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방어와 칠레 와인 우리 사랑해도 되겠지?
겨울 방어와 칠레 와인 우리 사랑해도 되겠지?
새해 연휴에 내린 눈이 아직도 수북한 경기도 판교의 한 빌라촌. 초인종을 누르자 허 화백이 직접 반갑게 맞았다. 우리 나이로 이제 65세가 됐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젊고 활기찬 모습이다. 허 화백은 “요즘은 먼저 연락해 찾아주는 후배들이 고맙다는 친구가 주위에 많아졌다. 그나마 난 여러 사람이 끊임없이 찾아주니 다행”이라며 입을 열었다.
허 화백은 “하지만 이런 자리라도 우리 나이엔 너무 말을 많이 하면 안 된다. ‘입은 다물고 지갑은 자주 열어야’ 다음에 또 찾아주기 때문”이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허 화백의 자택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인테리어를 갖춘 빌라였다. 클래식 매니어답게 음반 3000여 장을 모아둔 방이 눈길을 끌었다.
거실 한쪽 식탁 위엔 오후 내내 깠을법한 꼬막이 수북이 올라와 있었다. 허 화백은 “만화를 그린 것도 아니고 오후 내내 꼬막을 까다 손이 다 부르텄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허 화백의 꼬막 먹는 방법은 간단하다. 우선 껍데기가 단단하고 광택 있는 꼬막을 고른 다음, 온몸에 묻은 진흙을 잘 씻어 먹을 때 뻘 냄새가 나지 않게 한다.
그 후 물과 소금을 3대1로 섞은 바닷물과 비슷한 농도의 소금물에 담가 해감한다. 꼬막 삶을 물엔 소금과 청주를 적당량 넣고 팔팔 끓인다. 물이 끓어오르면 얼른 불을 줄이고 꼬막을 넣는다. 껍데기가 쩍 벌어질 때까지 두면 꼬막 살이 질겨지고 맛난 짠 국물이 다 빠져버려 심심해진다.
살짝 익혀 찬물에 식힌다. 꼬막 산지로 가장 유명한 곳은 전라도 벌교. 겨울철 벌교 갯벌에 가면 눈을 돌리기가 무섭게, 발을 떼기가 겁나게 제철 맞은 꼬막을 흔히 볼 수 있다. 벌교의 갯벌은 물이 깊고 뻘이 차져 꼬막이 특산품으로 유명세를 탈 정도로 쫄깃하면서 진득한 맛이 일품이다.
허 화백은 “가락시장에 가서 직접 고른 것”이라며 “겨울에 방어만 한 별미가 없다”고 소개했다. 방어회와 함께 등장한 소스가 눈길을 끌었다. 흔히 볼 수 있는 ‘간장과 겨자’ 조합이 아니라 ‘간장+파+생강’으로 만든 소스였다. 생강의 감칠맛이 방어의 육질에 스며 식욕을 돋웠다.
허 화백은 “회를 먹을 때는 항상 겨자 대신 생강과 파를 넣는다”고 설명했다. 해마다 12월이면 제주도 서남단 모슬포항에선 방어축제가 열린다. 구로시오 난류를 따라 올라온 방어들이 한 달 동안 엄청나게 잡히기 때문이다. 사실 방어는 1∼2월이 돼야 한결 기름지고 맛이 좋다. 하지만 그 무렵엔 방어 어획량이 급격히 줄어든다.
방어는 동해와 남해안 근해에서도 많이 잡힌다. 그러나 마라도 근역에서 잡히는 방어를 높게 친다. 시속 6㎞의 빠른 해류에 견디느라 운동량이 많아져 육질이 단단해서다. 살이 붉은 방어는 흰살 생선을 즐기는 한국인보다 일본인들에게 인기가 높다. 방어는 지방이 풍부해 진한 감칠맛을 내는데, 두껍게 썰어야 씹는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꼬막과 방어에 맞춰 공수된 와인은 부르고뉴 화이트 와인 ‘퓔리니 몽라셰’와 칠레의 레드 와인 ‘비냐 마이포 리미티드 에디션 쉬라’. 최성순 사장은 “회나 삶은 꼬막처럼 재료를 중시하는 음식엔 부르고뉴 화이트 와인만큼 어울리는 게 없는 것 같다”고 평했다. 하지만 예상을 깨고 두툼한 방어회와 레드 와인의 마리아주에 대한 평가도 높았다. 허 화백은 “회랑 같이 먹으니 비냐 마이포가 너무 맛있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회와 꼬막과 함께 무청·김치·멸치볶음 등 평소 허 화백이 소탈하게 먹는 반찬들이 밥상에 올라왔다. 맛깔스러운 음식의 비결을 묻자 그는 “음식에 가장 중요한 것은 소금”이라며 “소금 하나만 잘 써도 음식 맛이 달라진다”고 강조했다.
평소 소금에 대한 그의 관심은 남다르다. 최근 내놓은 만화 <식객> 25권도 소금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그가 최고로 치는 소금은 천일염이다.
허 화백은 <식객> 을 통해 “프랑스 게랑드 소금이 125g에 9000원이지만 국산 천일염은 20㎏에 1만5000원”이라며 “각 소금의 성분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봐도 국산 천일염이 더 양질인데 현실은 너무 가혹하다”고 소개했다. 허 화백은 염전들의 영세성과 정부의 무관심을 문제로 꼽았다.
그는 “염전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영세하다 보니 재투자할 여력이 없다”며 “한때 염전을 직접 사서 운영할 생각도 해봤지만 관리가 너무 힘들 것 같아 포기했다”고 귀띔했다. 그는 “정부와 지자체가 천일염의 가치를 인식해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식객> 식객>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정부, '의대생 휴학' 조건부 승인…미복귀시 유급·제적
2부동산 PF여파에 적자 늪 중소형 증권사…신용등급 강등 우려
3SKT 성장은 노태우 정부 특혜?…성장 과정 살펴보니
4종투사도 못 피한 부동산 PF '먹구름'…증권사, 자구책 마련 ‘안간힘’
5SK 최종현의 태평양증권 인수에 ‘노태우 자금’ 사용됐나?
6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300억원…SK 유입 여부 두고 치열한 공방
7'설상가상' 문다혜 씨, 아버지가 타던 차로 음주운전…신호 위반 정황도
8서울시, ‘휴먼타운 2.0’ 사업 후보지 10곳 선정
9굿파트너 작가 '황재균·지연' 이혼에 등판, '누구'와 손 잡았나