때 가장 불안한 계급은 바로 장수들이었다. 전쟁 때 급속히 불어난 장수들이 통일 후 번(番)이 몰락하고 축소되면서 자신들을 먹여주고 재워주는 주인들이 없어진 경우가 많았다. 이른바 무직 장수들이었다.

무력은 가지고 있으나 일정한 벌이가 없는 군인이 많다는 것은 통치자에게 결정적인 위협이다. 도요토미가 임진왜란을 기획한 것은 이런 정황과 무관하지 않다. 일종의 취직전쟁인 셈이다. 이로써 군인들에게 일자리도 주고, 해외 개척도 가능했다. 여기서 또 주목할 점은 도요토미의 조직운영방식이다.

임진왜란 때 군대편성을 보면 선봉대라고 할 수 있는 1~3번대까지는 모두 전국시대에 자신에게 반항했던 장수들이다. 이들을 선봉대에 배치함으로써 죽으면 우환을 없애는 것이고, 승리하면 자기의 정복전쟁이 성공하는 셈이 되도록 만들어 놓았다. 절묘한 계략이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오사카를 천하의 중심으로 만들고 그 자신도 막대한 돈을 벌었다.

그러나 일본을 통일한 지 불과 15년 만인 1598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위암으로 사망한다. 그의 사인이 위암이라고 밝혀진 것은 근래의 일이다. 일본의 의사들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죽음에 관한 기록을 분석한 결과 그의 사망 원인이 위암으로 판명된 것이다. 말하자면 임진왜란 패배로 인해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 위궤양이 위암으로까지 발전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한 후 천하를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경제정책에 관한 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것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오사카에 3대 대규모 시장을 연 것이다. 바로 쌀, 채소, 생선시장이었다. 나카노시마에 미시장(米市場)이 열린 것은 그 때문이다. 나카노시마는 운하로 연결되어 수운이 편리했다.

전국에서 모은 수백만 석의 쌀을 부리기에 좋았던 것이다. 당시 나카노시마에 집하된 쌀은 전국 생산량의 약 7%인 150만 석 정도였는데 이 쌀들은 지방의 번(藩)에서 수집된 연공미, 즉 세금으로 거둔 쌀이 대부분이었다. 채소를 취급하는 청과물시장이 교바시(京橋) 남쪽에 공식적으로 설치된 것은 1651년이었으나 그곳에는 이미 1496년께부터 청과물시장이 있었다.

교토는 예로부터 ‘오반자이’ 등 야채반찬과 채소요리가 유명한데, 오사카로부터 입하된 야채는 각종 절임반찬으로 만들어져 천황가와 귀족 및 사무라이들에게 공급되었다. 이 채소시장은 300년간 유지되다가 1931년 들어 오사카 중앙도매시장으로 개칭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어시장은 청과시장이 있던 교바시 북쪽 입구에 있었다. 여기서는 살아 있는 생선, 절인 생선, 말린 생선과 비료로 쓰던 말린 정어리 등을 취급했다. 이곳의 생선은 산지별로 서국물(西國物), 동국물(東國物), 북국물(北國物)로 분류되었다. 서국물은 오사카 서쪽 히로시마, 규슈 등지로부터 온 것이고, 동국물은 도쿄 등 관동지방, 북국물은 혼슈 북쪽과 북해도에서 온 것들이었다.

이것과는 별도로 북해도 초입에 있는 마쓰마에항으로부터 마쓰마에몬이라는 물품이 별도로 취급되었는데 그것은 비료로 쓰기 위해 현지에서 대량생산된 청어가루였다. 이런 생선비료들은 일본에서 화학비료가 생산되기 전까지 중요한 비료로 쓰였고, 당시에는 모두 농촌지역으로 팔려 나갔다.

이처럼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천하를 지배하는 수단으로 쌀, 생선, 채소시장을 오사카에 열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확고히 구축하는 정책을 쓴 경영전문가였다. 그는 상인을 우대하면 나라가 부강해진다는 것을 안 지도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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