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얼리티 쇼보다 더 리얼한 ‘미드’
미국 TV 드라마 ‘24’는 테러 위협에 맞서는 대테러 요원들의 활약상을 그린 작품이다. 실시간으로 전개되는(시즌마다 하루 24시간을 24개의 에피소드로 나눠 각각 1시간씩 보여준다) 이 드라마의 여덟 번째 시즌이 얼마 전 미국에서 막을 올렸다. 첫 편에서 전직 CTU(가상의 대테러 기관) 요원인 잭 바우어는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이 일을 그만두려고 한다.
하지만 그가 뉴욕을 떠나기 위해 비행기를 막 타려는 순간 테러 음모를 알게 된다. 수많은 사람의 목숨이 위기에 처했고 1분1초가 긴박하게 돌아간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이야기인가? 주인공이 이 일에서 손을 떼려고 하는 순간 긴급한 사건이 터지면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는 전개 방식은 드라마 ‘24’의 단골 메뉴다.
테러 음모로 미국인들의 생활이 위험에 처하고, 바우어는 그 위협을 무력화하는 임무를 맡아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테러 음모에 맞서 싸운다. 시즌6이 방영됐을 당시 TV 평론가들은 시즌마다 똑같은 설정과 테러 위험을 알리는 과장된 경고가 더는 설득력이 없는 듯하다고 평했다.
하지만 시즌8은 그 어느 때보다 더 흥미진진하고 생동감 넘치며 공감이 간다. 이 모두가 지난해 성탄절의 테러 기도 사건 덕분이다. 우마르 파루크 압둘무탈라브(23)라는 나이지리아 청년이 암스테르담에서 디트로이트로 향하는 미국 여객기를 대상으로 폭탄 테러를 기도했다고 알려졌다.
만약 이런 일이 없었다면 ‘24’의 시즌8을 보는 시청자들은 이전 시즌과 별다를 바 없는 이야기 전개를 유감스럽게 여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시청자들이 보고 싶어하는 내용은 이전 시즌과 비슷한 바로 그런 이야기다. 폭탄이라면 모르는 게 없는 바우어 같은 요원이 직감과 온갖 수단을 이용해 테러 음모를 좌절시키는 이야기 말이다.
게다가 시즌2 내내 시청자들은 한 이란인 캐릭터가 테러리스트일 거라고 짐작했는데 놀랍게도 범인은 그의 약혼녀인 백인 여자였다. 테러범 하면 곧 중동 사람을 떠올리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는 설정이었다. 그리고 압둘무탈라브는 실제로 그 고정관념을 깨주었다.
‘24’의 시즌8은 9·11 사건이 일어난 지 두 달 만에 시작한 첫 시즌 이후 처음으로 테러의 위협이 현실로 느껴지는 상황에서 방영되는 이점을 누린다. 시사적인 문제를 소재로 한 드라마들은 전반적으로 성공할 확률이 높다. ‘로 앤 오더(Law &Order)’ 같은 범죄 수사물은 신문의 사건 기사에서 아이디어를 얻는다.
하지만 ‘브레이킹 배드(Breaking Bad)’는 정반대의 경우다. 이 드라마에서 브라이언 크랜스턴은 고등학교 화학 교사 월터 화이트로 나오는데 그는 자신의 과학 지식을 이용해 환각제의 일종인 크리스털 메스(메탐페타민)를 제조한다. 폐암에 걸린 자신이 죽을 경우 남겨진 가족이 자신의 병치레로 엄청난 빚더미에 올라앉지 않고 여유 있게 살아갈 만큼 돈을 벌고 싶기 때문이다.
아직 드라마 촬영이 끝나지 않았을 때 캘리포니아주 베이커스필드의 한 화학 교사가 학교에서 크리스털 메스를 제조한 혐의로 체포됐다. 요즘은 신문의 사건 기사가 드라마의 소재가 될 뿐 아니라 드라마가 실제 사건에 아이디어를 제공하기도 한다. 개개인이 시사 문제 중 어떤 분야에 관심을 갖든 그 분야와 관련된 소재의 드라마가 하나쯤은 있게 마련이다.
‘레버리지(Leverage)’에서 티머시 허튼은 보험회사 수사요원 출신의 네이선 포드를 연기한다. 포드는 병에 걸린 아들에게 실험 단계의 치료 가능성 높은 약을 써보려 하지만 몸바쳐 일하던 회사에서 보험료 지급을 거절당한다. 결국 그의 아들은 죽고 포드는 복수를 꿈꾸게 된다.
이렇게 해서 그는 억울한 일을 당한 보통 사람들 대신 보복을 해주는 현대판 의적 집단을 이끌게 된다. ‘데미지(Damages)’의 패티 휴스(클렌 클로스)는 공동소송 전문 변호사다. 그녀는 이번 달 시작되는 시즌3에서 버나드 메이도프(대규모 금융사기 사건을 저지른 전 나스닥 증권거래소 위원장) 식의 폰지 사기(다단계 금융사기 기법) 사건을 다룬다.
