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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통사·단말기업체 ‘개방’ 모드로 급선회

이통사·단말기업체 ‘개방’ 모드로 급선회

#1. 삼성전자의 스마트폰용 운영체계(OS) ‘바다’ 개발에 관여한 한 실무자는 최근 미국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하 앱) 개발자를 어렵게 만났다.

이 스타급 개발자는 LG, SKT 등 국내 대형 업체들과 실무협상을 벌이던 중 삼성 측으로부터 갑작스러운 SOS를 받았다. “바다 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털어놓는 삼성전자 실무자의 전화였다.

발단은 최근 열린 삼성전자 사장단 회의였다. 최지성 삼성전자 사장은 특정 기업의 이름까지 거론하면서 “(스마트폰과) 관련 없는 A기업도 이렇게 준비를 잘했는데, 우리는 지금까지 (아이폰에) 무슨 대책을 세웠느냐”며 사장단을 강하게 문책했다.

이튿날 삼성 직원 몇 명이 A기업을 찾았다. ‘바다’ 개발 실무자가 급하게 국내에 와 있던 미국의 스타급 개발자를 찾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였다.

#2. “국내 기업 총수들도 애플 앱스토어가 오히려 사업 영역을 늘릴 수 있는, 신사업 기회라고 생각하는 것도 좋지 않겠나? 스마트폰의 OS를 개발하려는 것보다는 이를 업무개선에 이용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애플 앱스토어와 아이폰을 이용해 소프트웨어 제작에 나선다면 제2의 오라클, 제2의 SAP가 나올 수도 있다.”

지난 1월 19일 기자와 만난 애플의 한 중간간부는 사견을 전제로 이렇게 말했다. 강한 자신감의 표현이다. 한마디로 애플의 기술력을 따라잡는 것은 이미 늦었으니 틀 안으로 들어오라는 얘기다. 국내 휴대전화 제조업체, 이동통신사 등은 아이폰이 국내에 등장한 지 불과 2~3개월 만에 크게 흔들리는 모습이다.

국내 아이폰 유저는 1월 9일 현재 약 24만 명. 이 숫자가 무서운 것은 아니다. 다만 그간 하이엔드급 글로벌 시장에서 겪었던 세계 모바일 업계의 패러다임 변화가 국내에서도 곧 있으리라는 판단에서다. 스티브 잡스 애플 CEO가 태블릿PC 아이패드를 공개하며 언급한 삼성전자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는 1월 29일 2009년 4분기 세계 휴대전화 시장점유율 22%로 노키아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아이폰 출시 직후부터 분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삼성 앱스’라는 앱 장터를 세계시장으로 확대하고, 공개형 OS인 구글의 안드로이드를 지지하고 나섰다.

한 IT업체 CEO는 “스마트폰 시장이 화려하기 때문에 마치 전체인 듯 보이지만 아직은 가격과 견고함을 우선시하는 신흥시장의 수요가 훨씬 많다”며 “따라갈 생각을 하지 말고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나가려는 전략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수요가 많지도 않은데 굳이 새로운 앱스토어를 만들기보다는 개방형인 구글의 안드로이드 폰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그 콘텐트를 이용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삼성전자 측은 “삼성 앱스는 국내 개발자들이 글로벌로 진출하는 채널을 제공하는 것”이라며 “국내 개발자들에게는 상당히 매력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단순한 애플 배끼기가 아니라는 것. 이동통신 3사는 더 빠르게 변하고 있다. SK텔레콤은 무선인터넷을 개방하기로 결정했다.

스마트폰 이외의 일반 휴대전화에도 무선랜을 사용할 수 있는 와이파이(WiFi)를 탑재할 수 있게 하고, 음원에 걸었던 디지털저작권관리(DRM)를 해제하기로 했다. 휴대전화용 앱을 개발자들이 쉽게 올리고 사용자들이 받을 수 있도록 T스토어도 마련해 놨다. 아이폰 독점공급업체인 KT도 스마트폰 앱 시장을 열었지만, 이보다는 애플의 음원, 영상 판매처인 아이튠즈를 벤치마킹하고 있다.

KT는 IPTV의 콘텐트 거래를 활성화한다는 계획이다. 미국 소재 구글 앱 개발업체인 워크스마트랩의 정세주 사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한국에서 휴대전화로 음악을 듣는 사람을 못 봤는데, 이통사가 음원에 DRM을 걸어놔 호환이 안 되기 때문이었다”며 “일본의 NTT도코모, 미국의 버라이즌과 달리 한국 이통사들은 (협력사를) 통제하려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찬진 드림위즈 사장은 “단말기 제조업체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에 밀린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틈새시장을 공략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또 “이통사들은 그간 국내에서 누렸던 과점이라는 지위를 잃은 것에 불과하다”며 “동일선상에서 글로벌 업체들과 경쟁해 실력을 키우겠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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