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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방어와 칠레 와인 우리 사랑해도 되겠지?

겨울 방어와 칠레 와인 우리 사랑해도 되겠지?

2010년 새해 ‘허영만의 와인식객’이 찾은 곳은 경기도 판교에 있는 허 화백 자택이다. 허 화백이 와인에 맞춰 내놓은 음식은 가락시장에서 직접 사온 겨울 별미 꼬막과 방어였다.
▎왼쪽부터 허영만 화백, 최성순 와인21닷컴 사장, 김수한 LG상사 트윈와인 사장.

▎왼쪽부터 허영만 화백, 최성순 와인21닷컴 사장, 김수한 LG상사 트윈와인 사장.

새해 연휴에 내린 눈이 아직도 수북한 경기도 판교의 한 빌라촌. 초인종을 누르자 허 화백이 직접 반갑게 맞았다. 우리 나이로 이제 65세가 됐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젊고 활기찬 모습이다. 허 화백은 “요즘은 먼저 연락해 찾아주는 후배들이 고맙다는 친구가 주위에 많아졌다. 그나마 난 여러 사람이 끊임없이 찾아주니 다행”이라며 입을 열었다.

허 화백은 “하지만 이런 자리라도 우리 나이엔 너무 말을 많이 하면 안 된다. ‘입은 다물고 지갑은 자주 열어야’ 다음에 또 찾아주기 때문”이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허 화백의 자택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인테리어를 갖춘 빌라였다. 클래식 매니어답게 음반 3000여 장을 모아둔 방이 눈길을 끌었다.

거실 한쪽 식탁 위엔 오후 내내 깠을법한 꼬막이 수북이 올라와 있었다. 허 화백은 “만화를 그린 것도 아니고 오후 내내 꼬막을 까다 손이 다 부르텄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허 화백의 꼬막 먹는 방법은 간단하다. 우선 껍데기가 단단하고 광택 있는 꼬막을 고른 다음, 온몸에 묻은 진흙을 잘 씻어 먹을 때 뻘 냄새가 나지 않게 한다.

그 후 물과 소금을 3대1로 섞은 바닷물과 비슷한 농도의 소금물에 담가 해감한다. 꼬막 삶을 물엔 소금과 청주를 적당량 넣고 팔팔 끓인다. 물이 끓어오르면 얼른 불을 줄이고 꼬막을 넣는다. 껍데기가 쩍 벌어질 때까지 두면 꼬막 살이 질겨지고 맛난 짠 국물이 다 빠져버려 심심해진다.

살짝 익혀 찬물에 식힌다. 꼬막 산지로 가장 유명한 곳은 전라도 벌교. 겨울철 벌교 갯벌에 가면 눈을 돌리기가 무섭게, 발을 떼기가 겁나게 제철 맞은 꼬막을 흔히 볼 수 있다. 벌교의 갯벌은 물이 깊고 뻘이 차져 꼬막이 특산품으로 유명세를 탈 정도로 쫄깃하면서 진득한 맛이 일품이다.

해변에서 수심 10m에 이르는 진흙 바닥에서 자라는 꼬막은 임금님 수라상 8진미 가운데 1품으로 진상되었을 정도다. 꼬막과 함께 등장한 것은 방어였다. 방어는 쫀득쫀득한 식감과 신선함으로 이날 참석자들에게 가장 큰 인기를 끌었다. 최성순 와인21닷컴 사장은 “평소 붉은살 생선을 즐기지 않는데 겨울 방어는 예외”라고 말했다.

허 화백은 “가락시장에 가서 직접 고른 것”이라며 “겨울에 방어만 한 별미가 없다”고 소개했다. 방어회와 함께 등장한 소스가 눈길을 끌었다. 흔히 볼 수 있는 ‘간장과 겨자’ 조합이 아니라 ‘간장+파+생강’으로 만든 소스였다. 생강의 감칠맛이 방어의 육질에 스며 식욕을 돋웠다.

허 화백은 “회를 먹을 때는 항상 겨자 대신 생강과 파를 넣는다”고 설명했다. 해마다 12월이면 제주도 서남단 모슬포항에선 방어축제가 열린다. 구로시오 난류를 따라 올라온 방어들이 한 달 동안 엄청나게 잡히기 때문이다. 사실 방어는 1∼2월이 돼야 한결 기름지고 맛이 좋다. 하지만 그 무렵엔 방어 어획량이 급격히 줄어든다.

방어는 동해와 남해안 근해에서도 많이 잡힌다. 그러나 마라도 근역에서 잡히는 방어를 높게 친다. 시속 6㎞의 빠른 해류에 견디느라 운동량이 많아져 육질이 단단해서다. 살이 붉은 방어는 흰살 생선을 즐기는 한국인보다 일본인들에게 인기가 높다. 방어는 지방이 풍부해 진한 감칠맛을 내는데, 두껍게 썰어야 씹는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꼬막과 방어에 맞춰 공수된 와인은 부르고뉴 화이트 와인 ‘퓔리니 몽라셰’와 칠레의 레드 와인 ‘비냐 마이포 리미티드 에디션 쉬라’. 최성순 사장은 “회나 삶은 꼬막처럼 재료를 중시하는 음식엔 부르고뉴 화이트 와인만큼 어울리는 게 없는 것 같다”고 평했다. 하지만 예상을 깨고 두툼한 방어회와 레드 와인의 마리아주에 대한 평가도 높았다. 허 화백은 “회랑 같이 먹으니 비냐 마이포가 너무 맛있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회와 꼬막과 함께 무청·김치·멸치볶음 등 평소 허 화백이 소탈하게 먹는 반찬들이 밥상에 올라왔다. 맛깔스러운 음식의 비결을 묻자 그는 “음식에 가장 중요한 것은 소금”이라며 “소금 하나만 잘 써도 음식 맛이 달라진다”고 강조했다.

평소 소금에 대한 그의 관심은 남다르다. 최근 내놓은 만화 <식객> 25권도 소금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그가 최고로 치는 소금은 천일염이다.

허 화백은 <식객> 을 통해 “프랑스 게랑드 소금이 125g에 9000원이지만 국산 천일염은 20㎏에 1만5000원”이라며 “각 소금의 성분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봐도 국산 천일염이 더 양질인데 현실은 너무 가혹하다”고 소개했다. 허 화백은 염전들의 영세성과 정부의 무관심을 문제로 꼽았다.

그는 “염전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영세하다 보니 재투자할 여력이 없다”며 “한때 염전을 직접 사서 운영할 생각도 해봤지만 관리가 너무 힘들 것 같아 포기했다”고 귀띔했다. 그는 “정부와 지자체가 천일염의 가치를 인식해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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