이번 시즌에는 ‘보통 사람들은 이제 당할 만큼 당했다(Main Street has taken enough bull)’는 부제가 붙었다. 일상적인 소재와는 거리가 먼 드라마 ‘V’조차 시사적인 소재를 들고 나왔다. 에일리언의 지구 침략을 소재로 한 드라마 ‘V’의 리메이크판에서는 ‘희망’과 ‘변화’의 필요성을 내세우는 매력적인 에일리언들이 등장한다(하지만 그 이면에는 사악한 동기가 숨어 있다).
이 에일리언들은 버락 오바마 정부와 매우 유사하게 묘사돼 보수파 토크쇼 진행자 션 해너티가 “이 드라마는 내가 지지하는 유일한 TV 프로”라고 말했을 정도다. 코미디 센트럴의 ‘데일리 쇼’는 ‘가짜 뉴스(fake news)’로 매일 일어나는 정치·사회적 사건들을 풍자한다. 여러 연구에서 미국 젊은이들이 일반 뉴스 프로그램보다 이 프로를 통해 뉴스를 접하는 경우가 많다는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데일리 쇼’의 진행자 존 스튜어트는 늘 “이 프로의 기능은 오락이지 뉴스 보도가 아니다”고 주장해 왔다. 요즘 미국 TV에서는 리얼리티 쇼가 아닌 원고를 바탕으로 한 프로그램들의 시사적인 경향이 갈수록 짙어지는 추세다. 그러다 보니 이런 프로의 제작자들은 스튜어트가 직면했던 고민과 똑같은 문제에 맞닥뜨리게 된다.
이들 프로의 우선적인 목표는 오락이지만 사람들은 작가의 원고 내용을 마치 정치 전문가들의 평론처럼 꼬치꼬치 따지고 든다. 그들의 이야기가 국민의 담론을 반영할 뿐 아니라 사실상 그것을 형성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백악관을 배경으로 한 ‘웨스트 윙(The West Wing)’이 한창 인기를 끌던 시절 바로 이런 문제가 발생했다.
논쟁을 불러일으킬 만한 문제들을 제기했고, 실제 정치인들이 극 중의 인물들과 비교됐기 때문이다. 특히 빌 클린턴 당시 미 대통령은 매우 도덕적인 극 중의 대통령 바틀렛(마틴 신)과 자주 비교됐다. ‘24’는 테러 위험을 경고하는 주제를 보는 대중의 시각에 따라 인기의 부침이 심했다. 2007년 방영된 시즌6의 인기는 형편없었다.
드라마의 경고 수준이 시청자의 공감을 전혀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로스앤젤레스 한 복판에서 핵 폭탄이 터지고, 바우어는 다른 네 개의 폭탄을 폭발 전에 찾아낸다. 이런 설정은 드라마의 맥락에서는 설득력이 있을지 모르지만 당시 미국 사회의 분위기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아무리 테러를 막는다지만 주인공의 불법적 행동이 도를 넘으면서 시청자들을 그의 편에 묶어두려는 계략으로밖에 안 보였다.
시즌7은 바우어가 상원 소위원회의 청문회에 출두해 자신의 행동을 추궁받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바우어의 행동이 지나쳤다는 사실을 ‘24’ 제작진이 암묵적으로 시인한 대목이다. 한편 ‘V’는 4편의 에피소드만 방영한 뒤 긴 휴지기에 들어갔다. 방송사 간부들이 이 드라마의 정치 풍자에 난색을 표했다는 후문이다.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진실은 허구보다 더 기이하다(Truth is stranger than fiction)”고 말했다. 드라마 속 이야기가 진짜 음모처럼 느껴질 정도라면 허구도 진실만큼 기이해진 모양이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브랜드 미디어
브랜드 미디어
고영, 美신경외과학회서 뇌 수술용 의료로봇 ‘지니언트 크래니얼’ 첫 공개
바이오 성공 투자, 1%를 위한 길라잡이이데일리
팜이데일리
이데일리
서유리 "혹시 누가 해코지할까 봐…" 무슨 사연?
대한민국 스포츠·연예의 살아있는 역사 일간스포츠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트럼프 또 물러섰다…車관세 완화 어떻게 달라지나[Q&A]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마켓인]SK실트론, PEF들 눈치싸움…국적·업황 리스크에 '셈법 복잡'
성공 투자의 동반자마켓인
마켓인
마켓인
코스닥 상승 이끈 비만 테마주의 힘…천당·지옥 오간 오름[바이오맥짚기]
바이오 성공 투자, 1%를 위한 길라잡이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