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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통에서 발견한 ‘꿈의 항암제’ 키트루다

[꿈의 항암제, 키트루다]①
지난해 매출 35조…기적의 항암제로 주목
美 제약사와 경쟁 덕 새로운 가치 얻게 돼

지난해 세계 의약품 매출 1위에 오른 ‘키트루다(Keytruda)’는 미국의 제약사 머크(MSD)의 제품이다. 사진은 MSD 연구원이 배지를 들고 있는 모습. [사진 AP/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 선모은 기자] 올해 6월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미국임상종양학회 연례학술대회(ASCO)는 항암제의 최신 개발 동향을 살펴볼 수 있는 현장이다. 화이자와 모더나, 다이이찌산쿄, 아스트라제네카 등 다국적 제약사는 이번 학술대회에서 자사의 혁신 신약의 연구 결과를 속속 공개했다. 이들 기업보다 더 큰 이목을 끈 기업이 미국 머크(MSD)다. 여러 기업과 병용 요법을 확대한 덕에, 사실상 대다수의 연구 발표에서 이 회사의 핵심 약물인 ‘키트루다(Keytruda)’가 언급되면서다. 병용 요법은 여러 약물을 함께 써 치료 효능을 높이는 것이다.

기적의 항암제 매출 ‘쑥쑥’

키트루다는 면역항암제의 역사를 새로 썼다는 평가를 받는 약물이다. 다양한 암종에 치료제로 쓸 수 있어 ‘기적의 항암제’로도 불린다. 면역항암제는 화학항암제, 표적항암제에 이은 새로운 방식의 항암제다. 기존 항암제는 암세포를 직접 공격하지만, 키트루다와 같은 면역항암제는 우리 몸의 면역체계를 활성화해 암세포를 없앤다. 키트루다는 면역항암제 중에서도 면역관문억제제에 해당한다. 암세포는 생존하기 위해 면역체계를 회피하는데, 면역관문억제제는 이를 차단해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파괴하도록 한다.

키트루다가 이목을 끈 또 다른 이유는 이 약물의 성장세가 거세서다. 키트루다는 지난해를 기준으로 여러 의약품 중 세계에서 가장 높은 매출을 올렸다. MSD에 따르면 키트루다의 매출은 지난해 250억 달러(약 35조원)를 기록했다. MSD의 전체 매출에서도 키트루다의 매출이 42% 정도를 차지한다. 미국 애브비의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휴미라(Humira)’는 물론, 화이자와 바이오엔테크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코미나티(Comirnaty)’도 제쳤다. 이들 기업에 따르면 코미나티와 휴미라의 매출은 지난해를 기준으로 각각 153억 달러(약 21조원), 144억 달러(약 20조원)다.

키트루다의 매출은 향후 더 늘어날 전망이다. MSD가 다양한 암종에 키트루다를 치료제로 쓸 수 있도록 적응증을 확대하고 있어서다. 폐암과 두경부암, 요로상피암, 식도암, 자궁내막암, 위암, 소장암, 난소암, 췌장암, 담도암 등 키트루다가 치료 효과를 보이는 암종도 상당하다. MSD가 허가받은 키트루다의 적응증만 40개 이상이기도 하다. 암 환자가 키트루다를 더 빠르게 사용하도록 허가가 확대된 점도 MSD가 키트루다의 매출을 키우는 데 보탬이 됐다. 키트루다의 올해 매출도 미국의 규제기관이 초기 단계의 삼중음성유방암, 신장세포암 등을 앓는 환자가 키트루다를 사용하도록 한 덕을 봤다.

키트루다의 아성을 노리는 기업도 많다. 키트루다와 유사한 치료 효과를 내는 바이오의약품을 개발 중인 기업들 이야기다. 미국의 암젠과 스위스의 산도스 등 다국적 제약사는 키트루다의 특허 만료 시기에 맞춰 바이오시밀러를 개발하고 있다. 삼성바이오에피스와 셀트리온 등 국내 기업도 키트루다 바이오시밀러 개발에 뛰어들어 경쟁이 치열하다. 통상 바이오시밀러로 인해 기존의 의약품을 공급하던 기업은 매출 타격을 입는다. MSD도 키트루다의 바이오시밀러가 최대한 늦게 시장에 나오도록 키트루다의 용도, 제형, 공정 등과 관련한 특허를 등록했다. 핵심 특허가 만료되기 전, 다른 특허를 연달아 등록해 신약의 독점 기간을 늘리는, 이른바 ‘에버그리닝’ 전략이다.

키트루다 가치 몰랐던 MSD

이렇게 ‘잘 나가는’ 키트루다가 사실 쓰레기통에 담겨있었다는 점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MSD는 당초 약물 개발 전략을 수립하며, 키트루다를 다른 기업에 팔아버리려 했다. 기적의 항암제로 불릴 약물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 셈이다. MSD 자체도 키트루다를 통해 면역항암제 시장을 이끌기 전에는 항암제 분야에서 역량 있는 기업이 아니었다. 키트루다도 MSD의 물질이 아니었다. 키트루다는 네덜란드의 제약사 오가논이 발굴했는데, 이 회사가 여러 차례의 인수합병(M&A)을 통해 MSD의 품에 안긴 탓에 키트루다의 연구개발(R&D) 권리도 MSD로 넘어오게 됐다.

키트루다를 쓰레기통에서 건져낸 것은 경쟁사인 미국의 제약사 브리스톨-마이어스 스퀴브(BMS)다. 10여 년 전에도 면역항암제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던 BMS는 당시 키트루다와 같은 PD-1 항체를 면역관문억제제로 개발하고 있었다. 이 약물이 키트루다의 경쟁 약물로 꼽혔던 ‘옵디보(Opdivo)’다. MSD는 BMS가 개발하던 PD-1 항체가 유망하다는 점이 알려지자, 기존에 확보한 물질을 검토해 키트루다를 찾아냈다. BMS가 이미 면역항암제 분야에서 상당한 연구를 진행한 터라, MSD는 4년가량의 세월을 단축할 R&D 전략이 필요했다.

MSD는 BMS를 따라잡기 위해 대규모의 초기 임상을 계획했다. 수십명 정도가 대상인 임상 1상에 암 환자 1000여 명을 투입하면서다. 임상을 잘 설계해 약물 개발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도 줄였다. MSD가 키트루다를 뒤늦게 발견한 만큼, 임상 개발에 총력을 다했다. MSD의 이런 결단으로 진행된 임상이 항암 신약 개발 임상 중에서도 규모가 가장 크다고 알려진 ‘KEYNOTE-001’이다. MSD는 이후 계획된 임상을 마쳤고, 3년 정도 지난 2014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키트루다의 신약 허가를 신청했다. 이를 통해 BMS의 옵디보를 제치고, 먼저 규제기관의 허가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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